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이제는 내 뜻대로 살겠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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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이제는 내 뜻대로 살겠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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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이제는 내 뜻대로 살겠소 (1)
2022.07.13.
구양회의 본거지를 수색한 소무는 적지 않은 증거물을 발견했다.
그간 그들이 벌여온 악행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장양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절도사인 그가 직접 나서서 심문했다. 그만큼 구양회에 당한 피해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궁성에서 진행되는 공개재판.
마지막 차례는 구양회의 회주인 황기였다.
“네놈에게 감히 할 말이 더 남아있더냐!”
장양이 이렇게 격노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황기는 몹시 다급해졌다. 상황을 보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없었다.
“재, 재산의 절반을 헌납하겠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회개하며 살겠습니다.”
“네가 빼앗아간 자들의 인생을 어찌 그따위 돈으로 갚을 수 있다는 말이냐!”
산와족 출신의 외팔이 무장 백약. 그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장양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진정시킨 후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인 황기는 선량한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다. 절도와 납치, 강간, 살인까지. 그 수법이 매우 잔악하고 죄질이 무거운바, 엄히 다스리지 않을 수가 없도다.”
황기는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잘, 잘못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마지막까지 목숨을 구걸하는 그의 모습은 장양의 얼굴을 더욱 일그러트렸다.
“네가 어찌 감히 더 살기를 바란단 말이더냐! 불법으로 편취한 구양회의 재산은 몰수하고, 그들의 수장인 황기는 참형에 처하라!”
“예, 장군!”
안색이 창백해진 황기는 병사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외쳤다.
“억, 억울합니다! 살려주십시오!”
도살장의 돼지처럼 끌려가는 황기의 모습에 모두가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장양이 누군가를 지목했다.
“압수한 장부를 가져오시게.”
이미 한 번 훑어봤던 내용이었다.
첫 번째 서적은 고리 담보의 대가로 잡아 온 사람들의 매매기록이었다. 대다수가 여인들이었으며, 몸을 파는 기루에 넘겨졌다.
“곽철 부장!”
묵묵히 지켜보던 곽철이 다가가 기립했다.
“예, 장군.”
“강제로 팔려갔던 모든 이들에게 자유를 돌려주시게. 나의 관할구역인 섬서에서는 그 누구도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네.”
“허나 그들은 금전 관계에 묶여 있습니다. 장부의 금액을 지급하더라도, 거절하거나 흥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해방시키기엔…….”
장양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그의 말을 잘랐다.
“만약 자네의 부인이 지금 그곳에 잡혀있다면 어찌하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낼 것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자리에서 일어선 장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개재판인 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려와 지켜보고 있었다.
“구양회에게 속아 억울하게 가족이 팔려간 자가 있다면 나와 보시오!”
곳곳이 소란스러워지며 주민 수십여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장양은 가장 근처에 있는 백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연유이기에 그리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오?”
“빌린 은자 한 냥이 이십 냥이 되었습니다. 제 부인이…… 끄으흑. 제가 목숨이라도 내놓을 테니 제발 제 부인만 구해주십시오…….”
그자의 어깨를 다독인 장양은 다시 옆의 중년인에게 물었다.
“무엇이 그리도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이오?”
“만져보지도 못한 돈 때문에 제 딸이 잡혀갔습니다. 제가…… 제가 죽일 놈입니다. 끄흐흑…….”
다른 이들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피해자가 많았다.
장양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 누가 이것을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곽철 부장에게 명한다.”
“하명하십시오, 장군.”
“만약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길 거부하는 기루가 있다면, 인신매매의 공범으로 간주하여 체포하라.”
“예, 장군. 명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곽철은 거래기록을 건네받고는 물러갔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가 병사를 소집할 찰나 장양이 다른 서적을 움켜쥐었다.
“설풍 부장!”
지목당한 설풍이 앞으로 나서서 기립했다.
“그간 구양회에 당한 피해자들의 기록일세. 피해자금은 모두 환원해주고, 지원방안을 마련해 절망에 빠진 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살펴주시게.”
“예 장군. 몰수한 자금이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황기는 사천의 제일 갑부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최근 은자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였으나, 아직도 그의 재산은 상당했다. 더군다나 대부분이 사천에서 벌어들인 자금이 아니던가. 섬서의 주민들에게 돌려주고도 처치 못 할 정도로 많았다.
“절도사의 권한으로 명하니, 지금 이 순간부터 섬서에서는 개인 간의 고리를 불허한다.”
“예, 장군. 각지에 공고하겠습니다.”
“관에서 전장을 직접 운영하여 필요한 백성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군. 양강 부장이 한번 추진해보시게.”
“알겠습니다, 장군. 닷새 안에 추진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장양은 고개를 내저었다.
“급하게 추진하면 어디서든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안 하느니 못 하는 일이 될 수 있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문인들과 함께 충분히 의논하고 상의하여 합리적인 계획을 보고하시게.”
“예, 장군.”
노기가 가라앉은 장양은 안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공개재판이 끝났으니 남은 것은 포상이었다.
“마지막으로, 구양회를 일망타진하는 데 공을 세운 관원이 한 명 있으니 치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관 소소는 앞으로 나오시게.”
구석에서 구경하던 소소는 자신이 지목당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저요?”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무가 은근슬쩍 딸의 등을 밀었다.
“어서 가봐.”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쭈뼛쭈뼛 걸어가는 소소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할아버지.”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 장양은 소소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 순관의 정의로운 행동은 타인의 귀감이 된바, 포상으로 은자 세 냥을 지급한다.”
그 순간 관중들의 환호성이 동시에 울려 펴졌다.
“와아아아아!”
“우리 꼬마장수, 역시 최고야!”
“축하한다, 소소야! 대단한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어리둥절한 소소는 큰 눈망울을 연신 깜빡였다. 잠시 후 귓가로 아버지의 전음이 들려왔다.
- 고맙다고 해야지?
정신을 차린 소소는 양손을 모으고 상체를 꾸벅 숙였다.
“고, 고맙습니다~”
공개재판이 끝나고 모두가 발길을 돌렸다.
행정병에게 은자를 건네받은 소소는 입가가 찢어지고 있었다.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히히히.”
랑아대의 막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무려 은자 세 냥이라니. 지금 시세로 일 년 녹봉이 넘는 가치였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벌컥-!
막사의 문을 힘차게 열자 일광 삼촌 혼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삼촌, 뭐해요? 히히.”
일광의 한쪽 눈이 슬며시 떠졌다.
“명상 중.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신의 개인상자 앞에 쪼그려 앉은 소소는 은자를 넣어놨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열어보았다.
상자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하는 기척이 일광에게까지 느껴졌다.
“삼촌한테 사백 냥을 주면 되죠?”
일광이 빌려준 은자 두 냥을 개당 엽전 이백 냥에 갚기로 한 것을 말한 것이다. 세 배 이상이 올랐으니 그 이득은 고스란히 소소의 몫이었다.
“은자 값이 너무 올라서 배는 아프지만, 사내의 말은 천금과도 같지. 원금만 돌려줘.”
“알았어요, 삼촌. 환전하면 줄게요.”
“아무 때나 줘도 되는데, 너 은자 지금 다 환전해놔야 돼. 오늘 가서 당장 바꿔.”
“왜요?”
“너무 많이 올랐어. 곧 폭락할 거야.”
“안돼요. 계속 오른다고 보관하고 있으래요.”
일광이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누가? 누가 우리 조카한테 사기를 치고 있어?”
“우리 스승님이 그랬어요.”
스승이라는 말에 일광의 눈이 금세 차분해졌다.
그는 옆으로 누워 팔베개를 하고는 조카를 응시했다.
“아무도 믿지 마. 삼촌 말이 더 정확해.”
“거짓말하지 마요.”
일광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삼촌보다 스승을 더 믿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휴. 마음대로 해. 나중에 울면서 삼촌 원망해도 소용없어.”
일광의 말은 이미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은자를 넣었다 뺐다 만져보고 정신이 없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기까지.
“……이제 일곱 냥.”
무심히 지켜보던 일광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 일곱 냥? 언제 그렇게 많이 모았어?”
“할아버지한테 받았어요. 삼촌, 나보다 돈 많아요?”
두 손 모아서 들고 있는 은자의 개수는 일곱 개가 분명했다.
일광은 가격이 한참 오르기 시작할 때 지폐로 환전했던 터라, 현재 가치로 재산이 소소보다 적은 상태였다.
“허어…… 나보다도 부자네. 어디다 쓰려고 그렇게 모으고 있어?”
소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일광의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비밀이라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집을 살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랑 스승님이랑 셋이 같이 살 거예요.”
그 순간 일광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배꼽을 잡았다.
“푸하핫! 그건 상상도 못 했다.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되겠는데?”
“정말 조금만 더 모으면 돼요?”
“응. 부자 되니 기분이 좋은가 보네. 입이 찢어지겠어.”
“마음이 설레요~ 헤헤.”
그때 일광이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물었다.
“삼촌 버리고 나가는 게 그렇게 좋아? 집을 좀 큰 걸로 사서 삼촌도 같이 살게 해줘.”
소소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일광도 궁금했기에 가만히 기다려보았다.
그러길 잠시 후.
“알았어요. 그럼 삼촌 돈을 나한테 전부 줘요. 히히.”
비록 농담이었을지라도 일광은 내심 기뻐했다.
“허락해줘서 고마워. 근데 초희 선생님은 어떡해? 선생님 혼자서 외롭잖아.”
“음~ 그럼 초희 선생님도 데려와서 다섯이 같이 살래요?”
일광의 얼굴이 함박웃음을 그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는 양손으로 소소의 옆구리를 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하하하! 그럴까? 요 귀여운 녀석!”
둘은 상상만 해도 좋은지 깔깔대고 웃었다. 막사 안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때 막사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가 그리들 신났어?”
아버지를 발견한 소소가 삼촌에게 재빨리 눈짓을 보냈다. 그 의미를 모를 일광이 아니었다.
“흠흠! 아무것도 아냐. 조카랑 잠시 놀아주고 있었어.”
소무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분명 들어올 때 까르륵 웃고 있던 딸의 모습을 보았었다. 일광의 손을 붙잡고서 말이다. 지금은 언제 웃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 왔어요?”
소무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 녀석, 삼촌하고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어?”
고개를 들어 올린 소소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빡였다.
“네에? 뭐가요?”
이러한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시치미를 떼고 있는 얼굴이었다.
소무가 심문을 시작할 찰나 일광이 화제를 돌렸다.
“근데 대장이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밖에 소소 친구들이 찾아왔어. 하도 데려다 달라고 해서.”
소무는 아이들의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민간인들은 안내인이 있어야만 군영에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문밖에서 아이들의 목소리 들려왔다.
“소소야~ 놀자~”
“언니, 나도 다롱이 보여줘~”
설화원 친구들의 목소리였다. 소소는 간식 몇 개를 챙기고 후다닥 나갔다.
“아버지, 나 놀고 올게요!”
“응. 군영에서 소란피우지 말고, 나가서 놀아.”
막사 안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소무는 사복으로 갈아입으며 말했다.
“너는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야겠어.”
“어딜?”
“화산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모여들고 있어. 시간되면 한번 들러 달라더군. 이참에 너도 얼굴 좀 익혀두라고.”
화산파가 멸문을 당한 이후 텅 비어있던 산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료했던 일광에겐 흥미로운 일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고수들도 와? 그곳에 모여서 뭘 하고 있대?”
일광이 상의를 탈의하자 울퉁불퉁한 굴곡의 다부진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저히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 위협적인 신체였다.
“가보면 알아.”
그때 막사 안으로 두 명의 대원이 들어왔다.
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현정과 청해였다. 공교롭게도 화산파 출신의 대원들이었다.
“형님들, 어디들 가세요?”
“사복 차림으로…….”
소무는 마침 잘되었다는 듯 그들에게도 말했다.
“너희들도 따라와. 아는 얼굴들이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