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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2) (159/250)


159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2)
2022.07.09.


인적이 없는 양주산의 분지.

연설화는 부엌에서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잉어찜과 동파육 등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음식들. 거기엔 고명까지 올려져 있었다. 손님이 오는 모양이었다.

허리에 왼손을 얹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주걱을 찾아 들었다.

솥뚜껑을 들어 올리자 김이 모락모락 뿜어져 나왔다.

밥이 익었나 살펴보던 설화의 눈빛이 돌연 미묘하게 변했다. 동시에 어딘가를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와 봐. 다리를 모두 잘라버릴 테니.”

섬뜩한 말과는 달리 얼굴에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게다가 시선은 여전히 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주걱으로 솥 안을 휘저으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밥이나 짓고 있으니, 졸부 아낙네쯤으로 보였나 보네.”

문 앞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곧이어 사람의 인영으로 변모해갔다.

태도 한 자루를 움켜쥔 흑의인. 완벽한 살수(殺手)의 모습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은신이 이렇게 쉽게 간파당할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심지어 보지도 않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챘다.

의뢰정보와 다른 상대의 수준에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지금 뜸 들이지 않으면 밥이 맛이 없어지거든.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기로 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거기 가만히 서서 잠깐 기다려줄래?”

주걱을 휘젓는 설화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살수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일평생 지금처럼 소름 돋는 순간이 없었다.

그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팔 하나를 놓고 간다면, 그냥 보내주겠소?”

“아니. 너는 오늘 죽어.”

일이 글렀음을 직감한 살수는 도주를 결심했다.

그의 소매에서 작은 구슬 하나가 은밀히 빠져나오며 손아귀로 들어왔다. 살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도구인 연막탄이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것이 최선이었다.

퍼엉-!

부엌의 입구에서 짙은 안개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동시에 살수는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타앗-!

설화의 미간이 급격히 좁혀졌다.

그녀는 재빨리 솥뚜껑으로 요리를 덮으며, 오른손을 입구로 내뻗었다.

그 순간 네 개의 빛살이 살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푹-! 푸푸푹-!

“크악!”

살수의 두 다리와 양팔을 가느다란 비침이 관통해 있었다. 침 끝에 연결된 가늘고 질긴 천잠사가 거미줄처럼 반짝였다.

“밥에 들어갔잖아.”

설화는 짜증이 났다. 살수의 연막이 솥 안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미리 만들어놓은 음식은 보호할 수 있었지만, 밥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손가락을 오므리자 살수는 꽈당 하고 뒤로 넘어졌다.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는 힘이었다. 설화가 천잠사를 잡아당기자 살수는 사정없이 끌려갔다.

“사, 살려주십시오!”

“곧 있으면 죽여달라고 할걸?”

설화는 살수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창고를 향해 질질 끌고 갔다. 마당에 피가 튀기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살수의 눈빛은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누, 누구한테 죽는지는 알고 가고 싶소!”

“뭐를?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죽이러 찾아왔어?”

“의, 의뢰대상이 무림인이라 들은 적이 없었소! 그냥 여인 혼자 있으니 잡아 오라는 의뢰만 받았을 뿐이오! 나도 사기당한 것이란 말이오!”

“의뢰의 대가로 얼마를 받았지?”

“은, 은자 세 냥이오.”

설화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받았어야지. 옥화신녀의 목숨값인데.”

그 순간 살수의 동공이 공포에 질려 흔들거렸다.

무림인이라면 그녀의 별호를 모를 수가 없었다. 정마대전에서 이름을 날린 마두로 교주의 위치까지 오른 무시무시한 인물이 아니던가.

“당, 당신이 서, 설마?”

설화는 창고 문을 열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맞아. 그럼 이제부터 그 의뢰인에 관해서 같이 얘기 좀 나눠볼까?”

“이, 이런 X팔…….”

그것이 살수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한 시진이 지난 후.

설화는 어느새 원두막에 나와 앉아있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찬들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그릇. 소무를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었다.

맞은편에서 젓가락을 움켜쥔 소무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맛이 좋아. 연매의 요리 솜씨가 갈수록 일취월장인데?”

칭찬은 누구든 기분을 좋게 만드는 법이다. 설화는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맛있겠지. 누가 만든 음식인데.”

소무는 그녀가 만든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지금도 입안에 찬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살수가 찾아왔었다며? 여인 혼자서 이렇게 외진 곳에 살면 항상 조심해야 해.”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입안의 음식을 꿀꺽 삼킨 소무는 화두를 돌렸다.

“음……. 그런데 어떻게 했어? 죽였어……?”

팔짱을 낀 설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소무를 노려보더니, 이내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파묻기 귀찮아서 아직은 살려뒀어. 관아로 데려가시든지.”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직 살려뒀다는 말에 소무는 은연중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데려갈게. 근데 왜 연매를 노린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강호를 떠난 이후 남에게 원한 살 만할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설화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소무의 밥그릇에 찬을 올려주며 말했다.

“신경 쓸 것 없어. 별거 아니니까.”

감히 그녀를 공격하려 했다면 미친놈이거나, 정체를 몰랐거나 둘 중 하나일 터. 우려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음. 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도 돼.”

“그럼 구양회에 대해서 조사 좀 해줘. 하지만 절대 건들지는 마. 내가 처리할 거니까.”

소무는 피식 웃으며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어느 놈들인지 몰라도 상대를 잘못 건드렸군.”

* * *

소무는 곧장 군영의 뇌옥으로 향했다.

그의 어깨에는 흑의인 하나가 걸쳐져 있었다. 눈이 반쯤 풀린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립했다.

“누, 누구입니까?”

“죄 없는 민간인을 해하려던 살수야. 우선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며칠 가둬둬.”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살수의 뒷모습. 그를 바라보던 소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름 불쌍한 녀석이니 잘 먹여주고.”

이제 설화가 부탁한 구양회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 군단의 정보망을 이용해도 되었지만, 사적인 일이었으니 다른 길을 택했다.

그가 이동한 곳은 장안에서 멀지 않은 한 마을이었다. 개방의 분타가 있는 곳으로 위치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마을 외곽에 존재하는 이 층 규모의 낡은 전각. 무너질 것처럼 볼품없어 보였지만, 규모와 내부는 나름 훌륭했다.

입구에는 젊은 거지 셋이 타구봉을 움켜쥐고 경계하고 있었다.

“분타주 안에 있지?”

정보를 취급하는 개방의 거지들답게 눈썰미가 대단했다. 소무의 관복을 확인한 그들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음. 지인이 보러왔다고만 전해줘.”

“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거지들은 한 명을 위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반각도 되지 않아 늙은 거지 하나가 후다닥 내려왔다. 소무가 만나고자 했던 허규였다.

“어이쿠, 이 친구야!”

허규가 끌어안으려 하자, 소무가 재빨리 피하며 말했다.

“일단 좀 걸으면서 얘기하지. 모처럼 술도 한잔하고.”

“낄낄. 그거라면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 어서 가시게.”

주변에 널려 있는 거지들이 너무 많았다. 보는 눈이 없어지고 나서야 소무의 입이 다시 열렸다.

“허리에 매듭이 하나 늘었는데?”

“암. 내가 이제 개방의 총타주가 되었단 말이지. 모두 자네 덕분일세.”

“나 때문이라니?”

“내가 자네와 친한 것을 우리 방주님이 눈치챘기 때문이란 말일세. 낄낄. 결정적으론 자네가 전달해준 마교의 비급들 때문이었네.”

“음. 무림맹의 반응은?”

“뭐 별수 있겠나. 신마교가 정파 무공의 파훼법을 연구하고 있으니, 우리도 마교의 무공을 분석하여 초식을 발전시킬 수밖에.”

“다행이군. 무림맹이 신마교에 무너지면 관군도 홀로 버틸 수가 없어.”

“걱정하지 마시게. 이미 각파의 고수들이 모여 밤새가며 연구하고 있으니.”

소무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래도 요즘은 문파들끼리의 이권 다툼은 없나 보군.”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무림맹의 생존이 위태로운 시기일세. 살기 위해선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그것도 그렇겠군. 근처에 가까운 객잔이 어디지?”

“장안 부근의 객잔은 내가 다 꿰차고 있으니 그냥 따라만 오시게. 그런데 술값은 무슨 정보로 받을 생각이신가?”

“눈치 하나는 귀신이군. 구양회에 대해서 들어 봤어? 정보가 있으면 좀 전달해줘.”

“구양회를 모른단 말인가? 관의 정보망이 실망스럽구만. 사천성의 제일 갑부가 있는 상회를 모르다니.”

“중원 제일의 갑부라니?”

“황기라는 놈이 회주인데, 사천에서 알아주던 인물이었지. 이번에 장안에서 한몫 챙겨보려고 넘어온 모양이네.”

“그리고?”

“낄낄.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머지는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얘기하지. 거의 다 왔네.”

그때 소무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좌측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허규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저기 자네 딸 아닌가? 황소를 타고 있네?”

소소가 분명했다. 누런 짐승 위에 올라탄 채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뒤에는 또래 아이 둘이 보였다. 백약 부장의 자녀들이었다.

“딸, 어디가?”

눈이 마주친 소소는 해맑게 웃으며 고삐를 당겼다.

“아버지!”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다롱이 산책시켜주고 있어요.”

뒤에 타고 있던 백상과 백아가 동시에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요 녀석들, 오랜만이구나.”

어린아이답지 않게 독기 가득했던 백상의 눈빛이 차분해져 있었다. 게다가 달라진 기도로 보아 무공도 꾸준히 익히고 있는 듯했다. 소소와 비교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 허규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대체 이게 무슨 짐승이야? 황소도 아니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아리가 그려진 담요로 몸을 감싸고, 보자기로 얼굴을 가려놓다니. 게다가 광대 모자에 알록달록한 목줄까지 차고 있었다.

허규의 손가락이 산군의 얼굴을 만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거대한 범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뭐, 뭐, 뭐야!?”

화들짝 놀란 허규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질 뻔했다.

“개방의 총타주가 꼴이 말이 아니군. 짐승한테 놀라다니 말이야.”

“사, 산군을 잡아 왔다던 소문이 사실이었나? 헌데 왜 얘네들이 타고 있어?”

“자세한 건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지.”

“후. 심장 멎는 줄 알았네.”

놀란 허규를 뒤로한 채 소무가 딸에게 다가가 물었다.

“밥은 먹었어?”

“아니요. 배고파요~”

“허규 아저씨랑 객잔 가는 길인데, 밥 먹고 가.”

소소가 뒤를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우리 아버지가 밥 사준대. 같이 가자. 히히.”

백상과 백아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헤헤. 나도 배고팠어, 언니.”

객잔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뒤뜰에 산군을 묶어놓고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소무는 허규와 마주 앉았으며, 아이들은 구석에 따로 자리를 잡아주었다.

이미 연설화와 밥을 먹고 온 소무는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구양회의 황기라는 놈이 장안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야?”

허규는 입안에 가득 찬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술잔을 털어 넣었다.

“태웅방에만 계속 들락날락했다고 해. 아마도 은자 시세를 조작하여 환전차익을 거두려는 속셈이었겠지.”

“음. 태웅방의 은자를 누가 전부 환전해 갔다던데 그게 황기였나 보군.”

“아닐세. 황기가 보유했던 은자를 한 번에 풀어 시세를 낮춰 놓았는데, 엉뚱한 사람이 모두 쓸어갔다는 소문이 있네.”

“황기에 버금갈 만한 갑부가 장안에 또 있다고? 누구지?”

“그자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네. 무슨 연유인지 태웅방이 입을 꾹 닫고 있어. 언급조차도 꺼리는 모양이네.”

나날이 치솟는 은자시세는 엽전 가치로 사백 냥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도 멈출 줄 모르고 매일 같이 상한 가격으로 치솟는 상황이었다.

돈벼락을 맞은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문제가 아니었다.

“구양회는 뭐 하는 곳이야? 투자금은 어떻게 모았지?”

“사천에서 대부업을 전문으로 하던 놈들이었어. 지금도 장안에 와서 신나게 하고 있지.”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한다고?”

“맞아.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빌려주고 있다더군. 하지만 수십 배의 이자를 요구하고, 갚지 못하면 잡아가서 어딘가로 팔아넘긴다는 소문도 있네.”

“근본부터가 썩은 놈들이군. 다른 특이점은?”

“최근 이 부근에서 강도 사건이 늘어나고 있네. 그들 중 대부분이 구양회에서 돈을 빌렸던 자들이라는 소문을 들었네. 군순포까지 나서서 조사하고 있지만, 소득이 없는 모양일세.”

소무는 팔짱을 끼고는 고민에 빠졌다.

“구양회의 본거지가 어디야?”

“일단 술부터 한 병 더 시켜주겠나?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타서 말일세.”

한편 객잔의 구석에 앉은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어른들의 말을 엿듣고 있던 것이었다.

젓가락으로 오리고기를 움켜쥔 소소가 진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나도 알아. 그 뚱땡이 아저씨.”

백상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소소, 네가 어떻게 알아?”

지난번의 일이 생각나자 소소는 분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저번에 태웅방에 갔었을 때, 날 밀쳐냈어.”

“역시 나쁜 사람이 확실해. 소소, 너는 순관이잖아. 우리가 혼내줄까?”

“안 돼. 나는 그냥 궁성의 순찰대원이야.”

궁성을 벗어나면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백상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살 백아는 눈만 뻐끔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모의가 끝나자 아이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아버지, 나 먼저 갈게요!”

한창 허규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있던 소무는 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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