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아군인가 적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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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아군인가 적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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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아군인가 적인가 (3)
2022.06.14.
양주산 암자 근처의 원두막.
소소는 다람쥐처럼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궁금해진 설화가 옆으로 다가가 다소곳이 앉았다.
자세히 보니 가느다란 나무줄기에 수십 개의 꽃을 달고 있었다.
“뭐 만들고 있어?”
“꽃목걸이예요. 우리 아버지한테 줄 선물이에요.”
화환(花環)이었다. 붉고, 노란 꽃잎들의 화려한 색감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어디선가 보고 따라 만든 모양이었다.
처음 만드는 것치고는 솜씨가 제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병사들만 바글바글한 군영에서 이걸 차고 돌아다니면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으니.
그렇다고 어찌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좋아하겠구나.”
“예쁘죠? 히히.”
소소는 선물을 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반각이 지나자 그럴듯한 꽃목걸이가 탄생했다.
설화가 아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완성되었나 보구나.”
“네~ 스승님도 한번 걸어볼래요?”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킬 법한 화려함이 느껴졌다. 축제 때나 착용하고 다닐 화환이었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만, 주인한테 먼저 걸어줘야지.”
“힝.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어.”
설화의 입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와있어.”
소소가 벌떡 일어서서 두리번거렸다.
“정말요? 어디에요?”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암자 뒤쪽에서 터벅터벅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소무와 일광이었다.
소소가 꽃목걸이를 움켜쥔 채 양팔을 벌리고 달렸다.
“아버지~”
“잘 지내고 있었어?”
소무가 딸아이의 허리를 잡고 하늘 위로 빙글빙글 돌렸다.
까르륵 웃던 소소는 바닥에 내려서서 손에 쥔 걸 내밀었다.
“이거 내가 만들었어요. 헤헤.”
“허헛. 고맙구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흔적이 남아있었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절대 벗으면 안 돼요. 알았죠? 히히힛.”
“그, 그럼. 계속 차고 다녀야지.”
“약속해요?”
“응……. 물론이지.”
꽃다발을 목에 걸자 설화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군영에 복귀하자마자 군사회의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벗은 걸 알기라도 하면 상처받을 게 분명할 터. 이걸 차고 들어갈 생각을 하니 심정이 착잡했다.
그때 소소가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작은 봇짐이었다.
“이건 내 선물이에요?”
“응. 스승님 것도 같이 샀어.”
소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빨리 봇짐을 열어보았다.
연두색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비단옷이었다. 마음에 드는지 그중 작은 것을 움켜쥐고는 양손으로 끌어안았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너무 좋아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어서 입어 봐.”
이미 소소는 옷을 훌러덩 벗고 새 옷을 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옷만 입은 채 두리번거리더니 큰 옷을 설화에게 건네주었다.
“스승님도 빨리 입어 봐요!”
아직 부끄러움을 모를 나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얼굴이 붉어진 설화는 양손으로 옷을 받아 들고는 화제를 돌렸다.
“사, 삼촌도 뭔가 선물을 사오신 것 같구나.”
그러고 보니 일광의 등 뒤에도 거대한 봇짐이 매어져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소소는 눈이 반짝 빛났다.
“삼촌, 그거 뭐에요?”
“선물이지. 소소 친구들 것도 같이 샀어. 이따가 같이 가서 나눠줄까?”
소소는 방방 뛰며 좋아했다. 친구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히히. 좋아요! 신난다!”
모처럼의 재회에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설화가 암자 옆의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점심이나 함께하고 가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었다. 일광이 양손을 모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설화와 소무가 함께 요리하여 식사를 준비했다.
맛있게 차려진 음식은 원두막에 모여서 함께했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장안으로 이동했다. 여유롭게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소무가 궁성에 들어서며 일광에게 작별을 고했다.
“모처럼 좋은 일 하러 가겠군. 잘 다녀와.”
“그럼 저녁에 막사에서 봐.”
봇짐을 짊어진 일광의 뒤를 소소가 졸졸 따라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순간 갑자기 딸아이가 고개를 휙 돌렸다.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꽃목걸이를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어색해진 소무는 손을 한 번 흔들고는 군영으로 향했다.
병사들은 대부분 훈련장에 있었다. 곳곳에서 기성이 들려오며 훈련용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각각의 훈련장마다 중심에는 랑아대가 있었다. 대원 한 명당 오십 명의 병사가 함께 싸우는 집단 전투훈련이었다.
“제법이군.”
자신이 밤낮으로 공을 들여 키운 랑아대였다. 그들을 상대로 버티는 병사들이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병사들은 어지간한 무림의 문파보다 수련 시간이 많다. 적어도 섬서에서만큼은 무림이 예전의 위세를 되찾긴 힘들겠군.’
뒷짐을 쥔 채 길목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그러길 잠시 후. 전면에서 안면이 있는 사관장 한 명을 마주쳤다.
자신을 발견한 그가 반사적으로 기립하며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십니까, 소무 대장님! 벌써 돌아오신 겁니까?”
“음. 일이 잘 풀렸어. 장군님은 지금 어디 계시지?”
“지금 부장님들을 소집하여 회의 중입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겠군.”
사관장이 앞장서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축제라도 있었습니까?”
“아니 뭐……. 신경 쓸 것 없어.”
자신의 목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화환(花環) 때문이었다.
이 상태로 무관들이 모여있는 곳에 들어가면 웃음거리가 될 터. 조심스럽게 화환을 벗어내려던 찰나였다.
‘누구지?’
돌연 등 뒤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작은 그림자 하나가 노점의 틈새로 쏙 들어갔다. 재빨리 숨는 것이 마치 자신을 미행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소무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이것 참…….”
아주 찰나였지만, 분명히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일광하고 같이 선물을 나눠주러 간다더니, 그런 척만 하고 자신을 미행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애써 만든 꽃목걸이를 잘 걸고 다니나 감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영악하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소무는 목소리를 높여 크게 답했다.
“우리 딸이 만들어준 거야. 솜씨가 제법이지? 아주 마음에 쏙 들게 만들었단 말이야.”
“물론입니다, 대장님. 정말 부럽습니다.”
대화 내용을 들었던 것일까? 딸아이의 기척이 다시 사라졌다. 다시 설화원으로 돌아간 것이리라.
이백여 장쯤 걷자 궁성 어딘가에 목적지가 나타났다.
군화전(軍話殿)이란 현판이 각인되어있었다. 작전실 중 하나로 사용되는 전각이었다.
“수고했어.”
사관장은 그를 도왔다는 사실이 기쁜지 밝은 얼굴로 사라졌다.
군화전의 입구에 선 소무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딸이 준 선물이니 창피해할 필요 없다.’
끼기기긱-!
문이 열리며 내부의 광경이 드러났다.
장안성에 있는 모든 부장급 무관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상석에는 장양이 앉아 있었으며, 좌우측은 공석이었다.
무엇인가를 설명하던 장양이 멍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특수임무를 받고 떠났던 그가 꽃다발을 목에 두르고 나타났으니 당연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소무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임무는 계획대로 잘 되었습니다.”
“아니 자네 목에 걸려 있는 그것 말일세.”
“아……. 이거. 제 딸이 만들어줬습니다…….”
그때였다. 동시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핫. 정말입니까?”
“허허. 이거 자식이 없는 누구는 서러워서 살겠는가.”
“부럽다, 부러워…….”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부러움이 느껴졌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머쓱했던 소무는 어느새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소무는 터벅터벅 걸어가 장양의 좌측에 앉았다.
그의 품계가 부장들보다 높아졌지만, 경력이 오래된 자들에게는 예우를 갖춰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폭풍적인 승진을 시기하는 이가 없었다.
장양이 껄껄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얘기 좀 한번 들어보지. 상장군을 만나보았는가?”
“물론입니다. 생각보다는 쉽게 풀렸습니다.”
소무는 다녀왔던 일들을 세세하게 보고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상장군이 열흘 뒤에 출진한다는 소식이었다. 민감한 부분은 나중에 장양과 따로 얘기할 예정이었다.
일각이 지난 뒤 장양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허허. 고생 많았네. 헌데 같이 떠났던 일광 도위는 어디에 있는가?”
“고아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고 설화원으로 갔습니다. 필요하시면 지금 불러오겠습니다.”
“허허헛. 정이 많은 자로구만. 잘하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시게.”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본론을 물었다.
“우리는 언제 출진합니까?”
장양의 시선이 탁상 위의 지도로 향했다. 지휘봉으로 일정 지점을 길게 이으며 설명했다.
“양양까지는 강행군으로도 열흘 이상이 족히 걸릴 것이네. 이곳을 오래 비워둘 수도 없는 일이지. 이틀 후 신속행군이 가능한 소수 정예부대를 출진할 것이네.”
이미 어느 정도 얘기가 되어있던 부분이었다. 문제는 어느 부대를 보내느냐는 것이었다.
“랑아대는 확실하겠군요. 또 어느 부대를 보내겠습니까?”
섬서의 전역에서는 정기적으로 모병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세 번의 모병을 거쳤으며, 네 번째 모집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랑아대와 동기인 첫 번째 기수들이 바로 최정예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연위병(連衛兵)으로 불리며 군단에서 가장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다.
“신속하게 전진해야 하는 만큼 한백 부장의 기마대가 제격이지 않겠나.”
한백 부장이 이끄는 기마대는 이천 명으로, 전원이 연위병이었다. 하나같이 뛰어난 무예를 지니고 있으며 무패의 신화를 기록 중이다.
이십만에 이르는 적군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지만, 전면전에 투입될 것은 아니니 무관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유광세의 군단은 움직이는 즉시 적군에게 동향이 포착되겠지만, 우리는 그럴 틈이 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묵묵히 구석에 앉아 지켜보던 한백 부장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적들에게 섬서 기마대의 위용을 보여주겠습니다.”
장양의 입가가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듬직하니 좋군. 내 예상대로라면 유광세의 군단이 양양에 당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일세. 첫 번째 목표는 그들이 무사히 목표지점까지 합류하도록 만드는 것이네.”
소무와 한백 부장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광세를 돕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의 군단이 필요했다.
그때 진립 부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중으로 가신 양연정 부관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관은 포위당한 양양성에 보급 임무를 수행할 것일세.”
“하오나 한중에서 양양까지 무슨 수로 식량을 보급한단 말입니까?”
장양의 지휘봉이 다시 지도를 가리켰다.
“한중의 병사들을 이끌고 원양현에서 함선을 타고 수로를 이용할 생각이네.”
중원에서 수성전에 가장 적합한 성을 꼽으라면 단연 양양성이다. 삼면이 한수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다른 한쪽도 산이 인접해 있는 천혜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곽철 부장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미 해상도 포위당한 상황일 것입니다. 게다가 함선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장양이 탁상 위에 깍지를 끼고는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보안이 필요했기에 내 미리 자네들에게 말하지 못한 점은 사과함세. 사실 우리에게 협력하기로 한 단체가 있네. 무림에서는 그들을 용강수로채라 부르지.”
십수 년 전 관군에 의해 대대적인 토벌을 당했던 장강수로채. 그곳의 잔당들이 다시 모여 만든 단체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장강의 최대 지류인 한수강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후 전란 속에 관군이 움직일 수 없는 틈을 노려 사상 최대의 규모로 성장했다.
모두가 놀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 작전을 계획한 소무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번 과거제의 결과로 새로 합류한 설풍 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은 수적이 아닙니까? 관으로서 토벌해야 할 대상과 힘을 합쳐도 되는 건지요?”
장양이 소무를 쓱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자세한 내막은 소무 대장이 설명해주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