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산와족의 무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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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산와족의 무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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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산와족의 무사 (1)
2022.06.16.
의선당(醫宣堂).
장안의 궁성 내에 존재하는 의원으로 거대하고 웅장한 전각이다.
지금 그곳을 작은 그림자 하나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미행당하는 줄도 모르는 채 말이다.
조금의 기척도 내지 않는 발걸음. 게다가 깃털처럼 날렵한 움직임은 무공을 익힌 자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체구가 너무나도 작은 것이 아닌가. 분명 소소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반로환동한 기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이는 나무 뒤에 숨어서 때를 기다렸다. 두 명의 보초병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동이 틀 무렵 근무가 끝난 보초병들이 교대를 위해 자리를 비운 것이다.
그 순간 아이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튕겨 나갔다. 나이를 고려한다면 굉장한 수준의 경공술이었다.
잠시 후 작은 체구가 의선당의 창문 틈새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은 맞은편의 전각 지붕에 있는 소무의 눈에 똑똑히 들어오고 있었다.
녀석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약재를 훔치려는 모양이군. 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의선당은 모청 대장의 의료부대가 운영하고 있으며, 민간인은 무료로 진료를 봐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약재를 도둑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각도 되지 않아 아이는 다시 창틀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작은 보따리를 들고 능숙하게 나오는 모습이, 한두 번 방문한 솜씨가 아니었다.
‘군단 소유의 의약품을 털다니. 천하의 대도(大盜)가 될 녀석이로군.’
가지고 나온 약재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용처는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배후는 단체가 아닌 개인일 확률이 높았다.
의선당을 빠져나온 아이는 전각의 그림자로 스며들며 재빨리 달렸다.
그리고 두 번째 전각을 지나쳐 골목으로 빠지려는 찰나, 아이의 경공이 급정지했다. 웬 여자아이가 갑자기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소소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너, 도둑이지?”
기가 막히게도 둘은 눈높이가 똑같았다.
“너 뭐야…….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험악한 말투였다. 당황할 법도 하건만 물러설 소소가 아니었다.
소소가 팔짱을 끼며 눈에 힘을 주었다.
“사실대로 말해. 약 훔쳤어?”
“네가 알 게 뭐야? 비키라고 했다.”
“나 순찰대원이야. 한번 혼나고 싶어?”
남자아이는 뭔가 다급해 보였다. 누군가에게 빨리 약재를 전달해줘야 하는 모양이었다.
순간 노려보던 아이가 오른손을 내뻗어 소소의 어깨를 밀쳐냈다. 어느 정도 내공까지 실려 있는 한 수였다. 단번에 넘어트릴 작정이었다.
터억-!
“아얏!”
신음은 오히려 남자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소소의 힘을 어찌 당해낼 수 있겠는가. 검성의 전승자이자 옥화신녀의 제자인데 말이다.
마치 강철을 때린 듯 아이의 손목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눈을 끔뻑거렸다.
그때 소소가 호두 같은 주먹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마치 머리를 쥐어박으려는 듯한 시늉이었다.
“우씨.”
사내아이는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는지, 아이의 눈에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남아있었다. 아마도 또래 중에 적수를 만나보질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손을 내뻗었다. 상대의 목을 움켜쥐는 기술인 금나수(擒拿手)였다.
목을 향해 다가오는 손가락. 하지만 소소의 눈에는 너무나도 느리게 다가왔다.
소소는 상체를 살며시 뒤로 기울이며 손을 흘려보냈다. 그 순간 눈앞을 지나가는 팔목을 낚아채고는 등 뒤로 꺾어버렸다.
“으아악!”
“날 때리려고 했지? 우리 아버지가 무공은 아무한테나 쓰면 안 된다고 했어.”
“나, 나한테 왜 이래?”
조금 전까지 독기를 머금었던 눈동자가 공포로 변해갔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 그것이 아이의 본성을 자극한 것이다.
“이거 왜 훔쳤어?”
“몰, 몰라도 돼. 나 좀 놔줘…….”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허리춤에서 작은 곤봉을 꺼내었다. 그 순간 남자아이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두들겨 맞을래?”
또래의 예쁘장한 아이가 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이렇게 맞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
“그럼 손들고 있어.”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마지못해 양손을 하늘 위로 올렸다.
소소는 뒷짐을 쥔 채 진지한 표정으로 왔다 갔다 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일단 뭘 훔쳤나 살펴봐야 했다.
쪼그려 앉아 보따리를 뒤져보았다.
사슴뿔처럼 생긴 약재와 잎사귀가 나왔다. 물론 눈으로 본다고 이게 무엇인지 알아볼 리가 없었다.
“배고팠어?”
“......”
조금 뜯어서 먹어보니 혀를 자극하는 쓴맛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크억. 뭐야 이거?”
“우리 아버지 약재야…….”
갑자기 소소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아버지가 아파?”
“응. 나 빨리 가봐야 해…….”
소소는 앉은 채로 턱을 괴고 고민했다.
“어떡하지…….”
본부로 데려가자니 아버지가 아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줄 수도 없는 노릇. 고민에 빠져있을 찰나였다.
아이는 소소가 한눈을 파는 사이 도주를 감행했다. 뭔가 다급한 게 있는 듯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죽기 살기로 내달리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소소는 약 보따리를 움켜쥔 채 어리둥절했다.
“이거 안 가져가도 돼? 아버지 아프다며…….”
자신도 하나뿐인 아버지가 있지 않은가. 그냥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민하던 소소는 약 보따리를 들고 남자아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소무가 은밀히 뒤따랐다.
남자아이와 소소의 경공 속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목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소소는 바로 잡아채지 않고 은밀히 미행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는 열려있는 성문을 단번에 돌파했다.
방심하고 있던 보초병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저, 저놈 뭐야?”
“꼬맹이가 뭐 이리 빨라?”
그들의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소소가 뒤따르며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보초병이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쟤들 뭐 하는 거야?”
“난들 알겠나. 소소는 그렇다 치고, 저 남자애는 누구지?”
“나도 처음 봐. 뭐 애들이니 별일 없겠지.”
이미 아이들은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인근 마을을 향해 질주했다. 화릉촌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을 빠르게 훑어보던 아이는 마을 외곽에 있는 거지들의 움막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개방의 방도들이 있는 곳이었다.
일결제자 둘과 삼결제자 하나가 둘러앉아 냄비에 죽을 끓이고 있었다.
“뱃가죽이 등에 붙은 것 같아! 광칠아, 아직 멀었냐?”
“이제 다 됐습니다.”
“오늘은 고기도 넣었다고?”
“예. 어제 동냥해온 오리고기도 조금 들어있습죠. 헤헤.”
“고기는 내 거니깐 넘보지 마라.”
일결제자 하나가 냄비에서 죽을 푸려던 순간이었다. 그들의 사이를 작은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지나쳤다.
파앗-!
영문을 모르던 개방의 방도들이 다급히 물러섰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반응은 하나같이 무공을 익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뭐, 뭐여 지금? 무슨 일이여?”
방도들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웬 어린놈이 자신들이 끓이던 죽통을 들고서 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애새끼 뭐야? 빨리 잡아!”
개방의 방도들은 모두 무공을 수련한다.
그들은 몽둥이를 하나씩 움켜쥐고 남자아이를 뒤쫓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야! 뺏어 먹을 게 없어서 거지 것을 훔쳐먹어!?”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경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의 지리를 꿰차고 있는 방도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미 삼결제자가 지름길을 가로질러 아이의 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밥그릇 건드는 놈은 못 참아. 너 오늘 뒈졌어.”
몽둥이를 움켜쥔 삼결제자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죽통을 움켜쥔 아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퇴로가 완전히 막혔기 때문이다.
“잘못했습니다. 돌려드릴 테니 보내주세요…….”
“하? 요놈 봐라. 일단 맞고 나서 얘기하자고.”
삼결제자가 몽둥이를 비틀자 기세가 달라졌다. 한눈에 보아도 아이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 순순히 앉아서 맞을 수 있겠는가.
아이는 죽통을 왼손으로 끌어안고, 오른쪽 손바닥을 내뻗어 기수식을 취했다.
손목이 퉁퉁 부어있었기에 무공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장법을 수련했나 보군. 우리 개방에는 법도가 하나 있지. 윗사람한테 대들면 더 처맞아야 한다는 법이 말이야.”
궁지에 몰린 남자아이의 눈에 다시 독기가 서렸다.
아이를 향해 삼결제자가 공격을 개시하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등 뒤에서 웬 여자아이의 기성이 들려왔다.
“흐잇!”
그때였다.
어디선가 두 개의 돌멩이가 벼락같이 날아와 삼결제자의 발목으로 다가갔다.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속도였다.
콰쾅-!
바닥에 볼품없이 넘어진 삼결제자가 신음을 토해냈다. 급소가 아니었기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통증이 적지 않았다.
“큭! 누, 누구야? 어떤 빌어먹을 놈이 기습을…….”
넘어진 삼결제자와 일결제자들이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암기를 던진 소소는 이미 근처의 나무 뒤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남자아이가 도주를 시작했다.
방도들에게 도망치는 아이는 이제 관심사가 아니었다. 자신을 기습한 인물을 경계하며 주변을 살피기를 계속했다.
그들을 뒤로한 채 내달리던 아이는 근처의 야산으로 향했다.
반각을 내달린 끝에 도착한 장소엔 원목으로 만들어진 허름한 집이 있었다.
“백아야, 오빠 왔어…….”
낡은 문이 열리며,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먹지를 못했는지 꾀죄죄한 몰골의 퀭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배고파…….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미안해. 약은 못 구했어.”
“어떡해? 그럼 우리 아버지 죽어?”
“아니야. 내일 다시 갔다 올 거야.”
백아의 시선이 남자아이의 손목으로 향했다. 한눈에 보아도 붉게 달아올라 퉁퉁 부어있었다.
“손 다쳤어?”
“응……. 넘어졌어. 배고프지? 이거부터 우선 먹어.”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내용물이 대부분 날아가 버린 이후였다.
죽통을 넘겨받은 백아는 얼마 되지 않는 그것을 들이켰다. 줄어드는 죽이 아쉽다는 듯 아끼면서 말이다. 그러다 문득 행동을 멈추며 물었다.
“오빠도 한 입 먹어.”
“괜찮아. 나는 먹고 왔어. 아버지는?”
“많이 아파해…….”
“휴.”
남자아이의 한숨 소리에 백아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때 숨어서 지켜보던 소소가 미안했는지 모습을 드러냈다. 어색한지 약 보따리를 움켜쥐고 쭈뼛쭈뼛 다가갔다.
“저 언니는 누구야?”
남자아이는 부은 손목을 까딱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순찰대원이래……. 안에 들어가 있어.”
“왜?”
백아는 경계를 풀고 소소에게 다가갔다. 어색한 표정으로 보따리를 내미는 모습이 나쁜 사람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 이름이 뭐야? 나는 백아.”
“언니는 소소야. 아버지가 아파?”
“응…….”
보따리를 건넨 소소는 품속에 손을 넣어 뒤적였다. 그곳엔 언제나 비상용 간식이 들어있다.
“배고프지?”
유과를 건네받은 백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만지작거렸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간식이었던 것이다.
“먹는 거야?”
“응, 맛있어. 빨리 먹어봐!”
한 입을 깨물어 본 백아의 표정이 해맑게 변했다.
“헤헤. 맛있어. 고마워, 언니.”
백아가 좋아하는 모습에 소소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보따리를 건네받은 남자아이가 문을 열고 있었다.
끼기기긱-!
“아버지……. 약 가지고 왔어요.”
문틈으로 보이는 모습에 소소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지켜보던 소무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푸라기들로 가득한 집안에 중년인이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왼쪽 팔은 절단되어 있었으며, 상처가 썩어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소소는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소무가 놀란 이유는 딸아이와 달랐다.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는 갑옷과 투구. 그것은 분명히 휘나라 장수의 갑주였다. 투구의 장식으로 보아 고위급 무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