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민공(民供). 백성을 받드는 자 (2) (167/250)


167화 민공(民供). 백성을 받드는 자 (2)
2022.07.17.


소무는 딸아이를 안고 장양의 집무실로 향했다. 병사들이 길을 터주며 그를 목적지까지 인도했다.

“수고들 했어.”

목적지에 도착한 소무는 병사들을 돌려보냈다.

소박한 장양의 집무실 앞. 그곳엔 이미 다른 장수들이 모여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장군!”

“백성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어서 하늘의 뜻을 받아주십시오!”

“장군!!!”

소무가 접근하자 다른 장수들이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장양이 가장 총애하는 무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양소 부장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장군께서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들어가야겠지.”

부장들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니 그를 설득시킬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와 대면을 해야 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소무는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안고 있던 딸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귀에다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소소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딸만 믿는다.”

소무가 딸의 등을 ‘툭’ 하고 두들겼다. 그러자 소소가 해맑은 웃음으로 달려나갔다.

“할아버지!”

자연스럽게 집무실로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에는 조금의 부자연스러움도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손녀의 모습이었다.

소무는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손녀 같은 아이를 쫓아내지는 않겠지.”

세상에서 장양과 가장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소소일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때 설풍 부장이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와 물었다.

“……무어라 속삭인 겁니까?”

“그저 할아버지가 좀 우울하니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네.”

“그게…… 효과가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만들고 싶은 세상이 바로 아이들의 미소 안에 있네. 소소가 웃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마음이 동요할 것이네. 계속해서 그것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지.”

말을 마친 소무는 청각을 집중하여 집무실 안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소소와 장양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마 대장님이 들여보낸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시겠지.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했는지도.”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글쎄.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중 누구도 장군을 설전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네. 지금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집무실을 둘러싼 부장들은 침묵을 지켰다.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응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일다경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끼이익-!

소소가 문틈으로 참새 같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들어오래요!”

그 순간 부장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소무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집무실로 들어서며 소무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또한 자신이 이루려는 것을 위해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소소가 먼저 달려가 장양의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걸터앉았다. 여느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우선 앉으시게.”

탁상을 끼고 소무가 맞은편에 앉았다.

생각보다 장양의 표정이 무겁지는 않았다. 소소 덕분이었다.

“장군께서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계시는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옳은 결정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장양은 인자한 얼굴로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미 황제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불쌍한 백성들이네. 또다시 누군가가 천자를 참칭하여 폭정을 벌인다면, 백성들은 다시 고초를 겪게 되겠지.”

“장군께서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은 소소도 알고 있습니다.”

소소가 방긋 웃으며 소리쳤다.

“네, 저도 알아요!”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장양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중요한 대화였기에 평상시 같았으면 소무가 딸을 밖으로 내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소소 덕분에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고 있었기에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우리 소소도 알고 있다니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내가 질서와 안정을 유지한다고 한들, 그것은 아주 잠시의 평화일 뿐이네. 다음을 이을 황제가 폭정을 하지 않는다고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는가. 고통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네.”

“그럼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황제라는 존재가 없어져야 하겠지. 고작 말 한마디로도 수많은 백성을 도탄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한 존재 말일세.”

그 순간 소무의 얼굴이 상기되며 진중함을 띄었다.

“그럼 바꿔주십시오. 다시는 무능한 자가 황제가 될 수 없도록. 아니, 황제가 없어도 백성들이 평화롭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어떻게 말인가?”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 일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전란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섬서의 백성들, 그들이 지금은 웃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황제가 아닙니다. 단지 이 가여운 백성들을 따듯하게 안아줄 아버지가 필요한 것뿐입니다.”

장양은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소무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리고 딸에게도 눈짓을 보내며 침묵을 지시했다.

그렇게 일각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나는 결단코 황제가 되지는 않을 것일세. 하지만…….”

“……?”

“자네가 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중심을 잡아줄 누군가는 필요하겠지……. 나라도 괜찮다면 말일세.”

그 순간 진중했던 소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보는 소소도 가슴이 훈훈해졌다.

“다들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나오시래요.”

“허허헛.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다 듣고 있었구나.”

“헤헤. 저도 다 알아요.”

장양은 소소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소무가 그를 옆에서 보좌했다.

그리고 집무실의 문을 한 발자국 남겨두고 그들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헌데 말일세. 새로운 나라의 이름은 무엇으로 하는 게 좋겠는가.”

“국호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장군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잠시 고민하던 장양의 시야에 싱글벙글한 소소의 미소가 들어왔다.

“음. 그럼 웃을 소(笑)로 지어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함께 바라는 세상이지 않은가.”

소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소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럼 소소의 나라예요?”

“물론이지. 네가 바로 나라의 주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말이지.”

그 순간 집무실의 문이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문을 건드린 사람이 없었다. 상황을 짐작한 소무는 천정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 뜻이 같다니 고맙군. 자네가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겠지.

모습을 감추고 있는 장양의 호위무사 살왕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답변이 들려왔다.

- 지금부터 시작일 뿐입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장양을 따라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기립하고 있던 부장들이 손뼉을 부딪치며 환호했다.

“결단을 내리셨군요, 장군!”

“반드시 성군이 되실 겁니다!”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인 만큼 모두의 가슴이 뜨겁게 요동쳤다.

장양과 소무를 필두로 부장들이 힘찬 걸음으로 뒤따랐다. 한데 모여 있던 병사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목적지에 당도할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백성들이…….”

장양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주작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인파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얼추 보아도 십만은 넘을 듯했다.

그 순간 장양을 발견한 백성들이 동시에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쩌렁쩌렁 울리는 백성들의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이 묻어있었다. 심지어 기쁨을 이기지 못해 졸도하는 자가 나왔을 정도였다. 그자는 곧 의무병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나갔다.

장양이 단상 위에 올라서자 백성들이 머리를 조아려 엎드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장양이 안고 있던 소소를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올려 그들에게 그만두라고 손짓했다.

백성들은 누군가에게 지배받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천자로 받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백성들의 그러한 모습이 가여웠는지, 장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서히 환호가 사그라지고, 이내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장양이 단상에서 무릎을 꿇었다.

털썩-!

돌발상황에 몇몇 부장들이 달려와 그를 만류했다.

“어, 어서 일어서십시오!”

“천자는 나라의 자존심입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황제의 존재 자체는 국격 그 자체였다. 위엄과 권위가 가득해야 하며, 어느 순간에도 무릎을 꿇으면 안 된다. 그러나 장양의 행동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천자라 했더냐. 황제도 백성도 모두 다 똑같은 하늘의 자식이다. 백성이 없이 어찌 황제가 있을 수 있고, 나라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이더냐. 그런데 어찌 그들에게 절하는 것을 부끄럽다 여긴단 말이냐!”

말을 마친 장양은 상체를 납작 엎드려 머리를 바닥에 맞대었다. 그 순간 백성들이 혼란에 빠지며 몸을 더욱 낮추었다. 그런 와중에도 곳곳이 웅성대며 술렁였다.

“이,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어, 어찌 이럴 수가…….”

모두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장양이 무릎을 꿇었는데 그 부하들이 어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의 우측 뒤에서 소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였다. 그가 머리를 바닥에 맞대는 순간 모든 장수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털썩-! 털썩-!

백성들과 군신들이 마주 절을 하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이상한 느낌이 든 소무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옆에 딸아이가 바짝 붙어서 다람쥐처럼 쪼그리고 엎드려 있었다.

그때 소소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소무가 작은 목소리로 딸에게 속삭였다.

“쉿. 장난치면 안 돼.”

“알았어요, 아버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숙이는 아이의 모습에, 소무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기특한 녀석.’

그때 장양이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단상에 우뚝 선 그는 격정에 휩싸여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 순간 장양의 음성이 주작로를 향해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 장양은 천하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여러분들을 다스리지도 않을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백성들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떠올랐다. 충격을 받은 듯, 대부분이 입을 떡하니 벌리며 당황했다.

장양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천자가 아닌 민공(民供)이 될 것이오!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태평하게 하고, 백성을 크게 할 것이고! 백성을 편안히 할 것이고! 백성을 성스럽게 할 것이오! 그리하여 오래도록 이 땅의 모두가 웃고 춤출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장안성 전체가 전율에 휩싸였다.

백성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들고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16582632762811.jpg/20220717160227906575_EC868CEBACB4ECA084EAB8B0+ED919CECA780+2ECB0A828EC98A4E.png al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