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아군인가 적인가 (4) (135/250)


135화 아군인가 적인가 (4)
2022.06.15.


관군이 수적들의 도움을 받는다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황당한 발상이었다.

소무가 좌중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개방의 도움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최근 그들의 채주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무공이 뛰어나고 수완이 좋은 인물이라 합니다.”

설풍 부장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왜 우리를 돕겠습니까? 그리고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앞으로 수적질을 묵인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최근 합류한 부장치고는 당돌하기가 그지없었다.

누군가가 눈치를 주려 했으나 장양이 은근슬쩍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는 부하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소무도 신경 안 쓴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물론 해상에서의 약탈 행위는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우리를 돕는 이유는 목적이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용강수로채의 총타가 휘나라의 공격을 받고 십여 척의 함선을 빼앗긴 일이 있었습니다.”

지켜보던 양강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다면 용강수로채가 휘나라에 불만이 많겠군요. 빼앗긴 함선도 되찾아야 하고요. 관군의 힘을 빌려서라도 말이지요. 하지만 수적들을 우리가 키워주는 꼴이니 백성들의 원성이 걱정입니다.”

일이 성공하면 앞으로 그들이 더욱 기고만장할 수 있었다.

되찾은 배는 다시 한수강에서 수적질에 동원될 것이 분명할 터.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장양은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 전선이 한수 유역을 끼고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네. 그렇기에 우리도 함선과 노련한 수군이 필요한 상황이지. 허나 그것이 어찌 하루아침에 준비되겠는가.”

곽철 부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그들을 우리 군단의 병력으로 편입시킬 계획이십니까?”

“기회를 한 번 줄 것이네. 나라에 목숨을 헌신하여 죗값을 치를 기회를 말일세.”

한수강은 한중에서부터 양양을 끼고 장강까지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전략적으로 수군이 매우 절실해진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곽철도 이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골칫거리였던 수적이 사라지고, 최고의 수군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오나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 군단에 들어오겠습니까?”

장양이 은연중 소무를 쓱 한 번 바라보았다. 맹목적인 믿음과 신뢰가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그 일은 걱정하지 마시게. 이번 전투가 끝나면 소무 대장이 나서서 추진하기로 했으니.”

혜성처럼 나타나 용강수로채를 장악한 새로운 주인.

개방의 정보를 살펴본 결과, 무림 출신의 고수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더한 적임자가 없을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역시 듬직하구만. 이건 차후의 일이니 우선은 눈앞의 전투에만 집중하시게.”

“알겠습니다.”

장양이 좌중을 둘러보며 마지막 말을 건네었다.

“이번에는 부득이 랑아대와 기마대만 출진하지만, 자네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단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네. 당분간 부장들은 병사들의 훈련에 박차를 가해주시게. 일당백으로 싸울 수 있는 용맹한 병사들만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니.”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조아렸다.

“예, 장군!”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장군!”

군사회의는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탁상공론을 해봐야 소용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특수한 목적으로 소수의 부대로만 출진하는 만큼 현장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회의를 마친 소무는 밤늦게까지 군영을 순시했다.

곳곳에서 맹훈련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요령을 피우는 병사들이 없었다.

예기가 서린 병사들의 눈빛은 자긍심을 머금고 있었다. 확실히 예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몸을 씻고 막사로 향했다. 입구 근처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랑아대원 한 명이 보였다.

“오늘은 네가 당직인가?”

철두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작게 속삭였다.

“대장님, 쉿…….”

“무슨 일인데?”

“소소가 지금 자고 있어요.”

소무의 시선이 하늘 위로 향했다. 잠을 자기에는 많이 이른 시간이었다.

“벌써?”

“요즘 새벽아침부터 순찰 나간다고 하던데요.”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순관이라는 하급 관직을 받지 않았던가. 유광세의 군영에 다녀온 사이 임명식이 끝났을 터였다.

“다른 대원들은?”

막사 안에는 소소를 제외하면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랑아대원은 철두 혼자였다.

“아마 내일 아침 해 뜰 무렵에나 올 겁니다.”

“정말이지 독한 녀석들이로군.”

소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대원들끼리의 경쟁의식이 날로 심해지고 있었다. 가장 뛰어난 열 명을 백부장으로 진급시킨다는 장양의 언질이 불을 지핀 것이다.

끼이이익.

조심스럽게 막사의 문이 열렸다. 새우처럼 누워 새근새근 자는 소소의 모습이 보였다.

물끄러미 응시하던 소무는 담요를 덮어주고 옆에 누웠다.

‘나도 모처럼 잠이나 자야겠군.’

소무가 잠을 자는 것은 이레에 한두 번에 불과하다. 그것도 예민한 감각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든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방이 조용한 지금이야말로 수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드러누운 지 한 시진.

역시나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에선 온갖 잡생각이 날아다녔다.

그때였다.

가슴 위로 무엇인가 작은 물체가 올라왔다.

터억-!

소소의 오른팔과 무릎이었다. 자신의 몸에 기댄 채 세상 편하게 자고 있었다.

소무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등을 감싸주었다.

‘평온하군.’

딸아이와 단둘이 오붓하게 잠을 자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겪어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나날이 계속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아직까진 갈 길이 멀기만 하구나.’

아직 휘나라 황제는 정보조차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의 휘하에는 현경급의 고수가 둘이나 있다.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까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이제 겨우 몇 걸음을 내디딘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또 한 걸음을 걸어야겠지. 그나저나 잠을 자기는 틀렸군.’

역시나 오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이 지나고 닭이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꼬끼오-!

닭 울음소리와 함께 소소의 눈이 번쩍 떠졌다.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모습이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벌써 일어나? 좀 더 자도 괜찮아.”

소소는 어느새 쪼그려 앉아 보관함에서 작은 관복을 꺼내고 있었다.

“안 돼요. 지금 순찰 가야 해요.”

“뭐 때문에 고생해? 힘들면 그만둔다고 해.”

돌연 소소가 진지한 표정으로 작게 속삭였다.

“궁성에 도둑이 있어요. 꼭 잡아야 해요.”

“누가 그래?”

소소가 바지를 추켜올리며 말했다.

“저번에 일광 삼촌이 봤대요. 같이 잡으려다가 놓쳤어요.”

척 봐도 일광이 거짓말을 한 게 확실했다. 그가 도둑을 발견했으면 놓쳤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걸 곧이곧대로 믿다니.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가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일찍 일어나 산보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기도 했으니.

“잘 다녀와. 애먼 사람 잡으면 안 돼.”

관복을 모두 차려입은 소소는 장난감 같은 곤봉을 허리춤에 꽂았다. 그러고는 문 앞에 서서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알았어요,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홀로 남겨진 소무는 잠시 고민했다.

역시나 막사에 혼자 남아 할 일이 없었다. 이윽고 딸아이를 미행해 보기로 했다.

소소가 순관이 된 지 오늘로 두 번째 날이었다.

이미 궁성의 위치는 전부 꿰차고 있기에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눈에 불을 켜고 궁성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무는 은밀히 전각들의 지붕 위를 넘나들며 따라붙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기에 사방이 무척 어두웠으며, 인적 또한 없었다. 가끔 보이는 순관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처음으로 향한 곳은 궁성 중앙 부근에 있는 순라군(巡邏軍)의 본부였다. 그곳의 지붕으로 도약하여 대화 내용을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소소 왔어요.”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꼬마 순관님 오셨구나? 졸릴 텐데 내일부터는 좀 더 천천히 나오너라.”

순라대장인 양소 부장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큰 반가움이 묻어났다. 소소 덕분에 지하뇌옥에서 탈출하여 목숨을 건진 일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괜찮아요. 헤헷. 도둑은 잡았어요?”

“하하. 이곳에 찾아올 간 큰 도둑이 어디 있겠어? 그런 생각 말고 어디 가서 좀 놀다 와. 아니면 아저씨랑 손잡고 산책이나 할까?”

“아니에요. 분명히 있어요. 오늘은 꼭 잡아 올 거예요.”

일거에 거절한 소소는 다시 본부 밖으로 나왔다.

언제 챙겨 나왔는지 손에는 간식도 하나 움켜쥐어져 있었다.

곳곳을 싸돌아다녔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한 식경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식량 창고의 부근을 지나는 순간 돌연 작은 입술이 실룩거렸다.

“찾았다, 도둑!”

갑자기 소소가 후다닥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소무는 어리둥절했다.

‘뭐지? 아무도 없는데?’

만약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에게서 기척을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리저리 내달리던 소소가 돌연 펄쩍 뛰며 기뻐했다.

“히히히. 히힛!”

뒤에서 봐도 입이 귓가에 걸려있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슨 영문인지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냐아아옹-!

도둑고양이였다. 입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 물려 있었다.

“너 지금 여기서 훔쳐 먹었지? 내가 다 봤어.”

소소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순라군의 본부로 향했다. 기분이 좋은지 폴짝폴짝 뛰면서 말이다.

“아저씨, 도둑 잡아 왔어요! 내 말이 맞죠?”

양소 부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렇구나. 정말 잡아 왔네?”

“히히. 감옥에 가둘까요?”

도둑고양이를 어찌 감옥에 가둔단 말인가.

고민하던 양소 부장은 선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

“처음이니깐 그냥 조금 혼내고 보내줘.”

잠시 후 본부 밖으로 나온 소소는 고양이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허리춤에서 막대기 같은 작은 곤봉을 꺼내어 들었다.

“손들고 있어. 또 훔쳐 먹으면 혼나! 알았어? 다음엔 이걸로 맞을 수도 있어.”

고양이는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소가 뿜어내는 기(氣)에 짓눌려 몸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훈계를 하던 소소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곶감을 하나 꺼내어 입에 물려주었다.

곶감을 입에 문 고양이는 양손을 들고 반각 동안 벌을 받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날은 더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소소의 근무 시간은 아침밥을 먹기 직전까지다. 이후에는 양주산에서 무공 수련과 퉁소 연주를 하고, 오후에는 설화원을 간다. 저녁을 먹기 전에 한 시진을 더 순시하는 것으로 일과가 마무리된다.

하루가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모든 게 즐거웠다.

다음 날 늦은 새벽.

또다시 순시를 나온 소소는 어김없이 궁성을 헤집고 다녔다.

은밀히 따라다니는 소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밤톨 같은 게 순시를 한답시고 다니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며칠 뒤면 다시 전장으로 나가야 한다. 이렇게나마 딸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천생 나랏일을 해야 할 팔자로구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는 것을 좋아할 나이였다. 관원들과 함께 일하는 걸 더 재밌어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소를 미행한 지 한식경이 지났을 즘이었다. 돌연 멀지 않은 곳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되 었다.

들짐승처럼 작고 빠르게 움직이는 기의 흐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뭐지? 이 시간에 누가?’

안광에 내력을 집중하자 작은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는 의선당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도둑이라도 온 것일까? 확인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은밀한 기척은 기어코 소소에게도 감지되고야 말았다. 이 기회를 놓칠 아이가 아니었다.

소소는 담벼락 아래 쪼그려서 그림자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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