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나 이제 어떡해요 (1)
(191/250)
191화 나 이제 어떡해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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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나 이제 어떡해요 (1)
2022.08.10.
아미파의 외곽 어딘가의 매화나무 아래.
소소와 영영은 쪼그려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사람은 죽으면 다른 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난대.”
영영은 나뭇가지로 바닥을 긁어대며 조용히 되물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응. 좋지 않아?”
“나는 그냥……. 모르겠어.”
마치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소소는 친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은근슬쩍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
영영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되물었다.
“……다시 안 태어나면 안 돼?”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소소가 누구인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해야 했고, 듣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팔짱을 낀 소소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집요하게 물었다.
“안 돼. 빨리 말해봐.”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영영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나직한 한마디가 토해져 나왔다.
“구름.”
“왜? 구름은 아무것도 못 하잖아. 먹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대신 아무도 나를 건들지 못하잖아.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고.”
“응? 누가? 언니들이 건드려서?”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소소 너는?”
소소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는 듯했다. 오히려 물어봐 주니 좋아하는 눈치였다.
“나는 태어나면 새가 될래. 그래서 영영이 심심할 때 찾아와서 놀아줄 거야. 히히히히.”
“히히.”
소소는 처음으로 영영의 웃음을 보았다.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어두운 얼굴만 하고 있던 친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나 해맑은 웃음을 감추고 있었다니.
마음이 흐뭇해진 소소는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맨들맨들 거리는 촉감이 좋았다.
“부드러워.”
영영의 입가가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기분 좋아.”
“응? 왜?”
“누가 머리 쓰다듬어 준 거 처음이거든…….”
“부모님들은?”
“기억이 안 나.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나서 나만 겨우 살아났대. 그러다가 여기에 거둬진 거래.”
영영의 얼굴이 흉측하게 그을려 있는 것은 후천적인 일이었다.
소소는 그런 친구가 안쓰럽다는 듯 시무룩해졌다.
친구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었다.
“나도 머리를 밀어볼까?”
“왜?”
“친구는 원래 뭐든지 함께하는 거랬어.”
“그래도 괜찮아……?”
“응. 뭐 어때.”
소소는 영영을 따라 삭발을 해주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반 시진이 지난 후.
삭발을 담당하는 나이든 승려가 깔깔대고 웃었다.
“하하. 귀여워. 이렇게 동그란 두상은 처음 보네.”
주먹만 한 얼굴.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과 또렷한 이목구비가 귀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뭔가 어색한 소소는 자신의 머리를 계속 더듬어보았다.
미끈거리는 게 느낌이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이상했다.
소소는 영영을 보며 히죽 웃었다.
“나 어때?”
“히히. 잘 어울려, 소소야.”
둘은 따듯한 햇살 아래 잡담을 나누며 아미산을 산책했다.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한참 좋아질 무렵 돌연 누군가가 다가왔다.
자신들보다 키가 한 뼘 정도 더 커 보이는 삼대제자였다. 대략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너 이름이 소소라고 했지? 장문인께서 지금 찾아.”
“저를요?”
“응, 빨리 따라와.”
소소는 어리둥절하며 영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뭔가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영영이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안 돼. 너 혼자 오래.”
“휴.”
어쩔 수가 없었다. 소소와 영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짧은 작별을 고했다.
“금방 갔다 올게, 영영아. 숙소에서 기다려 알았지?”
태상장로가 같은 숙소에서 지낼 수 있게 허락해주었기에, 둘은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장문인의 지시가 있는 만큼 지금은 함께 갈 수가 없었다.
“응……. 잘 다녀와.”
소소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영영은 돌아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밝게 웃었던 얼굴과는 달리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그때였다. 돌연 멀지 않은 곳에서 곱지 않은 말투가 들려왔다.
“너 이리와.”
나무 아래에서 비구니 두 명이 손가락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영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자신도 잘 아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비구니들은 좌우에서 영영의 옷깃을 낚아채서 어딘가로 끌고 갔다.
도착한 곳은 아미파의 창고 중 하나였다. 삼대제자들이 교대로 경계를 서며 관리하는 곳이기도 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여섯 명의 비구니들이 이미 그곳에 모여있었다.
가장 안쪽에는 간이 침상에서 화령이 몸을 누이고 손톱을 손질하고 있었다.
“……나한테 왜 그래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뻐억-!
“으윽.”
영영은 배를 움켜쥐고 신음했다.
삼대제자들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린 축이었기에, 체구도 작았다. 저항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지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건방진 네 친구 말이야. 오늘 밤에 여기로 데려와.”
“싫어요.”
비구니들은 동시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명령을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거절을 하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라고?”
“아. 미치겠네.”
오늘따라 영영의 눈빛이 달랐다.
비록 알게 된지 며칠 안 되었지만, 모두가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준 유일한 친구가 바로 소소였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맞아 죽더라도 절대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내 친구는 괴롭히지 마세요!”
그 순간 누군가의 손바닥이 영영의 얼굴을 때렸다.
짜악-!
“윽.”
안쪽에서 화령이 눈길조차 안 주며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얼굴은 때리지 마라. 늙은이들이 눈치채면 곤란해.”
늙은이는 문주를 포함한 아미파의 원로들을 얘기한 것이리라.
화령을 따르는 비구니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누군가의 신호.
“밟아.”
그 순간 사방에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영영도 무공을 수련했지만, 감히 막아낼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퍽-! 퍼퍽-!
작은 체구는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바닥에 엎어졌다. 그런데도 발길질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퍽-! 퍽-! 퍼퍽-!
영영의 작은 손이 꽉 움켜쥐어졌다. 그것은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오늘은 신음도 안 내고 버티네?”
“해보자는 거야?”
“일으켜 세워.”
비구니들이 다시 영영을 일으켜 세웠다. 제대로 서지도 못할 정도로 휘청이는 모습이었다.
“한 번만 더 얘기한다. 오늘 저녁에 네 친구 여기로 데리고 와. 알았어?”
영영은 반쯤 풀린 눈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싫어요…….”
체구가 가장 큰 비구니가 앞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오늘 너 안 되겠네.”
이어지는 발길질이 다시 복부를 강타했다.
콰앙-!
“윽!”
넘어질 듯 뒷걸음질 치는 영영의 뒤에는 하필 화령이 누워있었다.
“더럽게 어딜 다가와.”
순간적으로 화령의 손이 활짝 펼쳐지며, 붉은 기류가 손바닥을 휘어 감았다.
곧이어 그것은 다가오던 영영의 등을 강타했다.
쩌엉-!
숨이 턱하고 막혀온 영영은 신음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단지 앞으로 쓰러져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인가 상황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비구니들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죽는 거 아니야?”
“야, 일어나 봐!”
“화령아, 얘 어떡해?”
화령은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다시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안 죽어. 아직은.”
“…….”
만약 죽기라도 해서 이 사실을 원로들이 눈치라도 챈다면 어떤 제재가 가해질지 몰랐다.
비구니들이 겁먹고 머뭇거리자, 화령이 일어서서 뒷짐을 지며 말했다.
“호들갑 떨지들 말고 나와. 연무장에서 몸이나 풀어야겠으니.”
* * *
삼대제자의 뒤를 따라다니던 소소는 어리둥절했다.
“여기는 아까 왔던 곳 아니에요?”
장문인을 만나러 간다고 하고선 같은 장소를 맴돌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게 이상하네. 아까 장문인께서 이 근처에 있었는데 말이야.”
소소는 말투에서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거짓말이죠?”
“뭐가?”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소소를 안내하던 비구니는 지금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말했다.
“속은 네가 바보지.”
“씨이…….”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돌연 소소의 오른발이 곡선을 그리며, 마주하고 있던 비구니의 발목을 후려쳤다.
찰나의 순간 이어진 쏜살같은 기습이었다.
콰직-!
내력을 거의 담지 않았음에도 상대는 단번에 꽈당하고 넘어져 버렸다.
“으아악!”
넘어진 비구니는 발목을 부여잡고 울음을 토해냈다. 뼈에 금이 갔는지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소소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영영을 찾기 위해 아미파를 이 잡듯이 헤집고 다녔다.
숙소에도 가봤으며, 아까 함께 갔던 산책로에도 가봤지만 오리무중이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당도한 곳은 화령이 무공을 수련하던 연무장이었다.
열댓 명의 비구니가 화령의 무공수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내 친구 어디 갔어요?”
연무장의 비구니들은 소소에게 눈길조차 안 주며 대꾸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
“꺼져.”
한숨이 나왔다.
“휴.”
숙소로 돌아온 소소는 영영을 기다렸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걱정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길 반시진이 더 지났을 때였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눈이 반쯤 감긴 초췌한 모습의 영영이 모습을 보였다.
“영영아, 어디 갔다 왔어?”
“응……. 그냥 잠시 어디 좀…….”
영영은 말끝을 흐리며 침상으로 가 담요를 덮고 누웠다. 게다가 몹시 피곤한 듯 그 상태로 곯아떨어졌다.
소소는 어리둥절하며 지켜보다가 옆에 드러누웠다.
뭔가 이상하고 찜찜했지만, 자는 친구를 깨워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을 때였다.
“구해줘……. 나 너무 힘들어…….”
소소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친구를 살펴보았다.
그냥 잠꼬대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상해진 소소는 영영을 안아주었다.
그렇게 새벽이 찾아오고 새벽닭이 울 때쯤 소소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그 순간 무엇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친구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미약해지는 숨결까지.
“영영아!”
화들짝 놀란 소소는 담요를 걷어내고 친구의 상세를 살폈다.
영영은 미동조차 없었다. 분명히 죽어가고 있었다.
당황한 소소는 머릿속이 정지했다.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죽으면 안 돼. 영영아…….”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기에 친구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잠시 후 영영의 법의를 걷어 올려본 소소는 화들짝 놀랐다.
시퍼렇게 물든 피멍들. 피부가 찢어지고 터진 곳까지 멀쩡한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화후가 높진 않더라도 무공을 익히는 몸이 이 정도의 상처로는 죽을 리가 없다. 갑작스럽게 상세가 악화된 결정적인 이유는 등 뒤에 남아있는 붉은 손바닥 자국이 남긴 내상이었다.
“…….”
갑자기 소소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 머릿속을 서서히 지배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영영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문득 한 가지 떠오른 방법이 있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이것 말고는 시도해 볼 만한 것이 없었다.
‘미안해요, 아저씨. 그렇지만 친구를 죽게 할 순 없잖아요…….’
살왕 백리현. 그가 자신에게 맡긴 살문의 보물 생유환이었다.
내공을 증진시켜 주고, 내상을 즉시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영영의 입을 벌린 소소는 생유환을 입에 쏙 밀어 넣었다.
“어서 먹고 힘내, 영영아.”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차갑게 식어가는 영영의 전신이 화로처럼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친구의 몸속에서 휘몰아치는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다.
‘운기조식을 시켜야 해.’
영영을 앉혀놓은 소소는 뒤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등에 밀착시켰다.
아버지가 매일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내공 수련을 도와주었다. 어떤 순서대로 진기를 이동시켜야 하는지는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수백 번이나 반복해왔던 행동이었다.
소소는 경험을 되짚어 영영의 몸속에서 요동치는 진기를 천천히 일주천시켰다.
내단의 힘이 엄청났기에, 고작 한두 번 일주천 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날이 밝도록 같은 행위가 계속되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소소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진이 더 지난 후 드디어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휴…….”
영영은 아직 눈을 뜨지 못했지만, 혈색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친구를 조심스럽게 눕힌 소소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심력의 소모가 엄청났지만, 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벌컥-!
소소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아미파의 비밀병기로 키워지는 화령의 전용 연무장이었다.
한달음에 도착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의 위치를 보니 대략 오(午)시쯤 되어 보였다.
연무장에 없다면 식당에 있을 터.
망설임 없이 달려가 공식전(共食殿)의 문을 벌컥 열어 재꼈다.
콰앙-!
예상대로 화령을 포함한 열댓 명의 비구니들이 깔깔대고 앉아 있었다.
소소의 모습을 확인한 비구니들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증발하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쪼그만 게 입구에서 씩씩대고 있는 모습이 불쾌하고 가소로웠다.
“너 뭐야?”
“어이가 없네.”
이들에게 맞았던 영영의 모습을 상상하던 소소는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언니들이 내 친구 영영이 때렸어요?”
가장 안쪽에 있던 화령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소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지금 전부 밖으로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