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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개천 치다 금을 줍는다 (2) (176/250)


176화 개천 치다 금을 줍는다 (2)
2022.07.26.


꽈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낙양성의 서문 앞으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반경 이십여 장을 집어삼켰다.

먼 거리에서 지켜보던 휘나라의 병사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지, 지금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면 비기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소무가 익힌 무공 중 최고의 절학, 일섬멸겁(一殲滅劫).

이 초식은 단전의 내력 대부분을 찰나의 순간에 발출시키는 필살의 무공이다. 기력 소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양날의 초식이기도 했다.

“……?”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며 결과를 기다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자욱한 먼지. 그 속을 뚫고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앗-!

부러진 검 한 자루를 움켜쥐고 누군가가 질주를 시작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의 뺨과 왼쪽 눈을 적셨다.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소무였다.

“자, 잡아!”

“놓치지 마라!”

장교들이 목청이 터질 듯 소리쳤지만, 그의 움직임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성벽까지 접근한 소무는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탓-!

백묘진의 명령에 따라 성벽 위에서 붉은 갑주의 병사들이 노(弩)를 움켜쥐고 사격을 개시했다.

파파파파팟-!

성벽의 면을 따라 화살이 빗발쳤지만, 단 한 발도 그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단숨에 성벽 위로 뛰어오른 소무를 향해 백묘진이 날아들었다. 상세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도전해 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뒈져!”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는 깊은 한이 서려 있었다. 소무에 의해 뇌옥에 갇혔으며, 그의 연인인 연설화에게 고문까지 당했다. 백미(白眉) 아래로 드러난 눈동자에는 핏대가 곤두서 있었다.

하지만 소무는 그녀와 놀아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일섬멸겁의 후유증으로 내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기술로 신속하게 상대해야 했다.

시퍼런 검강이 소무의 상체를 가를 찰나, 강렬하고 눈부신 빛이 번뜩였다. 이형환위보다 상위 기술인 검성의 경신법. 섬전비영보(閃電飛影步)였다.

부아아악-!!!

백묘진의 검날이 소무의 형체를 갈랐지만, 그것은 잔상에 불가했다. 그는 어느새 그녀의 측면에서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뻐억-!

“큭!”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백묘진은 팔꿈치를 모아 용케도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이어지는 소무의 뒤돌려차기는 피해낼 방도가 없었다.

회전하며 솟구쳐 오른 소무의 오른발이 그녀의 뒤통수를 찍어눌렀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며, 가히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움직임이었다.

꽈앙-!

“크윽!”

철퍼덕 넘어진 백묘진은 신음을 토해냈다.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머리를 방어했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몇 바퀴를 구른 그녀는 재빨리 튕겨 오르며 자세를 다잡았다. 다시금 공격을 개시하려 했지만…… 소무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그는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려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혼자서 모험을 감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저 개 같은 자식…….”

소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백묘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분한 마음을 애써 떨쳐내며 성내를 바라보았다. 소무가 마지막으로 격돌했던 장소였다.

창 자루에 몸을 기댄 두 명의 장수. 오룡상장의 구성원이자 화경의 고수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내상을 입은 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휘나라의 양대맹장 중 한 명인 완안후이. 그의 상태는 좀 더 좋지 않았다. 소무가 펼친 필살의 초식을 전면에서 막아낸 모양이었다.

“장군……?”

영롱했던 황금빛의 갑옷은 종잇장처럼 찌그러져 있었으며, 갈라진 갑옷의 틈새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입에서는 신음조차 없었다.

그때 그의 주변으로 장수들이 몰려들며 기립했다. 그들 중 가장 계급이 높은 자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제가 적호병단(赤虎兵團)을 이끌고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완안후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한 번 내저었다.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리고 이미 늦은 것 같군.”

“……알겠습니다.”

아쉬움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적국의 제일 맹장을 코앞에서 놓친 것이다. 완안후이는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찰나의 방심이 이렇게 어이없는 결과를 만들었구나. 하지만 이런 얄팍한 수작은 두 번 다시 통하지 않을 것이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놓칠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최후의 비기를 꺼낼 줄이야 어찌 예상했겠는가.

완안후이는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 냉철한 인물이었다. 어느새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장수 한 명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급히 보고했다.

“장군, 회룡포가 모두 파괴되었으며, 제작도면이 탈취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라도르께서…… 전사했습니다.”

도면을 탈취당한 것도 모자라, 서역에서 어렵게 데려온 기술자까지 사망했다고 한다.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던 그의 양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네 이놈……. 반드시…… 반드시 이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분노에 가득 찬 완안후이의 고함이 쩌렁쩌렁 메아리치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 * *

소무는 인근 산속에 숨어서 잠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위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초인적인 그의 청각은 낙양성에서 메아리치는 완안후이의 고함을 듣고 있었다.

‘화가 많이 났나 보군. 허나 벌써부터 분노하면 감당하기 힘들 터인데?’

완안후이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낙양에 오기 전에 맹진항에서 건조 중인 전함들을 대부분 파괴하고, 나머지는 탈취했다는 것을 말이다.

길길이 날뛸 그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이것으로 시간은 벌게 된 건가?’

준비 중인 것들이 수포가 되었으니, 휘나라는 재침공 시간을 늦출 수밖에 없을 터. 근심을 어느 정도 덜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장안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단전의 내력을 이 할 정도 보충한 소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경공을 펼쳤다.

올 때는 황하를 통해 북문으로 잠입했으나, 서문으로 빠져나온 지금은 육로를 통해 함곡관으로 진입해야 했다.

경공을 펼치길 한 시진이 넘었을 때였다. 그의 눈앞을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폭이 좁은 험지에 설치된 이 관문은 높이가 일반적인 성벽의 세 배에 이른다.

게다가 중원과 관중의 경계선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다. 그렇기에 자국의 병사 이천여 명이 교대로 방어하고 있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히거라!”

관문 위의 병사들이 소무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적국의 방향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제법이군.’

병사들의 경계태세가 기대 이상이었다. 활과 강노를 움켜쥔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조준을 마치고 있었다.

고개를 올려 그들을 바라보던 소무는 자신을 소개했다. 자국의 병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호칭을 말이다.

“랑아대의 대장. 소무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웅장한 내공을 싣고 있었기에 성벽 위의 병사들이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낄낄대고 웃던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토해냈다.

“푸하핫. 미친놈 아니야?”

“하하. 뭐라고?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아?”

“네가 랑아대의 대장이면,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소무의 말을 믿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을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한번 관문 위의 병사들에게 사근사근 얘기했다.

“대장군 소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중이니 어서 관문을 열어라.”

몸이 지쳐 있었기에 무리해서 관문을 오르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병사들이 요지부동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아는 자가 있을 테지만, 멀어서 못 알아보는 듯했다. 그때 지휘 장수가 병사들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야?”

“저놈이 말하길, 자신이 랑아대의 대장이라고 합니다.”

장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는 호흡을 한 번 고르더니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질렀다.

“쏴라!!!”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관문 위에서 수백 발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른 반응속도였다.

파파팟-! 파파파팟-!

소무는 다급히 움직이며 빗발치는 화살을 피했다. 자국의 병사들에게 공격을 받을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그의 회피 동작은 병사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화살비는 끊임없이 날아왔다. 몸이 몹시 지친 상태였기에, 자칫하면 이곳에서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쿠쿵-! 쿠쿠쿵-!

기어코 그의 호신강기에 부딪치는 화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위력이 강한 강노의 화살을 여러 번 맞는다면 내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움직이던 소무의 시선이 성벽 위의 장수를 향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군사회의를 할 당시 한 번 보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겨우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부사(府事), 유광!!!”

그 순간 관문 위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머, 멈, 멈춰라!!!”

휘나라의 인물이라면 자신의 이름과 관직명을 알 리가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이 기억하는 자와 이목구비도 일치했다. 아니 확실히 그자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화살비를 피해낼 수가 없을 테니.

어쨌거나 자신은 자국의 대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현장에서 즉결참수를 당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궁수들이 공격을 멈추며 유광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

그 순간 유광이 병사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놈들이 지금 뭣들 하느냐!? 이분이 누군 줄 알고 공격을 하는 게야? 모두 장을 치러야겠구나!”

옆에 있던 그의 부관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부, 부사님이 쏘라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까……?”

“누가!? 어디서 날 모함하느냐!”

안색이 흙빛으로 변한 유광이 소무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의 심기가 어떤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다행인지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되었으니, 빨리 관문이나 열어주시게.”

유광은 상체를 구십도로 숙여 포권을 건네었다. 그러고는 반대편으로 달려가 고개를 내밀어 고함쳤다.

“야 이놈들아! 당장 문을 열지 못할까!!!”

잠시 후 굉음이 터져 나오며, 굳건히 닫혀있던 함곡관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약 반장 정도의 틈이 열렸을 때였다. 소무는 관문 위의 병사들을 향해 한 손을 슬쩍 올려 보였다.

“수고들 해.”

그 말을 끝으로 소무는 관문을 통과하여 쌩하고 사라졌다. 중요한 날을 앞두고 있었기에 한가롭게 이곳에서 시간을 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광과 수비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마음이 진정된 부관이 유광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대장군께서 왜 저쪽에서 오시는 겁니까?”

“우리가 어찌 알겠나. 바람 같은 분을.”

“여하간 다행입니다, 부사님. 저희를 그냥 용서해주시다니.”

유광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듣기로 저분은 지금까지 부하들에게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더군. 멋진 분이야……. 나만큼이나 말이지.”

옆에서 듣던 병사들이 남몰래 코웃음을 쳤다. 조금 전 자신이 내렸던 공격 명령도 발뺌한 상관이 아니었던가.

“킥.”

“크큭.”

그 순간 유광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 웃은 놈들, 앞으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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