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어둠 속에 사는 자들 (1) (178/250)


178화 어둠 속에 사는 자들 (1)
2022.07.28.


소나라의 개국 이래로 가장 큰 축제가 열렸다.

장안성의 중심부에서 궁성까지 이어진 넓은 주작로에 잔칫상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누구든 와서 먹고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주민들과 관원들, 군순포의 포수들까지 한데 뒤엉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설화원의 고아들도 모두 몰려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거 그냥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럼! 오늘은 모든 것이 무료이니, 배가 터지도록 먹고 가거라!”

상인들은 무제한으로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두 배의 가격을 받는다. 한 달 매출을 하루 만에 올릴 수도 있는 기회였다.

행사를 돕기 위해 고용된 보조 인력만 천 명을 웃돌았다. 이들은 고작 반나절을 일하고 닷새 치의 임금을 받는다.

모든 부분은 태웅방의 관리하에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그들 또한 수수료를 받고 일을 대행해주는 중간역할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연설화의 개인 자금이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그녀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모처럼 배불리 먹는구나!”

랑아대원들과 뒤섞인 일광이었다. 그의 왼손에는 오동통한 닭다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천천히 좀 드세요, 형님. 그러다 체합니다.”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먹어요? 설마 대장님이 먼저 가서 배가 아픈 거예요?”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가던 일광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그는 옆에 있던 현정과 청해를 보며 은근슬쩍 물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 것 같아?”

“……글쎄요?”

“당분간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 순간 일광의 인상이 굳어졌다. 굳게 닫힌 그의 입은 다시 열릴 줄을 몰랐다.

“…….”

일광은 입맛이 떨어지는지 닭다리를 다시 내려놓았다.

투욱-!

현정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청해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일광 형님이 왜 저러는 거야?”

“그러게요. 뭔가 이상해요, 사형.”

갑자기 정적이 흐르고 분위기가 이상해질 찰나였다. 돌연 현정과 청해 사이에서 참새처럼 작은 머리 하나가 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소소의 입이 빵긋거리며 한마디를 토해냈다.

“다음은 일광 삼촌 차례!”

그때였다.

죽어가던 일광의 얼굴이 갑자기 해바라기처럼 활짝 펴지는 것이 아닌가.

“으하하! 그래, 역시 안목은 우리 조카가 제일이로구나!”

“히히.”

금세 기분이 좋아진 일광은 어느새 넓적한 대접을 움켜쥐고 있었다.

“자, 마시자!”

현정과 청해도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들의 틈새에서 소소도 대접을 들고 짧은 팔을 내밀고 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우유가 들어있었다.

“마셔요!”

“한 번에 모두 비우는 거다!”

잔을 한 번 부딪친 그들은 동시에 꿀꺽꿀꺽 마셨다.

“크윽!”

“크아! 좋다.”

“맛있어!”

소소도 한마디를 거들고는 소매로 입술에 묻은 우유를 닦아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질 무렵 일광이 손가락을 내뻗으며 외쳤다.

“소소야, 네 엄마 나온다!”

모두의 고개가 주작로로 향했다.

화사한 예복을 입은 여인이 비단길 위에서 단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붉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모두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걸음걸이마다 풍기는 마성의 매력은 마치 하객들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와…….”

“어떻게 걷는 모습조차 아름다울 수가 있죠?”

“여기까지 꽃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소란스럽던 주작로의 소음이 점차 잦아들며, 알 수 없는 웅장함이 모두의 마음을 지배했다.

단상 위에는 소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장양이 앞에서 혼례를 주관하고 있었다.

민공을 자처하고 있지만, 타국의 황제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직접 신하의 혼례를 주례해주는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나라의 백성들과 관원들은 전율했다.

그들의 혼인을 선언한 장양은 잠시 진행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그의 의도를 눈치챈 일광이 조카의 등을 살며시 두들기며 말했다.

“소소야, 너 나오래.”

“저, 저를요?”

“응, 빨리 나가봐.”

당황한 소소는 삼촌들한테 떠밀려 쭈뼛쭈뼛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를 발견한 하객들이 웃으며 갈채를 보냈다.

“하하. 딸인가 봐. 귀엽게 생겼네.”

“나 저 꼬마 본 적 있어. 구호대에 있었잖아~.”

“호랑이 타고 공연하는 것도 봤어.”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소소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하하핫! 꼬마야, 축하한다!”

“당당하게 어깨 펴고!”

단상으로 걸어가던 소소는 뒤돌아서서 상체를 한 번 숙여 보였다.

“고, 고맙습니다~”

잠시 후 소무와 설화가 딸아이를 가운데 세우고 손을 잡아주었다.

소소는 행복하다는 듯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 일가족을 바라보던 장양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 소나라의 민공, 장양이 증인으로 참관하여 명한다. 그대들은 이미 가족이었고, 그것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굳게 잡은 그 손을 놓지 않을 것을 명한다. 서로를 사랑하고 끝까지 지켜줄 것을 명한다.”

장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무 일가족을 향해 미소를 보냈다.

소무는 진심을 담아 그에게 묵례하고는 부인과 아이를 안아주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않은 모두의 환대에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따듯한 시간이 흐르고 모든 의례가 마무리되었다.

“고맙습니다.”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겠지. 주위를 보시게. 모두가 웃고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는 나도 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참이네. 허허허.”

장양은 껄껄 웃으며 하객들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가 한 곳에 자리를 틀고 앉자, 백성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둘러쌌다.

“자, 모두 즐겁게 마십시다.”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장양이었다. 최측근에서 그를 보좌하던 관원들조차 술잔을 움켜쥔 것을 처음 보았을 정도였다.

“폐, 폐하와 함께 술을 마시다니, 꿈만 같습니다.”

“폐하라니, 당치도 않소. 나는 그저 여러분을 위해 헌신하는 민공이라 하지 않았소. 자 어서들 드시지요.”

장양이 술잔을 올려 보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만백성이 행동을 함께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의 얼굴엔 금세 홍조가 떠올랐다.

그는 안주로 닭발을 집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허허. 이거 맛이 괜찮소. 어서들 드셔보시구려.”

털털하게 웃는 모습이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어르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옆에서 한 중년인이 두 손을 모으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리하시오. 얼마든지 답해드리리다.”

“송나라의 황제는 술을 한 잔 마실 때마다 안주를 네 종류씩 교체해준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민공께서는 어찌 수라를 드시지 않고, 이곳에서 저희들이나 먹는 닭발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장양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다가왔다. 무례한 질문이었기에 그를 제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장양은 양손을 휘저으며 그들을 뒤로 물렸다.

“그것을 답하기 전에 나도 하나만 묻겠소. 만약 몸이 불편한 당신을 위해서 아들이 온종일 힘들게 노역하여 돈을 벌어왔다고 생각해 보시오. 그 돈으로 당신이 혼자서 값비싼 잉어찜을 사 먹으면 맛있겠소? 아니면 소면 한 그릇을 아들과 같이 나눠 먹는 게 더 맛있겠소?”

“아들놈이 고생해서 벌어온 돈으로 어찌 잉어찜을……. 먹다가 체합니다. 당연히 소면 한 그릇을 나눠 먹는 게 더 맛있지요.”

장양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닭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허허. 나도 그렇소. 이 닭발은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었소. 그 이유는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먹고 있기 때문이오.”

그 의미를 알아챈 몇 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했지만, 영문을 모르던 자들은 닭발을 하나씩 집어 들어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을 인자한 미소로 바라보던 장양은 다시 한번 술잔을 올렸다.

“첫 잔은 우리의 가족과 이 나라를 지켜준 대장군을 위해 들었던 것이오. 그리고 이 두 번째 잔은 여러분들을 위해 장양이 올리는 잔이라오.”

“고맙습니다!”

“자, 어서 모두 들어요!”

혼례는 일찍이 끝났지만, 축제는 밤늦게까지 계속 이어졌다.

광대들이 거리에 나와 공연을 펼쳤으며, 병사들이 대나무에 폭죽을 만들어와 볼거리를 자아냈다.

모처럼 술을 마신 장양은 일찍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대다수가 그러했다.

대낮과 비교한다면 열기가 다소 식었지만, 이날이 끝나는 것이 아쉬운 듯 늦은 밤까지 여흥을 즐기는 자들이 있었다.

“다롱아, 저쪽으로 가보자!”

소소는 산군을 타고 나왔다. 만두가 든 거대한 보따리를 어깨에 사선으로 두르고 있었다.

참석하지 못한 거지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이었다. 개방을 포함한 거지 패거리들이 대거 참석하긴 했지만, 뒤늦게 소식을 듣고 멀리서 온 자들은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 받아요!”

파파팟-!

소소가 날려 보낸 만두들은 정확히 거지들의 밥그릇 위에 안착했다. 그들이 고맙다고 얘기하려 했지만, 소소는 이미 산군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산군은 주민들이 놀라지 않도록 광대 복장을 입혀놓았으며, 특수제작된 입마개를 채워놓은 상태였다.

장안의 성내를 돌아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한 노인이 불쌍한 모습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할머니, 어디 아프세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할머니였다. 얼굴을 자세히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불쌍한 몰골이었다. 한쪽 팔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른쪽 다리도 불편한지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얘야. 할머니 좀 집에 데려다주겠니?”

소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앞머리를 길게 늘어트려 안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 우리 전에 본 적 없나요?”

“아니, 나는 너를 처음 보는구나. 어서 내려서 날 좀 도와주거라.”

그 순간 조용히 있던 산군이 갑자기 상체를 낮추며 으르렁거렸다. 특수제작 된 입마개가 단번에 찢겨나가며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크르르릉-!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행동이었다.

“다롱아, 그러면 안 돼. 아픈 할머니야.”

아무리 얘기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산군은 마치 먹잇감을 덮치기 직전의 준비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소소는 넓적한 등 위에서 내려가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돌연 소름 돋는 기세가 전신을 옥죄어왔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것은 산군이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소소를 숨 막히게 했다.

“으웃!”

소소는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산군과 할머니는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할머니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소소가 머뭇거리고 있으니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게다가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당장 이리 오지 못할까!”

한쪽 눈알을 부릅뜨고 인상을 쓰는 모습이 흡사 마귀 같아 보였다.

갑자기 무서워진 소소는 얼굴이 굳어졌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집고 한 걸음을 다가오자, 산군이 날카로운 발톱을 뽑아냈다.

주변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 돌연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예쁜 조카,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딸꾹! 누렁이도 같이 왔네~”

고개를 휙 돌려보자 술에 취한 일광 삼촌이 보였다. 랑아대의 다른 삼촌들도 어깨를 맞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것이 다들 만취한 듯했다. 마음만 먹으면 내공으로 취기를 한 번에 날려 보낼 수도 있었으나, 일부러 놔두는 듯했다.

그때 혀가 꼬인 철두 삼촌이 소소를 향해 손짓했다.

“자 소소야, 삼촌들이랑 같이 객잔으로 가자! 오늘 밤새 한번 놀아보자!”

든든한 우군을 만났기 때문일까? 긴장이 풀린 소소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방금까지 한쪽 눈으로 자신을 노려봤던 할머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 어디 갔지? 삼촌들, 여기 있던 할머니 못 봤어요?”

랑아대의 삼촌들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 나아갔다.

“응? 뭐라고?”

“무슨 할머니?”

“안 따라오면, 삼촌들 먼저 간다~”

아무도 못 본 모양이었다. 찰나의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소소는 다롱이의 고삐를 움켜쥐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새로 이사 온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무서워, 다롱아. 빨리 집에 가자. 아버지한테 가서 숨어야겠어.”

1659121325425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