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누가 더 악인인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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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누가 더 악인인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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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누가 더 악인인가 (4)
2022.08.09.
산군이 난전에 합류하자 신마교의 극마들도 더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크아아아앙-!
맹수의 포효가 이름 모를 야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새들과 산짐승들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일광과 동수를 이루고 있는 백묘진은 사태가 글렀음을 직감했다.
수적인 불균형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닷새간 꼼짝 않고 매복한 결과가 이것이라니. 백묘진은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했다.
살왕과 맞서 싸우는 호법은 처음부터 열세였으며, 연설화와 산군을 상대로 홀로 싸우는 호법은 당장 쓰러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백묘진은 이곳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갑자기 그녀의 검 날이 붉은 기류를 머금으며 타올랐다.
한편 여유가 있던 설화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일광에게 경고를 보내었다.
- 절초니까 조심해. 그년 도망갈 준비하는 거야.
백묘진의 속내는 연설화에게 속속들이 파악 당하고 있었다.
그녀와 맞붙어 싸우던 일광은 긴장하며 필살의 일격을 준비했다.
움켜쥔 오른쪽 주먹에 거센 기(氣)가 휘몰아쳤다.
파산권(破山拳) 절초 폭렬신격(爆裂迅擊).
붉은 파도에 맞서 한줄기 회오리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천둥소리와 함께 두 개의 신형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비틀거리던 일광은 재빨리 고개를 들어 백묘진의 위치를 찾아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등을 돌려 십여 장 밖으로 벗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도주를 눈치챈 호법들이 분노의 고함을 내질렀다.
“네 이년, 어딜 도망가느냐!”
“명예롭게 맞서 싸워라!”
백묘진에게 호법들의 명령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설화의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일광은 정신을 차리며 그녀를 뒤쫓으려 했으나, 이미 그보다 빨리 움직인 인물이 있었다.
- 다롱이 좀 도와줘.
백묘진을 뒤쫓는 설화는 한 움큼의 비침을 꺼내어 들고 있었다.
그녀가 쫓아간 이상 걱정할 게 없었다.
‘우리 대장이 저 무시무시한 여인을 어떻게 유혹했을까.’
일광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산군과 싸우는 호법을 향해 다가갔다.
산군은 과거에 자신이 싸워서 이긴 적이 있던 영물이었으나, 또다시 맞붙는다면 승리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움직임이 달라져 있었다.
죽기 위해 덤볐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미 진이 빠져있던 호법은 산군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일광이 다가오자 최후의 싸움을 준비하는 듯했다.
“어이, 누렁이. 오늘 우리가 손발이 얼마나 맞는지 한번 시험해보자고.”
산군은 호법을 상대로 정신없이 앞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즉각적으로 응답해왔다.
크르르릉!
일광은 씨익 웃으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곧이어 그의 신형이 마치 불곰이 돌진하듯 목표물을 향해 질주를 개시했다.
* * *
무림에서 금지된 무공인 흉마살혼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제대로 적중당한다면 누구라도 즉사를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꽈아아앙-!!!
노파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뇌전이 공간을 휩쓸고 지나가는 듯했다.
“이놈!!!”
은화파파는 약이 바짝 올라있었다. 소무가 정면 대결을 피하며 회피 위주의 간접공격만 가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무는 노파의 주변을 빙빙 돌며 보법을 펼치고 있었다. 강기를 뿜어내면서 말이다.
은화파파도 계속해서 유백색의 서늘한 기류를 난사했다.
콰콰콰쾅-!!!
주변의 지면은 거센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전투는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파의 마음은 점차 불안해졌다. 뒤쫓아오던 극마들이 당도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변고가 있다는 것일 터.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부터 자신이 지나왔던 곳에서 거센 굉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승부를 보고 싶었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만 칠 테냐!!!”
은화파파는 얍삽하게 치고 빠지는 소무의 공격 방식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자신의 두 팔이 멀쩡했다면. 그리고 다리의 부상이 없었다면 분명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노파가 호통치는 틈을 노려 소무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기회만 노리던 그가 처음으로 근접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탈혼검법 이 초식, 전광추흔(電光追痕).
소무의 신형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전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가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돌진 초식이었다.
파앙-!
찰나의 순간 한 줄기 섬전이 은화파파를 스쳐 지나갔다.
스컥-!
덜렁거리는 왼쪽 소매가 잘려나간 소리였다.
돌발적인 기습에 은화파파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방어로 전환했다.
측면에서부터 검강을 난사하던 소무는 기세를 몰아 승기를 잡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고 있던 노파가 아니었다. 은화파파의 오른손에서 백색 강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소무의 접근을 차단했다.
콰쾅-! 콰콰콰쾅-!!!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던 은화파파는 흉마살혼조의 절초를 준비했다. 눈부실 정도로 광채를 발하는 노파의 오른팔. 거기에 담긴 무지막지한 내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네 이놈!!!”
심상치 않음을 느낀 소무도 검을 잡아당기며, 묵직한 초식을 준비했다.
탈혼검법 사 초식, 멸섬무흔(滅殲無痕).
짧은 한순간에 막대한 내공을 폭발시키듯 뿜어내는 필살의 일격이다. 그의 검 끝이 건곤(乾坤)의 기세를 머금으며, 우주를 그렸다.
그 순간 노파의 오른손에서 기(氣)의 파동이 파도처럼 뿜어져 나오며 소무의 전신을 덮쳐갔다.
콰아아아앙-!!!
마치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격돌소리였다.
이어지는 충격은 반경 십여 장 내의 나무를 꺾을 정도였으며, 튕겨 나간 돌멩이와 흙먼지가 이십여 장에 이르는 버섯구름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크윽.”
소무의 신형은 후방으로 주르륵 밀려나 있었다.
대장군의 갑주는 곳곳이 찢겨나가 있었으며, 등 뒤로 두른 붉은 피풍의는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휘날렸다.
‘뭐 이렇게 무식한 무공이 다 있단 말인가.’
입가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약간의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검을 다시 움켜쥐었다. 은화파파 또한 조금 전의 충격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둘은 동시에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천검마녀?’
소무는 의아한 표정으로 백묘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은 둘 중 하나일 터.
함께 온 동료들이 패배했다거나, 또는 혼자서 도망쳐왔거나.
아군과 적군의 전력을 모두 알고 있던 소무는 당연히 후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막을 알지 못했던 은화파파는 달랐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매복이 있었습니다, 파파!”
“호법들은?”
“아직 싸우고 계십니다. 저 보고 파파를 도우라고 하셔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은화파파는 백묘진을 자신의 옆에 세워 두었다.
소무와의 전투가 용호상박인 상황에서 극마의 합류는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백묘진은 은화파파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상처를 살펴보는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이곳에 부상이…….”
노파는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소무만 노려보고 있었다.
“신경 쓸 것 없다. 저놈을 쓰러트리기 전에는……. 크악!”
은화파파는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 백묘진의 검이 자신의 다리를 베었기 때문이었다. 상상조차 못 했던 기습이었다.
인상을 잔뜩 구긴 노파가 그녀를 움켜잡으려 했으나, 허공만을 휘젓고야 말았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순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바꾼 백묘진은 등을 돌려 멀어지고 있었다.
“이, 이년이 지금 무슨 짓을…….”
멀어져가는 백묘진의 내공 실린 고함이 야산을 메아리쳤다.
“나보다 서열도 낮은 늙은 괴물이 감히 누구에게 이년이라고 하느냐! 명령이니 거기 남아서 내가 후퇴할 시간을 벌어라!”
은화파파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떡하니 벌리고 뻥긋거렸다.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자신이 도망치지 못하고 이곳에서 시간을 벌도록 수작을 부린 것이리라.
마음 같아선 당장에 쫓아가서 백묘진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다리의 부상 때문에 경공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하나의 인영이 이곳으로 다가왔다.
백묘진을 추적하던 옥화신녀 연설화였다.
“할멈. 용케도 살아있었네?”
은화파파는 하나밖에 없는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먼 곳에서 호법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백묘진이 도망치고 연설화가 멀쩡하다는 것은 호법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뜻했다.
일이 글렀음을 직감한 노파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은 피할 수 없겠구나.”
“응. 확실해.”
은화파파는 최대한 친근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설화야.”
“더러운 주둥이로 내 이름 부르지 마. 짜증 나니까.”
“방금 호법들도 당한 모양이구나. 네가 없더라도 어차피 노부는 죽은 목숨이 아니더냐. 백묘진이가 저쪽으로 갔으니 어서 쫓아가서 잡아라.”
연설화는 소무를 바라보았다. 내상을 입은 듯 안색이 좋지 않았기에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소무는 괜찮다는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조심히 다녀와.”
곧 있으면 살왕과 일광이 당도할 터. 어차피 은화파파는 이미 어항에 잡아넣은 물고기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백묘진을 추적하는 게 더 유익한 일이었다.
“다쳐서 들어오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웃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투에서 진심이 느껴졌기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따가 집에서 보자고, 부인.”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설화는 마지막으로 은화파파를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끝날 질긴 악연이었다. 미운 정밖에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한 번 더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는 못 보겠네, 할멈. 이제 죗값을 받도록 해.”
이제 도망칠 수도 없는 몸 상태였다. 그토록 살아남아 복수하고자 몸부림치던 노파였지만, 막상 최후를 앞둔 이 순간에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감한 것이다.
“헐헐헐. 진일심소곡에 담긴 비밀은 풀었느냐?”
“아직 준비 중이야. 하지만 합주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어.”
“부럽구나…….”
설화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잠시 떠올랐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그녀는 다시 백묘진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은화파파가 그녀의 등 뒤를 향해 마지막 외침을 토해냈다.
“호양현 외곽에 신마교의 비밀지부가 있다! 반드시 그년을 잡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거라!”
이제는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점이었다.
소무는 은화파파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네가 먼저 지옥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군.”
“오너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소무의 신형이 튕겨지듯 은화파파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의 검 끝에 서린 검강이 잔상을 그리며 밝은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노파도 또다시 흉마살혼조를 정신없이 펼쳐댔다.
이 둘은 한 호흡에 십여 번이나 초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느 순간 둘 사이의 공간이 터져나가며 서로 거리를 벌렸다.
콰앙-!
“크윽.”
“윽…….”
비틀거리던 둘이 다시 서로를 향해 다가갈 무렵이었다. 돌연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다가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날카롭게 날이 선 발톱과 그곳에 서린 시퍼런 강기. 은화파파의 등 뒤를 덮치고 있는 것은 산군의 거대한 앞발이었다.
도저히 영물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히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소무 하나도 벅찬 마당에 등 뒤는 방어할 여력이 충분치 않았다. 노파의 전신에서 반탄강기(反彈罡氣)가 발출되며 산군을 튕겨냈다.
콰앙-!
그리고 기의 파동이 사그라지는 순간 노파의 측면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이어서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그림자.
도강을 머금은 한 자루의 태도가 서늘한 곡선을 그렸다.
서걱-!
“큭!”
살왕의 암습에 노파의 왼쪽 어깨가 한 치가량이나 베어졌다.
은화파파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면에서 소무의 연격은 끊이질 않고 있었으며, 설상가상 거대한 체구의 장수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만났네, 할망구. 각오는 되어있겠지?”
지난번에 노파에게 당한 상처로 며칠 동안 병상에 누워있었어야만 했던 일광이었다.
주먹을 움켜쥔 그도 은화파파를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