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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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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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5)
2022.07.12.
소무는 허규와 함께 구양회에 대해 조사하고 다녔다. 반나절 동안 추가로 수집된 정보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회주인 황기는 사천성의 암흑가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다.
고리대금을 바탕으로 납치와 폭행, 심지어는 살인까지 전과가 다양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자금을 끌어모았다. 이후 시장의 규모가 더욱 큰 섬서로 올라온 것이었다.
어느 정도 내용이 정리되자 허규가 물었다.
“어찌할 텐가? 자네의 정인에게 정보를 넘겨줘야지?”
소무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연매가 직접 나서면 장안에 피바람이 불 거야. 그러기 전에 먼저 체포해서 조사해봐야지.”
“괜찮겠는가?”
“지금껏 놈이 저지른 짓을 생각해보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하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사천에서는 통했어도 섬서에서는 어림도 없지.”
소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떠날 채비를 했다.
“동감이야. 아무튼, 빨리 가봐야겠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별일이야 있겠는가? 하여간 오늘 밥 잘 얻어먹었네.”
“배고프면 언제든 군영으로 와. 병사들이 먹는 밥도 제법 괜찮아.”
“그럼 한번 찾아가겠네. 낄낄.”
소무는 대원들을 소집하기 위해 군영으로 향했다.
* * *
일인용으로 개조된 쌍두마차. 그곳에 몸을 눕히고 있는 황기는 실실 웃고 있었다.
떠날 때와는 달리 기분이 무척 좋아져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장원을 헐값에 매입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존의 주인에게 무력을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차가 멈추자 비대한 몸집을 일으키며 물었다.
“벌써 도착했어?”
“나오지 마십시오, 회주님, 뭔가 이상합니다.”
“무슨 일인데?”
“근처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황기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호위대인 구양십객(究養十客)의 수장. 그가 긴장하고 있었다. 한때 무림에서도 악명 높았던 추혈검객 철연이 말이다.
양쪽의 문틀을 열자, 마차를 둘러싼 호위무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틈새로 목적지인 구양회의 본거지가 보였다.
“감히 어떤 놈들이 이곳을 넘봐? 여차하면 흑살대도 모두 불러.”
흑살대가 대기하고 있는 전각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나 호위대장 철연은 아무런 대답조차 없었다.
“…….”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황기는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벌컥-!
족발처럼 두꺼운 오른발이 지면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무슨…….”
황기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구양회의 전각에서 이십여 장이 떨어진 숲속. 그곳에서 낯익은 무사가 비명을 지르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하악! 크학!”
놀랍게도 흑살대의 대주였다. 반쯤 미쳐버린 듯한 몰골이었다.
움푹 파여 있는 앞가슴의 상처는 마치 거대한 발톱이 쓸고 지나간 흔적처럼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왼쪽 다리는 뭔가에 물어 뜯겼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오른발에 의지한 채 절뚝거리며 미친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 도망쳐야 합니다, 회주님!”
호위대장 철연이 황기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지 어서 고하시게.”
“모, 모두 당했습니다. 미, 미친 영물이…….”
흑살대의 대주는 횡설수설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자신들을 무시한 채 그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공포에 이성이 지배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짐승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릉-!!!
숲속에서 무엇인가 엄청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곰보다 거대한 덩치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톱. 터질 듯이 부푼 근육과 한 뼘이나 되는 송곳니까지. 그리고 붉은 눈은 마치 그림 속에서나 볼법한 악귀 같았다.
보기만 해도 오싹한 모습이었다.
“저, 저게 뭐야?”
황기는 놀라 넘어질 뻔했다.
철연을 포함한 호위무사들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꿈틀거리는 호랑이의 등 위에는 꼬마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뚱땡이 아저씨.”
소소의 목소리는 곱지 않았다. 흑살대의 전각 안에서 감금된 주민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산군의 등 뒤에는 초췌한 몰골의 여인 몇 명이 백상과 함께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너, 너는…… 누, 누구세요?”
황기는 소소를 기억하지 못했다.
거대한 범을 호령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신선(神仙)처럼 보였다. 도무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소소가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며 물었다.
“아저씨가 대장이죠? 이렇게 나쁜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그, 그걸 왜 저한테…….”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왼쪽 손바닥을 내뻗었다.
“곤장 오십 대 맞아요.”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차마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황기는 철연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고작 짐승 한 마리일 뿐이다. 죽여!”
구양십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눈앞의 호랑이가 쉽게 볼 수 있는 영물이 아님을.
연약한 짐승이 천적을 만났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 그러한 공포심이 무사들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구양십객의 수장인 철연이 수하 한 명에게 눈짓을 보냈다.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네가 가서 해치우고 와.”
지목당한 무사는 죽상을 쓰며 앞으로 나섰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찌 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이를 악다물고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이 펼칠 수 있는 필살의 일격을 준비했다.
“으아압!”
소소가 달려오는 그의 모습을 보더니 산군의 귀에 속삭였다.
“다롱아, 죽이면 안 돼. 알았지?”
소소의 얼굴만 한 귀가 살짝 쫑긋했다.
그 순간 거대한 앞발이 꿈틀거렸다.
무사들이 그 모습을 보았을 땐, 이미 산군의 발이 달려오던 무사의 뺨을 후려치고 있었다.
콰앙-!!!
“쿠학!”
목이 돌아간 무사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더니 십여 바퀴를 구르며 오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적어도 괴력만큼은 화경의 고수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켜보던 호위무사들이 입을 떡하니 벌릴 무렵. 산군이 돌진을 개시했다.
벼락처럼 돌진해오는 거대한 범의 모습은 무사들의 몸을 얼어붙게 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수가 없었다.
콰앙-!!! 콰직-!!!
“크악!”
“끄어억!”
거대한 앞발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한 명의 호위무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흑살대의 대주가 미친 듯이 도망쳤던 이유,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구양십객은 순식간에 전멸 직전으로 내몰렸다.
마지막 남은 호위대장 철연. 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산군의 발톱에 서린 푸른 기운은 검기로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도, 도대체 어디서 이런…….”
십여 합을 버텨냈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기어코 산군의 앞발이 그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콰앙-!
“크헉!”
지면에 대자로 축 늘어진 철연은 경련을 일으켰다. 거대한 발바닥이 그의 어깨 위를 짓눌렀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명. 구양회의 회주인 황기뿐이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지금의 상황이 마치 꿈인 것만 같았다.
“……살, 살려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때. 소소는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품속에 손을 넣었다.
은자 네 냥을 꺼내어 한참을 살펴보더니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산군의 등에서 내려와 황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저씨 때문에 내 돈 다 날아갔어요.”
황기는 영물을 부리는 눈앞의 아이가 신선이라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의 앞에 우뚝 선 소소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물컹한 그의 뱃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내 돈 어떻게 할 거예요!”
퍼퍽-! 퍼퍼퍼퍽-!
“크억!”
황기는 몸을 웅크리며 토악질을 쏟아냈다.
그가 무릎을 꿇자 소소의 눈망울에 물기가 차올랐다.
“아버지랑 스승님이랑 셋이 같이 살려고 모은 돈이란 말이에요. 힝…….”
진정한 은자 투자의 목적이었다. 황기가 은자 시세를 조작하여 물거품이 되었으니,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물 흘리는 소소를 살펴보던 황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억해내고야 말았다. 태웅방에서 만났던 아이였음을. 자신이 은자를 대량으로 내다 파는 것을 보고 항의하던 아이였다.
뱃속을 게워내고 나서야 그의 입이 겨우 열렸다.
“……왜, 왜 나한테 그래. 지금 은자 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얼마인데요.”
“오늘 시세로 육백오십 냥쯤 될 거야.”
소소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다시 은자 네 냥을 꺼내보았다. 얼마나 이득을 본 것인지 계산이 되질 않았다.
대략 한 냥에 이백 냥 언저리에 샀으니 엄청나게 오른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 그럼 나 이제 부자예요?”
“……당연하지. 날 보내주면 은자 백 냥을 너에게 주마.”
“아저씨 돈은 나쁜 돈이잖아요!”
소소와 황기가 입씨름을 하는 사이. 그곳에서 삼십 여장이 떨어진 숲속에서 한 인영이 우두커니 숨어있었다.
몸을 숨기고 있던 설화는 얼굴이 붉어져 나설 수가 없었다. 방금 소소가 했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랑 같이 살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했다. 그때 옆에서 길을 안내했던 흑의인이 어리둥절하며 속삭였다.
“……이곳이 말씀하신 장소입니다. 도착했는데 왜 안 나가십니까?”
설화는 눈치 없는 그를 한 번 노려봤다. 자신이 숨어 있는 것이 들통나면 모양새가 이상해질 수가 있었다.
“입 닥치고 있어. 목을 비틀어버리기 전에.”
“…….”
이미 상황이 모두 정리되었기에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몸을 숨긴 채 현장을 둘러보았다.
흑살대의 전각 주위로는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산군에게 당한 무사들은 처참한 몰골로 바닥을 뒹굴었다. 죽이지 말라는 소소의 명령 때문이었는지 대부분 숨은 붙어 있었다.
설화의 시선이 다시 숲 밖의 대로로 향했다. 먼 곳에서 일단의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체포해! 내가 책임질 테니, 반항하는 놈들은 죽여도 좋다!”
군순포의 대장 황개칠이었다. 그의 뒤를 오십여 명의 포수가 마기(魔氣)를 풀풀 풍기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작정하고 온 모양이었지만 이미 한발 늦은 이후였다.
“개칠이 아저씨!”
소소를 발견한 황개칠은 멍한 얼굴로 얼음이 되어있었다. 비장한 각오로 그의 뒤를 따랐던 포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저앉은 황기를 제외하고는 멀쩡한 자가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다롱이한테 두들겨 맞았어요. 나쁜 아저씨들.”
소소의 손가락이 구석을 가리켰다. 구출된 여인들이 포수들을 발견하고는 안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대충 상황을 짐작한 황개칠은 두 눈을 부라렸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이런 쓰레기들……. 당장 본부로 끌고 간다.”
그때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놈은 우리가 데려갈 테니, 너희들은 저 여인들을 모셔다 드려.”
집채만 한 손이 거대한 황기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어느새 다가온 일광이였다.
“일광 형님?”
포수들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한중의 뒷골목을 하루 만에 평정한 암흑가의 전설. 그는 왈패 출신인 포수들의 우상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조금의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소소의 옆구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요 녀석,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서 사고를 치고 있었구나.”
소무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변의 흔적을 살펴보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산군의 작품임을 단번에 눈치챘다.
“아버지!”
소소는 활짝 펴진 얼굴로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랑아대의 대원들도 죄다 몰려와 있었다. 포승줄을 하나씩 움켜쥔 채 말이다.
소무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군영으로 끌고 가! 남는 인원은 남아서 이곳을 조사한다!”
군순포의 상위 기관인 관군이 직접 나선 것이다.
황기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직감하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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