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시장 교란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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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시장 교란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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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시장 교란자 (3)
2022.07.06.
랑아대의 막사 뒷마당.
집채만 한 범 앞에 한 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쪼그리고 있었다.
“다롱아, 이제 우리 부자 될 것 같아.”
소소의 오른손에는 은자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이었다. 왼손으로는 산군의 턱을 연신 쓰다듬었다.
“뭐 먹고 싶어? 언니가 다 사줄게.”
그때 옆으로 인기척이 들려왔다. 군단에서 가장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 일광이었다.
“환전했어?”
“지금 바꾸고 왔어요. 여기 은자 한 개!”
그때 산군이 일광을 노려보며 사납게 그르렁거렸다.
“뭐야? 다시 한번 붙어 보자고?”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 거대한 앞발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가만히 있어, 다롱아. 우리 삼촌이야.”
망설임 없이 주저앉는 산군. 그 모습을 보며 일광이 한참을 웃고 나서야 말했다.
“우리 조카, 오늘은 설화원에 안가?”
“왜요?”
소소는 오늘 막사에서 쉬려고 했다. 삼촌들도 훈련이 없는 날이었기에 같이 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광은 다짜고짜 조카를 번쩍 들어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삼촌이 데려다줄게.”
“오늘은 안 가려고요.”
“빨리 가봐야지. 지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어깨 위에서 소소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거짓말이죠?”
“정말이야. 오늘 중추절이라 지금 다들 월병 만들고 있어.”
“삼촌이 어떻게 알아요?”
일광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뜸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뒤 도착한 곳은 궁성의 취사장 중 하나였다.
이백여 명의 아이들이 늘어서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한 여인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평화반을 담당하고 있는 연초희였다.
일광을 발견한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소리쳤다.
“일광 아저씨다!”
“아저씨, 보고 싶었어요!”
일광은 멋쩍게 웃으며 소소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초희에게 다가갔다.
“조카가 데려다 달라고 졸라서요. 방해된 건 아니죠?”
“아닙니다. 아이들도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오늘 훈련은 어쩌시고…….”
“오늘은 명절이라 훈련소가 폐쇄되었거든요. 마침 시간도 좀 남고.”
“아……. 그러시구나. 그럼 아이들 월병 만드는 것 좀 봐주실 수 있으실지…….”
초희는 손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이백여 명의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일광이 반사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하하!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다 제 새끼들 같은 아이들 아닙니까?”
한편 입구에 남겨진 소소는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역시나 도착한 순간부터 자신은 뒷전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
그때 두 명의 아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소소 왔네.”
“언니, 나랑 같이 월병 만들래?”
휘나라에서 투항한 백약 부장의 자녀들. 백상과 백아였다.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자 금세 소소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럴까? 나 음식 잘해. 우리 아버지도 주방장이었거든.”
“정말?”
“응, 히히.”
얼떨결에 잡혀 온 소소는 저녁까지 월병을 만들었다.
다시 막사로 돌아올 때는 자신의 몸집보다 큰 상자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문이 열리며 소소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삼촌들 뭐해요? 소소가 월병 만들어왔어요!”
쉬고 있던 대원들이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잉? 네가 만들었다고?”
“그러고 보니 오늘 중추절이잖아?”
소소는 입구에 월병이 담긴 상자를 내려놓고는 히죽 웃었다.
“엽전 한 냥이에요. 히히히.”
아직 저녁을 먹지 못한 대원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소소가 만든 월병인데 당연히 먹어봐야지. 나도 하나 줘!”
“난 세 개!”
“오랜만에 조카 용돈 좀 줘볼까?”
신이 난 소소는 해맑게 웃으며 배달을 시작했다.
입구에서부터 날아오르는 월병은 정확히 삼촌들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능숙하게 낚아채서 맛보는 랑아대의 대원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맛있잖아?”
“제법인데? 하나 더 줘!”
만들어온 월병은 순식간에 동나버렸다. 그리고 용돈을 듬뿍 받은 소소는 입이 귀에 걸렸다.
“삼촌들, 저 어디 좀 다녀올게요!”
화산파 출신의 현정이 입안에 가득한 월병을 삼키지도 못한 채 물었다.
“어디 가려고?”
“은자로 바꾸고 올 거예요!”
사라졌던 소소는 반 시진이 지난 뒤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손에는 은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루 만에 재산이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벌써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다음 날까진 순라군의 근무가 없었기에 소소는 푹 자고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찾아간 곳은 태웅방이었다. 은자가 얼마나 올랐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제 만났던 점원에게 찾아가 물었다.
“아저씨, 오늘 은자가 얼마나 올랐어요?”
어제와는 다르게 점원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 보였다.
“오늘은 좀 많이 떨어졌구나. 이상하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얼마인데요?”
“오늘의 시세는 이백칠 냥이란다. 하한선까지 떨어졌구나.”
소소는 한 걸음을 휘청거렸다.
“……정말이에요?”
“우린 시세 가지고 거짓말 못 해. 그랬다간 바로 관원들에게 잡혀가거든.”
하루에 얼마나 손실을 본 건지 계산이 안 설 정도였다.
소소는 재빨리 랑아대의 막사로 달려갔다. 삼촌들 몇 명이 아직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일광 삼촌! 나 어떡해요?”
누워있던 일광은 눈물을 글썽거리는 소소를 보며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인데?”
“이백칠 냥이래요! 이백칠 냥…….”
소소가 양손으로 일광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걱정하지 마. 최근에 너무 많이 올라서 잠시 쉬어가는 날이야. 내일은 무조건 오를 거야.”
“……정말이죠?”
“확실하다니까.”
일광은 품속에서 은자 두 개를 꺼내서 소소에게 건네었다.
“엽전 이백 냥씩에 빌려줄게. 오늘 좀 더 싸게 바꿨다고 생각해. 투자는 지금처럼 가격이 내려왔을 때 적극적으로 하는 거야.”
“그럼 두 냥이면…… 합이 네 냥?”
소소는 어제 교환해온 은자까지 네 냥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루 만에 은자 네 냥이라니.
눈동자를 왔다 갔다 거리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네 냥이 되었으니 이익금도 두 배로 오른다는 얘기지.”
소소는 일광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좋아했다.
“헤헤. 역시 일광 삼촌이 최고예요.”
일광은 소소의 허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붕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팔 위에 올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삼촌 더 자야 해. 걱정하지 말고 너도 한숨 자.”
일광의 팔을 베고 누운 소소는 뭐가 좋은지 연신 키득거렸다.
기대감 속에 이날 하루는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날도 소무는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안 들어온다고 했으니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콰앙-!
막사의 문이 벌컥 열리며 소란스러워졌다.
입구에서 소소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백팔십육 냥이래요. 내 돈 다 날아갔어. 히잉…….”
일광이 옆으로 돌아누우며 중얼거렸다.
“신경 쓰지 말라니깐. 버티면 무조건 올라.”
은자가 네 냥이었으니 손실이 보통이 아니었다. 랑아대의 대원들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으니. 그런데도 일광은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다음 날엔 백칠십 냥. 그리고 그다음 날엔 백오십삼 냥이었다.
하루하루 하한선까지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소소는 하루에도 태웅방을 몇 번이나 기웃거렸다. 마음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자금액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 때쯤이었다.
“빨리들 옮겨!”
“일단 문부터 열라고!”
태웅방의 입구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장한들이 상자들을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뚱뚱한 중년인이 뒷짐을 쥔 채 따라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비단옷과 목에 두른 진귀한 보석들, 게다가 경지를 알 수 없는 호위무사까지. 한중에서도 보기 힘든 대부호의 풍채였다.
그가 오자 지부장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은자 삼천 냥일세. 모두 지폐로 교환해주시게.”
삼천 냥이란 소리에 지켜보던 소소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때 점원이 허리를 새우처럼 접으며 극진히 안내했다.
“오셨습니까, 나으리. 하한선에서도 은자를 매수하려는 자가 없기에 오늘은 추가적인 거래가 불가능합니다.”
“그냥 하한선에 대기 물량으로 걸어 놔. 매수자가 없으면 마는 거고.”
잠시 지켜보던 소소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이렇게 은자 값이 싼 시점에서 왜 이렇게 많이 교환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일광 삼촌이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은자를 파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더 내려간다는 것을 말이다.
소소가 뚱뚱한 중년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저씨!”
“왜? 꼬마가 왜 여기 있어?”
“아저씨, 이렇게 한 번에 너무 많이 교환하면…… 반칙이잖아요!”
“하. 나 원 참. 아침부터 애새끼한테 별소릴 다 듣네. 맞기 전에 빨리 꺼져.”
돼지 족발에 비견될 정도로 통통한 손이 소소의 등을 밀어버렸다.
그러나 소소가 누구인가. 꿈쩍도 하지 않자 그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어쭈? 버텨?”
“나를 왜 밀어요?”
중년인은 자신이 꼬마랑 말싸움하고 있다는 것조차 수치로 여기는 듯했다. 두꺼운 살집 속에 파묻힌 눈동자가 지부장을 노려봤다.
“요즘 태웅방 물이 왜 이래? 앞으로 이 꼬맹이 여기 못 들어오게 해! 안 그럼 내가 다른 전장으로 옮길 테니까. 알았어?”
“예, 물론입니다, 나으리. 앞으로도 불편함이 없도록 모실 테니, 저희 쪽에서만 거래해주십시오.”
지부장이 점원 한 명에게 눈짓을 보냈다.
소소랑 친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안타까운 얼굴로 소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가야. 무서운 아저씨들이니 앞으로 여기 찾아오지 말거라. 알았지? 대신 나중에 거리에서 보면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주마.”
소소는 너무나도 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해본 축객령이었다.
태웅방을 나서자마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걷어찼다.
콰앙-!
돌멩이는 이십여 장을 날아 어느 전각의 담장 구멍을 뚫어버렸다.
“씨이…….”
소소는 얼굴에 심술이 가득했다.
스승님에게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 * *
설화는 평소와 같이 소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늦었구나. 오전에 끝내려면 바로 시작해야겠어.”
“네, 스승님.”
설화가 먼저 칠현금의 선을 튕기기 시작했다.
합주는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해심소(海心笑)로 시작한다. 곧이어 소소가 퉁소를 불며 음을 맞추었다.
합주가 시작된 지 반각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돌연 설화의 손이 먼저 정지했다.
“음이 불안하구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아니에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할 설화가 아니었다.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 쉬었다가 할까?”
“……네.”
소소는 퉁소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연설화는 턱을 괴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분명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도와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에 빠진 후 일다경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돌연 문 앞에서 엄청난 고함이 벼락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산 전체를 뒤흔드는 쩌렁쩌렁한 사자의 울부짖음이 말이다.
끄아아아앙!!!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처가 통째로 무너질 듯 세차게 진동했다.
쿠쿠쿠쿠쿵-!
설화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럴 수가……. 용격사자후가 팔성에 도달하다니?’
팔성(八成)의 화후는 최소한 일 년 이상을 더 수련해야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칠성을 돌파하고 팔성에 이를 줄이야.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두 단계만 더 오른다면, 그녀의 염원이었던 진일심소곡을 연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분노가 느껴지는 포효는 반경 삼십 리를 메아리치듯 뻗어 나갔다.
설화는 적지 않게 놀란 듯 한동안 멍한 얼굴이었다.
그때 소소가 다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깨는 여전히 축 처져 있었지만, 얼굴은 조금 밝아져 있는 모습이었다.
“……스승님이 도와줄 테니 무슨 일인지 말해볼래?”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그냥 털어놓기로 했다. 환전해놓은 은자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 상황을 말이다.
그리고 조금 전에 태웅방에서 있었던 일도 말했다. 너무 분했기 때문이다.
얘기가 끝나자 연설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시세를 조작하여 시장을 교란하는 못된 놈들이 있는 모양이구나.”
“네, 맞아요. 나쁜 사람들이에요.”
“자본의 힘을 믿고 날뛰는 자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당하게 되어있단다. 걱정하지 말고 당분간은 잊고 지내거라. 비정상은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법이니.”
일광의 말과는 달리 스승님의 말은 철석같이 믿는 소소였다. 그녀의 말에 안심이 되는지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네, 스승님.”
“오늘 합주는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좀 쉬어두거라.”
설화는 우선 소소를 돌려보냈다.
열린 문틈 사이로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일다경이 지난 이후였다.
“……감히 내 제자를 무시했겠다?”
섬섬옥수가 서재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드드드득-!
기관이 발동되며 서재의 틈새로 작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