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나 이제 어떡해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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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나 이제 어떡해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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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나 이제 어떡해요 (3)
2022.08.12.
아미파를 빠져나온 아이들은 하루를 달려 성도의 시장에 도착했다.
한중이나 장안의 시장만큼은 아니었으나,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곳이기에 나름 활기찬 도시였다.
소소와 영영은 잡화를 파는 노점상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거 얼마예요?”
“여섯 냥이란다.”
“살게요.”
노점상 주인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소소에게 작은 죽립 두 개를 내밀었다.
“성불하세요.”
“아저씨도 성불하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이 어린 비구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집중되었기에 죽립을 구매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영이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불안해하기 때문이었다. 죽립이라도 씌어주면 친구의 기분이 나아질까 해서 사본 것이다.
“영영아, 나 잘 어울려?”
“응. 나는?”
“멋있어. 히히.”
아이들은 두리번거리며 시장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배고프지?”
“……응.”
아미파를 떠나온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모처럼 시장을 발견했으니 뭐든 배를 채우는 게 시급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객잔이 보였다. 용현객잔이란 현판이 걸린 이 층 구조의 전각이었다.
소소는 어른들을 따라서 많이 다녀봤기에 익숙했다.
“가자 영영아. 저기서 먹을 수 있어!”
“응!
입구에서 호객 몰이를 하던 점소이가 킥하고 웃었다.
밤톨만 한 여자아이 둘이 허리에 검을 차고 죽립을 쓰고 있는 모습이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하. 너희들 뭐야? 요즘 애들은 그렇게 입고 노는 게 유행이니?”
소소가 죽립을 들어 올리며 방긋 웃었다.
“멋있어요?”
“그래, 제법 그럴싸하구나. 이곳엔 무슨 일이야?”
“배고파서 왔어요, 아저씨.”
“돈은 있고?”
소소는 품속에서 전낭을 꺼내서 흔들어 보였다. 설화가 소무 몰래 챙겨준 돈이었다.
쩔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있는 것이 확실했다.
“돈만 있다면 안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용현객잔에 온 것을 환영한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점소이를 따라 객잔으로 들어갔다. 열두 개의 식탁들. 거기엔 가지각색의 손님들이 반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점소이는 창가에 자리를 안내해주며 물었다.
“우리 꼬마 검객님들, 무엇을 드릴까요?”
소소는 검지와 중지를 내밀며 소리쳤다.
“우유 두 잔 주세요! 그리고 국수 두 그릇! 오리고기도 있어요?”
“오리를 일곱 가지 채소와 함께 볶은 용현칠압채(龍玄七鴨菜)를 추천하마.”
“네, 좋아요! 빨리 주세요. 히히.”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소소와 영영은 젓가락을 움켜쥐고 애타게 기다렸다. 먼저 나온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말이다.
일다경이 지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아이들의 입에서 군침이 흘러내렸다.
“잘 먹겠습니다~”
소소는 자신의 얼굴보다 큰 국수그릇을 움켜쥐고 흡입하다시피 했다.
정신없이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영영을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죽립을 벗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얼굴의 화상 자국을 가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기에 소소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러길 잠시 후.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탁-!
젓가락을 내려놓는 소리였다.
영영이 고개를 들어 의아한 눈빛으로 소소를 바라보았다.
“……?”
“걱정하지 마, 영영아. 얼굴을 다시 예쁘게 만들 방법이 있어.”
“……응? 어떻게?”
소소가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환골탈퇴.”
물론 영영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뼈와 살이 재구성되어 신체가 새롭게 태어나는 현상으로 깨달음을 얻거나, 임동양맥이 타통되어야만 가능한 현상이다.
이미 소소는 환골탈태를 경험했고, 아버지한테 내용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해?”
“나도 이미 했대. 우리 아버지한테 가면 알려줄 거야.”
생유환을 복용하여 일 갑자의 내공을 보유한 영영이라면, 소무가 강제로 임독양맥을 타통시키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물론 적지 않은 심력이 소모되기에, 일을 마치고 나면 소무도 하루 정도는 요양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일말의 희망이 생겼기 때문일까? 영영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소소가 젓가락으로 오리고기를 집으며 은근슬쩍 물었다.
“근데 이거 한번 먹어 볼래?”
“응? 고기……?”
한 번도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던 영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리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미파를 떠나 온 이상, 그곳의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고민하던 영영은 오리고기 한 점을 입속에 넣었다. 조심스럽게 오물거리더니 곧이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맛있어!”
소소는 영영의 접시에 오리고기 몇 개를 더 올려주며 말했다.
“빨리 먹구 가자. 우리 집에 가면 내 동생 다롱이도 보여줄게.”
“응!”
* * *
장안성 내 어느 집의 마루에 두 여인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연설화와 동생 연초희였다.
얼마 전 초희는 담장 너머로 보이는 바로 옆집을 구매해서 이사를 왔다. 그렇기에 틈만 나면 찾아와 언니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은 설화원의 교육이 없는 날이기에 모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할멈이 죽었다고?”
설화는 차를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평생 나쁜 짓만 골라서 하더니 잘 갔지 뭐.”
지금껏 은화파파의 손에 무고하게 죽은 자들이 수천 명이었다.
특히나 초희는 어린 시절 노파에게 감금되다시피 길러진 충격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기지 않았던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죽었어?”
설화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당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를 한 번 응시했다.
“나도 보지는 못했어. 다롱이한테 잡아먹혔다던데?”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산군은 거대한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백묘진은?”
“놓쳤지 뭐. 어이가 없더라. 국경까지 넘어서 도망칠 줄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잖아. 비밀지부만 찾아내서 쓸어버리고 돌아왔어. 근데 초희야.”
“응?”
“너도 이제 짝을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혼자서 궁상맞게 살려고?”
초희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
“한 명 있잖아. 덩치가 산만 한 녀석. 생긴 거랑 다르게 의리도 있고 괜찮은 것 같더라.”
순식간에 붉어진 초희의 얼굴은 마치 홍당무 같았다.
그때 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언니, 손님 온 거 같은데?”
설화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익숙한 기척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그녀는 마루에서 내려서며 말했다.
“손님이 아니고, 집주인이 왔어.”
끼이이익-!
대문이 열리고 꼬마 무사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왼쪽에 있던 아이가 설화에게 달려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엄마!”
소소의 죽립이 벗겨지며 맨들맨들하게 빛나는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설화는 웃음을 참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가 우리 딸의 머리를 밤송이로 만들어놓았을까, 겁도 없이. 그래도 잘 어울리니 다행이구나.”
성장기의 아이였으니 머리카락은 금방 다시 자랄 것이다. 궁금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한 달간 머무르기로 한 아미파에서 벌써 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달이 있었음을 뜻했다. 내용은 천천히 들어보면 될 터. 급할 것은 없었다.
소소가 설화에게서 떨어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산군이 달려와 덮쳤다.
“으앗!”
거대한 범의 아가리가 빛나는 소소의 머리를 입에 물고 핥아댔다. 동글동글한 머리가 귀여운 모양이었다.
“먹는 거 아니야!”
설화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한 소소는 흠뻑 젖은 머리를 닦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친구도 데려왔어요.”
“그래, 잘했구나.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문 앞에서 쭈뼛쭈뼛 서 있던 영영은 설화의 안내를 받으며 어색하게 들어갔다.
잠시 후, 방 안에서 네 명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당연히 시선은 영영에게 집중되었다. 아직도 죽립을 벗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죽립으로 가린다고 한들, 코앞에 앉아있는 설화에게까지 이목을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죽립 안에 감춰진 얼굴을 꿰뚫어 보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으니 벗어 보아라.”
“…….”
마교에서 자라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설화와 초희였다.
열기에 그을린 흉한 얼굴이 드러났지만, 그녀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지켜보던 초희가 영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쁜 얼굴을 갖고 태어났으니 부끄러워할 것 없어. 이름이 뭐니?”
“영영이요…….”
“이름도 예쁘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니?”
영영은 조심스럽게 소소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직접 설명하기가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냐면요…….”
소소는 아미파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화령 패거리의 만행부터 시작해서, 영영이 죽을 뻔했던 사건까지.
물론 공식전에서 싸운 일은 최대한 축소해서 얘기했다.
일각이 지나고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초희의 얼굴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초희 이모, 울어요?”
흐느끼던 초희는 옆에 있는 영영을 안아주며 토닥거렸다.
“고생 많았구나, 아가. 잘 도망쳐 왔다.”
그녀는 영영에게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고 있었다.
대인기피증이 생겼을 정도로 어두웠던 자신의 과거가 앞에 있는 아이와 겹쳐 보였기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곧이어 영영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괜찮다, 아가. 울어도 괜찮아…….”
한번 복받쳐 오른 영영의 감정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포근함. 그리고 그동안 참아왔던 서러움이 한 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외롭게 자란 아이는 처음으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가족이 상봉한 것 같은 광경이었다.
설화와 소소는 두 눈만 끔뻑거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다경이 흐르고 나서야 둘의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된 듯했다.
멍하니 지켜보던 설화가 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튼, 비구니들을 때렸다고? 어느 정도나?”
얼마나 심하게 싸웠으면 도망쳐 왔단 말인가.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니들 코에서 피가 났어요. 그리고 나도 맞았어요.”
소소가 소매를 걷어서 왼쪽 어깨를 보여주자, 긁힌 자국이 있었다. 흉터는 남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괘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딸을 이렇게 할퀴었는데, 코피 정도는 고맙게 생각해야지. 어쨌든 잘했구나.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녀석들은 혼내줄 필요가 있지. 다시는 못 그러게 확실하게 때려줘야 해.”
초희가 영영을 안은 채로 다급히 말했다.
“언니, 애들한테 그렇게 가르치면 안 돼. 여긴 마교가 아니야.”
“내 말이 맞아. 기어오르는 놈들에게 참고 당하기만 한다면 배로 돌아온다.”
“아무튼 언니. 이 아이는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어도 되지? 설화원에 적응하려면 선생인 내가 직접 돌봐주는 게 좋을 거야. 바로 옆집이니까 소소랑 거리도 가깝고.”
“네가 외로워서 그런 건 아니고? 아이한테 직접 물어봐야지.”
모두의 시선이 영영에게 향했다.
영영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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