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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1) (158/250)


158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1)
2022.07.08.


용강수로채에서 볼 일을 마친 소무는 잠시 한중에 머무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이곳은 또다시 그를 놀라게 했다.

새로 생겨난 웅장한 고층 전각들과 왁자지껄한 거리의 풍경들. 자유롭게 노니는 주민들의 모습에는 풍요가 가득했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기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중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화양객잔 한쪽에서 술잔을 움켜쥔 소무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재상 진회가 황제의 먼 친척을 앞세워 황위 계승을 주장하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소식을 먼저 접한 한중의 백성들은 크게 동요하고 격분했다. 그렇기에 며칠째 이곳에 머무르며 민심을 지켜보고 있었다.

“광서성에서 즉위식이 열린다고? 도대체 누가 무슨 자격으로?”

“난들 알겠나. 서거한 황제의 먼 친척이래.”

“지가 나라를 위해 한 게 뭐가 있다고 지금 와서?”

“내 말이. 황실에서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바른말로 죽기 직전의 한중을 살려놓은 건 우리 장군님이 다 한 거지.”

“근데 황제의 친척이 누군데? 황족은 전부 뒈진 거 아니었어?”

“나야 모르지. 지가 황제의 핏줄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어. 재상이 그렇다니까 그런 거지.”

“그 간신배 놈이 또 뒤에 있다는 말이야? 이것들이 우리를 바보로 아나.”

“확실해. 나는 죽어도 그놈이 내세운 놈을 황제로 인정할 수 없어.”

주민들의 대화가 위험한 수준을 넘나들고 있었다. 오직 섬서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떠한 대화를 나누던 관에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자신을 험담하더라도 백성을 탄압하지 말라는 장양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란은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또 다른 급보가 당도했다.

객잔의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러분, 사천성의 원규 절도사가 칭제를 했다고 합니다!”

칭제(稱帝).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하는 의미였다.

주민 한 명이 놀란 눈으로 벌떡 일어섰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확실합니다! 지금 밖에서 난리도 아니에요!”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하게 변해갔다. 그동안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타앙-!

만취한 누군가가 탁상을 내리치고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취기에 얼굴이 붉어진 그는 무척 격앙되어 있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는 개새끼를 황제로 모셔야 합니까! 사천성의 절도사도 왕이 되겠다는데, 우리 장군님은 안 될 게 무엇입니까!”

“옳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그때 일단의 무리가 객잔 안으로 난입했다.

“여러분들, 지금 여기서 뭐 합니까! 빨리들 밖으로 나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소무는 객잔 밖의 이상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곳을 향해 접근해오는 엄청난 열기. 그리고 점점 커지는 함성들. 그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었다.

“장양 황제 폐하 만세!!!”

“우와아아아!!!”

백성들이 자진해서 들고 일어나 장양을 황제로 세우려 하고 있었다. 역사상 이러한 경우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소무의 얼굴엔 근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이 원했던 일이지만, 어찌 마냥 좋아할 수만 있겠는가. 눈앞에서 나라가 사분오열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주민들의 광기는 걷잡을 수가 없어졌다.

“우리도 나갑시다!”

“암! 물론이죠!”

“주인장, 급하니까 거스름돈은 나중에 와서 받겠소!”

객잔 안의 주민들도 하나둘씩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소무도 뒤따라 거리로 나가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채 행진하는 수천 명의 인파. 그 숫자는 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거리의 한쪽 구석에 줄지어 늘어선 관군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장교 한 명이 지휘관인 위진철 부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부장님, 어찌해야 합니까?”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그냥 놔둬.”

“그게 아니고…… 저 병사들 말입니다.”

위진철의 시선이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백성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언제부터 우리 군단이 분위기에 휩쓸리는 오합지졸들이었다는 말인가? 장을 치기 전에 당장들 닥치라 해!”

“예, 부장님!”

“하지만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것은 허락해주겠다.”

군중의 틈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는 발길을 돌렸다.

‘백성들이 세우는 황제라…….’

모처럼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어서 빨리 장안으로 가봐야 했다.

* * *

예상대로 장안의 지휘관들도 정보망을 통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많은 정보를 수집한 상태였지만, 지금 한중의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상석에 앉은 장양은 먼저 소무의 노고부터 치하했다.

“소무 대장이 한수강의 수적들을 해산시키고, 그들을 우리의 수군으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네. 고생 많았네. 큰 공을 세웠어.”

부장들의 얼굴이 밝아지며 갈채를 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장님.”

“모처럼 좋은 소식이군요.”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소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묵묵히 답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들이 생겼군요.”

장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 내용은 들어 알고 있을 것이네. 간신 진회는 허수아비를 내세워 황위를 주장하고 있고, 이에 반기를 든 절도사 원규가 칭제(稱帝)를 한 상황이지. 설풍 부장이 상황을 요약해 주시게.”

설풍은 무과시험에서 수석으로 급제한 인물이었다. 부장으로 기용되어 곽철 부장을 도와 정보수집을 담당하고 있었다.

“우선 진회는 조강이라는 자를 앞세워 호남의 장사를 도성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서와 광동의 행정을 맡고 있던 현남절도사 관운산이 그를 지지하기로 하였습니다.”

곽철 부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다시 그를 지지하는 자가 있다니요?”

“동시에 선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사전에 밀약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장양이 탁상 위의 지도를 살펴보며 말했다.

“호북을 전진 방어선으로 삼고, 장강 이남으로 세력을 확충하려 들겠군. 원규의 상황도 설명해 주시게.”

“원규의 행정구역은 사천을 기반으로 운남과 귀주까지 해당합니다. 그들은 국호를 ‘포’라고 명했습니다. 세력으로 따지자면 진회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우리의 행정구역을 제외한다면 말이지요.”

“세력이 양분되고 있으니 앞으로가 문제로군. 예상은 했지만 시기가 너무 빨라……. 적과의 전쟁에서도 승기를 잡지도 못한 상황에 일을 벌이다니.”

“당장은 달라질 것이 없지 않겠는지요? 어차피 혼자서는 휘나라에 버티지 못하고 자멸할 것입니다. 그들이 모르고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내 생각도 같네. 아무래도 양측은 연합을 염두에 두고 있을 걸세. 서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부관 양연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도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진회가 내세운 새로운 황제 말입니다. 백성들의 반감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칭제를 결행한 원규 절도사도…….”

양연정이 말끝을 흐리며 설풍 부장을 바라보았다. 원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그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저는 사천의 무관 출신입니다. 제가 왜 그곳의 관직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다시 과거에 응시했겠습니까? 감히 말씀드리자면 절도사 원규는 기회주의자일 뿐입니다. 송나라의 근본 없는 새 황제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강과 양소 부장이 연이어 거들었다.

“우리도 행동해야 합니다, 장군. 관중이 우리 손에 있으며, 전략적 요충지인 한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개국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더는 그릇된 통치에 고통받는 백성들이 없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장양은 깍지를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침묵을 깨며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왕이나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닐세.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어찌 나라를 또다시 나눌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때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중원이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배영토가 커질수록 황실은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백성들을 더욱 억압하고 탄압해야 할 것입니다.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나라 백성들의 삶이 어땠을지는 장군께서도 아실 겁니다. 역사가 증명해왔습니다. 그러니 이곳을 기반으로 체계를 잡아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십시오.”

진립 부장이 가세하여 악비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전선에도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상장군의 군단을 흡수한 악비 장군이 최전선을 지키고 있으며, 한세충 장군도 건재합니다. 그들과 함께 적들을 견제하고 내실을 다지며 외교 정책으로 기틀을 세우면 됩니다.”

장양은 두 눈을 감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때 평소 말수가 거의 없던 기마대의 한백 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가 회의에서 의견을 말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장군님을 지지하는 백성들의 염원을 이루어주십시오.”

모든 장수가 이구동성으로 그의 결단을 요청하고 있었다.

근엄한 분위기 속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일다경이 지난 이후에서야 장양의 입이 나직이 열렸다.

“쉬이 결정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로군.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것이네. 이후 백성들의 뜻을 살펴 무엇이 옳은 일인지 판단하겠네.”

그것이면 충분했다. 부장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몇 가지 안건에 대한 논의가 더 진행된 후 회의는 끝을 맺었다.

회의를 마치고 궁성 밖으로 나온 소무는 시장으로 향했다. 장안의 민심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아직 한중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인구와 경제가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반인들에 대한 궁성의 개방과 관광사업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른 지역의 주민들을 이주해오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생기가 넘쳐났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직 이곳의 주민들은 소식을 못 들은 모양이군.’

한중과는 달리 곳곳이 평온해 보이기만 했다. 한 곳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태웅방(兌雄房). 중원 제일의 환전소인 이곳에 수십 명이 몰려들어 왁자지껄했다. 심지어 실랑이를 벌이는 자들도 보였다.

‘어딜 가나 정보가 빠른 자들은 있는 법이지.’

무슨 일인지는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었다.

나라가 분단되면 화폐의 가치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기존의 화폐를 통용하되 무분별하게 찍어낼 수도 있으며,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것은 은자처럼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안전한 자산의 시세 폭등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미리 환전해둔다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을 터.

“아니, 환전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시세에 삼 할을 더 쳐줄 테니, 환전 좀 해주시오!”

“태웅방에서 은자를 숨겨놓고 교환을 안 해주는 것이 아닙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관아에 고발하겠습니다!”

태웅방의 점원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소란을 피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아무리 얹어주신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태웅방의 은자 보유량은 이미 닷새 전에 바닥이 났습니다.”

손아귀에 지폐를 가득 쥐고 온 중년인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 소리쳤다.

“도대체 누가 태웅방의 은자를 다 쓸어갔다는 말입니까?”

“죄송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고객의 신상 정보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무심히 지켜보던 소무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리 은자를 쓸어간 자가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닷새 전에 환전했다면 정보를 알고 한 것은 아닐 텐데? 누군지는 몰라도 운 좋게 돈벼락을 맞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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