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소소의 비밀 (2)
(170/250)
170화 소소의 비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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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소소의 비밀 (2)
2022.07.20.
소소가 은자 일곱 개를 탁상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얼마예요……?”
스승님의 말대로 한동안 시세를 신경 안 쓰고 지내왔다. 오랜만에 찾아온 태웅방이었기에 시세가 몹시 궁금했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말이다.
지부장이 고개를 돌려, 두 손을 모으고 기립해 있는 점원에게 물었다.
“오늘 시세가 얼마나 되지?”
“팔…….”
팔백열 냥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점원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돌연 자신의 머릿속으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 천팔백 냥. 차액은 다시 돌려드릴 테니, 이 금액으로 말해주시지요.
점원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뻥긋거렸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은자 하나의 시세는 팔십 냥에 불과했다. 지금도 열 배나 오른 상태였다. 한데 천팔백 냥이라니?
은자 일곱 개를 전부 교환해주자면 만 이천육백 냥을 지급해야 한다. 하급 관원들의 녹봉을 기준으로 십 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만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점원은 그녀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머뭇거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천팔백 냥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지부장이 점원을 슬쩍 노려봤다. 그의 눈빛은 마치 미쳤냐고 묻는 듯했다.
반대로 소소는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귀를 쫑긋거렸다.
“……천팔백 냥이라구요?”
“그렇단다. 운이 좋았구나, 꼬마야. 상한 가격은 정해져 있지만, 오늘 급하게 산다는 사람이 있어서 특별가격에 거래할 수 있게 되었구나.”
소소는 입이 귓가에 걸렸다. 이렇게나 많이 오를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그럼 다 해서 얼마를 주는 거예요?”
“만 이천육백 냥이란다.”
“그럼…… 만두가 육천삼백 개……. 탕후루가 일만…….”
소소는 손가락을 구부려가며 화폐의 가치를 가늠해보았다. 여하간 엄청난 금액임은 틀림이 없었다.
점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냈다.
“투자를 잘해서 부자가 되었구나. 엽전으로는 들 수가 없을 테니, 지폐로 교환해주마. 괜찮지?”
“네…….”
소소는 정신이 없어졌다. 잠시 후 점원이 아담하고 고급스러운 옥함(玉函)을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자, 어서 한번 세어보아라.”
두 손으로 작은 옥함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자 지폐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어떻게 세는 줄 방법을 몰랐기에 설화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가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소소는 자신의 방식대로 한 장씩 한 장씩 세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어찌 감히 불평할 수 있겠는가.
“만 천백. 만 천이백. 만 천삼백…… 만 천……. 어디까지 했죠?”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지부장이 방긋 웃으며, 재빨리 양손의 손가락을 접어서 보여주었다.
“하하. 만 천사백이로구나.”
“만 천사백. 만 천오백…….”
잠시 후 금액이 일치한 것을 확인한 소소는 정성스럽게 모아서 상자에 담았다.
“이상 없지?”
“네. 고맙습니다~”
소소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했기 때문이었다.
설화가 아이의 등을 살며시 감싸며 물었다.
“환전이 끝났으니 이제 가볼까?”
소소는 옥함을 왼쪽 옆구리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러고는 해맑게 웃으며 설화의 손을 잡고 태웅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헤헤. 안녕히 계세요.”
“그, 그래! 조심히 들어가거라!”
반각이 지난 뒤. 입구까지 마중 나갔던 지부장과 점원이 다시 특별실로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백팔십도 변해있었다. 안도와 함께 허탈함이 가득했다.
“뭐……. 은자 시세가 개당 천팔백 냥? 미쳤어?”
지부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점원을 다그쳤다. 태웅방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원이 억울하다는 듯 미간을 모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분이 시켰습니다!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머릿속이 진동하면서 음성이 들려오는데 마치…….”
그때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무사 중 한 명이 대신 말해주었다.
“전음입밀(傳音入密)이라는 기술입니다.”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풀어졌다. 상황을 눈치챈 것이다. 괜히 미안해졌는지 점원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랬단 말이지……. 잘했다. 그래도 나한테는 따로 얘기했어야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얘기합니까? 다시 돌려준다고 그렇게 얘기하라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 그래. 잘 판단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문제가 없을 거야.”
그때 점원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어딘가로 다가갔다. 조금 전에 연설화가 앉아있었던 의자였다.
“이걸 흘리고 갔네요.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가져다줄까요?”
눈꽃이 수놓아진 작은 전낭이었다. 지부장은 밝게 웃으며 손을 내뻗었다.
“경지에 이른 고수들은 모래알의 무게도 느낄 수 있다고 했어. 소지품을 흘리고도 눈치채지 못할 분이 아니다. 일부러 놓고 간 거야.”
전낭을 열어보던 지부장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내 눈이 정상인지 의심스러우니까, 네가 직접 한 번 봐봐.”
전낭을 건네받은 점원은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안에는 금자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금자는 제조된 숫자가 많지 않아 유통 자체가 거의 없는 화폐였다. 태웅방에서조차 거래가 많지 않을 정도로 귀했다.
“와……. 이 정도면 지금 시세로 삼만 냥은 될 것입니다. 엄청난 이득인데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지부장은 흥분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의 의중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알려고도 하지 마. 여하튼 이 기회에 전각을 확장하고, 그분과 딸만 이용할 수 있는 특별공간을 별도로 만들어놔야겠어. 복(福)은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법이지.”
* * *
쩌엉-!
일광이 내지르는 주먹에서 뿜어진 소리였다.
그는 랑아대의 연무장에서 모처럼 몸을 풀고 있었다. 거대한 주먹이 허공을 한 번씩 때릴 때마다 어김없이 종소리가 퍼져나갔다.
최근 파산권과 섬멸폭권을 적절히 섞어가며 자신만의 무예를 완성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일광 삼촌, 그건 뭐예요?”
뒤를 돌아보니 소소가 다가와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삼촌이 요즘에 새로 개발하고 있는 무공이야. 무섭지?”
“나중에 나도 알려줄 거예요?”
“소소 하는 거 봐서. 근데 왜 또 왔어? 삼촌이랑 대련하고 싶으면, 현정하고 청해부터 꺾고 오라니깐.”
비무 따위가 목적이 아니었다.
소소는 일광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옷깃을 잡아끌었다.
“삼촌,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요.”
“왜? 나 지금 바빠.”
역시나 순순히 따라올 일광이 아니었다.
소소는 몸을 비비 꼬며 부여잡은 삼촌의 옷깃을 살며시 흔들었다.
“잉. 빨리요…….”
일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조카가 애교를 부리다니? 지금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시진 안에 다시 와야 해. 근데 어딜 가려고?”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집을 살 거예요.”
그 순간 일광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핫. 집을 사게 나보고 같이 가달라고? 네가? 돈은 있어?”
소소는 손에 쥐고 있던 옥함을 슬쩍 열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일광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허……. 이 돈을 어떻게 모았어?”
“은자를 투자해서 벌었어요. 여기, 삼촌한테 빌린 사백 냥 돌려줄게요.”
소소가 은자 투자로 큰돈을 벌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려준 것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이 정도의 수익금이라니? 무엇인가 다른 수입원이 또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리둥절한 일광이 얼떨결에 돈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오백 냥인데?”
“백 냥을 더 넣었어요.”
“삼촌이 조카한테 용돈을 다 받네. 그럼 이건 도와주는 수고비로 한다.”
그렇게 일광과 소소는 손을 잡고 장안의 거리로 향했다.
“근데 지금 아버지가 네가 이러고 있는 거 알아?”
“아니요. 비밀이에요. 이건 소소의 선물이거든요.”
“세상에 누가 선물로 집을 사줘?”
소소가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제 스승님하고 셋이 같이 살 거예요. 근데 삼촌하고 초희 선생님도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
“아직 삼촌은 준비가 안 됐어. 그러니까 소소 먼저 살고 있어.”
일광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녀와의 관계가 말이다.
둘은 중개인을 통해 몇 군데의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장안은 최근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이지만, 이제 막 회복기에 접어든 상태이기에 아직 외곽에는 빈집이 많고 한산했다. 최고의 번영을 누리는 한중과 비교해도 인구 밀도가 삼 할 수준이었기에 집값이 저렴했다.
소소는 다섯 번째로 방문한 집 앞에서 흥미를 보였다. 담장을 끼고 마당이 있었으며, 깔끔한 부엌까지 딸려 있었다. 그리고 넓은 방이 하나 있었다.
“삼촌, 여기 어때요?”
“다 좋은데 방이 하나잖아.”
“여기서 아버지랑 스승님이랑 나랑 셋이 같이 잘 거예요.”
일광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소소의 등을 감싸며 밖으로 이끌었다.
“방은 최소한 두 개 이상 있어야 해.”
“왜요?”
“어른들끼리 자는데, 네가 거길 왜 껴?”
“나도 가운데 껴서 같이 잘 거예요.”
일광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숨을 내쉬며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얘기했다.
“원래 어른들하고 애들은 따로 자는 거야. 무조건 방은 두 개 이상이 있어야 해.”
소소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걸음을 돌렸다.
“치……. 알았어요.”
둘은 성내를 돌아다니며, 열 곳이 넘는 집을 구경했다.
해질 때가 되어서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계약을 완료했다. 그렇기에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소소 나가서 살면 이제 삼촌들이랑 못 보는 거야?”
“아니에요. 놀러 갈 거거든요. 히히.”
“요 녀석, 거짓말이 많이 늘었구나.”
“정말이에요. 삼촌들 보러 매일 매일 놀러 갈 거예요~”
“어디 두고 보겠어. 근데 네 아버지가 지금 막사에 있을까?”
“아마 지금 혼자 있을 거예요.”
다른 랑아대원들은 훈련이 한창이었으나, 소무는 들어와 있을 시간이었다.
앞장서서 막사에 도착한 소소가 문을 쓱 열어보았다.
끼익-!
예상대로 소무 홀로 앉아있었다. 서류를 잔뜩 챙겨온 것을 보니 이곳에서 남은 업무를 처리하려는 모양이었다.
“딸, 왔어?”
일광이 소소의 등을 슬쩍 밀어 넣으며 말했다.
“자 선물이나 받아, 대장. 나는 훈련 좀 더 하고 올게.”
소무는 일광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그를 더 의아하게 만든 것은 딸의 이상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앞에 마주 앉은 소소가 눈을 마주치며 분위기를 잡는 것이 아닌가.
“……왜?”
“아버지, 할 말이 있어요.”
“응? 무슨 말?”
소소는 품속에서 둘둘 말린 한지를 꺼내어 들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버지. 우리 이제 스승님하고 같이 살 수 있어요.”
“……뭐라고?”
자신이 지금 헛것을 들었는지 착각마저 들었다.
소무는 딸이 건넨 한지를 묵묵히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집을 계약한 문서였다. 그리고 딸의 이름이 집주인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집 샀어요, 아버지.”
“…….”
소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지 손가락으로 연신 바닥을 튕겨댔다.
소소가 은자 투자로 큰돈을 벌게 될 거란 언질을 연설화에게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땐 무심코 넘겼다. 결코,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기쁨과 걱정, 그리고 황당함까지. 온갖 감정이 그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잠시 가까이 와보거라.”
소소가 강아지처럼 기어서 조금씩 다가왔다.
그러자 소무가 양팔을 벌려 딸을 살며시 안아주었다. 동시에 부드럽게 등을 다독이며 물었다.
“우리 딸이 이제 다 컸구나.”
“히히히. 정말요?”
“그럼. 근데 언제부터…… 알고 있었니?”
“뭐가요?”
“아버지하고 스승님하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