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소소의 비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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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소소의 비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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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소소의 비밀 (3)
2022.07.21.
군신들의 정무회의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이나 개최되고 있었다. 나라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할 일이 태산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회의 장소로 향하는 소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후.”
어린 딸이 자신을 위해 집을 계약하고 왔다.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자신이나 산속에 사는 스승이나 둘 다 가난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사실 소무도 설화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른다. 물어본 적도 없었으며, 설화원에 기부했던 이력으로 보아 모아놓은 돈이 꽤 있나 보구나 하고 예상하는 정도였다.
어쨌거나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릿속이 정리되질 않았다.
‘우리 관계를 전부 알고 있었다니,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겠구나.’
딸이 스승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환영할 줄이야 어찌 예상했겠는가. 일단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을 무렵, 어느새 발걸음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소무 대장님, 오셨습니까?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이 앞장서서 안내했다.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회의 장소였지만, 내부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필요한 물품 외에는 조금의 사치도 없는 소박한 전각이었다.
이미 삼십여 명에 이르는 주요 무관과 문관들이 기립하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 있던 백약 부장이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그의 자리를 안내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가서 대기했다. 상석의 바로 왼쪽이었다.
반각이 더 지났을 시점에 마지막으로 장양이 입장했다. 그가 상석으로 이동하자 나머지 인원들이 중앙으로 이동하여 대열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장양과 관원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공손히 읍(揖)을 했다. 매번 하는 행동인 듯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그다음으로는 장양을 포함한 모두가 백성들이 있는 입구 방향으로 일배(一拜)를 했다.
모든 의례가 끝나자 장양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정무회의 때마다 귀찮은 일을 시켜서 미안하군.”
가장 앞자리에 있던 양연정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이제는 적응되어서 괜찮습니다.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지요.”
“허허.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네. 군신이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백성들을 섬기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바른 정무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이 의례를 국법으로 지정하고자 하네.”
그 순간 양연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묘안이십니다. 민공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례를 하기 싫어서라도 말이지요.”
장내의 분위기는 가벼운 농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관원들 중에서도 긴장하고 있는 자는 없었다.
“허허허.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네. 여하간 우리 함께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보세. 자, 어서 모두 자리에 앉으시게.”
군신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한 여인이 두루마리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과거시험에서 문과에 응시해 장원을 차지한 진유소였다. 그녀는 나라의 행정 개선을 위해 여러 제안을 하였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군사로 임명되어 있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민공.”
“음. 시작하시게.”
진유소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일들을 하나둘씩 거론하며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대다수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기에 장양의 얼굴에도 흡족함이 떠올랐다.
그녀의 보고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개국이 선포된 이후 타국의 난민들이 우리 소나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여 국경을 봉쇄하고 경계를 강화…….”
진유소는 보고를 멈추었다. 장양이 처음으로 왼손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난민의 정의가 무엇인가?”
“전쟁이나 재난을 당하여 곤경에 빠졌거나,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을 말합니다.”
물 흐르듯 나오듯 그녀의 답변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장양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헌데 그 가여운 자들을 어찌 막으려 한단 말인가? 신원이 확실한 자라면 그 누구라도 소나라의 출입에 제한이 없도록 하시게.”
진유소가 고개를 살며시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그리하여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것을 괜찮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녹을 먹으며 이 자리에 있는 것이네. 그들을 저버린다면 어찌 우리 소나라가 백성들을 위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직 구휼미와 재정은 충분합니다만, 몇 년 뒤에는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어두운 면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희망차고 밝은 부분을 함께 살펴보시게. 피난민을 모두 수용했던 한중의 지금 상황이 어떠한가?”
한중은 중원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어쩌면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룰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그리 만들어야 하네. 다음 안건을 보고하시게.”
고개를 끄덕인 진유소는 붉은빛이 감도는 두루마리를 양연정에게 건네주었다. 국방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양연정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머뭇거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건을 얘기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주적은 휘나라이지만, 이제는 포나라와 송나라와의 국경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효율적인 전술 운영을 위해 반드시 군정장관을 기용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생각해두신 사안이 있으실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맞네. 더는 미룰 이유가 없겠지. 하여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는 추밀원을 구성할 것이며, 우선 전술능력과 무력이 가장 뛰어난 자를 추밀사 겸 대장군으로 기용하고자 하네. 그럴 만한 인재가 우리 중에 누가 있겠는가?”
장양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해 고정되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었다.
군단의 제일 맹장으로 그동안 많은 전과를 올린 인물. 섬서의 모두가 알고 있는 영웅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
소무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조금 어색한지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양이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헛. 모두가 내 생각과 같은 것 같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반대하는 자가 없다면 우리 소나라의 군정장관으로 소무 장군을 임명하겠네.”
“제가 무슨 자격으로…….”
급작스러운 상황에 소무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장군이 된다고 좋아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권력의 욕심이 없는 그에겐 그저 더 많은 희생을 강요당하는 고달픈 위치였으니. 하지만 소무를 그냥 내버려 둘 자들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싸워왔던 무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장양을 거들기 시작했다.
“소무 대장님은 이미 전장에서 충분한 능력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대장님이 아니라면, 우리 중 누가 휘나라의 대장군인 완안후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자가 그 자리를 맡게 된다면 병사들이 먼저 들고 일어설 겁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머뭇거릴 수 없었다. 소무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족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모두가 환한 얼굴로 갈채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장군!”
“참으로 반가운 나라의 경사입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군정장관이면 종이품에 해당하는 무관 최고 품계에 해당한다. 이제는 다른 자들이 함부로 바라볼 수 없는 위치가 되었지만, 모두가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시기하는 자가 없었다.
장양이 껄껄 웃으며 좌중을 바라보았다.
“허허. 이거 염치없는 사람들이구만.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주고선 축하라니 말이야. 여하튼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애써주시게, 소무 장군.”
“알겠습니다.”
국정을 논하는 자리가 오늘처럼 분위기가 밝은 적이 없었다. 모두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활짝 피어올라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선 소무뿐만 아니라, 나라의 각종 대소사를 담당할 관원이 추가로 여럿 임명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전각 밖으로 나온 소무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궁성 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러길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가려왔다.
“축하해, 대장. 아니 이제는 장군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일광이었다. 그는 부럽다는 눈빛으로 소무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그냥 하던 대로 불러도 괜찮아. 그리고 이제부터 일광 너는 내 부관이야.”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일광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대장군의 부관이면 나도 출세한 거네?”
“뭐, 그런 셈이지. 원한다면 장군으로 추천해 줄게. 너 정도면 충분한 자격이 있어.”
“됐어, 머리 아픈 건 정말 질색이니까. 난 전술이고 나발이고 그냥 돌격해서 주먹으로 다 때려죽이는 게 체질에 맞아.”
일광의 말이 웃겼는지 소무의 얼굴에도 미소가 옅게 떠올랐다.
“하긴. 네가 지휘하면 전투의 승패를 떠나 부하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겠군.”
“당연하지. 근데 어디 가? 막사로 안 가고.”
“연매를 좀 만나보려고. 네가 조카가 집을 사는 걸 도와준 덕분에 말이지.”
일광은 한참을 킥킥대고 웃었다. 모처럼 소무가 당황한 모습을 보니 재밌는 모양이었다.
“나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어. 정말 대단한 딸을 두셨더라.”
“……그것보다, 일광 너는 어떻게 되어 가?”
“뭐가?”
“초희 선생 말이야. 다 알고 있어.”
갑자기 일광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시선을 회피했다.
“……난 잠시 가봐야 할 때가 있어. 이따가 보자고.”
한마디를 남긴 일광은 그대로 등을 돌려 쌩하고 멀어져갔다.
‘녀석, 덩치는 산만해서 쑥스러워하긴.’
요즘 둘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건 소무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희는 대인기피증이 있었으며, 일광은 연애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숙맥이었다. 그렇기에 둘 사이의 관계가 더딘 것은 당연했다.
두런두런 생각에 잠긴 소무는 양주산의 정상을 향해 경공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반각이 지난 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그녀의 거처 앞에서 호흡을 골랐다. 막상 그녀와 얘기를 나누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흠흠.”
인기척을 내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늦은 밤에 웬일이래. 안 들어오고 뭐해?”
심호흡 내쉰 소무는 진중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큰일 났어, 연매.”
“큰일이라니?”
연설화는 다소곳이 앉아 자수를 놓고 있었다.
“소소가 전부 알고 있었어. 우리 관계 말이야.”
“그랬단 말이야?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소무의 예상과는 달리 연설화는 당황하지 않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소소가 집을 사는 데 은밀히 도와주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어느 정도는 그녀가 기대하며 유도한 상황이었다.
“눈치채고 있었어? 이제 더는 미룰 수 없겠어. 이것 좀 봐봐.”
소무는 품속에서 한지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틀고 설화의 반응을 살펴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반응이 무덤덤했다.
“기특하네, 집도 사고. 근데 집주인이 소소네. 당장은 뭐 딸아이한테 얹혀살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안 될 것도 없잖아?”
“…….”
소무와 연설화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당당한 그녀의 반응에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소무였다. 그는 호흡을 고르고는 본론을 꺼내어 들었다.
“이제…… 나의 부인……, 그리고 소소의 엄마가 되어줄래?”
연설화는 팔짱을 끼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그게 다야?”
소무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대답을 잘해야 했다. 그녀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폭주할 게 분명했으니.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연매가 내 옆에 있었으면 해. 이제 자리를 잡고 평생 연매와 함께하고 싶어.”
연설화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단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직이 대답할 뿐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차 좀 내올게.”
벌컥-!
문밖을 나가자마자 그녀의 입가가 미소를 그렸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섬섬옥수가 입을 가렸다.
171화 소소의 비밀 (3)
202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