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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화 소소의 비밀 (1) (169/250)


169화 소소의 비밀 (1)
2022.07.19.


장안성 내 군영 입구.

세 명의 아이들이 거대한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소소 언니, 나 다롱이 태워줘.”

소소가 목줄을 살짝 잡아당기자 산군이 지면에 바짝 엎드렸다. 그러자 백아가 털을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것으로 보아 한두 번 타본 모양새가 아니었다.

“꽉 잡아, 백아야.”

“응, 언니.”

옆에는 백상이 원형 모양의 나무통을 들고 서 있었다.

“빨리 나가자. 오늘은 저 산까지 가보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소소는 목줄을 쥐고 앞장서서 걸었다. 성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할 수 없이 민가 근처를 지나쳐야만 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주민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적당히 둘러대며 잘 피해서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세상에. 저게 뭐야?”

“처음 보는 짐승인데? 거참 튼실하게도 생겼네.”

근처를 지나가던 주민 몇 명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접근해왔다.

맹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컸으며, 또한 온순해 보였다. 광대 모자에 병아리가 수놓아진 안장. 게다가 등에는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타고 있지 않은가. 주민들은 경계감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우리 다롱이예요. 귀엽죠?”

소소는 방긋 웃으며 빨리 빠져나가려고 했다. 성내에서는 다롱이랑 놀지 말라는 아버지의 언질 때문이었다. 문제는 오늘따라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소나라의 도읍이 장안성으로 선포된 이후, 인구 이동이 부쩍 늘어난 영향이었다.

“가만있어 봐. 내가 이런 짐승을 본 적이 있어.”

나이 든 상인이 산군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아는 체를 했다. 주변인들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그를 재촉했다.

“무슨 짐승인데요?”

“누런 털과 사슴같이 붉은 눈망울 보이지? 봉우리를 그리는 등의 굴곡까지. 이 녀석은 서역에서 온 낙타야.”

“안목이 대단하시네요! 저도 들어 봤어요. 하하, 낙타를 이곳에서 보다니.”

주변의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소소는 백상이 들고 있는 통에서 생닭 한 마리를 꺼내서 던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산군의 입이 쩍 벌어졌다.

터업-!

우걱-! 우걱-!

산군은 닭 한 마리를 두세 번 씹더니 바로 꿀꺽 삼켜버렸다.

그 순간 주민들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부릅떴다. 무시무시한 맹수의 이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낙타가 아니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흉악함 맹수임을.

“에구머니나!”

“호, 호랑이 아녀?”

“뭐, 뭐가 저리 커?”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리는 주민들. 그리고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새로 몰려드는 자들로 인해 난장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소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산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기 제가 줄을 잡고 있잖아요~”

산군은 지능이 높은 영물이었다. 소소의 요청이 아니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있는 주민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쪼그만 여자아이가 목줄 따위를 움켜쥐고 있다고 안전해 보일 리가 없었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이거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소란이 더욱 커지기 전에 주민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소소가 손가락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다롱아, 엎드려!”

산군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마당의 강아지처럼 납작 엎드렸다.

맹수가 사람의 말을 듣는 모습이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란스럽게 움직이던 주민들이 점차 이성을 되찾아가며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이 수백 명을 넘어섰다. 그 수는 지금도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백아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는지 산군의 등 위에서 미끄러지며 내려왔다.

그때 누군가가 손뼉을 부딪치며 말했다.

“극단에서 기르는 녀석인가 본데?”

간혹 공연하는 광대들이 훈련된 맹수를 부리는 일이 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는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몇몇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야,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어디 좀 더 보여줘 봐.”

멋쩍어진 소소는 쑥스럽다는 듯 왼손을 살며시 내밀었다. 그러고는 작은 손바닥을 슬며시 뒤집으며 말했다.

“다롱아, 누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호랑이가 배를 까뒤집고 누웠다. 소소가 올라타서 간지럼을 태우자 기분이 좋은 듯 그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동시에 폭소를 터트렸다.

“푸핫!”

“푸하하하!”

“하하핫!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더는 겁에 질려있는 자가 없었다. 지금의 상황이 재밌다는 듯 다른 볼거리를 원했다.

“하하! 다른 건 더 없니?”

산군의 배에서 내려온 소소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백상을 바라보았다.

“준비됐지?”

고개를 끄덕인 백상은 들고 있던 나무통에서 닭고기를 하나씩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누워있던 산군이 벌떡 일어서서는 펄쩍펄쩍 뛰며 받아먹기 시작했다.

거대한 맹수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런 긴장감이 주민들을 더욱 열광하게 했다.

산군의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뜨거운 갈채가 곳곳에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정말 최고였어!”

아이들은 멋쩍은지 어른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손가락을 튕기며 무엇인가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엽전 한 닢이었다. 훌륭한 광대들의 연극을 보았을 때 하는 관행이었다.

백상이 비어있는 나무통을 움직이며 그것을 재빨리 낚아챘다.

땡그랑-!

“고맙습니다.”

아이가 인사하기 무섭게 다시 동전 세 개가 날아올랐다. 그 순간 소소가 오른손을 재빨리 움직였다.

파파팟-!

동작을 멈춘 소소의 손가락 사이에는 엽전 세 개가 껴있었다.

“히히, 감사합니다~”

신기 같은 동작에 주민들이 다시 환호했다.

“우아아아아!!!”

“대단해 정말!!!”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사방에서 엽전들이 날아올랐다. 그것을 정신없이 낚아채는 소소와 백상은 신이 났다.

모여든 주민들의 수가 워낙 많았기에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하늘에서 엽전 비가 내리는 듯했다.

산군의 밥통에 엽전이 삼 할 정도 찰 때쯤에서야 주민들이 하나둘씩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에 또 오너라, 얘들아.”

“하하.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길로 돌아가는 주민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인적이 드문 성내의 구석으로 이동해서 머리를 맞대었다.

“소소야, 이거 봐봐. 엄청 많이 모였어.”

백상이 통을 내밀어 소소에게 보여주었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동전은 본 적이 없었다.

소소는 손을 집어넣어 동전을 반으로 갈랐다.

“우린 이제 부자야. 반은 너 가져.”

“아니야, 나는 됐어.”

“……왜?”

소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백상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너 돈 많이 모아야 한다며. 난 필요 없어.”

“정말 나 다 가져?”

“응. 얼마나 더 모아야 해?”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한 움큼의 동전을 꺼내서 백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미 충분할지도 몰라. 나 어디 좀 가봐야겠어. 내일 놀자.”

“그래, 알았어.”

“언니, 잘 가~”

소소는 다시 군영으로 돌아와서 랑아대의 막사 뒤에 산군을 묶어놓았다. 이후 그동안 모아놓은 은자를 챙겨 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장안성 인근의 양주산이었다. 스승님을 만나려는 것이었다.

경공까지 펼치며 달렸기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적지 부근에 도착하자 맑고 청량한 칠현금의 선율이 은은히 들려왔다. 그리고 소소가 십여 장 이내로 접근할 때쯤 갑자기 음이 멈추었다. 이어서 중후한 내공이 담긴 음성이 아이의 귓가로 들려왔다.

“가슴이 빨리 뛰는 것을 보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구나.”

후다닥 달려온 소소는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더니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 앞에 찰싹 붙어 눈빛을 빛냈다.

“스승님, 우리 은자 언제 바꾸러 가요?”

연설화는 어리둥절했다. 오늘 아침에도 찾아와서 같이 음을 연주하고 무공을 수련하고 갔던 아이였다. 다짜고짜 다시 찾아와서 은자를 환전하러 가자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별다른 일정도 없지 않은가.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뭐 지금 바꾸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같이 가볼까?”

소소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해맑게 웃었다.

“네, 좋아요!”

* * *

태웅방 장안 지부.

지금 이곳이 발칵 뒤집혔다.

벌컥-!

비밀문이 열리며 점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지, 지부장님, 그분이 오셨습니다.”

“누구?”

“저희 태웅방의 최대고객 말입니다. 딸과 함께 왔습니다.”

눈치 빠른 지부장은 점원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단번에 짐작했다.

지부장의 얼굴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떠올라 있었다. 얼마 전 그녀의 맞수로 생각했던 구양회가 공중분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구양회의 회주를 체포한 당사자는 그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소문난 랑아대의 대장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이 앞장서서 물밑작업을 했다는 내용까지 들었다.

태웅방의 입장에서는 최대의 고객임과 동시에, 극도로 조심해야 할 위험대상이었다.

“……그분이 갑자기 왜?”

“은자를 환전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일곱 냥입니다.”

은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이다. 은자 제조가 수년째 중단된 상황에서 연설화의 대량 매입으로 품귀현상이 발생하였으며, 기존 화폐의 불안정함까지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작 일곱 냥의 환전은 지부장이 신경 쓸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허투루 넘길 수가 없는 고객이었다.

“이곳으로 최대한 극진히 모셔…… 아니다, 내가 직접 마중해 올 테니 준비 좀 해놔.”

“예, 지부장님.”

말을 마친 지부장은 부리나케 사라졌다.

점원은 분주히 움직이며 준비를 했다. 먼저 금박이 장식된 수납장에서 최고급 차를 꺼내왔다. 그리고 비단길을 통해 서역에서 수입해온 진귀한 간식들까지,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은 모조리 꺼내놓았다.

준비가 마무리될 때쯤 지부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자라처럼 목을 빼고 허리 숙여 안내하는 지부장은 더욱 공손할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지부장의 뒤를 따라 무표정한 얼굴의 여인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사들은 긴장감에 표정이 굳어졌다. 천천히 내딛는 걸음걸이에는 마치 천하를 짓밟고 오는 듯한 도도함과 중후한 기개가 서려 있었다.

그때 여인의 손을 잡은 예쁘장한 아이가 긴장감을 해소해주었다.

“와~ 이건 뭐예요?”

소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태웅방 안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화려한 고가의 사치품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지부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해맑게 웃어 보였다.

“그건 상아라고 하는 거란다. 코끼리라는 동물의 어금니라고 하는 것이지. 갖고 싶으면 아저씨가 선물로 주마.”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몸통만 한 상아를 들고 가기도 웃기는 일이었다.

“괜찮아요, 아저씨.”

고개를 끄덕인 지부장은 재빨리 달려가 용이 음각된 금빛 의자를 빼내며 말했다.

“역시 좀 그렇지? 자 이쪽에 앉아라. 부인도 어서 앉으십시오.”

의자에 앉은 소소는 기분이 이상했다. 지난번 혼자 왔을 때와는 다르게, 대우가 완전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책상 위에 턱을 괴고 다리를 흔들거리던 소소는 탁상 위의 바구니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 안에는 종이로 감싸진 구슬 같은 게 한 움큼 들어있었다.

“이건 뭐예요?”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점원이 재빨리 다가와 설명해주었다.

“이건 서역에서 가져온 사탕(沙糖)이란다. 어서 먹어 보아라. 지금은 구할 수가 없는 귀한 거란다.”

무심히 하나를 집어 든 소소는 종이를 벗겨내고는, 붉은빛이 감도는 딱딱한 사탕을 입안에 물었다. 그 순간 아이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부릅떠졌다.

“맛있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달콤한 맛이었다. 중원에도 탕후루라는 사탕이 있지만, 서역의 것은 질이 달랐다.

“하하. 그렇지?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어라.”

고개를 끄덕인 소소는 손을 내뻗어 바구니의 사탕을 한 번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품속에 갈무리해버렸다.

“히히. 고맙습니다.”

지부장과 점원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아이가 어찌 알겠는가. 비단길이 막힌 지금, 서역의 사탕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싸다는 것을.

소소의 모습을 지켜보던 연설화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옅게 떠올랐다. 그 순간 지부장의 눈빛이 빛났다. 지금이 그녀와 대화를 나눌 가장 적절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은자를 환전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내가 아니고, 이 아이가 교환할 것입니다.”

우선 시세부터 확인해야 했다.

소소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낭을 열고는 그동안 모은 은자를 모두 꺼냈다. 그동안 얼마나 올랐을지 무척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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