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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나 이제 어떡해요 (2) (192/250)


192화 나 이제 어떡해요 (2)
2022.08.11.


체구가 가장 큰 비구니 한 명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어서 검지를 내뻗어 반짝반짝 빛나는 소소의 머리를 콕콕 밀어댔다.

“요것 봐라. 밖으로 나오라고? 나왔다. 어쩔 건데?”

동그란 머리가 오뚝이처럼 밀려나고 올라서고를 계속했다.

세 번이 반복되었을 찰나 소소의 미간이 가운데로 모이며 내 천(川)을 그렸다.

“영영이한테도 이렇게 했어요?”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보여줄까?”

“아니요. 지금부터는 내가 보여줄게요.”

돌연 소소의 왼손이 머리를 찔러대던 손가락을 낚아챘다. 화들짝 놀란 비구니가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무엇인가가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둑-!

“으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공식전을 가득 메웠다.

지켜보던 비구니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무렵, 움켜쥔 소소의 주먹이 상대의 복부에 쑤셔 박히고 있었다.

파산권 일초식 일타격산(一打擊山)이었다.

쩌엉-!

“……끄억.”

종소리와 함께 비구니의 상체가 새우처럼 굽혀졌다.

숨이 턱하고 막혀온 비구니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켜보던 화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만약 소소가 힘을 조절하지 않았으면 즉사했을 것임을 눈치챈 것이다.

“다른 언니들도 밖으로 나와요.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갈 거예요.”

잠시 기다리던 소소는 쓰러진 비구니를 뒤로한 채 터벅터벅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안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콰앙-!

언제나 열려있는 공식전의 문이 닫힌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소소가 허리춤에서 퉁소를 뽑아 꽉 움켜쥐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요. 지금부터 내가 언니들한테 벌을 내려줄 거예요.”

작은 발이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비구니들도 흠칫하며 한 걸음씩 물러섰다.

그때 뒤에서 소름 돋는 화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 번에 덮쳐 병신들아. 지금부터 뒷걸음질 치면 나한테 죽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구니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동시에 소소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얍!”

“죽어!”

가장 먼저 두 명의 비구니가 짓쳐왔다.

좌우에서 두 개의 손바닥이 날아드는 순간 소소의 신형이 그림자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살문의 경신법인 암보(暗步)였다. 예전과는 달리 굉장한 수준이었다.

“뭐, 뭐야?”

“어디 갔어?”

찰나의 순간 한 줄기 검은 기류가 비구니들의 전신을 폭풍처럼 휘감기 시작했다.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뿜어져 나왔다.

투콱-! 콰콰콰콱-!!!

검은 기류가 비구니들을 통과하여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왼손을 뒷짐 진 소소가 퉁소 끝에 맺힌 핏방울 하나를 털어냈다.

툭-!

그 순간 등 뒤로 비구니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풀썩-! 풀썩-!

비명조차 없었다.

압도적인 무력. 그 앞에 비구니들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화령이 머뭇거리던 한 비구니의 등을 밀쳐냈다.

“뭐해, 등신들아!”

등 떠밀려온 비구니가 앞발을 내지르고 있었다.

날카롭고 빠르다는 아미파의 비진퇴법(飛進腿法)이었지만, 얼떨결에 펼친 동작에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리가 없었다.

굼벵이처럼 느린 움직임. 소소의 왼손이 날아오는 발목을 낚아챘다. 동시에 퉁소가 반월을 그리며 상대의 오른쪽 발목을 강타했다.

콰앙-!

“아아아악!”

바닥에 나자빠진 비구니는 고통의 비명을 토해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발목이 부러진 듯했다.

남은 비구니들은 화령을 포함하여 다섯 명. 소소가 퉁소를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으며 물었다.

“어때요? 아프죠? 영영이도 이렇게 아팠어요.”

화령의 눈에 서린 살기는 오히려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네.”

비구니들의 틈새를 비집고 내기(內氣)를 가득 머금은 젓가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심을 품었는지 급소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소소의 왼손이 잔상을 그리며 목젖 앞에서 젓가락을 낚아챘다.

콰악-!

“언니가 그런 거죠? 영영이 등 뒤에 손바닥 자국.”

우둑-! 우두둑-!

소소는 손에 쥔 젓가락을 잘게 부수고 있었다.

수십 조각으로 나뉜 조각들을 양손에 움켜쥐고는 물결을 그리듯 잡아당겼다.

정파 고수들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간 마교 최강의 암기술, 마화비전(魔華飛電). 지금 소소가 그리는 동작은 일 초식 유설만개(油雪滿開)였다.

곧이어 양손에서 쏘아진 수십 개의 나뭇조각이 눈보라처럼 산개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사방으로 비산하는 조각들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비구니들의 몸에 틀어박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푹-! 푸푸푹-!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에 급소에 적중된 것은 없었다. 하지만 팔다리에 꽂힌 나무 조각들은 고통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으윽!”

“아아악!”

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뒹구는 비구니들 사이로 화령 혼자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용케도 자신에게 날아온 조각을 피해낸 것이다.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조각 하나가 얼굴을 스쳤는지, 뺨을 타고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을 느낀 화령은 두 눈이 점차 붉어졌다. 억누르던 천살성(天殺星)의 살심이 발동한 것이다.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이 정도에 겁먹을 소소가 아니었다.

“두들겨 맞을 준비나 해요.”

화령의 양손이 붉게 타올랐다. 비무대회를 위해 전수받고 있던 아미파의 신공 중 하나인 적문신장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비구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소소는 퉁소 대신 날이 없는 소검(小劍)을 뽑아 들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화령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왔다.

콰앙-!

어렵지 않게 막아내긴 했으나 생각보다 묵직한 일격이었다. 소소는 뒷걸음질 치며 자세를 다잡았다.

위협적인 연격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삼촌들과의 대련과 비교한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얍!”

회전하는 검 날이 화령을 밀쳐냈다.

콰앙-!

그 순간 소소가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허공을 한 번 휘저은 검 끝은 곧 직선으로 서서히 뻗어 나가며 검무를 그려나갔다.

한번 펼치면 쉽게 멈출 수 없는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의 기수식이었다.

화령의 양손에서도 붉은 기류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잠시 후 둘의 신형이 뒤섞이며 본격적인 격돌을 시작했다.

* * *

벌컥-!

일다경이 지나고 나서야 공식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어린 비구니 한 명이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밖에는 비구니들 수십 명이 모여 웅성거렸다. 밥을 먹으러 왔다가 소란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던 삼대제자들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세상에……. 쟤 화령이 아냐?”

걸어 나오는 소소는 왼팔이 불편한 듯 오른손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화령과의 싸움에서 약간의 경상을 입어 뻐근했기 때문이다.

겁에 질린 비구니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몇 걸음을 걷던 소소는 등 뒤를 쓱 돌아보았다.

공식전의 내부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멀쩡한 식탁과 의자는 하나도 없었으며, 잔해 속에 열 명의 비구니가 드러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처참한 몰골을 한 비구니가 있었으니, 바로 화령이었다.

승부는 진즉에 났으나 굴복하지 않고 계속 덤볐기에 적당히 끝낼 수가 없었다.

퉁퉁 불어터진 얼굴과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리는 코피까지. 곤죽이 된 몰골은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도 야차처럼 붉어진 눈동자에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글거렸다.

“내가 꼭 널 죽일 거야…….”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한숨을 내쉰 소소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전낭에서 엽전 한 닢을 꺼냈다.

이어서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엽전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공식전 안으로 날아갔다.

이미 녹초가 된 화령에게 그것을 피할 기력 따위는 없었다.

타앙-!

내력이 실린 엽전이 이마에 적중하자, 화령은 정신을 잃으며 풀썩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면 그걸로 탕후루나 사 먹어요.”

볼일을 마친 소소는 재빨리 숙소로 달려갔다. 곧 있으면 아미파의 원로들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질 터. 엄청난 짓을 저지른 이상, 더는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

벌컥-!

숙소의 문이 열리니 어느새 영영이 일어나 앉아 있었다.

“영영아, 괜찮아?”

“응. 근데 소소야, 나 이상해. 몸이 가벼워.”

살문의 생유환을 복용하여 내공이 증진되었으니 가벼울 수밖에.

소소는 옷가지 등 자신의 짐을 챙기며 말했다.

“영영아, 나 여기서 나가야 해.”

“……왜? 그게 무슨 소리야?”

“무서워. 아버지한테 가야겠어.”

비구니들의 팔다리를 부러트려 놓고, 초죽음을 만들어 놨으니 뒷감당이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중에는 아미파의 원로들이 애지중지하는 화령이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빨리 부모님한테 달려가서 보호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도 데려가면 안 돼?”

그렇지 않아도 소소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이제는 무서울 게 없었다.

“같이 가도 괜찮아?”

“여기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나는 이 세상에 친구가 너밖에 없어.”

어차피 영영을 혼자 두고 가면, 화령이한테 맞아 죽을 게 뻔했다.

“그럼 같이 가자. 내가 좋은 친구들 소개시켜 줄게.”

“응…….”

영영도 아미파를 탈주하기 위해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잠시 후 봇짐을 등에 둘러멘 아이들이 문밖을 나서는 찰나였다. 마침 누군가가 이곳을 찾아오고 있었다.

소소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안내해주었던 일대제자 혜인이었다.

“언니…….”

“소소야, 어디 가려는 거야? 영영이랑…….”

마음은 급했지만, 자신에게 따듯하게 대해주었던 인물이었다. 무시하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소소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설명해주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던 혜인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화령이를 때려 눕혔다고? 아주 속이 시원하구나. 잘했어.”

그렇지 않아도 아미파의 모든 일대 제자들이 벼루고 있던 시건방진 사매였다. 혜인은 막힌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어떡해요…….”

“곧 있으면 장로님들이 올 거야. 내가 시간을 벌어볼 테니까 어서 빠져나가.”

“그냥 가도 괜찮아요?”

“장로님들한테 발각되면 영영이는 떠날 수 없어.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

“네, 언니…….”

혜인도 잘 알고 있었다. 영영이 혼자 남으면 화령한테 해코지를 당할 것을 말이다. 그래서 보내주고 싶었다.

혜인은 겁먹은 영영을 바라보며 포근한 미소로 말했다.

“사매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해보겠구나.”

영영은 붙잡을 줄 알았던 사저가 흔쾌히 보내주려 하자 안도했다.

“…….”

“이곳에서 좋지 않은 추억만 가지고 나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구나.”

“아니에요.”

“다 이해한다. 사부님들은 밖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라 말하지만, 친구와 함께라면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다신 이곳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행복하게 살아.”

기어코 영영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고맙습니다…….”

“낙산각 뒤의 오솔길 알지?”

영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으로 돌아서가. 어서 출발해!”

혜인과 작별을 고한 아이들은 등을 돌려 내달렸다.

사고를 치고 도망가는 아이들이었지만, 얼굴은 여느 때보다 밝았다.

“가자, 영영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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