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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범이 내려간다 (2) (150/250)


150화 범이 내려간다 (2)
2022.06.30.


웅크린 산군을 눈앞에 두고 소무와 소소가 마주 서 있었다.

병사들은 모두 해산한 이후였다.

소무의 시선이 슬며시 아래로 향했다. 눈이 퉁퉁 부은 딸의 몰골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가 준 선물을 잃을 뻔했구나.”

“네. 깜짝 놀랐어요…….”

호흡이 거친 것을 보니 아직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짐승은 산군이다. 산을 지배하는 영물이지. 더군다나 태산의 군주라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짐승일 거다.”

“우리 다롱이가요?”

“후후. 벌써 이름까지 지었구나. 이러한 영물은 지능이 높아 사람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단다.”

언제 울었냐는 듯 소소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정말요?”

“음. 정확히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의미를 알아채는 것이지.”

말이 통한다는 말에 소소는 폴짝 뛰며 좋아했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다롱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무서웠지?”

산군의 입에서 나온 거대한 혓바닥이 다시 한번 소소의 얼굴을 핥았다.

츄르릅-!

“흐앗!”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무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잠시 뒤로 물러서 봐.”

산군의 코앞으로 다가간 소무는 오른손을 서서히 내뻗었다. 그러자 산군이 이글거리는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둘은 마치 눈싸움을 하는 듯했다.

어느 순간 소무의 전신에서 기의 파동이 일렁였다.

소소는 눈치챌 수 없었다. 그가 현경의 기세를 발출하고 있다는 것을.

잠시 후 산군이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더는 소무의 손길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놈의 정수리에 오른손을 얹은 소무는 기혈을 살펴보았다.

혈도의 위치는 사람과 다르지만, 살펴보는 것쯤은 문제가 없었다. 마치 내가진기를 전문적으로 수련한 무림인처럼 막대한 기(氣)가 느껴졌다.

그러나 소무가 살펴보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불안정한 기의 흐름과 맥박. 산군의 마음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슬픔에서 벗어나질 못했구나.”

등 뒤에 있던 소소가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다롱이가 왜 슬퍼해요?”

“휘나라에 새끼가 잡혀 있다더구나.”

“그럼 우리가 구해주면 안 돼요?”

“적국에 들어가서 새끼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아버지는 할 수 있잖아요!”

소무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불사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어디에 잡혀 있는지도 알 수가 없어.”

소소는 측은한 눈빛으로 산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걱정하지 마, 다롱아. 언니가 꼭 구해줄게.”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었다.

소무가 조용히 미소짓고 있을 즈음 병사들이 수레 하나를 끌고 다가왔다.

“대장님, 말씀하신 현철 사슬입니다!”

“수고들 했어.”

소무는 사슬을 움켜쥐고 산군의 목에 감기 시작했다. 또다시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매듭을 신경 쓰면서 말이다.

지켜보던 소소가 어두운 안색으로 물었다.

“아버지, 그냥 풀어주면 안 돼요?”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어서 안 돼.”

“불쌍하잖아요…….”

“후후. 만약 네가 이 녀석을 길들일 수 있다면 한번 생각해보마.”

영물은 사람보다 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배신하는 경우가 없다.

산군이 소소에게 마음을 연 이상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정말이죠? 약속 꼭 지켜야 해요!”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기에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딸의 동심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기에 살려준 것이었다.

“응.”

* * *

산군은 랑아대의 막사 뒷마당에 묶어놓았다. 마치 집을 지키는 강아지처럼 말이다.

근처로 다가가는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주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눈동자. 게다가 송곳 같은 이빨과 무지막지한 근육까지. 랑아대의 대원들조차 마주하기 꺼려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산군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소소는 남는 시간을 온종일 산군과 함께 보냈다. 지극정성으로 살핀 덕에 상처도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닷새가 지난 뒤였다.

늦은 새벽 눈을 뜬 소소는 재빨리 순관의 복장을 차려입었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당연히 막사의 뒷마당이었다.

웅크린 산군 앞에 쪼그려 앉은 소소가 왼손을 내밀었다.

“다롱아, 손!”

역시나 미동조차 없었다. 단지 주먹만큼 큰 눈을 끔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소소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이런 식으로는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다롱이를 길들일 수 있을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지?’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산군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새끼가 보고 싶지? 같이 구하러 갈래?”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미동조차 없던 산군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회심의 미소를 지은 소소는 기세를 몰아갔다.

“그럼 언니 손 잡아봐.”

잠시 머뭇거리던 산군은 거대한 앞발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밤톨 같은 손을 살며시 덮어버렸다.

드디어 성공이었다.

“히히히.”

소소는 신이 나는지 방방 뛰었다.

다른 것도 시도해봐야 했다.

“앉아!”

땅콩처럼 짧은 손가락이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자 산군이 마지못해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소소는 양팔을 벌려 산군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예쁘다, 우리 다롱이!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가벼운 발걸음은 막사를 떠나 순라군의 본부로 향했다.

녹봉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출근 명부에 이름을 기록해야 한다.

순라대장에게 눈도장까지 찍은 소소는 다시 궁성을 배회했다.

해가 뜨려면 한 시진은 더 있어야 한다. 일찍 일어나 구보하는 몇몇 장교를 제외하면 인기척이 없었다.

반각을 걸어 도착한 장소는 뇌옥이었다.

이곳에 휘나라 사람들이 잡혀 있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들을 만나서 물어볼 작정이었다.

두 명의 병사가 입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우리 꼬마 장수 오랜만이네?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저 여기 안에 구경해도 되요?”

엄연히 순라군의 순관이기 때문에 규정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게다가 소무 대장의 딸이 아니던가.

두 명의 보초병은 서로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그러고는 동시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대신 한 식경 안에 나와야 한다. 뛰어다니거나 소란 피우면 안 돼.”

“헤헤. 고맙습니다.”

소소는 인사를 건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자 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몇 명의 간수들과 인사를 마친 이후 등불을 따라 나아갔다.

좌우로 무수히 많은 감옥이 늘어서 있었지만, 대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중간쯤을 넘어서자 드디어 죄수들의 모습이 듬성듬성 보였다. 대다수가 휘나라의 장교들이거나 그들과 한패인 신마교의 인물들이었다.

소소는 첫 번째로 보이는 중년인의 앞에 우뚝 섰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는 얼굴에 흉터가 가득했다.

쇠창살을 비집고 청량한 아이의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아저씨, 혹시 휘나라에서 왔어요?”

중년인의 입이 반사적으로 열리며 단 한마디를 뱉어냈다.

“꺼져.”

도저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시무룩해진 소소는 다음 방으로 향했다. 옆으로 드러누워 뭔가를 흥얼거리는 죄수가 보였다.

“아저씨…….”

죄수가 등을 돌리며 소소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얼굴에 호기심과 흥미로움이 동시에 떠올랐다.

“꼬맹이가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저 순관이에요.”

“쪼그만 게 어디서 거짓말만 배워왔구나. 하여간 송나라 녀석들은 애나 어른이나 하나같이 속이 시커멓다니까.”

“정말이에요……. 아저씨, 혹시 휘나라에서 왔어요?”

“그러니까 여기 있지. 내가 여기까지 마실이라도 나왔을까?”

“아니요. 아저씨, 그럼 다롱이 새끼가 어디에 잡혀 있는지 알아요?”

죄수는 옆으로 누운 채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다롱이가 누군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양팔을 최대한 넓게 벌렸다.

“이만한 냥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산군이랬어요.”

“킥킥킥. 그렇게 작은 산군이 어딨어?”

“휴…….”

소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죄수는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장군께서 데리고 다니던 산군은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녀석이었어.”

“정말요? 그럼 새끼가 어디 잡혀 있는 줄 알아요?”

“모르지. 백인장 따위가 그런 것까지 어찌 알아.”

“힝. 안녕히 계세요…….”

어깨가 축 늘어진 소소는 죄수들을 한 명씩 붙잡고 물어보았다.

누구도 그것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제는 죄수들도 몇 명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무거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알고 있다.”

소소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가장 마지막에 있는 감옥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간 소소는 쇠창살을 붙잡고 죄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을 물러섰다.

눈처럼 흰 머리칼과 흰 눈썹. 장안의 거리에서 학살을 벌이던 무시무시한 여인이 아니던가.

너무나 강렬했던 그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찻집에서 봤던 암팡진 꼬맹이로구나. 겁먹지 말고 가까이 와보거라. 이제 나는 무공을 사용 못 하니 무서워할 것 없다.”

“거짓말하지 마요!”

천검마녀 백묘진. 그녀는 자신의 윗옷을 풀어 훤히 드러난 상반신을 보여주었다.

소소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기다란 바늘들이 그녀의 상체 곳곳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육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윽! 그거 뭐예요?”

“어떤 미친X이 내 몸에 박아넣은 것들이다. 무공을 사용할 수 없도록 금제를 한 것이지.”

“근데 왜 안 뽑아요?”

“내가 그걸 몰라서 안 뽑고 있겠느냐. 그냥 뽑으면 죽어.”

슬슬 소소의 얼굴에 안심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녀에게선 예전과 같은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롱이 새끼가 어딨는지 정말 알고 있어요?”

“물론 알고 있지. 근데 네가 그것이 왜 궁금한 것이냐?”

“다롱이랑 약속했거든요.”

소소는 산군이 이곳에 끌려온 일과 랑아대의 막사 뒤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짐짓 놀라던 백묘진은 이내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태산의 산군. 놈을 부려먹기 위해서는 새끼를 납치해야만 했다. 그 자리에는 나도 함께 있었지.”

“그럼 지금 어디에 잡혀 있어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안내해 줄 수는 있어.”

대답이 너무 술술 흘러나왔기 때문일까? 소소의 얼굴에 의심이 떠올랐다. 어른들한테 한두 번 속아본 아이가 아니었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그럼 다롱이 새끼가 몇 마리예요?”

“세 마리다. 그중 두 마리는 산군이 보는 앞에서 죽였다. 인질로 잡아놓은 건 한 마리뿐이지.”

다롱이의 새끼를 죽였다는 말에 소소는 미간을 잔뜩 좁혔다.

“너무해요! 새끼들을 어떻게 죽일 수가 있어요?”

“내가 죽인 건 아니고. 아무튼, 알고 싶으면 나를 여기서 꺼내라.”

“어떻게요?”

그녀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방법이 있으니 잠시 가까이 와 보거라.”

소소는 쇠창살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백묘진이 귓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반각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의 말이 끝을 맺었다.

“할 수 있겠지?”

소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나하고 대화했다는 건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네. 꼭 비밀로 할게요.”

백묘진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어서 가봐, 간수 새끼들 오기 전에. 내 말 반드시 명심하고 입조심해.”

“알았어요.”

등을 돌린 소소는 뇌옥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랑아대의 막사로 냉큼 달려갔다.

어느새 해가 서서히 뜨고 있었다.

삼촌들은 훈련장을 나갔을 테고, 아버지는 가부좌를 틀고 있을 시간이었다.

문을 벌컥 연 소소는 냉큼 소리쳤다.

“아버지! 다롱이 새끼 어딨는지 알아냈어요!”

명상에 잠겨있던 소무의 눈이 슬며시 떠졌다.

“그걸 어디서 알아내?”

소소는 몹시 흥분한 듯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다.

“감옥이요! 감옥에서 흰머리 아줌마가 알고 있대요!”

소소는 하나도 빠짐없이 있었던 일들을 술술 털어놨다. 백묘진과 대화했던 모든 내용을 말이다.

얘기를 듣고 있던 소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직이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천검마녀 백묘진.”

“네? 마녀요?”

“방금 너랑 대화했던 죄수 말이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독사의 마음을 지닌 여인이란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으니……. 어쩌면 우리가 그녀를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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