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셋을 세겠다 (1)
(172/250)
172화 셋을 세겠다 (1)
(172/250)
172화 셋을 세겠다 (1)
2022.07.22.
소무와 연설화의 혼례 일정이 닷새 뒤로 다가왔다. 둘 다 부담스러운 것이 싫었기에, 최대한 빨리 조촐하게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 소무는 장양과 담소를 나누며 그 일을 상의하는 중이었다.
“둘이서만 비밀리에 진행하겠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서운한 말인가.”
“다른 관원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군정장관인 소무가 공식적으로 혼사를 진행한다면 군부에 소란이 일 것이며, 상관의 경사로 부하 관원들이 부담을 가질 수도 있을 터.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연설화와 미리 상의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양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네는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게. 마음은 알지만 축하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자들도 많을 걸세.”
“저 하나의 개인사 때문에 나랏일이 조금이라도 멈추거나 지장이 있어선 안 됩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시는가. 자네가 있기에 이 나라의 모든 백성이 발을 뻗고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 또한 포함해서 말이지. 비록 자네를 위한 날이지만, 모두가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축제의 날이 될 수도 있을 걸세.”
“…….”
소무는 고민하는 듯 침묵을 지켰다. 그를 잠시 바라보던 장양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포기를 선언했다.
“할 수 없겠구만. 고집을 부리는 자네 모습이 마치 내 사형을 보는 것 같군.”
장양의 농담에 무표정했던 소무가 피식 웃었다.
“죄송합니다. 그것보다, 그분의 전령이 이곳에 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얘기하려던 참이었네. 좋은 소식일세. 악비 사형이 언제든 우리에게 힘을 보태주기로 약조하였네.”
유광세의 군단을 흡수한 악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큰 규모의 의용군이 되어있었다. 그가 장양에게 손을 들어준다고 한 것은 굉장한 지원군을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악비의 군단은 현재 송나라의 호북성에 속한 번성에 주둔 중이었다.
“반가운 일입니다. 본국으로 망명을 오는 것인지요?”
장양은 고개를 한 번 내저으며 전술지도를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번성에 계속 머무르며 휘나라를 견제하겠다고 했네. 공식적으로 의용군의 형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계획일세.”
“정규군이 아닌 그들이 성을 차지하고 있으니, 송나라 황실에서 좋아할 리가 없을 텐데요.”
의용군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반란군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실은 그들의 검이 거꾸로 향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할 터였다.
“하지만 버릴 수도 없겠지. 그들이 번성을 비운다면 방어 전선에 거대한 공백이 생길 테니 말일세.”
“오히려 지원을 보내줘야 할 판국이겠군요.”
“자네 말이 맞네. 하여 그들은 우리와 송나라의 양측 지원을 받으며, 최전방에서 위태로운 곳을 지원할 것이네.”
“옳은 판단입니다. 관문과 수로만 지켜도 전체를 방어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송나라는 많은 곳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소강상태가 끝나면 그들이 먼저 휘나라에 공격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악비 장군이 고생하겠군요.”
“원래 그런 인물일세. 언제나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하려 하지. 한세충 장군에 대한 소식은 없던가?”
“그는 양양성에 주둔한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진회와 불화가 심해 황실과 소통이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장양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 간신이 또다시 송나라의 황실을 장악했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지 않은가.”
“……계속 지켜봐야 하는지요?”
진회가 송나라의 전대 황제를 가지고 놀던 모습을 보았던 소무였다. 그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피를 봐서 해결될 문제라면 이미 한세충이 그리했을 걸세. 하지만 그다음은 무슨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네. 기반이 약해진 송나라는 황실이 무너지는 즉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붕괴될 것이네. 그리되면 민초의 고통만 더해지겠지. 분통하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당장은…… 눈앞의 강적을 상대하는 것에만 전념해야겠지요.”
소무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비우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장양도 지그시 전술지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잠시 후 소무가 정적을 깨고 나직이 말했다.
“잠시 뒤 추밀원에서 군사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고생이 많네. 휘나라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데 우리가 더 바쁘게 움직이는군.”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수상하기 때문입니다. 낙양과 개봉으로 떠났던 정탐꾼들이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유리한 상황에서도 공세를 멈추고 경계를 강화한 것을 보면, 분명 무엇인가를 준비 중일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들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알아내야 하네. 그래야 우리도 대비책을 세울 수 있겠지.”
소무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장양이 걱정할 것을 우려해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현재 상황에서 정탐꾼을 더 보낸다고 한들 애꿎은 목숨만 잃을 뿐이다. 할 수 없겠지. 내가 직접 가볼 수밖에.’
인사를 마친 소무는 그의 집무실 밖으로 벗어나려 했다. 그때 장양이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자네 혼인식 말일세. 정녕 비밀리에 진행할 생각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소무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음 감사합니다, 민공.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 * *
경쾌한 음악이 양주산을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현상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음이 더욱 밝고 청량했다.
원두막에 앉아 칠현금을 튕기던 설화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따라 퉁소의 음이 더욱 웅장하고 힘차구나. 계속하거라.”
소소는 맞은편에서 퉁소를 불며 계속 웃고 있었다. 분명 평소와는 달랐다.
설화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이가 합주를 하는 동시에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자신의 표정과 기분을 살피려는 듯한 눈치였다.
연주가 끝나자 소소가 설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없이 웃기 시작했다. 연유를 짐작한 그녀는 침착하게 호흡을 내쉬었다.
‘올 것이 왔구나.’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이였다. 말없이 웃는 것을 보니, 자신이 먼저 얘기를 꺼내 주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막상 아이에게 얘기하려니 그녀 또한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소무와 기일을 잡았지만, 아직 아이한테는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소소는 스승님을 어떻게 생각하니?”
“좋게 생각해요. 히히.”
아이였기에 아직 언어표현은 부족했지만, 해맑게 웃는 얼굴에 마음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마음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쉰 설화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그럼 우리 같이 살아보면 어떨까? 아버지랑 셋이…….”
설화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소가 달려가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녀를 꼭 안고 중얼거렸다.
“좋아요. 스승님하고 같이 살아서 너무 좋아요.”
설화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이를 포근히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소소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마음을 직접 확인하니 가슴이 따듯해졌다.
“나도 우리 소소랑 함께해서 정말 행복하고 기쁘단다. 그럼 스승님이…… 소소 엄마 해줘도 될까?”
연설화의 품에 파묻은 소소의 얼굴이 쑥스럽다는 듯 당근처럼 붉어졌다.
“좋, 좋아요…….”
“그, 그럼 한번 불러볼래?”
소소도 떨리는 모양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작은 입술이 서서히 달싹였다.
“엄……엄마. 히히히.”
소소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래, 우리 딸…….”
설화의 얼굴이 포근한 미소를 띠며 가라앉았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선음무를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해 있으니 이미 내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였다. 소중한 인연이로구나.’
그때 설화의 품에 파묻혀 있던 소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리 아버지랑 언제부터 같이 살 거예요?”
“언제가 좋겠니? 우리 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구나.”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계약한 집의 입주일을 계산해보고는 오른손을 활짝 펴 보였다.
“다섯 밤 뒤!”
기일과 동일한 날짜였다. 물론 그것을 감안하여 소무와 설화가 날을 잡은 것이다.
장수들은 원한다면 궁성 내에서 주거지를 무료로 임대받을 수 있다. 대장군인 소무가 주거 걱정을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딸아이가 힘들게 준비한 집을 어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성의를 봐서라도 당장은 얹혀살 수밖에. 연설화도 미리 소무에게 언질을 받았다.
“아버지한테 얘기 들었어. 그럼 소소 집에서 같이 살아도 될까?”
“네, 이제 우리 집에서 셋이 같이 살아요!”
“그러자꾸나. 닷새 뒤에 이곳에서 우리가 가족이 되는 의식을 진행할 거란다.”
“……무슨 의식이요?”
설화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침착하게 답했다.
“혼례를 할 거란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축하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축하…….”
“응. 좋지?”
“네. 그럼 친구들 데리고 와도 돼요?”
소무와 둘이 비밀리에 하기로 했지만, 딸이 원한다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럼. 소소 친구들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데려오너라.”
소소는 설화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비벼댔다.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한 식경이 지난 뒤.
양주산에서의 일과를 마친 소소는 신이 나서 하산했다.
장안성의 성문으로 진입한 아이는 힘찬 발걸음으로 궁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목적지는 랑아대의 막사였다.
양팔을 크게 흔들며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까? 누군가가 길을 걷던 소소를 불러 세웠다.
“어이 꼬마 장수!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군순포의 대장 황개칠이었다. 포수들을 이끌고 거리의 안전을 순찰 중인 듯했다. 소소는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 엄마 생겼거든요. 헤헤.”
황개칠은 놀란 얼굴을 하며 반사적으로 물었다.
“소무 장군님이 혼인한다고? 언제?”
“다섯 밤 뒤에요. 포수 아저씨들이랑 양주산으로 꼭 오세요. 알았죠?”
“그럼! 당연히 가서 축하드려야지!”
소소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주작로를 지나 궁성으로 진입했다.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낯익은 인물들을 발견했다. 양강과 양소 부장이었다. 양가장의 맏형격인 양연정은 한중의 태수로 부임을 갔고, 둘은 장안에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소소, 뭐가 그리 좋아서 웃고 다녀?”
양강과 양소는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가워했다. 지하뇌옥에서 죽어가던 자신들을 발견하여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아니던가.
“아저씨들은 혼인해 봤어요? 우리 아버지는 다섯 밤 뒤에 한대요.”
“우린 못 해봤지. 소무 장군님이 혼인을 하신다니 이거 경사 났구만.”
“축하한다, 소소야!”
소소는 방긋 웃으며 상체를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허허. 오냐. 조심히 들어가라~”
“닷새 뒤에 보자고.”
그들에게 작별을 고한 소소는 바로 랑아대의 막사로 달려갔다. 삼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마침 대다수가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을 시간이었다.
벌컥-!
막사의 문이 쾅 열리자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수십 명의 랑아대원들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입구를 향해 집중되었다.
소소가 문틀에 서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껏 조카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삼촌들은 연유가 궁금하다는 눈빛을 했다.
“왜?”
“무슨 일이야?”
잠시 눈치를 살피던 소소는 갑자기 삼촌들을 향해 후다닥 달려가며 소리쳤다.
“삼촌들! 나 엄마 생겼어요!”
양팔을 벌린 소소는 가장 앞에 있던 현정을 향해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현정이 조카를 사뿐히 받아들며 빙글빙글 돌렸다.
“하하. 축하해, 우리 조카.”
“히히히히.”
암암리에 대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져있던 터였다. 그렇기에 다들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제 공식화되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하핫! 소문이 정말이었어.”
“내 말이 맞지? 하하! 조만간 할 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언제 한대?”
막사 안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삼촌들이 조카를 둘러싸고는 간지럼을 태우며 좋아했다. 한참을 까르륵 웃던 소소는 다시 등을 돌려 막사의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닷새 뒤에 한대요!”
근처에 있던 청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 근데 어디 가?”
“설화원에 가서 친구들을 초대하려구요. 그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대요.”
소소가 이렇게 신나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청해도 흐뭇하게 웃으며 한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래, 잘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