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범이 내려간다 (4) (152/250)


152화 범이 내려간다 (4)
2022.07.02.


산군을 뒤쫓아 질주하는 소무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영물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따라붙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화경급의 고수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산이고 늪지대고 가릴 것 없이 거침없이 달렸다. 그렇게 뒤쫓기를 한 시진이 지났다.

드디어 국경의 경계선인 함곡관이 나타났다.

이곳은 장엄한 구릉의 틈새에 설치된 관문으로, 천여 명의 관군이 주둔하고 있다. 높이만 해도 어지간한 성벽의 세 배에 달했다.

관문을 마주한 산군은 방향을 틀어 가파른 절벽으로 향했다.

동시에 속도를 더욱 높여 절정까지 끌어올렸다. 그 순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높이가 삼십 장이 넘는 절벽을 수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쉽지 않겠는데.’

심호흡을 내쉰 소무도 경공을 전력으로 펼쳤다. 곧이어 그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붉은빛에 휩싸이며, 화산이 폭발하듯 솟구쳐올랐다.

타앗-!

끝없이 떠오르던 그는 절벽으로 튀어나온 작은 나뭇가지를 밟고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 모습이 비상하는 한 마리의 검독수리처럼 보였다.

구릉 위에 우뚝 선 소무는 산군의 모습을 찾았다. 어느새 작은 점이 되어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방심하다간 놓쳐버리겠군.”

지면을 박찬 소무도 국경을 넘어 날아올랐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그조차도 모른다. 다만 낙양 근처의 어딘가라는 말을 소소를 통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 시진을 더 내달렸다.

소무는 멀리 산군의 목을 붙잡고 있는 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기분이 좋은지 활짝 피어오른 미소가 뒤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잠시 후에는 품속에서 비상식량까지 꺼내먹기까지 했다. 자세히 보니 곶감이었다.

“히히. 맛있어. 이거 먹어 볼래요?”

소소가 먹다 남은 곶감 반쪽을 뒤로 내밀었다.

산군의 등을 붙잡고 겨우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백묘진. 그녀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입에서 부드러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너나 많이 처먹거라.”

괜히 물어봤다는 듯 소소도 고개를 돌리며 관심을 끊어버렸다.

“먹기 싫으면 말아요!”

서로 입을 다물자 침묵이 계속해서 흘렀다.

이들은 끝없이 펼쳐진 황하강을 끼고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소소가 챙겨온 간식이 거의 떨어질 때쯤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던 백묘진이 어딘가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곳에서 강을 건너다 보면 섬이 하나 나올 것이다. 배를 타야 하니 나루터를 찾아 보거라.”

소소는 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산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손가락을 내뻗으면서 말이다.

“다롱아, 이제 우리 배 타고 가야 해. 저기에 섬이 있대.”

산군이 그르렁거리며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거대한 발바닥에서 칼날 같은 발톱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물갈퀴와도 비슷해 보였다.

배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타타타탓-!!!

잠시 후 산군은 황하의 수면 위를 짓밟고 강을 도하하기 시작했다.

수상비를 펼치는 영물이라니. 소소와 백묘진은 황당한 표정으로 범의 털을 꽉 부여잡았다.

그대로 이백여 장을 전진하자 먼 곳으로 작은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산군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달렸다.

가까이서 본 그곳은 수상 요새와도 같았다.

둘레는 일 장 높이의 목책이 두르고 있었고, 곳곳에는 망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영락없는 휘나라의 비밀기지였다.

수면 위를 박차고 도약한 산군은 목책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동시에 이빨을 드러내며 주변을 살폈다.

크르르릉-!

그 모습을 발견한 수십여 명의 보초병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호각을 불어댔다.

“저, 저, 저게 뭐야?”

“지, 지원군을 불러!”

저렇게 거대한 범이 이곳에 난입할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순식간에 백여 명의 병사들이 나타나서 앞을 가로막았다. 게 중에는 신마교의 복장을 한 무인들도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이글거리는 산군의 붉은 눈동자. 그것을 마주한 그들은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공격을 개시할 수 없었다.

그때 백묘진이 활시위를 당기는 병사들을 보고는 다급히 말했다.

“미친 짓거리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신마교의 마인 중 누군가가 그녀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가 놀란 얼굴을 지으며 병사들을 말렸다.

“모두 대기하라!”

지금 산군의 눈에 저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새끼의 냄새를 찾으려는 듯 킁킁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뒤따라 당도한 소무는 적지 않게 놀랐다. 낙양 근처에 이러한 곳이 있다는 소문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관군의 정보망은커녕 개방에서조차 모르고 있던 장소였다. 이곳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기척을 죽인 채 조금씩 이동했다. 그리고 깊이 들어갈수록 소무의 안색이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우선 딸에게 전음부터 보냈다. 산군의 목덜미 위에서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두 눈 가리고 엎드려 있어.

소소는 얼굴을 산군의 머리 위에 파묻었다.

쇠창살로 만들어진 우리가 곳곳에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이 무림인으로 보이는 자들이었으나, 간혹 영물로 짐작되는 짐승도 보였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하나같이 처참한 몰골이었다. 사지가 절단되어 있거나 온몸이 썩어 문드러진 것은 양호한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사람의 몸에 짐승의 신체를 붙여놓은 모습까지 보였다.

“어찌 이런 잔혹한 짓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곳은 휘나라의 생체실험 장소였다.

소무는 더 이상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두 눈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고 터벅터벅 걷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시선이 산군에게 쏠려 있었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못 보던 놈이로구나. 정체를 밝히거라.”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자신의 목에 검 끝을 들이밀고 있었다.

소무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그의 몸이 회전하더니, 어느새 손바닥으로 뒤에 있는 사내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쩌억-!

얼굴을 후려 맞은 그는 목뼈가 꺾여버리며 지면으로 처박혔다.

소무의 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비명조차 없이 고혼이 된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때 초인적인 그의 청각이 지척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를 감지했다.

“날 좀…… 죽여주시오…….”

고개를 돌려보자 우리에 갇혀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한쪽 눈은 뽑혀 있었으며, 두 다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 이곳에……?”

“……저는 곤륜파의 일대제자인 화명입니다. 태형산을 수색하다가 습격을 받았는데, 눈을 떠보니 이곳에…….”

잠시 고민하던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걷지도 못하는 이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이 좋아 성공한다고 한들, 정상적인 생활조차 힘들 몰골이었다.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결심을 굳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십시오.”

“가능하다면…… 저 빌어먹을 새끼들을 모두 죽여주십시오.”

“오늘 아무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처참한 얼굴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소무의 손에서 쏘아져 나온 한 가닥의 빛줄기가 그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파직-!

고개를 푹 숙이는 그의 얼굴은 매우 평온해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또다시 소무를 불러세웠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인 듯했다.

소무는 원하는 자들을 편히 쉴 수 있도록 보내주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영물들도 함께 말이다.

이어서 산군이 걷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산군이 풍기는 지독한 맹수의 살기가 섬을 지배했다.

병사들과 마교도들이 무기를 움켜쥔 채 긴장한 모습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섬의 가장 안쪽에 지하로 이어지는 동굴 앞. 그곳을 두꺼운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산군이 앞발을 휘두르며 그곳을 연달아 가격했다.

쾅-! 쾅-! 콰앙-!

철문은 계속해서 찌그러지고 있었지만, 두께가 상당한 듯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소무가 산군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직 네 새끼는 무사할지도 모르니 우선 진정하거라.”

소무는 가련한 눈빛으로 산군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의 단전에서 타고 나온 중후한 기운이 산군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산군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소무를 바라보았다.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산군의 목덜미에서 딸을 안아 들었다.

소소는 눈을 감은 채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산군의 등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백묘진이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네, 네가 왜 이곳에……?”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 철천지원수인 그가 이곳에 나타날 줄 어찌 예상이나 했겠는가.

소무는 그녀를 산군의 등 뒤에서 잡아당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콰앙-!

“크윽. 서, 설마 모두 네가 꾸민 상황이었단 말이냐?”

백묘진은 억울하다는 듯 안면마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또다시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무는 그녀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단지 오른손을 잡아당긴 채 기를 응집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푸른빛 기류가 그의 손바닥을 휘감았다. 찬란히 빛나는 눈부신 광경을 모두가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곧이어 누군가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는 그 순간. 소무의 손바닥이 강철문을 후려쳐버렸다.

꽈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문짝이 단방에 떨어져 나갔다.

입구가 작았기에 산군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네 새끼를 데리고 올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소무는 소소를 안은 채 어둠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산군은 그곳에 머리를 처박은 채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신마교의 마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백묘진을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지금 내가 괜찮아 보여?”

“…….”

“이 미친 짐승의 새끼는 어떻게 됐어?”

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한 번 내저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곳은 폐기 직전의 재료들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백묘진이 그의 얼굴을 향해 따귀를 날렸다.

철썩-!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마인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기립했다.

“함선은?”

“이곳은 한 번 들어오면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나룻배가 두 척이 있지만, 황하의 물살을 건너기에는…….”

백묘진은 수상비를 펼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산군이 폭주하기 전에 말이다.

“내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을 벌어.”

마인들이 동시에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존명!”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갔다. 병사들은 그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군이 입구에 들이박은 머리를 빼내었다. 소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왼쪽 가슴에는 소소가, 오른쪽에는 피투성이가 된 호랑이 새끼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소무는 조심스럽게 산군의 앞에 새끼를 내려놓았다.

최강의 영물인 산군의 새끼였다. 그래서인지 온갖 실험을 다 한 듯 처참한 몰골이었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지경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산군은 전신의 털이 곤두서 있었다.

한동안 미동조차 없었다. 반각이 지나고 나서야 산군이 거대한 입을 벌렸다.

곧이어 날카로운 이빨이 새끼의 몸속을 천천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자식을 직접 보내는 마음이 어찌 편하겠는가.

소무는 산군의 붉은 눈동자 아래로 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

한숨을 내쉰 그는 얼굴을 파묻은 소소를 양손으로 안고 등을 돌렸다.

더는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역겨운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남겨진 자들은 긴장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과 산군을 번갈아 응시했다.

섬의 끝자락에 당도한 소무는 나룻배 한 척을 발견하곤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수상비를 펼쳐도 되었지만, 잠시 마음의 안정이 필요했다.

나룻배는 노를 젓지 않음에도 스스로 움직여 나아갔다. 발밑으로 뿜어지는 소무의 내기가 물살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산의 왕이 진노했으니, 이 섬에 있는 자들이 그 죗값을 치르겠구나.”

그때였다. 소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짐승의 포효가 반경 십 리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앙-!!!

기의 파동으로 물살이 파도처럼 번져나가며 나룻배를 휘청거리게 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어서 섬에서 들려오는 처참한 비명들이 이곳까지 메아리쳤다.

“지금 다롱이 우는 거예요? 새끼가 죽었어요?”

“응…….”

눈을 감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소소의 눈가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우리 다롱이 불쌍해서 어떡해요……. 그럼…… 그럼…… 이제 다롱이 못 봐요?”

소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팍에 안긴 소소는 한참을 울었다.

“우리 다롱이가 아직 안 왔어요. 히잉…….”

소무는 서럽게 우는 딸을 다독였다.

뭍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버지. 다롱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아이의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침묵을 지키던 소무의 입이 처음으로 달싹였다.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다롱이에게는 아직 지켜야 할 새끼가 하나 더 있으니.”

“……정말이요? 어디에 있어요?”

소무가 딸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여기 있지 않지 않느냐.”

그때였다.

섬이 있는 방향. 그곳에서 무엇인가가 물살을 가르며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딸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산군이었다. 마치 자신을 놓고 가지 말라는 듯 애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다롱이의 모습을 확인한 소소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 다롱이가…… 우리 다롱이가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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