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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산와족의 무사 (2) (137/250)


137화 산와족의 무사 (2)
2022.06.17.


하필이면 휘나라 장수의 자녀들이라니? 일이 조금 안 좋게 꼬이고 있었다.

소무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한다. 체포한다면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 터인데.’

장안성을 탈환할 당시 중상을 입고 도주한 인물인 듯했다.

적국의 고위 무관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소무는 안광을 빛내어 더욱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맥박과 호흡이 곧 꺼질 것처럼 미약했다.

혈색이 시퍼렇다는 것은 상처의 독소가 온몸으로 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염된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시기를 놓친 것이리라.

‘앞으로 며칠도 버티지 못하겠군.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죽을 인물을 체포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무는 묵묵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에 소소의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없었다.

상황 파악이 끝났으니 우선 돌아가야 했다. 출진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기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장안성으로 나아가는 소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소에게는 결국 아픈 추억으로 남게 되겠군.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난세를 버텨내게 해줄 강인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적장의 자녀들이라니. 상처받을 아이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허나 지금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한 세상이기도 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궁성에 도착한 소무는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대원들이야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장양과 함께 작전을 점검하고, 기마부대의 한백 부장을 만나 전술을 의논했다.

그의 발걸음은 다시 모청 대장이 있는 의선당으로 향했다. 모청은 군단에서 자신의 과거가 검성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의선당에 들어서자 의무병들이 기립하며 인사를 건넸다.

“수고들 많군. 모청 대장님은 어디에 있지?”

“조금 전 수술을 마치고, 저곳에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의선당에는 의무병들이 쉬는 작은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곳으로 가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백발의 노인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소무가 맞은편에 앉자, 노인이 반가움을 표하며 찻잔을 채워주었다.

“허허. 어서 오시게. 둘이 함께하는 것은 오랜만이로군.”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모청을 등용하여 이곳에 박아둔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 아니었던가. 죽을 날만 기다리던 나이 지긋한 노인을 말이다. 그렇기에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었다.

“신경 쓰지 마시게. 자네가 바쁜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나도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

소무의 입가가 작은 미소를 그렸다.

“의무병들이 많이 늘었는데도 어르신은 여전히 바쁘시군요.”

“사람의 습관이 어찌 하루아침에 변하겠는가. 중요한 환자는 내 직접 살펴봐야 안심이 된단 말일세.”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허헛. 나는 괜찮네. 헌데 출진준비를 하느라 바쁠 자네가 이곳엔 어인 일이신가?”

소무는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은자 두 냥이었다.

“이것을 의료부대에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모청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은자 두 냥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의료부대에 보태어진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부분은 없다. 무슨 일인지 연유가 궁금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신가?”

“의선당의 약재를 좀 가져가야 하니 미리 값을 치르고자 합니다. 아마도 이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그냥 가져다 쓰시게. 랑아대의 대장이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 군단에서 사용할 약재가 아닙니다.”

소무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두 털어놨다. 그리고 자신의 고민거리까지 말이다.

얘기를 들은 모청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그래서 그 아이가 약을 훔치는 것을 소소가 도와줄 것이란 말인가?”

“마음이 여린 아이입니다. 제 짐작이 확실할 겁니다.”

모청은 소무가 건넨 은자를 집어 들었다.

“자네의 부탁이니 협조는 하겠네.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을 탓할 수만도 없는 법이지. 하지만 계속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더 나은 방법을 알려줄 생각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입니다.”

“자식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만. 뭐 자네한테 다 생각이 있겠지. 헌데 장군께서도 이 내용을 알고 있는가? 곧 죽을 사람이라지만 휘나라의 장수인데 오해가 생길지 모르겠군.”

“이미 만나서 얘기해보았습니다.”

“역시 일 처리가 완벽하구만. 뭐라고 하셨는가?”

소무는 찻잔을 한 모금 마신 이후 그의 말을 전했다.

“모두의 마음이 소소와 같다면 어찌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겠는가,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따듯한 불꽃이니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도록 지켜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청 대장이 한참을 웃었다.

“허허헛! 역시 장군다우시군. 그렇기에 내 이 나이에도 이곳에 나와 장군을 모시는 것이 아닌가.”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지요. 의료부대의 대장은 세상에서 어르신보다 더한 적임자가 없을 것입니다.”

칭찬은 누구든 기분을 좋게 만드는 법이다. 소무와의 만남 이후로 모청의 얼굴이 몇 년은 젊어진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 휘나라의 장수 말일세. 괜찮다면 내가 직접 살펴보고 싶군.”

“이미 상세가 심각하여 살려내기 힘들 것입니다.”

“나라도 말인가?”

무림 제일의 의술가로 이름을 날렸던 생필신의(生必神醫)가 아니던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어르신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고민이 조금 필요한 부분입니다.”

“허허. 적장이니 무작정 치료하는 것도 능사는 아닐 테지. 여하간 이 노인네가 필요하면 말씀만 하시게.”

소무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몇 가지를 요청했다. 그리고 모청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흔쾌히 수락했다.

“고맙습니다. 매번 도움만 받는군요.”

몇 마디를 더 나눈 이들은 밝은 얼굴로 작별을 고했다.

“즐거웠네. 종종 차나 한잔 마시러 들르시게.”

“알겠습니다. 환자들을 돌보는 것도 좋지만, 어르신도 건강 챙기시지요.”

모청은 멀어져가는 소무의 뒷모습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네는 언제나 한결같군. 그러니 나 또한 한결같이 자네 편에 있을 것이네. 이 늙은이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소무의 품계는 모청 자신보다 몇 단계나 높았다. 그런데도 사석에서는 처음과 같이 존중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모청은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진료실로 향했다.

한편 의선당을 나온 소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해져 있었다.

몸을 씻고 랑아대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에는 소소가 홀로 드러누워 있었다.

잠을 못 이루고 천정을 보고 있는 것이 고민이 있는 듯했다.

“왜 그러고 있어?”

“아버지. 휘나라 사람들은 모두 나빠요?”

소소도 그들 일가족의 정체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건 왜 물어봐? 휘나라 사람을 만났어?”

“아니요…….”

소소는 옆으로 등을 돌려 누웠다.

아버지한테까지 거짓말을 하다니.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그들을 잡아갈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을 테니.

소무는 아이의 옆에 살며시 누우며 나직이 말했다.

“휘나라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라도 달려 있다더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이 뭘까?”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알아요?”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이 어찌 정해져 있겠느냐. 상황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지. 하지만 유연함을 갖추지 못하고, 그 못된 상황에 자신이 지배당한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거란다.”

“그럼 휘나라에도 착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응. 모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야. 단지 전쟁이 서로를 나쁘게 하는 거란다.”

“힝……. 휘나라와 왜 싸워야 해요?”

“그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나쁜 사람. 그가 전쟁을 일으키고 휘나라의 모두를 나쁘게 만들고 있어.”

등을 돌린 소소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아버지가 혼내줘요!”

“그래……. 반드시 그리 할 거야.”

소소는 다시 몸을 돌려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꼭 혼내줘야 해요. 너무 나쁜 사람이에요…….”

소무는 말없이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웅장하고 따듯한 내기가 손길을 타고 아이의 전신을 감쌌다. 심신이 평온해진 소소는 어느새 새근새근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딸이 잠든 것을 확인한 소무는 은밀히 막사를 나와 어딘가를 다녀왔다.

빈손으로 나갔던 그의 손에는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몇 시진이 지난 후 또다시 새벽이 찾아왔다.

꼬끼오-!

어김없이 새벽닭이 울음을 토해냈다.

반사적으로 눈을 뜬 소소는 관복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거늘, 부지런함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오늘도 잠을 못 이룬 소무는 아이가 관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힘들지 않아?”

“아니요. 오늘 늦으면 안 돼요.”

“왜?”

깊숙이 캐묻자 소소는 조금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 그건 도둑을 잡아야 하니까요.”

거짓말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얼굴에 티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차피 잠시 후면 들통나게 될 터. 소무는 웃음을 참으며 은근슬쩍 밖으로 내보냈다.

“잘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소소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그러자 소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보관함을 열었다. 거기에는 새벽에 순라군에서 빌려온 순관의 관복이 들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옷을 갈아입고 죽립을 깊게 눌러썼다.

“이 녀석. 아버지한테 잘도 거짓말을 했겠다.”

선의를 위해서라지만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막사를 나온 소무는 은밀히 의선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역시나 딸아이의 행동은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의선당에서 십여 장이 떨어진 전각 아래의 그림자. 그곳에서 밤톨만 한 아이 둘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소가 팔짱을 끼고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둑질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이제 그만해.”

“어제 우리 아버지 봤지? 너는 아버지가 그렇게 아프면 가만히 있을 거야?”

소소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직접 겪어보지 못하고선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나는 순찰대원이니깐 너를 잡아가야 해.”

“오늘 약을 못 가져가면…… 우리 아버지가 죽을 거야.”

아버지가 죽는다는 말에 소소는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급기야 눈물이 또르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소소는 눈물을 닦느라 더는 가로막을 정신조차 없었다.

훌쩍이는 소소를 뒤로한 채 남자아이는 앞으로 나아갔다.

“……너 잡혀가도 난 몰라.”

“신경 쓰지 마.”

오늘따라 의선당에 보초병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수상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남자아이는 후다닥 내달려 의선당의 작은 창문을 향해 도약했다.

소소는 먼 곳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멀리 있는 소무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본인이 다 떨리는 모양이었다.

일각이 지나도 나올 기색이 없자, 보다 못한 소소가 근처로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상아야, 아직 멀었어?”

남자아이의 이름은 백상이었다. 어제 처음으로 알게 되어 이름을 교환했던 터였다.

그때 안쪽 창틀에서 작은 보따리 두 개가 날아왔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소소는 움찔했다.

잠시 후 백상이 빠져나오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아직 안 갔어?”

“가려고 했어…….”

“망봐준 거야? 고마워 소소야. 그동안 찾지 못했던 약재도 오늘 다 찾았어.”

“이 약을 가져가면 아버지가 나을 수 있어?”

백상의 얼굴이 몹시 어두워졌다.

“아니…….”

챙겨온 약재류는 중환자에게나 쓰는 환각제와 진통제 종류였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인지, 백상은 약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듯했다.

소소는 백상이 불쌍한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진심이 전해졌던 것일까?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백상의 얼굴이 히죽 웃어 보였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은혜는 열 배로 갚아야 한다고. 나중에 꼭 돌려줄게, 소소야.”

백상이 약 보따리를 건네받으려던 그때였다.

돌연 죽립을 눌러쓴 순관 한 명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맹랑한 녀석들이로구나. 감히 군단의 의약품을 훔치다니 말이야.”

현음법(眩音法)으로 목소리를 변조한 소무였다. 그것을 알 리가 없던 소소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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