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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이제는 내 뜻대로 살겠소 (2) (164/250)


164화 이제는 내 뜻대로 살겠소 (2)
2022.07.14.


적막만이 가득했던 화산에 모처럼 열기가 피어올랐다. 화산파의 대연무장에 무림인들이 가득 들어차 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림맹의 원로들은 몹시 진중했다.

원형 석탁에 마주 앉은 그들은 열두 명이었으며, 만인을 압도하는 기세를 풍겨내고 있었다.

무당파의 무진 장로가 주눅이 들어 있는 젊은 도사에게 미소를 보냈다.

“이곳을 선뜻 수련 장소로 내어주시어 고맙구려.”

“아닙니다, 장로님. 나중에 저희 문파의 재건을 도와주신다니, 얼마든지 협조하겠습니다.”

화산파의 생존자 중 배분이 가장 높은 인물이었다. 무림맹에 파견되어 있다가 화를 면한 매화검수 중 한 명으로, 임시 장문직을 맡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무진 장로가 좌중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성과가 어떤 것 같습니까?”

“초식에 조금의 변형을 주었을 뿐인데, 확실히 변화가 무쌍하고 예측이 어려워졌습니다. 검성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무림맹의 원로들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오대세가의 대표인 모용후가 나직이 말했다.

“이미 강호를 떠난 인물입니다. 본인이 더는 검성이라 부르지 말라는데, 관군의 장수로 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 앞에서 과거사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지요. 이제는 귀검무적(鬼劍無敵)이라는 별호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곤륜파의 장문인이 헛기침을 하며 화두를 돌렸다.

“흠흠! 여하간 이곳에서 양성되는 정예들은 신마교에 맞서 정파무림을 지탱해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다음 세대에도 무림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군요.”

청성파의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우리의 세력과 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요. 이미 힘의 균형이 무너졌으니, 전쟁이 끝나면 관에서 무림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앞에서 대놓고 마공을 수련하고 있는데,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요.”

마공을 익히는 군순포의 포수들을 얘기한 것이었다.

그들 또한 군부에 소속되어 있으니, 알면서도 모른 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오면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소림의 정명 방장을 향해 집중되었다.

무림맹주는 삼 년에 한 번씩 투표로 선출되는데, 정명 방장은 세 번이나 연임을 이어가고 있을 정도로 신망이 높은 인물이었다.

“아미타불. 소승은 한 가지 방법밖에는 떠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군사께서 설명해 주시지요.”

정명 방장이 맞은편의 여인을 향해 합장했다.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수영이였다.

“현재의 정세는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정파에서 지존이 탄생하지 않는다면, 무림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정마대전이 끝나고 힘이 쇠약해진 무림맹은 관군의 눈치나 보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다시 과거의 위세를 되찾기 위해선 무림을 이끌어줄 지존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청성파의 장문인이 침묵을 깨며 물었다.

“군사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니, 무슨 방도가 있다는 말이겠지요?”

“물론 있습니다.”

“허허……. 어서 말씀해 보시지요.”

그녀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들이켰다. 그러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정파에서 가장 자질이 뛰어난 기재 한 명을 가려 뽑아, 각파의 최고 절기를 전수하는 것입니다. 이후 영약으로 내공을 증진시키고, 무림맹의 최고수들이 스승이 되어 지도해준다면, 능히 천하를 압도할 무인이 탄생할 것입니다.”

청성파의 장문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문의 상승무공을 그냥 내놓으라는 말입니까?”

소림의 정명 방장이 합장하며 대신 답했다.

“아미타불. 그것을 어찌 강제할 수 있겠습니까. 참여를 원하는 문파에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명맥을 이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 소림사는 무엇을 내놓을 것입니까?”

“어느 아이가 선출되든 우리 소림에서는 달마역근경을 전수하겠습니다.”

모두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이 무엇인가. 달마조사가 남긴 무공비서로, 소림에서도 장문인만이 익힐 수 있는 절세신공이 아니던가.

“지, 지금 달마역근경이라고 하셨습니까?”

“소승이 어찌 부처님의 앞에서 감히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뜻을 함께할 문파는 말씀해주시지요.”

소림의 방장이 부처의 이름까지 거론했다는 것은, 절대로 번복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모두의 얼굴에 고민이 가득했다.

각자의 사문마다 주목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문에서 최고의 기재를 배출한다면, 천하제일고수를 보유한 문파가 되어 무한한 명예를 거머쥐게 될 터.

그러나 소림에서 역근경을 언급한 이상, 다른 문파들도 그에 걸맞은 신공을 내놓아야만 했다.

점창파의 장문인이 상기된 얼굴로 제갈수영을 바라보았다.

“취지는 이해하였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삼 년 후, 최고의 기재를 가릴 비무대회를 열고자 합니다. 자격에 제한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신공을 동시에 익히기 위해선 몸속에 탁기가 없어야 하니, 나이가 열다섯을 넘어선 안 됩니다.”

모용후가 친분이 있는 무진 장로를 바라보았다. 무당제일검의 칭호를 거머쥔 그는 현 무당파의 실세였다.

- 무당파는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모용후의 전음에 무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 소림에 금강지체의 근골을 타고난 아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맹주가 그 아이를 믿고 저러는 모양입니다.

- 무당에도 아홉 살의 나이에 태극십팔검을 완성한 천재적인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무진의 눈빛에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거기까지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다.

- 가주님의 넷째 아들에 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각종 영약으로 단련하여 열 살에 일 갑자가 넘는 내공을 보유하고 있다지요.

- 언제 그것을…….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음 세대를 대비하여 비밀병기 하나쯤은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정명 방장의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때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않던 개방의 방주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이런 일에 우리 개방이 빠질 수는 없지 않겠소? 장로들을 설득시켜야겠지만, 우리 개방에서는 우승자에게 항룡십팔장을 전수하겠소. 단, 다른 문파들도 최고의 절기를 내놓는 조건이오.”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은 개방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다. 역대 개방의 방주에게만 극비로 전해지는 일인전승 무공이었다.

개방이 이것을 걸었다는 것은 자신의 사문에서 최고의 기재가 나올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앞서 달마역근경을 거론했던 소림의 정명 방장은 조금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우리 무당에서는 태극혜검을 전수하는 조건으로 참여할까 하오. 단,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니, 오늘 참석하지 못한 장문인과 상의한 이후 통보를 드리겠소.”

무당파의 창시자인 장삼봉. 그가 창안한 이 검법은 태극의 묘리를 담고 있으며, 모든 오의를 깨닫는다면 대적할 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무림에서 무당제일검 무진 장로만이 이 검법을 익히고 있으며, 그 또한 아직 대성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하나둘씩 거론되는 절세신공. 이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각파의 수장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두 눈은 탐욕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곤륜파의 신공은 오래전 실전되었소. 대신 참가 자격을 받을 수 있다면, 문파의 하나뿐인 보물인 불문설삼을 걸겠소.”

곤륜산의 최정상에서 오백 년에 한 뿌리만 자라는 영약이었다. 복용하게 되면 엄청난 내공을 얻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정명 방장은 합장을 하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소승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앞서 참여 의사를 전달했던 각파의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자신의 사문이 내세운 제자가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마침 선출될 제자에게 먹일 영약도 필요했던 터였다.

“동의합니다.”

“찬성이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저마다 문파의 자존심을 내걸었다.

물론 앞서서 멸문지화를 당한 화산파와 종남파의 젊은 장문인들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아미파의 장문인 금정사태가 남아있었다. 그녀를 향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태께서는 어찌하여 말씀이 없으신 것이오?”

“아미파의 불광일선지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불광일선지(佛光一線指). 정파를 통틀어 최고의 위력을 자랑하는 지법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민은 다른 것에 있었다.

“좀 더 확실히 했으면 좋겠군요. 모든 문파가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서약서를 먼저 작성해야 합니다.”

금정사태는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아미파에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어린 여승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열한 살의 나이에 일대제자들의 실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아이였다.

군사 제갈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제갈세가의 명예를 걸고 보증하겠습니다. 만약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문파가 있다면, 무림맹에서 제외하는 것은 물론 무림공적으로 지정될 것입니다.”

모두가 군사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기에 더는 진위성에 의구심을 품는 자는 없었다.

이곳에 참여한 무림맹의 원로들은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후.

“손님이 도착한 것 같군요.”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연무장의 측면에 일단의 인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무와 일광. 그리고 화산파 출신의 대원인 현정과 청해였다.

“늦었습니다, 충무교위 소무입니다.”

대다수가 안면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소무는 첫 대면인 것처럼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무림맹의 원로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마주 포권을 건넸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군사 제갈수영이 앞장서서 그들을 안내했다.

화산파의 양허각(陽賓閣).

손님을 모시는 이곳에는 미리 다과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이동하는 내내 어색함이 흘렀다.

특히 함께 따라온 현정과 청해는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관군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화산파의 이대제자와 삼대제자가 아니었던가. 눈도 마주치지 못할 무림의 전설적인 존재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둘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 현정 사형, 이분들이 무림맹의 원로들인가 봐요. 저분이 무당제일검이겠죠?

- 그런 것 같아. 정말 놀라워……. 하나같이 경지를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이라니.

- 근데 일광 형도 참 대단해요. 저분들과 같이 걸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잖아요?

- 그냥 저 형님은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

- 하하. 제 생각도 그래요.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 뭐가……?

- 다들 우리 대장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아요?

자세히 살펴보니 무엇인가가 부자연스러웠다. 하나같이 자부심이 가득할 거대 문파의 수장들이 아닌가. 그러나 대부분은 얼굴이 경직되어있었다. 마치 긴장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우리 대장님의 명성이 이 정도였나? 근데 저분은…….

현정은 전음을 보내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행렬의 끄트머리에서 낯익은 자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인물들에 비교해 워낙 존재감이 없었기에 지금에서야 눈치챈 것이다.

그때 청해가 놀란 눈으로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 명운 사형 아니에요?

화산파의 일대제자로 매화검수들 중에서도 실력이 출중했던 인물이었다.

- 맞아. 그런데 왜 우리를 보고도 모른 체하는 거지?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단지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가슴 어딘가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소무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같이 들어가도 돼. 자격이 있으니.”

랑아대원 중에서도 무공이 가장 뛰어난 현정과 청해는 백부장의 직급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장문인들과 함께 자리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저, 저희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그들을 바라보던 소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오랜만이겠군. 감회가 새로울 테니, 좀 둘러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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