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어둠 속에 사는 자들 (2)
(179/250)
179화 어둠 속에 사는 자들 (2)
(179/250)
179화 어둠 속에 사는 자들 (2)
2022.07.29.
소무와 설화는 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둘 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미 기척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다.
설화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딸, 잠이 안 오는 모양이구나.”
소소는 강아지처럼 이불 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으며, 소무와 설화의 가슴팍 사이로 기어 들어왔다.
“나 무서워요.”
소소는 부모님들의 사이에 껴서 오들오들 떨었다. 마치 오한이라도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소무와 설화는 한눈에 알아봤다. 아이의 맥박이 불안정함을.
“무섭다니……?”
“무슨 일이니?”
설화가 소소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화끈거릴 정도로 뜨거웠다.
이미 환골탈태를 겪고 중후한 내공까지 보유하고 있는 아이가 아니던가. 오한은커녕 죽을 때까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몸을 일으켜 아이를 살펴보았다.
소소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손목을 잡고 진맥해보던 소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설화를 바라보았다.
“기혈의 움직임을 보니, 뭔가를 보고 놀란 것 같아.”
도대체 무엇이 딸아이를 이토록 놀라게 했단 말인가.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설화가 아이의 이마에 온화한 진기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무엇을 보았는지 엄마한테 얘기해 보아라.”
눈을 감은 소소는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렸다.
“마귀 할머니…….”
그 순간 소무와 설화가 놀란 눈을 마주쳤다. 마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호, 혹시 한쪽 팔이 없는 할머니였니?”
“네…….”
설화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눈은 어땠어?”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오른쪽밖에 못 봤어요. 무서웠어요.”
정황으로 보아 확실했다. 설화는 아이에게 진기를 불어넣어 기혈을 진정시키고는, 편히 잘 수 있도록 살며시 혈도를 눌러주었다.
아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그녀가 소무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해. 할멈이 살아있었어.”
“지긋지긋하게도 끈질긴 목숨이로군. 은화파파…….”
아이들까지 납치해 흉마살혼조를 연마할 정도로 잔혹한 인물이었다. 결국엔 소무와 설화에게 치명상을 입고 급류에 휩쓸렸지만 말이다.
죽었으리라 생각한 노파가 다시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설화의 얼굴에는 근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 애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 같군. 그 몸으로 우리한테 직접 해코지하는 것은 무리일 테고, 소소를 통해서 복수하려는 모양이야.”
“어떡해? 이미 우리에 대해서 다 알고 있을 텐데.”
모를 수가 없었다. 장안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례를 올렸으니. 어쩌면 이곳 거처의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엔 확실하게 끝장을 봐야겠지. 문제는 소소의 안전인데…….”
신체 곳곳이 불구가 되어있을 노파였지만, 엄연히 탈마의 경지에 오른 초인이었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할멈을 잡을 때까진 한순간도 혼자 두면 안 돼.”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은화파파를 찾아다닐 동안 아이의 안전을 어찌 확보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정적이 흐르길 반각이 지났을 때였다. 좋은 방도가 떠올랐는지 소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
“최고의 암살능력과 호위능력을 갖춘 인물. 그가 이곳에 있잖아.”
설화는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장양의 호위를 맡고 있는 살왕(殺王)이리라.
자신과 정면승부를 벌이더라도 승패를 알 수 없을 정도의 고수였다. 단순히 호위능력만을 비교하자면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을 가진 인물이었다.
“믿어도 돼? 음침하고 우유부단한 녀석 같던데.”
“실력만큼은 최고야. 내가 올 때까지 은화파파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 만큼. 여하간 너무 늦었으니, 날이 밝으면 정리해보자고.”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걱정한다고 더 나아질 것도 없었으니.
소무와 설화는 둘 사이에 아이를 끼고, 셋이 꼭 끌어안고 누웠다.
이들 일가족의 역사적인 첫날밤은 이렇게 흘러갔다. 물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말이다.
꼬끼오-!
어딘가에서 새벽닭이 우는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눈을 뜬 소소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몸을 씻고 순라군에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소소가 물을 받아놓고 쪼그려 앉을 때였다. 부엌으로 설화가 따라 들어오며 소매를 걷었다.
“자, 머리를 조금 숙여 보아라.”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명확했다.
소소는 주춤거리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누군가가 자신을 씻겨주니 좋기도 하면서 어색한 모양이었다.
“……이, 이렇게요?”
“옳지.”
설화는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세수를 도와주었다. 마지막으로는 콩알 같은 코를 붙잡고 말했다.
“코 풀고.”
“흥!”
다 씻고 나오자 소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씻겨주니 기분이 좋은가 보구나.”
“히히. 좋아요.”
“오늘은 순관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하고 같이 가자꾸나.”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싱글벙글한 소소는 오른팔을 올려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설화가 마중을 나오자 소무가 눈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연매도 조심하고 있어. 이곳에 찾아올지 모르니.”
“걱정하지 마. 다롱이도 같이 있으니까.”
집 앞마당에는 황소보다 더욱 큰 짐승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화경급의 전투력을 가진 최강의 영물, 산군이었다.
은화파파도 불편한 몸으로 설화와 산군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부담스러울 터. 이곳에 올 확률은 극히 낮았다.
소소가 왼손으로 산군의 턱을 쓰다듬으며 소리쳤다.
“다롱아! 집 잘 지키고 있어야 해. 알았지?”
마치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산군이 소소의 얼굴을 핥으며 그르렁거렸다. 아이의 얼굴보다 큰 혀가 한 번 쓸고 지나가자 상의가 흠뻑 젖었다. 그렇다고 다시 들어가서 씻을 수도 없는 노릇.
소무 부녀는 산군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는 발길을 돌렸다. 목적지는 궁성이 있는 방향이었다.
소소는 기분이 좋은지 아버지와 맞잡은 손을 힘차게 흔들며 물었다.
“아버지, 오늘 왜 나랑 같이 가요?”
“음. 이제 소소는 순관을 그만둬야 할 것 같구나. 마지막으로 인사하려고 같이 가는 거야.”
웃고 있던 소소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왜요?”
“무서운 할머니가 돌아다니고 있어서 너무 위험해. 그동안 순라군의 아저씨들과 함께하며 많이 배우고 또 교훈을 얻었으니, 이제는 충분한 것 같구나.”
“…….”
웬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소소는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교활한 은화파파가 아이를 노리고 있는 만큼, 행동반경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잠시 쉬는 거야. 소소의 능력이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들어갈 수 있단다.”
“……정말요?”
“그럼, 물론이지.”
출발할 때와는 달리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부녀는 잠시 후 순라군의 본부에 도착했다. 책임자인 양소 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대장군께서 이 시간에 여긴 어인 일로…….”
“딸아이의 사직 의사를 같이 전달하기 위해 왔네.”
양소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소소는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 양소 부장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간 정이 많이 든 모양이었다.
“아저씨, 이제 저 순찰 못 갈 것 같아요……. 히잉.”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어쩌겠는가. 대장군이기에 앞서 보호자의 뜻이 그러함을.
양소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순관원 소소.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순라군의 일원이 되어 궁성의 안전을 위해 노력한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순라군의 대장으로서 그대의 노고에 감사를 전한다. 이제 상관에게 예를 갖추어 마지막 인사를 하길 바란다.”
순라군의 전통적인 사직 의례였다.
눈물을 흘리던 소소는 두 다리를 척 붙이고는 돌멩이처럼 작은 주먹을 심장 위에 올리며 말했다.
“충…….”
울먹이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힘차게!”
“충!!!”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양소는 무릎을 굽히고는 아이를 한 번 안아주었다.
“그동안 같이해서 즐거웠단다. 허나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슬퍼하느냐. 아저씨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이곳으로 놀러 오너라.”
“네. 꼭 놀러 올게요…….”
“그래, 앞으로도 자주 보자꾸나.”
순라군에서의 볼일을 마친 소무는 다시 딸아이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기에 곳곳이 한산했다. 가끔 순찰을 돌거나 운동을 다니는 관원들이 전부였으니.
이들 부녀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장양의 거처가 있는 곳이었다.
일국의 군주가 머무르는 곳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전각이었다. 소소가 구매한 집과 비슷한 크기였으니.
그 앞에 열 명의 병사가 경계를 서고 있었다.
“수고들 많군.”
난데없이 등장한 대장군의 모습에 호위병들이 당황했다.
그들이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소무가 검지를 입술에 슬쩍 가져다 대었다.
잠들어 있는 장양을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젯밤에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까지 들이켜지 않았던가.
“민공께 볼 일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니 신경 쓸 것 없네.”
호위병들은 묵묵히 상관에 대한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소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처의 뒤편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아버지, 여긴 왜 왔어요?”
“잠시 친구를 보러 왔단다.”
연설화가 음침하고 우유부단한 녀석이라고 말했던 인물. 그가 이곳에 있었다.
소무는 어딘가를 향해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잠시 얘기 좀 하지.”
그 순간 장양의 집무실 전각 위에서 그림자가 꿈틀대더니 연기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곧 사람의 형체로 변모해갔다.
칠흑처럼 짙은 흑의와 날카로운 인상. 장양의 호위를 책임진 무림의 전설적인 살수, 살왕(殺王)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고생이 많군. 일은 좀 어떠한가. 음지에서 누군가를 계속 호위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터인데.”
“별거 아니오. 나에겐 오히려 이런 생활이 더 익숙하니.”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아이의 머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내 딸을 며칠만 좀 지켜줄 수 있겠는가. 민공의 호위는 당분간 절제도위 일광이 대신할 것이네.”
“거절하겠소.”
즉각적으로 나온 살왕의 대답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의뢰받은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살문의 규칙이었으니.
“역시로군. 거래라면 어떻겠는가?”
“……?”
“내가 개인적으로 살문에 빚을 진 것으로 하지. 협의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라면, 나도 무엇이든 살문의 부탁을 한 번 들어주겠네.”
살왕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가 누구인가. 검성(劍聖)의 칭호를 얻은 무림의 제일고수였었다. 게다가 지금은 일국의 군권을 움켜쥔 추밀원의 수장이었다.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 비록 일회성일지라도 그것은 만금의 가치보다 귀했다. 전쟁이 끝난 후 살문을 재건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결정을 내린 살왕은 절도 있는 몸짓으로 고개를 슬쩍 한 번 끄덕였다.
“수락하겠소.”
“궁금할 텐데 이유를 안 물어보는군.”
“살문은 단지 의뢰한 일만을 맡을 뿐이오. 이외의 것은 관심이 없소.”
“자네답군. 민공께서 일어나시면 내가 따로 얘기하겠네.”
칼날 같은 살왕의 시선이 지그시 아래로 향했다.
큰 눈망울을 가진 아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말을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장양을 호위하며 지켜보던 아이였다.
눈이 마주친 소소는 양손을 모으고는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
살왕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는 인물이었다.
소무가 이해한다는 듯 딸아이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여하간 조심하게. 아이를 노리는 자가 보통 인물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