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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무과시험 (4) (131/250)


131화 무과시험 (4)
2022.06.11.


함량전(咸量殿). 관원들의 회의가 열리는 전각의 이름이다.

내시들의 숙소 용도로 지어진 소박한 건물을 이름만 거창하게 변경한 전각이기도 했다. 관원들이 권위의식을 갖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장양의 고집 탓이었다.

지금 이곳으로 과거제의 심사를 맡은 관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좌우로 늘어앉은 그들의 수는 백여 명에 이르렀다.

심사가 완료되었기에 공표만 남은 상황이었다.
입구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가 크게 소리쳤다.

“장군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든 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했다.

입구에서 장양이 소무와 함께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격식 차릴 필요 없으니 모두 앉으시게.”

장양이 상석에 앉았고, 좌·우측으로 부관 양연정과 소무가 앉았다.

관원들까지 모두 착석하자 장양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모두 고생이 많았네. 그럼 문과시험부터 결과를 보고해 보시게.”

행정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루마리를 펼쳤다.

“문과시험의 최종 급제자는 오십 명입니다. 장원은 미현(梅县) 출신의 진유소라는 여인입니다.”

관원들의 얼굴에 놀람의 기색이 떠올랐다.

사상 최초로 과거를 치를 수 있게 된 여인들은 준비 기간이 부족했을 터였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장원으로 급제한 인물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양이 기쁘다는 듯 호쾌하게 웃었다.

“허허헛!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이 당당히 장원을 차지했으니,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닌가?”

행정관은 급제한 자들의 명단을 계속해서 나열했다. 한중 출신의 인물들이 가장 많았으며, 이름 있는 학자들도 상당했다.

이번 과거제는 문과에 잡과가 포함되어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성적에 따라 다양한 관직을 부여받게 될 터였다.

높게는 현령이나 판관에서부터 역참의 관원까지. 이들은 섬서의 각지로 흩어져 필요한 자리에서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이다.

장양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 행복하구만. 허허. 무과시험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행정관은 두루마리를 교체해 펼쳐 보았다.

“무과시험의 합격자는 팔십칠 명입니다. 하온데…….”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가 망설이자 묵묵히 지켜보던 양연정이 재촉했다.

“왜 뜸을 들이고 있는가? 어서 말하시게.”

행정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자신도 지금에서야 문제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저……. 수석은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가장 뛰어난 두 명이 같은 점수를 받았기에…….”

장양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 두 명이 누구인가?”

“한 명은 사천에서 온 설풍이라는 자입니다. 이미 무관직을 갖고 있던 자인데, 무슨 연유인지 그곳의 관직을 내려놓고 섬서에서 다시 과거를 치른 인물입니다.”

장양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머뭇거리던 행정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소입니다.”

관원들이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기 시작했다.

“킥!”

“풉…….”

시험장을 기웃거리던 소소의 모습을 모두가 보았던 터였다.

선전하는 모습에 혹시나 했지만, 수석 후보까지 오를 줄이야. 웃기면서도 대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표정 관리에 열중인 가운데, 장양은 고심에 빠졌다.

“흠……. 이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수석을 뽑지 않을 수는 없거늘…….”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가 행정관을 향해 말했다.

“두 명의 성적표를 내게 가져와 보게.”

서류를 건네받은 소무는 과목별 점수를 세세하게 살폈다. 그러더니 그것을 다시 행정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참가자는 전술 과목에서 감점을 걸어두라고 했는데, 제대로 적용이 안 된 모양이군. 일 점을 더 차감하시게.”

“예……? 아, 알겠습니다.”

어차피 소소가 원하는 것은 종구품인 오장급 순관이다. 가장 말단의 품계였기에 순위는 관계가 없었다. 그렇기에 설풍이라는 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자리로 돌아간 행정관은 급제자의 명단을 다시 발표했다.

“최종 발표를 하겠습니다. 수석은 사천에서 온 설풍이며, 차석은 소소입니다.”

급제자의 명단을 한 명씩 부를 때마다 갈채가 터져 나왔다. 과거제가 성공적으로 끝났기에 모두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순위 확인이 모두 끝나자 장양이 관원들을 해산시켰다.

“다들 제대로 잠도 못 잤을 텐데, 오늘만큼은 모두 푹 쉬어두시게. 명령일세.”

함량전을 나가는 관원들은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 최고위 장수들만 남았다. 장양과 소무. 그리고 양연정이었다.

양연정은 연신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과의 수석으로 급제한 설풍이라는 자 말입니다. 왜 그곳의 관직을 포기하면서까지 이곳으로 왔을까요?”

행적이 수상해 보이는 것이 당연했지만, 장양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짐작대로라면 아마도 그자와 나는 구면일 것일세. 믿어도 되는 자이니 부장으로 임명하여 함께했으면 좋겠군.”

무과의 장원이라면 최대 종육품의 부장직급을 받을 수 있다.

양연정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지만, 그는 장양의 안목을 누구보다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알겠습니다. 장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필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자일 것입니다.”

관할구역이 넓어짐에 따라 많은 장수가 필요했다.

섬서의 핵심인 한중만 하더라도 위진철 부장이 혼자 남아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늘어나는 신병들의 관리까지. 이런 상황에서 설풍과 같은 인재는 언제든 환영이었다.

장양이 양연정과 소무를 한 번씩 바라보았다.

“임명식은 나흘 후 거행될 것이지만 자네들은 참석하지 못하겠군.”

“무슨 연유입니까?”

그는 양연정에게 군단의 전령이 살해당한 내용을 공유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까지도 말이다.

양연정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겨우 평정을 되찾았다.

“그렇다면 저는 한중으로 가봐야겠군요.”

장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관의 임무가 막중하네. 보안이 필요한 작전이니 은밀히 준비해주시게.”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장양의 시선이 다시 소무를 향했다.

“자네가 가장 걱정이로군. 포악함으로 따지면 유광세가 장준보다 더한 인물이니,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일세.”

한중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한 추밀원사 장준. 그보다 심성이 더 포악하다니,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과거 소무가 연합군단에서 싸웠을 때는 유광세와 계급 차이가 너무 커서 대면도 못 했지만, 지금은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염려치 마십시오. 이번에 전령을 죽인 것과 달리, 저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하간 조심하시게. 그럼 나도 잠시 어디 좀 다녀와야겠군.”

“혹시 악비 장군을 만나러 가십니까?”

장양은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허허. 가끔 보면 자네는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군.”

의용군을 결성한 악비는 장양의 요청으로 함곡관과 무관을 공격한 바가 있었다.

이번 계획에도 반드시 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면 움직이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를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이미 사형에게 서신을 받았으니. 무슨 일이든지 내가 요청하면 힘을 보태주겠다고 했네.”

소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를 살리기 위해 했던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잘될 걸세. 당분간은 우리 모두 바빠지겠군.”

* * *

과거제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났다.

막사 안에서 소무와 일광이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호북성에 주둔해있는 유광세 군단의 진지였다.

말을 타고 이동하면 열흘이 걸리지만, 화경급이 경공으로 가로지른다면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관복을 먼저 차려입은 소무가 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어디 좀 잠시 다녀올 테니.”

아직 관복을 입지 못한 일광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어디 가려고?”

“양주산. 소소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겠지. 며칠은 못 볼 테니.”

일광이 다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자, 잠깐만!”

막사의 문을 열려던 소무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보았다.

“왜?”

“같이 가. 나도 우리 소소한테 인사하고 가야 해.”

일광의 행동이 조금 수상했다.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아무려면 어떠하랴.

“그러던지. 천천히 따라와.”

소무가 문밖으로 나가자, 일광이 웃옷을 여미지도 않은 채 뛰쳐나왔다.

“어서 가자고.”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거군.”

“그럼. 앞으로 며칠을 못 볼 텐데. 우리 조카…….”

문 앞으로 나오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연설화에게 소소를 맡겨놓았기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둘이 함께 있을 시간이었다.

둘은 경공을 펼쳐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장안성 근방의 야산이었기에 일각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산의 초입을 지나쳐 중턱을 오를 때쯤이었다.

돌연 어디선가 사자의 포효가 들려왔다.

크아아앙-!!!

갑자기 산이 뒤흔들리며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느닷없는 진동에 놀란 일광이 주변을 살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바위가 굴러 내려오며, 나뭇가지가 부러질 듯 뒤흔들렸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낙엽이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소무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녀석, 제법인데? 벌써 이 정도라니.”

소무의 중얼거림에 일광이 무엇인가를 눈치챈 듯 물었다.

“설마 이게 소소가 익히고 있다는 사자후란 말이야?”

“맞아. 이제 칠 성쯤 된 것 같군.”

“칠 성인데 이 정도라고? 십 성 사자후를 코앞에서 맞으면 나도 뒈지겠는데?”

“확실히 그럴 거야. 하지만 그걸 맞아주는 놈이 바보지. 위력은 확실하지만 시전 속도가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거든.”

화경급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는 양날의 무공이었지만, 관계는 없었다. 용격사자후를 익히는 이유는 진일심소곡을 연주하기 위한 호흡법 때문이었으니.

몇 마디 잡담을 나눌 때쯤 드디어 목적지에 당도했다.

마침 앞마당에 연설화와 소소가 함께 나와 있었다.

일광의 얼굴에 다소 실망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 어딘가를 두리번거리길 반복했다. 그 모습에 소무가 피식하고 웃었다.

“조카 보러 왔다며?”

일광이 당황하며 더듬거렸다.

“맞아. 아까 얘기했잖아?”

“후후. 그러시겠지.”

잠시 후 아버지를 발견한 소소가 한달음에 달려와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버지, 어디 가요?”

눈치가 귀신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놓고 가는 게 마음이 쓰였겠지만, 설화와 함께 있으니 안심이었다.

“소소 선물 사러 가지. 금방 다녀올 거야.”

소소가 고개를 올리며 애원하듯 물었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그럼 스승님 혼자서 놀아야 하는데, 슬프잖아. 그래도 괜찮아?”

앵두같이 작은 입술이 마지못해 달싹였다.

“아니요…….”

그때 옆에 있던 일광이 서운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삼촌은 안 보고 싶어?”

그제야 소소가 고개를 돌리며 일광에게 시선을 주었다.

“삼촌도 소소 선물 사올 거예요?”

“그럼! 사와야지. 네 아버지보다 더 많이 사올 거야.”

입이 귓가에 걸린 소소가 냉큼 일광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히히히. 나는 삼촌이 매일 보고 싶어요. 빨리 와야 해요. 알았죠?”

일광이 소소를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물었다.

“선물이 보고 싶은 거야? 삼촌이 보고 싶은 거야?”

“둘 다요…….”

일광이 다시 무어라 말할 찰나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설화가 은근슬쩍 눈짓을 보냈다.

“동생은 암자 뒤편 정원에 있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일광이 시선을 회피하며 답했다.

“예……? 제, 제가 뭐라고 했나요……? 흐, 흠! 온 김에 인사나 하고 가야겠네요.”

일광이 소소를 안고 사라지자, 소무와 설화가 마주했다.

“고마워 연매. 덕분에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겠어.”

팔짱을 낀 설화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게 전부야?”

“아니. 부탁이 하나 더 있어. 무관 임명식 때 소소랑 함께 가줄 수 있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설화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어딘지 모를 퉁명스러운 말투까지.

“근데 무슨 일 있었어?”

“소소만 걱정이고 나는 안중에도 없나 보네.”

이제야 상황을 눈치챈 소무는 아차 싶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몸이 어디에 있든지 내 마음은 항상 연매랑 함께 있어.”

그 순간 설화의 얼굴이 노을빛에 반사되며 아름답게 빛났다.

미세하게 변하는 표정에는 마치 황녀처럼 당당하고, 우아한 기품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소무를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그저 단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내 것도 사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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