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어디 마음대로 해봐 (2)
(199/250)
199화 어디 마음대로 해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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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화 어디 마음대로 해봐 (2)
2022.08.18.
소무는 뒷짐을 쥔 채 적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관문에 배치된 병력은 사천 명이었지만, 적군은 얼추 보아도 이십여 배에 달했다.
수비병들은 압도적인 인원수에 긴장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쿵-! 쿵-! 쿵-! 쿵-!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휘나라의 진영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백여 대의 수레들. 그 안에는 조각난 흑연목이 가득 실려 있었다.
수레 한 대당 열 명이 달라붙어 선두에서 거침없이 돌진해왔다. 지면이 울리며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두두두두-!!!
수레 뒤로는 사다리를 움켜쥔 보병들이 벌떼처럼 뒤따르고 있었다.
강노부대의 지휘관이 소무 옆으로 달려와 말했다.
“강노로 수레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장군.”
“그럴 필요 없으니 대기해.”
“허나 저 수레들이 관문 아래에 도착한다면…….”
소무는 뒤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마른풀과 나뭇가지가 한 아름씩 묶인 채 잔뜩 비축되어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전술이라도 상대에게 간파되면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지. 이미 우리가 대비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관문 위에서는 다가오는 적들에게 어떠한 견제도 하지 않았다. 강노용을 제외한 궁수들의 화살이 모두 소진되었기에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수레가 관문의 벽에 부딪히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갔다.
쿵-! 쿠쿵-!!!
이어서 휘나라의 진영에서 불화살이 날아올랐다.
푹-! 푸푸푹-!!!
수레에 불이 붙자 자욱한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오르며 구름처럼 퍼져나갔다.
잠시 후 관문 위의 수비병들은 시야가 차단되어 아래를 확인하기가 어려울 지경까지 이르렀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상에서 적군의 함성이 진동했다.
“와아아아!!!”
“돌격하라!!!”
곳곳에서 사다리가 걸쳐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수백여 개가 걸쳐진 듯했다.
적들이 올라서기 전에 사다리를 쳐내야 하지만, 시야가 차단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수비병들이 당황하며 웅성거렸다.
“X발, 어떡해?”
“이래서 어떻게 싸워?”
“이런 비겁한 새끼들…….”
무기력해진 병사들은 적루에 있는 소무를 바라보았다. 뒷짐을 지고 있는 대장군은 지금 상황이 별거 아니라는 듯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잠시 후 그가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이니 당황할 필요 없다.”
속삭이듯 중얼거린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모두의 귓가에 똑똑히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뒤, 그가 처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적들에게 함부로 불장난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어라.”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병사들이 어리둥절하며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관문의 끄트머리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히이이이잉-!!!
수비병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새벽에 관문 위로 올려놓았던 전투마였다. 그 위에서 말고삐를 움켜쥔 양강이 왼손에 횃불을 움켜쥔 채 질주를 개시하고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우렁찬 굉음을 토해냈다.
그는 뒤쪽으로 늘어서 있는 더미에 불을 붙이며, 관문 위를 전력으로 내달렸다.
“머뭇거리지 말고 투척해!!!”
정신이 번쩍 든 병사들은 불이 붙은 더미를 움켜쥐고 관문 아래로 내던졌다.
“서둘러!!!”
마른풀과 함께 묶은 나뭇가지 더미였다. 조금만 지나도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기에 병사들은 미친 듯이 움직이며 그것을 던져댔다.
준비해놓은 더미를 모두 던졌을 때쯤 적들이 연무를 뚫고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본격적으로 백병전이 시작된 듯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개처럼 차올랐던 희뿌연 연무가 돌연 검은 연기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콜록! 콜록!”
“크억!”
사다리를 타고 오르던 병사들의 신음이었다. 더 이상은 시야를 가리는 연막이 아니었다. 검은 연기는 병사들의 폐부를 파고들며 정신을 뒤흔들어놓았다.
곧이어 사다리를 오르던 적병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우박이 쏟아져 내리듯 점차 빨라졌다.
관문 위의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가 되는 듯했다.
백약이 기쁨에 찬 표정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성공입니다, 대장군!”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내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단지 적의 진격을 저지했을 뿐, 이것으로 고작 얼마나 피해를 줄 수 있겠는가.”
“하오면…….”
백약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소무가 검을 뽑아 들며 연기 속으로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관문 아래로 뛰어내린 것이다.
“……장군?”
그가 두 눈을 끔뻑이고 있을 무렵, 소무는 지상에 내려서 있었다.
아래에도 자욱한 연기가 진득하게 깔려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소무는 묵묵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당황한 휘나라의 병사들은 호흡을 고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시야가 차단되어 방향을 잃은 것이다.
‘반각.’
연기가 걷히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소무의 신형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병사들의 사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파팟-! 파파파팟-!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폭풍처럼 메아리쳤다.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곳곳을 울려댔다.
“크악!”
“으아아악!”
적들을 죽일 필요까진 없었다. 단지 신체의 일부를 끊어놓았을 뿐이었다. 그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으니.
한 호흡이 지날 때마다 공격받은 병사들은 십수 명에 이르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를 동반한다.
상황이 이쯤 되자 병사들은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적, 적들이 쳐들어 왔다!”
“다, 다가오지 마!”
“크헉!”
급기야 공포에 질린 일부 병사들이 사방을 향해 무기를 휘둘러댔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점차 번져만 갔다.
자신이 살기 위해선 다가오는 누군가를 베어야만 한다. 서로가 아군의 등을 쑤시는 일이 속출하며 아비규환(阿鼻叫喚)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급해진 것은 지휘관들이었다.
“연기는 곧 있으면 사라질 테니 당황하지 마라!”
“주변엔 모두 아군이야! 공격하지 말고 다들 가만히 있어!”
몇몇 장수들이 연기 속으로 난입하여 말려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모두 엎드리고 있어! 이곳에 적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이 병…… 컥!”
“뭐, 뭐야……. 크헉!”
고맙게도 장수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들은 소무에게 있어서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무려 다섯 명의 장수를 벤 소무는 연기를 뚫고 반대편으로 빠져 나왔다. 아직 공격에 합류하지 않은 수많은 병사가 넋을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적군이 혼란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적장의 목을 벨 기회였다.
지면을 박차고 도약한 소무는 허공에서 적진을 쭉 훑어보았다. 머뭇거리고 있는 수만 명의 병사들. 그들의 중심부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타앗-!
목표를 정한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소무는 병사들의 머리를 짓밟으며 쏜살같이 나아갔다.
한 호흡에 삼십여 장을 전진하는 가공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적진의 진영 중심부. 푸른 갑주를 걸친 정예병들의 틈새에 지휘봉을 움켜쥐고 있는 인물이 목표였다.
‘군단장 마휼.’
그는 교활한 전술가로,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죽여 놓아야 했다.
그의 발끝이 한 병사의 어깨를 짓밟고 새처럼 날아올랐다.
어깨 위로 검을 잡아당긴 순간 호위병들의 동공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단련된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기를 움켜쥐고 있을 때는 이미 소무의 검이 초식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화살 모양으로 변한 붉은 강기가 십여 명의 병사들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콰쾅-! 콰콰콰콱-!
그들이 쓰러지기도 전에 소무는 적장의 측면에서 폭풍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써컥-!
검강을 머금은 검 끝이 하늘을 향했다. 동시에 마휼의 수급이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다.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렇게나 쉽게 풀리다니.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병사들의 얼굴을 보니 틀림없었다.
“대역이로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마휼은 대역을 세운 것도 모자라 함정을 파놓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으로 진법이 펼쳐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보통 교활한 상대가 아니었다.
푸른 갑주를 움켜쥔 백여 명의 병사들이 장창을 움켜쥔 채 자세를 잡았다.
이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휼의 친위부대 청살대(靑殺隊). 그들의 대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검은 술이 장식된 투구를 눌러쓴 인물이었다.
“자신의 꾀를 자만하는 자일수록 함정에 더 잘 빠지는 법이지.”
청살대의 대장과 부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은 화경이었다. 휘하의 병사들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초인을 상대로 한 진법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듯, 그들의 움직임은 하나가 되어 있었다.
마휼의 위치를 찾아보았지만, 어딘가에 위장해 있을 그의 위치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까지 예측하고 대비했단 말인가?”
“나도 처음엔 그분의 우려가 과하다고 생각했다. 허나 지금은 이해할 수 있군. 대어를 낚기 위해선 충분한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백여 자루의 창끝에서 광채가 서렸다. 소무의 팔방을 포위한 그들은 천천히 주위를 맴돌았다.
“그럼 다음에 벌어질 일도 예측했을까?”
“물론. 네놈이 신이라 해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던 소무는 말없이 피식 웃었다.
“뭐가 웃기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적진의 한복판에 단신으로 오면서, 이런 상황을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았을까?”
소무의 여유로움에서 청살대의 대장은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너희들이 무슨 짓을 꾸미든 애초부터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말이다.”
“오만하구나!”
소무가 검을 비틀어 쥐었다. 그러자 태양 빛을 머금은 검 끝이 진동하며 맑고 웅장한 검명(劍鳴)을 토해냈다.
찌이이이잉-!
“한번 시험해 봐. 오만인지 아닌지.”
더는 대화가 무의미했다. 청살대의 대장이 창을 움켜쥐는 순간, 진법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에서 백여 자루의 창날이 살기(殺氣)를 머금으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은 당황했을지도 모르지만, 반년의 폐관 수련을 마친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쳐라!”
외마디 고성과 함께 열 명의 청살대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사방에서 십여 가닥의 창기가 날아들며 소무의 전신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푹-! 푸푹-!
소용돌이치는 창끝은 애꿎은 공기만을 갈라냈을 뿐이었다.
소무는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동작이 너무 빨라 피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뒤로 물러서는 첫 번째 열의 틈새로 또다시 십여 가닥의 창기가 쇄도해 들어왔다. 그러나 헛손질을 하기는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푹-! 푸푸푹-!
팔방을 포위한 진법에서 날카로운 공격이 폭풍처럼 쏟아져 왔지만, 소무의 갑주조차 스칠 수가 없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공격하는 청살대가 오히려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장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적호병들을 이동시킨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구나. 차라리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저자에게 맞섰어야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한들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스러운 고수였다. 그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어느 순간 소무의 전신에서 황금빛 기막(氣膜)이 원형으로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앙-!
반탄강기보다 상위 무공으로 알려진 반야기공(反惹氣功)이었다. 소무도 실전에서 처음으로 써본 기술이었다.
“큭!”
“크악!”
백여 명의 청살대원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진법에 생겨난 찰나의 틈은 소무에게 너무나도 거대해 보였다.
보법을 밟자 그의 신형이 유수처럼 미끄러지며 적병들의 틈새로 자취를 감추었다.
곧이어 무엇인가가 절단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뿜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