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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개천 치다 금을 줍는다 (1) (175/250)


175화 개천 치다 금을 줍는다 (1)
2022.07.25.


소무가 발견한 장소는 공성병기를 개발하는 곳인 듯했다.

경계병들 사이로 장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운제와 정란, 공성탑 등 각종 병기가 눈에 띄었지만, 그것들은 소무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줄지어 늘어서 있는 세 대의 투석기였다. 소나라의 초대형 투석기인 대선포와 비슷한 크기였다.

그뿐 아니라 생김새도 특이했다. 지렛대를 이용한 기존의 투석기와는 달리 거대한 추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황색 천을 머리에 둘러쓴 자가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어눌한 목소리로 보아 서역 출신의 고위급 기술장교인 듯했다.

“조심해서 다뤄 개때끼들아!”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가 욕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장인들은 인상을 구기며 투석기의 조립을 계속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무는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투석기의 구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역의 기술까지 가져왔단 말인가?’

겉으로는 조용한 휘나라였지만, 착실히 재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방면에서 말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반드시 이 신형 투석기의 위력을 확인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올 전투에서 대비책을 세울 수가 없을 테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침 투석기 중 하나가 장전되어 있었다. 고정해놓은 끈만 풀리면 발사될 터.

‘여기서 소란이 커지면 더는 정찰이 불가능하겠지.’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소란을 피우는 즉시 낙양의 고수들이 죄다 몰려들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소무는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그 안에 다른 추가적인 정보 수집은 어려울 듯했다.

소무는 장전된 투석기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서역 출신의 장교와 장인들이 어리둥절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겉모습으로만 보면 감독관의 옷을 입은 병사였다. 그가 왜 이곳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했던 것이었다.

소무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투석기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 누군가가 뭐라고 소리칠 찰나. 그는 다짜고짜 투석기의 밧줄을 풀어버렸다.

지켜보던 모두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 순간 거대한 추가 지면을 향해 묵직하게 떨어져 내렸다.

쿠웅-!!!

동시에 발사대가 솟구쳐 오르고, 그 안에 있던 거대한 석탄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투콰아악-!!!

굉음을 내며 떠오른 발사체는 성벽을 향해 무지막지한 속도로 가속을 시작했다. 지켜보던 소무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한눈에 보아도 대선포의 위력을 월등히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석탄이 낙양성의 성벽 내측을 강타했다.

꽈아아아앙-!!!

거센 천둥소리와 함께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성내가 뒤흔들렸다.

석탄은 성벽을 깊게 파고들어 균열을 만들어냈다. 몇 번을 더 적중시킨다면 성벽을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광경을 지켜본 소무는 즉각적으로 결심했다.

‘반드시 없애야 한다. 이 무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양양성이 무너질 것이고, 함곡관이 함락될 것이다.’

투석기의 오발 사고에 주변에서 소란이 일었다. 장인들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때 머리에 황색 천을 두른 장교가 소무를 향해 핏대를 세우며, 어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어디 소속이야, 이 때끼야!”

코가 크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서역인이었다. 이 투석기의 기술을 이곳에 퍼트린 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가 소리치며 다가오는 모습에 소무가 피식 웃었다.

“지금 웃어떠!?”

서역인 장교는 허리춤에서 끝이 휘어진 월도(月刀)를 꺼내 들었다. 자세를 보니 무엇인가 독특한 무예를 익힌 듯 보였다.

“생애 마지막 공격일 테니 최선을 다하여라.”

그는 소무의 도발에 눈이 뒤집혔다.

“이런 개때끼가!”

날카로운 월도의 날이 곡선을 그리며 목을 향해 다가왔다. 단지 소무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가락 두 개를 내뻗었을 뿐이었다.

터업-!

날카로운 월도의 날은 소무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붙들려 있었다. 단지 손가락 두 개만을 사용해 막은 것이다.

서역인 장교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월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다시금 욕설이 뿜어져 나올 찰나, 소무의 손등이 그의 뺨을 강타했다.

우드득-!

단 한 방이었다. 공격을 개시했던 장교는 목뼈가 돌아가며 풀썩 쓰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계병들이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호각을 불었다.

소무의 손에는 어느새 빼앗은 월도가 들려 있었다. 그의 주 무기는 검(劍)이지만, 경지에 오른 자는 무엇을 움켜쥐든 초식을 펼치는 데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다.

그가 월도로 허공을 난자하자 시퍼런 빛무리가 뿜어져 나오며 투석기를 향해 다가갔다.

콰쾅-! 콰콰콰쾅-!!!

강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투석기들은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 되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장인들을 향해 소무가 다가가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시간이 없으니, 한 번만 얘기하겠소. 모두 가져오시오. 이 투석기의 제작도면.”

이곳의 장인들은 본디 송나라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휘나라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쭈뼛쭈뼛 소무에게 다가간 그들은 각자가 가진 도면을 내밀었다.

“모,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이게 우리가 가진 전부입니다.”

묵묵히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소무는 도면을 건네받아 품속에 갈무리했다.

더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좀 더 정찰해보고 싶었지만, 이쯤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방패를 움켜쥔 백여 명의 병사가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방패를 모아 장벽을 형성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무가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신형은 병사들의 코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와 동시에 활짝 펼쳐진 왼손이 방패벽의 중앙을 후려쳐갔다. 중후한 내력이 가득 담긴 일격이었다.

쩌어어엉-!!!

철벽같았던 방패벽이 단 한 방에 허물어져 버렸다.

“크악!”

“큭!”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방패병들의 틈새를 비집고 소무가 돌파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병사들이 몰려들며 그를 막아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오십여 장을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성문을 백여 장 앞으로 뒀을 때였다. 내달리는 소무의 전면으로 돌연 십여 개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다가와 가로막았다.

그 순간 소무는 반사적으로 도약하며 회전했다.

팟-! 파파파팟-!!!

팽이처럼 회전하는 소무의 전신을 십여 가닥의 강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면에 자세를 바로 한 그는 월도를 움켜쥔 채 기수식을 잡았다.

‘……이 녀석들은 또 뭐란 말인가.’

기존 휘나라의 정예부대인 살라타이를 월등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눈앞의 처음 보는 정예 병사들은 하나같이 붉은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들을 살펴보던 소무는 신체의 일부에서 신마교의 문양을 발견했다. 확실히 일반적인 병사들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수작을 부려놓은 듯, 하나같이 눈동자가 풀려있었다.

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소무를 향해 직선으로 돌진해왔다. 감히 자신을 향해 홀로 선공을 감행하다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소무의 왼손이 벼락처럼 움직이며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꽈악-!

“…….”

놈의 눈빛을 바라보던 소무는 무엇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자신의 기세를 마주하고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아니 그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방금 자신을 향해 몸을 던진 병사는 미끼 역할에 불과하단 것을 깨달았다.

나머지 붉은 갑주의 병사들이 어느새 사방을 포위하여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드득-!

소무가 붙잡고 있던 병사의 목을 꺾어버린 소리였다.

그 순간 정예병들의 검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오며 소무를 집어 삼켰다. 또다시 선공을 개시한 것이다.

‘어이가 없군.’

소무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고 떠오르며 폭풍처럼 회전했다.

탈혼검법 삼초식 비진난격(飛進亂擊).

그가 움켜쥔 월도에서 초승달 모양을 한 수십 가닥의 강기가 사방으로 향해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콰쾅-!!!

소무가 뿜어낸 강기 다발은 다가오던 검은 기류들을 단번에 무력화시켰으며, 붉은 갑주의 병사들을 절반 이상 꿰뚫어 버렸다.

그런데도 지면에 내려선 그는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 정도의 무력을 보였으면 겁을 먹거나, 최소한 사기가 꺾여야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붉은 갑주의 병사들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다시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를 살펴보던 소무는 연유를 짐작해냈다.

‘최면술이로군……. 휘나라와 신마교의 합작품인가? 도대체 이런 놈들이 얼마나 더 있는 거지?’

이들의 움직임은 랑아대원이 아니라면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공포를 모른다면 그야말로 살인병기나 다름없었다.

이들의 수준을 좀 더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소름 돋는 두 가닥의 기운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 병사들의 포위망은 계속해서 두꺼워지고 있었다.

“침입자다! 공격하라!”

병사들이 물밀듯 밀고 들어오자, 소무는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한 번에 십여 장을 전진한 그는 한 병사의 머리를 짓밟고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전면으로 보이는 성문은 어느새 닫혀 있었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성벽을 뛰어넘으면 그뿐이었으니.

코앞으로 다가오는 성벽과의 거리 오십 장. 소무는 그곳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파앙-!

한 줄기 빛이 되어 쏘아져 나가는 그의 뒤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의 진로에 있던 병사들이 사정없이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성벽을 향해 소무의 신형이 화산이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깨달음이 없이는 펼칠 수 없는 고난도의 신법인 어기충소(御氣衝逍)였다.

소무의 시선이 성벽 위로 향했다. 동시에 그의 미간이 내 천(川)을 그렸다.

그곳에 붉은 갑주를 입은 병사들이 강노(强弩)를 움켜쥐고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백발의 여인은 바로 신마교의 총타주인 천검마녀 백묘진이었다.

악에 받쳐 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원한이 담겨있었다.

“발사!!!”

파팟-! 파파파팟-!!!

이십여 발의 화살이 허공에 떠 있는 소무의 전신으로 쏘아져 나갔다. 강노에서 쏘아진 화살은 강철을 종잇장처럼 꿰뚫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코앞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소무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氣)가 발현되며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호신강기보다 상위의 기술인 반탄강기였다.

콰콰콰콰쾅-!!!

거센 폭음과 함께 강노에서 쏘아진 화살들이 산산조각 나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반발력에 튕겨 나간 소무는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밑에서 두 명의 장수가 공격태세를 갖추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룡상장에 속한 화경의 고수들이었다. 소무 또한 그들을 감지하고 있었다.

허공에서 자세를 바꾼 소무는 지상을 향해 유성처럼 낙하하기 시작했다.

탈혼검법 이초식, 전광추흔(電光追痕).

꽈아아앙-!

한줄기 섬광이 두 명의 장수를 통과하며 지나쳤다.

“크윽!”

“끅.”

짧은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는 휘나라의 장수들. 그러나 외상은 없어 보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용케도 막아낸 것이다. 어차피 그들을 일격에 처치할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낙양성의 방어태세가 상상 이상이었다. 다시 퇴로를 살피던 소무는 흠칫하고 말았다. 어딘가에서 소름 돋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군. 소나라의 제일 무장이 단신으로 이곳에 잠입하다니 말이야. 이거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오십 장 밖에서 들려온 음성이었으나, 마치 바로 옆에서 들려온 것만 같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휘나라의 대장군인 완안후이였다.

그는 이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로 병사들이 물결처럼 길을 터주며 기립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소무의 얼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재밌군.”

“무엇이 재미있다는 말이지?”

적진의 중심에서 완벽히 포위당해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소무가 왼손을 펼치자 근처에 있던 병사 한 명이 끌려왔다. 정확히는 그가 움켜쥐고 있던 장검이었다.

“크윽!”

병사가 놓친 검은 허공을 날아 소무의 손아귀로 움켜쥐어졌다.

양손으로 도검을 움켜쥔 소무는 길게 늘어트렸다.

그의 좌우로 오룡상장 중 두 명이 방위를 차단하며 출수할 태세를 갖추었다.

게다가 현경의 고수인 완안후이까지. 처음으로 느껴보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었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은 오히려 그의 심장을 더욱 뛰게 하고 있었다.

“…….”

소무는 묵묵히 기다렸다. 완안후이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이윽고 그가 오룡상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소무의 눈빛이 변하며, 검 끝이 진동했다. 동시에 깊게 가라앉은 그의 음성이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일섬멸겁(一殲滅劫).”

무림의 제일고수로 군림했던 검성(劍聖)의 성명 절기, 탈혼검법의 절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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