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산와족의 무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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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산와족의 무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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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산와족의 무사 (3)
2022.06.18.
소소와 백상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무공을 익힌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지척까지 다가온 순관의 기척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상대가 자신들의 경지를 넘어서는 고수임을 의미했다.
소소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 보내주세요…….”
“왜 그래야 하지?”
“아버지가 아프대요. 약을 가져가야 한단 말이에요.”
죽립에 감춰진 소무의 입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내공으로 목소리를 변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그러니 우선 벌을 받아야겠구나.”
백상이 소소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저 혼자 훔친 거예요.”
“의리는 있는 녀석이군. 허나 친구도 너의 잘못을 보고만 있었으니, 어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일까? 돌연 백상의 눈빛이 변했다.
특유의 독기 서린 눈동자가 소무를 노려봤다. 동시에 왼쪽 손을 내뻗어 소소를 뒤로 살며시 밀어냈다.
“소소야, 너 먼저 도망쳐.”
“너는?”
“약을 빨리 가져가야 해. 시간이 없어…….”
시간을 벌어볼 참이었다. 소소도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어찌 혼자서만 도망칠 수 있겠는가.
소소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발을 동동거렸다.
“휴…….”
“내 동생 좀…… 돌봐줄 수 있어……?”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소소가 비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알았어.”
결심을 굳힌 소소가 등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낀 백상은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동시에 두 주먹을 움켜쥐고 기수식을 취했다. 왼손을 내뻗고 오른손을 움켜쥐고 우측 어깨 위로 잡아당겼다.
지켜보던 소무의 얼굴에 흥미로움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기수식이로군.”
분명 오래전 본 적이 있던 박투술이었다. 기수식이 특이했기에 뇌리에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확실한 건 휘나라의 무술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버지한테 배운 무술이다.”
확인해 볼 게 있었지만,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린 녀석이 제법 좋은 눈빛을 가지고 있구나. 거기에 서려 있는 살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죽인다.”
“후후. 녀석 참. 먼저 공격해볼 용기가 있느냐.”
소무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듯한 중압감이 백상에게 다가왔다.
“크윽…….”
막상 선공할 생각을 품자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손발이 떨려왔지만, 이것저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짧은 기성을 토해냈다.
“이얍!”
소무는 돌진해 오는 아이를 보며 감탄했다. 기개가 대단했지만 놀아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도주한 딸이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무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손바닥이 백상의 복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터엉-!
속이 빈 나무통을 때린 듯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아이의 등 뒤로 기의 파동이 폭풍처럼 터져나갔다.
격산타우(隔山打牛). 상대의 몸을 통과하여 등 뒤를 타격하는 기술이었다.
백상은 아무런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충격이 자신의 몸을 통과해 소멸했기 때문이다. 대신 두 발이 지면에서 떠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으윽!”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조차 말이다. 허공으로 떠올랐던 백상은 소무의 우측 어깨에 철퍼덕 늘어졌다.
“이 정도면 소소한테 한주먹감도 안 되겠구나.”
백상은 어리둥절했다. 소소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소소를 어떻게 알아요?”
“내가 소소 아비다.”
“네에?”
백상은 황당하다는 듯 두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무는 어느새 딸아이의 흔적을 쫓아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입만 산 애송이인 줄 알았더니 근골은 제법 괜찮구나. 나중에 우리 소소의 부하가 되겠다면 허락해주마.”
“제가 왜요?”
“후후. 농담이다, 이 녀석아. 잠시 좀 쉬고 있거라.”
소무는 백상의 혈도를 눌러 잠을 재웠다. 다소 건방진 아이였지만 밉지는 않았다.
‘그러한 독기가 없었다면 지금껏 살아남지 못했을 테지. 어린 나이에 적국에서 죽어가는 아비와 동생까지 돌봐야 했으니.’
소무가 장안성의 서문에 도착하여 죽립을 올려 보였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기립했다.
“내 딸, 방금 여기로 지나갔지?”
병사들이 앞다투어 말했다. 랑아대장과 말 한 번 섞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생기는 셈이었으니.
“예, 대장님! 방금 막 지나갔습니다!”
“저쪽으로 갔습니다!”
소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죽립을 다시 내렸다.
“수고들 해.”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소소가 사라진 방향이 자신의 예측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휴. 이러면 계획이 틀어질 수 있는데.’
하필이면 양주산을 경유하려 하다니. 이곳에서 반각 안에 도착하는 그곳에는 그녀가 있었다. 최상급 극마이자 자신의 연인인 옥화신녀가 말이다.
소무가 경공 속도를 올리자 바람이 비명을 토해냈다.
양주산의 초입에 이를 때쯤 드디어 목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양 갈래로 머리를 말아 올린 아이가 죽기 살기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딸의 모습이 분명했다.
소소는 달리는 와중에도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쫓아오지 마요!”
여기까지 와서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소무와 소소의 거리는 빠른 속도로 좁혀져 갔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가던 딸아이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소소의 주위로 기(氣)가 휘몰아쳤다.
소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자후를 발산하려는 것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정도로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스승님, 도와줘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기의 파동이 양주산을 쩌렁쩌렁 뒤흔들었다.
준비도 없이 펼친 사자후였기에 본래 위력에 일 할에도 못 미쳤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극마의 감각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
그리고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빨리 왔다.
질주하던 소무는 오싹한 느낌에 다짜고짜 도약했다. 그 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콰콰쾅-!!!
허공에서 세 바퀴를 회전하고 나서야 그의 신형이 지상에 내려섰다.
십여 장 앞에 그녀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감히 내 제자를 건드리다니.”
설화를 발견한 소소가 냉큼 다가갔다. 그러더니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내 친구 내려줘요. 혼나기 싫으면.”
그녀에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 답답했다. 이 시각에 변장하고 딸아이를 쫓는 자신을 어찌 생각하겠는가.
‘이것 참 미치겠군.’
어느새 설화가 자신을 향해 오른손을 내뻗고 있었다.
한 움큼의 낙엽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내기를 가득 머금은 낙엽들은 암기로 변하며, 소무를 향해 똬리를 틀었다.
마화비전 제 팔초식 낙영비살(落榮飛殺).
소무조차 만만히 볼 수 없는 필살의 초식이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다급히 그녀에게 전음을 보내려 했지만, 한발 늦고야 말았다.
암기로 변한 낙엽 다발이 사방을 분쇄해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백상이 걸려 있는 어깨로는 날아오는 것이 없었다.
물론 소무는 이것을 파훼할 초식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검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회피 동작뿐이었다.
이를 악다문 그는 반탄강기를 뿜어내며 미친 듯이 회전했다.
파파파팟-!
수백 개의 낙엽들이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비산했다.
초식이 끝날 무렵 소무는 한 걸음을 비틀거렸다. 피해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옷자락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또다시 회피를 준비하던 소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질 줄 알았던 공격이 더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귓가로 전음이 들려왔을 뿐이었다.
- 딸한테 뭐 하는 짓이야? 이런 괴상한 취미가 있었어?
- 연매가 오해하는 거야.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 일단 믿어줘.
설화는 단번에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다. 검성이 아니라면 낙영비살을 피해낼 수 없었을 테니.
자신을 수상하게 노려보던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도대체 뭘 하려는 건데?
- 교육.
- 뭔지 모르겠지만 상처는 받지 않게 해.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설화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그녀를 향해 질주했다.
붉게 달아오른 손아귀가 전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겉으로만 화려했지, 내력은 실려 있지 않은 일격이었다.
설화도 마지못해 그와 일장을 교환했다.
콰앙-!
“큭!”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물론 본인의 의지로 말이다.
소소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
그 순간 소무가 아이를 잽싸게 낚아채 어깨 위로 올렸다.
소소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쓰러져 있는 설화를 불렀다.
“스승님이 이길 수 있어요! 어서 일어나요!”
“으윽. 부상이 심해서 움직일 수가 없구나. 금방 치료하고 따라가마.”
“아, 안 돼…….”
소소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뻗었다. 그러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소무의 오른쪽 어깨에는 잠이 든 백상이, 왼쪽에는 소소가 걸쳐져 있었다.
“이제 널 구해줄 사람은 없겠구나.”
“놔주세요……. 나 빨리 가봐야 해요…….”
“그럴 수는 없지. 너는 순관이면서도 본분을 잊고, 친구의 도둑질을 돕지 않았더냐.”
당황한 소소는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감옥에 가야지.”
감옥에 갇힌다는 말에 벌컥 무서워졌다. 소소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잘못했어요…….”
“그러게 왜 나쁜 짓을 했느냐?”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구요. 상황이 사람을 나쁘게 하는 거랬어요……. 히잉…….”
소무는 가슴이 뜨끔했다. 자신이 아이에게 해준 말이 아니었던가.
“만약 놓아준다면 앞으로 도둑질을 안 도와준다고 약속하겠느냐?”
“그럼…… 그럼…… 상이 아버지가 아프잖아요…….”
“고작 이런 약 따위를 먹인다고 상처가 다 낫는다더냐.”
“아니요…….”
“그럼 네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일이로구나.”
“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또 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우리 아버지한테 도와달라고 할 거예요…….”
죽립 안에 감춰진 소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 혼자 짊어지기엔 무거운 일들이 많겠지. 그럴 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단다. 그럼 어디 한번 그분한테 도와달라고 외쳐보아라.”
“왜요……?”
소무의 발걸음은 어느새 화릉촌의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백상 일가족의 거처가 있는 야산과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혹시 모르지 않느냐. 정말 나타나서 도와줄지.”
소소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와주세요, 아버지…….”
“그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오자 소소의 눈이 끔뻑였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화릉촌의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웅장한 수호목. 그곳에 낯익은 인물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발이 무성한 의선당의 모청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를 수행하는 세 명의 의무병들까지. 손에는 의료부대의 문양이 각인 된 목함(木函)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소무가 하체를 숙여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리둥절한 소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모청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허허. 친구 아버지가 아프다고? 처음부터 이 할아버지를 찾아오지 그랬느냐?”
드디어 상황을 눈치챈 소소가 고개를 뒤로 휙 돌렸다.
어느새 죽립을 벗은 아버지가 씨익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긴장이 탁 풀리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흐잉. 너무해!”
소소는 울음을 터트리며 아버지의 배를 마구 때렸다. 소무는 십여 대를 맞고 나서야 아이를 다시 안아 들었다.
“우리 소소가 좋은 교훈을 깨달았구나. 그럼 어서 그곳으로 가볼까?”
소소는 퉁퉁 부은 눈을 소무의 가슴팍에 파묻었다.
배신당한 기분에 삐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백상의 아버지가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자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럼 상이 가족 안 잡아갈 거예요?”
“잡아가면 네가 슬퍼하지 않겠느냐. 아버지는 항상 소소의 편이니 네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언제든 털어놓거라. 지금부터 방법을 한번 찾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