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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민공(民供). 백성을 받드는 자 (3) (168/250)


168화 민공(民供). 백성을 받드는 자 (3)
2022.07.18.


소(笑)나라를 개국한 장양은 그 누구도 자신에게 황제라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민공(民供)이란 새 칭호를 사용하도록 했다.

그는 즉위식조차 거행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나라가 개국되었지만, 당장 눈에 띄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단지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

지금 장양은 이십여 명의 신하들과 함께 궁성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제 황실을 꾸리려면 궁성의 민간인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지 않겠는지요? 환관과 궁녀들을 모집해야 하며, 그들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고, 국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은 전각이 필요할 것입니다.”

앞장서서 걷던 장양은 방금 입을 연 누군가를 꾸짖었다.

“누구를 위한 환관들인가? 누구를 위한 궁녀들인가? 자네 말대로라면 국격을 위해 진시황처럼 아방궁이라도 지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한 권위는 군신들의 폭정과 부패를 부르게 될 것이며, 민초의 고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양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 소나라에는 공익을 위한 기관만이 존재할 뿐, 황실은 영원히 없을 것이네. 군신들에게 특혜를 주지 않는다면, 욕심이 많은 자는 나랏일을 하지 않으려 들겠지. 진심으로 백성들을 위하는 자들만이 이 길을 걷게 될 것이네. 우리가 함께 고심하여 그리되도록 만들어야 하네.”

모두가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였다. 그의 심경을 알아차린 양연정이 내용을 일단락지었다.

“앞으로도 궁성은 출입에 제한이 없을 것이며, 지금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것입니다.”

장양은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계속 이동했다. 우측에는 양연정이, 좌측에서는 소무가 보좌하고 있었다.

침묵이 흐르던 중 양연정이 질문을 건넸다.

“나라가 바뀌었으니, 조세 방식과 국법 등 많은 부분에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두신 부분이 있는지요?”

“물론일세. 하지만 어찌 내 생각이 모두 최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나보다 좋은 생각을 하는 자들이 어찌 없다고 하겠는가. 모든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여 가장 이상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네.”

그 순간 장양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의 눈앞에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웅장한 전각이 있었다.

곽철 부장이 다가와 설명해주었다.

“쌍후각이라 불리는 전각입니다. 황후가 휴식을 즐기기 위한 장소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비어있습니다.”

“이곳이면 적당하겠군.”

“무엇이 말입니까?”

“좌측의 전각은 민간 학자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주고, 우측은 문관들이 정책과 법률을 연구하는 장소로 사용해보면 어떻겠는가?”

“고견이십니다. 민간 학자들과 문관들이 서로 토론하고 견제해가며 정책을 개진한다면, 필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도 같네. 그럼 이 일은 곽철 부장이 추진해주면 좋겠군. 이곳에서 상정된 안건들은 닷새에 한 번씩 자민전(慈民殿)으로 이동하여 관료들이 함께 검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일세.”

“알겠습니다.”

군신들은 점차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백성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재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궁성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백성들은 고개를 숙여 보이거나 환호하며, 이들을 응원해 주었다.

장양의 발걸음은 군영이 있는 군사지역으로 향했다.

병사들의 훈련 상태가 제법이었다. 하나같이 날카롭고 기개가 서린 눈빛은 강군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길을 걷던 군신들이 갑작스러운 폭음에 동시에 움찔거렸다. 오직 소무를 제외하고 말이다.

콰앙-! 콰콰쾅-!!!

우측에 있는 작은 공터였다. 굉음과 함께 불빛이 번뜩였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그곳에선 십여 명의 병사들이 장창을 움켜쥐고 있었다.

“방금 그게 무엇인가?”

장양을 발견한 병사들이 양발을 붙이며 기립했다. 그들 중 장교가 재빨리 다가와 보고했다.

“이번에 개발하고 있는 신무기 화창(火槍)입니다.”

이것에 대해선 아는 이가 없었다. 그때 소무가 앞으로 나서서 하나를 건네받았다.

창끝에 작은 원형 통이 매달려 있었고, 그것에서 화약 냄새가 났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장양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창끝에 폭죽이 달려있고 끈을 잡아당기면 터지는 구조입니다. 이것 자체로는 아무런 위력이 없겠지만, 순간적으로 적들을 놀라게 한 후 일격을 내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끼리 맞붙는다면 도움이 되겠구만.”

“처음엔 효과를 보이겠지만, 적들이 익숙해지면 더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병보다는 기마부대가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음. 그리하는 것이 좋겠군. 계속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몇 번의 전투에서는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걸세. 헌데 이 무기는 누구의 작품인가?”

장교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제가…… 고안하였습니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두겸이라 합니다.”

장양은 흡족한 미소로 그를 향해 말했다.

“수고가 많았네. 자네 덕분에 우리 기마부대가 더욱 강해질 수 있게 되었군. 큰일을 했어.”

“고맙습니다.”

“허허. 고생들 하시게. 내 조만간 다시 이곳에 방문하겠네.”

군신들은 군영을 두루 살펴본 후 다시 궁성의 중심가로 향했다.

당분간은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연이어 정무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 * *

랑아대의 연무장.

일광은 뒷짐을 지고서 대원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자, 허리춤밖에 안 되는 여자아이가 소검(小劍)을 겨누고 있었다.

“덤벼요, 일광 삼촌.”

모처럼 연무장에 놀러 온 소소였다. 일광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겁도 없이 삼촌에게 도전하다니. 현정이나 청해부터 꺾고 오면 상대해줄게.”

“다른 삼촌들은 바쁘대요.”

잠시 고민하던 일광은 양손을 풀기 시작했다. 심심했던 차에 잘 걸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의 손아귀에서 우두둑 소리가 경쾌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럼 우리 조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한번 볼까? 삼촌한테 두들겨 맞고 아버지한테 이르기 없기다?”

“알았어요, 삼촌!”

말을 마친 소소는 다짜고짜 일광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는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허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소는 좌측으로 후다닥 내달리며 그의 측면을 노렸다.

일광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서 들어와. 삼촌 바쁘니까, 빨리 끝내줄게.”

일광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소가 그의 좌측 옆구리를 향해 쏜살같이 접근했다.

“얍!”

한 줄기 빛살이 전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일광은 이것이 허초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하는 것 대신 반격을 시도했다.

소소의 얼굴보다 큰 주먹이 곡선을 그려나갔다. 겉으로는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내력을 거의 싣지 않았기 때문에, 맞더라도 다칠 정도는 아니었다.

부아아악-!!!

일광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헛손질을 했다. 소소가 공격을 회수하고 다시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왜 안 들어와? 무섭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소는 다시 일광의 우측에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광이 반격을 개시할 무렵 초식을 회수하며 다급히 물러섰다.

굳이 부딪쳐보지 않아도 공격이 막힐 것을 직감한 것이다. 아버지와 스승님과의 대련에서 숱하게 경험해보았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힝. 삼촌은 못 이길 것 같아요.”

소소는 시무룩해졌다. 아무리 검성과 옥화신녀의 전승자라고 하여도 아직 화경을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일광이 낄낄대고 웃었다.

“이제 알았어? 그럼 이번에는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손으로만 상대해 줄게. 다시 와봐.”

“휴.”

정상적으로 상대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소소는 검을 어깨 위로 잡아당기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광이 다가오라고 손가락을 까닥하는 그 순간, 작은 체구에서 거센 기성이 뿜어져 나왔다.

“이얍!”

소소가 질주를 개시했다. 그 모습이 황소를 향해 돌진하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일광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갈 때쯤이었다.

날이 없는 소검이 소소의 손아귀를 벗어나 허공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연설화에게 배운 암기술을 응용한 비검술이었다. 회전하며 나아가는 소검은 순식간에 일광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것으론 어림도 없었다. 내력을 머금은 일광의 손이 소검을 단번에 쳐내었다. 이어서 그의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조카를 움켜쥐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눈부신 섬광과 함께 소소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번쩍-!

일순간 당황한 일광은 뒤통수가 싸늘해짐을 느꼈다. 어느새 소소가 머리 뒤에서 오른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광을 당황하게 만든 이 기술은 검성의 경신법인 섬전비영보(閃電飛影步)였다.

재빨리 상체를 반 바퀴 회전한 일광은 왼쪽 손목을 들어 다급히 막아냈다.

콰앙-!

손목으로 찌릿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작은 체구였지만, 거기에 실린 내공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공격이 차단당한 소소는 허공에서 반대편으로 재빨리 회전하며 돌려차기를 날렸다.

“얍!”

기막힌 연계기였지만, 일광이 대비하고 있는 이상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파앙-!

상체를 젖힌 일광의 콧등으로 작은 발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자세를 바로 할 무렵. 소소가 아래에서 필살의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무게의 중심을 잡고 회전하며 상단을 향해 내지르는 정권. 자신이 알려준 기술이었다.

파산권 일초식 일타격산(一打擊山).

거대한 일광의 오른손이 활짝 펼쳐지며 아이의 주먹을 감쌌다.

쩌어엉-!!!

연무장에 거대한 종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손아귀로 전해지는 묵직한 일격에 일광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윽.”

약간의 충격이 있었음에도, 일광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손을 붙잡힌 소소는 당황했다. 일광의 악력을 어찌 당하겠는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일광의 왼손이 아이의 이마를 향해 다가갔다. 그 순간 오므려졌던 검지가 활짝 펼쳐지며 딱밤을 날렸다.

따악-!

“아얏!”

소소는 이마를 움켜쥐고 울상을 지었다. 눈빛을 보니 억울한 모양이었다.

“흐잉. 나쁜 삼촌, 두 손 다 썼잖아요!”

“하하. 요 녀석아. 원래 싸움이란 이런 것이다. 믿으면 바보인 거야. 삼촌의 위대함을 알았으면, 앞으로 까불지 마.”

“흥! 내일 다시 올 거예요. 두고 봐요.”

소소는 자신의 검을 주워서 허리춤에 꽂고는, 이마를 움켜쥐고 연무장을 벗어났다.

“너무해…….”

생각할수록 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이길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소소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화경의 고수가 양손을 사용하게 만든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말이다.

‘스승님한테 다른 기술을 알려달라고 해야겠어.’

소소는 심술 가득한 얼굴로 막사로 향했다. 오늘 설화원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다른 일정이 있었다.

랑아대의 막사로 들어가서 산군의 목줄과 간식거리를 챙겼다. 소소의 인기척을 들었던 것일까? 막사 뒷마당에서 맹수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려, 다롱아! 언니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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