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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4) (161/250)


161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4)
2022.07.11.


소소와 백상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위로는 수십여 명의 무사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분노 서린 외침이 뿜어져 왔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누군가가 숨 막히는 기세를 풀풀 풍기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짙은 눈썹과 한기가 서린 눈동자. 한눈에 보아도 다른 무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고수였다. 그는 매우 분노해 있었다.

“대, 대주님, 오셨습니까?”

그는 쓰러져 꿈틀대는 부대주를 향해 다가갔다.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변뇨를 보다 기습을 당했기에 바지도 추켜올리지도 못한 상태였다.

“……대주님.”

대주라 불린 자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다시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네놈은 우리 흑살대의 수치다.”

이들의 정체는 구양회의 직속 무력단체인 흑살대였다.

하늘 높이 치켜세워진 그의 발이 쓰러진 부대주의 얼굴을 뭉개버렸다.

콰직-!

그의 발아래 깔린 부대주는 경련을 일으키더니 온몸이 축 늘어졌다.

조직의 이인자를 이렇게 죽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참혹한 광경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일순간 주변이 정적에 휩싸였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발아래 실린 엄청난 내공은 소소와 백상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백상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소소야, 너 먼저 도망쳐.”

상대적으로 경공이 느린 백상은 도망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친구를 버리고 갈 소소가 아니었다.

“같이 싸우자.”

소소와는 달리 백상은 이미 싸울 전의를 상실해 있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못 이겨…….”

다급해진 소소는 발을 동동 굴렀다. 백상을 보호하면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 자신이 도망친다면 혼자서 맞아 죽을 게 분명했다.

그때 흑살대의 대주가 뒷짐을 지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남자애는 죽이고, 여자애는 생포해. 반각 주겠다.”

반각 안에 상황을 정리하라는 의미였다. 자신이 직접 나서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사들이 앞으로 나서며 살기를 뿜어냈다. 몇몇은 검기까지 발출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무공을 익힌 아이들임을 알고 있기에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전투가 시작되려는 찰나 소소가 다급히 외쳤다.

“잠깐만요!”

흑살대의 대주가 한 손을 올려 보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기다렸다.

시간을 벌게 된 소소는 은연중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장안성의 성벽이 보였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성벽 안의 누군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 소소는 성벽이 있는 곳을 향해 순간적으로 사자후를 뿜어냈다.

“도와주세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음파가 무사들의 머리 위로 뿜어져 나갔다.

준비도 없이 펼친 사자후였기에 그 위력이 삼성(三成)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했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질 듯 꺾여나갔으며, 전면의 무사들은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그리고 소소의 행동은 흑살대의 대주를 분노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만약 근처에 관군이라도 있다면 이곳이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쪼막년이 어디서 개수작을……. 당장 죽여!”

검을 움켜쥔 흑의인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소소가 백상의 옷깃을 붙잡고는 다짜고짜 도약을 시도했다. 목표물은 근처에 우뚝 솟은 소나무였다.

타앗-!

이 장 높이의 나뭇가지에 아이 둘이 우뚝 올라섰다.

소소에게 붙들린 백상이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뭐, 뭐해?”

“가만히 있어.”

무사들이 나무 아래로 몰려들며 소리쳤다.

“도망치려고? 어림도 없다!”

“너넨 오늘 죽었어!”

무사들이 도약하는 순간, 소소가 백상을 붙잡고 다시 날아올랐다.

몇 개의 나무 위를 뛰어다니고는 전각의 지붕 위에 올라섰다.

날다람쥐같이 재빠른 움직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사들은 약이 바짝 올랐다.

소소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성난 무사들이 근처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 넘기고 있었다. 전각의 사방도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더는 도망칠 공간이 없어 보였다.

“좋은 말로 할 때 내려와.”

“우리가 올라가면 더 맞는다.”

순순히 내려갈 소소가 아니었다. 백상의 옷깃을 놓으며 소리를 빽 내질렀다.

“싫어요!”

“콩알만 한 게 어디서 버릇없이 소리를 질러?”

더는 퇴로가 없었다.

무사들이 도약을 위해 하체를 굽히는 그때였다. 돌연 소소가 어딘가를 바라보고는 방긋 웃었다. 그러고는 한쪽 손을 높이 올리며 소리쳤다.

“다롱아, 언니 여기 있어!”

그 순간 어디선가 짐승의 포효가 들려왔다.

크아아앙-!!!

호랑이의 청각은 사람보다 열 배나 뛰어나다. 하물며 오랜 기간 도를 닦은 짐승의 왕이라면, 그 능력이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성안에서 소소의 목소리를 듣고는 목줄을 끊고 달려온 산군이었다.

흑살대주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무엇인가가 엄청난 속도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기세. 자신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들 내버려 두고 당장 모여! 진법을 펼쳐라!”

* * *

우두득-!

누군가의 목뼈가 꺾이는 소리였다. 주변으로는 이미 수십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하나같이 특정 신체 부위가 검게 그을린 처참한 몰골들. 아직 멀쩡히 숨이 붙어있는 흑의무사는 단 세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여인이 한 손을 뒷짐 지고 있었다.

옥화신녀 연설화.

암화(暗火)에 둘러싸인 그녀의 오른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고작 너희들끼리만 온 거야? 그렇다면 실망인데.”

설화를 납치하고, 은자를 빼앗기 위해 온 흑살대의 무사들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정체를 지금에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세 명의 흑의인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공포와 함께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어차피 이대로 돌아가면 우린 대주님한테 죽어. 마지막은 무사답게 명예롭게 가자.”

“너희들과 함께 죽을 수 있어서 영광이다. 가자!”

“동시에 공격하는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화는 코웃음을 쳤다.

“놀고들 있네.”

세 명의 무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호흡이 지난 뒤. 가운데에 있는 무사가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그가 최후의 돌진을 시작하는 그 순간. 다른 두 명은 예상을 뒤엎고 등을 돌려 반대로 뛰었다.

앞서 달리던 무사는 똥을 씹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료들이 자신을 방패로 삼아 도주한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최후의 비기를 쏟아냈다.

“뒈져!”

한줄기 빛살이 설화를 향해 뿜어지는 그때였다.

순간 등 뒤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오른손이 분신을 만들어내며 환영을 그렸다.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가공스러운 속도. 사라졌던 섬섬옥수는 어느새 흑의인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꾸욱-!

“끅!”

숨이 턱 막힌 흑의인의 두 눈의 핏줄이 터지며 충혈되었다. 가냘픈 손이었지만, 강철도 으스러트릴 만큼 무지막지한 악력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명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설화의 나머지 한 손은 어느새 그들을 향해 내뻗어져 있었다. 옷소매에서 거미줄처럼 쏘아진 빛줄기가 도망치던 흑의인들의 목을 휘감았다.

휘리리릭-!

도망치던 흑의인들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꽈당 넘어졌다.

“크윽!”

“컥!”

그녀가 손아귀를 오므리자, 천잠사가 스르륵 감기며 그들을 끌어 당겨왔다.

“너희들 설마, 방금 동료를 팔아먹은 거야?”

자신이 몸담았던 마교도 의리는 없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에 기가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화가 왼손으로 붙잡고 있던 무사를 놓아주었다.

한참을 컥컥거리던 그는 곧이어 자세를 다잡았다. 그 순간 그의 눈빛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살기가 피어올랐다. 대상은 연설화가 아니었다.

“죽어, 이 새끼들아!”

그의 발이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퍼억-! 퍽-! 콰직-!

“크윽!”

“커헉!”

눈이 뒤집힌 그는 설화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내력이 실린 발길질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잠시 후 지켜보던 그녀가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만.”

그 순간 거짓말처럼 그의 동작이 멈추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한참을 씩씩댔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그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넌 그냥 가 봐.”

“……예?”

“사라지라고. 아니면 이놈들하고 같이 죽든가.”

그는 이대로 개죽음당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눈앞의 마두가 다시 마음을 바꾸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고, 고맙습니다.”

“다시 내 눈에 띄면 그때는 정말 죽어.”

“섬, 섬서를 떠나 착실히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흑의인은 허리를 수직으로 숙여 포권을 하고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가 사라진 후 설화는 쓰러져 있는 두 명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나도 답례를 해줘야 하는데, 우리 낭군님이 좀 늦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좀 안내해줄래?”

“어, 어딜 말씀입니까?”

“음. 구양회부터 갈까?”

거절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더는 잃을 것도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말을 잘 듣는다면 자신들도 살려줄지 몰랐다.

“알, 알겠습니다.”

“어디든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설화는 원두막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전에 이 쓰레기들부터 전부 치워.”

거처의 주변에 널린 흑살대원들의 시신들. 그것을 직접 치우자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흑의인들은 근처에서 적당한 공구를 찾아들었다. 그러고는 이십여 장이 떨어진 공터에 묵묵히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 * *

장안성 군순포의 본부.

대장 황개칠은 탁상을 끼고 앉아 손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무엇인가 고민하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때 포수 중 한 명이 본부로 찾아 들어왔다.

“대장님, 드디어 놈이 입을 열었습니다.”

“뭐래?”

“구양회의 사주를 받고 노인을 공격했던 것이라 합니다.”

“설마설마했는데, 이 정도로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을 줄이야…….”

“어떻게 할까요?”

자리에서 일어선 황개칠은 검집을 챙겨 들었다.

“뭘 어떻게 해? 사주한 놈을 잡아야지.”

“상대는 구양회입니다, 대장님. 직속 무력집단까지 거느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들이닥치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가 마공을 수련한 거 아니야? 겁먹을 것 없어.”

“그래도 뭔가 좀 찜찜합니다. 아무래도 증거를 좀 더 확보하고 관군에 도움을 요청해서…….”

돌연 황개칠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겁게 깔린 그의 음성이 한마디를 뿜어냈다.

“왕철아.”

“예, 대장님.”

황개칠의 미간이 좁혀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행동대장 왕철이!”

기합이 바짝 들어간 왕철은 다리를 모으고 기립했다.

“예, 형님!”

“개칠이파의 첫 번째 철칙이 뭐야.”

“상대가 누구든 일단 들이받고 본다!”

황개칠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한 번 토닥였다.

“우리 왈패들에게 기회를 주신 장군님의 은혜를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드디어 기대에 부응할 때가 온 거야.”

“예, 형님.”

“거리의 치안이 뚫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책임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해.”

“알겠습니다.”

“지금 대기 중인 포수들이 얼마나 되지?”

“오십 명쯤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개칠은 문을 나서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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