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갈 데까지 가보자 (5) (206/250)


206화 갈 데까지 가보자 (5)
2022.08.25.


털썩-!

관원들이 기절하며 쓰러지는 소리였다.

주변을 살펴보던 소소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을 구르는 온갖 고문 도구들과 핏자국들. 그리고 역한 냄새가 코끝을 찡그리게 했다.

중심에는 죽어가는 관상가가 의자에 묶여 있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소소는 달려가서 중년인을 깨워보았다.

중년인의 상태는 심각했다. 참혹한 전란 속에서 자라 비위가 강한 소소조차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관상가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 입을 뻥긋거렸으나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입안에서 핏물만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치아 중 절반 이상이 망가지거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떡해…….”

당황하며 고민하던 소소는 아버지에게 배웠던 기술을 떠올렸다. 진기를 이용하여 상대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말이다.
고사리 같은 손바닥이 중년인의 단전에 닿았다.

소소의 도움으로 약간의 기력을 회복한 그가 힘겹게 소리를 냈다.

“너는…… 누구냐…….”

잠시 머뭇거리던 소소는 조심스럽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저는 소소예요…….”

중년인은 잠시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길 잠시 후 그의 입이 다시 한번 힘겹게 열렸다.

“……그러니까 소소가 누구냐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쉽사리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직책이 하나 있었다.

“저, 저는…… 살문의 부문주예요.”

소소는 진기를 넣는 게 효과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더욱 힘차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중년인의 음성이 눈에 띄게 또렷해졌다.

“장난치지 말고…… 어서 이곳에서 나가거라.”

“도와주러 왔어요, 아저씨. 일단 풀어드릴게요.”

소소가 밧줄을 풀자 중년인이 푹 숙인 고개를 힘겹게 한 번 내저었다.

“나를 도와주러 왔다면 좀 죽여다오.”

“왜요……?”

“더는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빨리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떠나고 싶구나…….”

“죽으면 안 돼요…….”

울적해진 소소의 눈망울에 물기가 차올랐다.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그의 내적 고통과 슬픔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중년인은 힘겹게 고개를 조금씩 들어 올렸다. 마치 소소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왼쪽 눈은 퉁퉁 부어 떠지지도 않았으며, 오른쪽 눈만 겨우 떠서 눈앞의 아이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느 순간 중년인의 한쪽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허허허…….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죽기 전에 이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입으로는 웃음을 토해내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소소는 그저 그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야. 내 너의 관상을 봐줄 테니,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다오.”

힘들어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알았어요…….”

호흡을 한 번 고른 관상가는 또박또박 말을 잇기 시작했다.

“……중정(中庭)이 정확한 비율을 이루고, 콧등이 부드러운 호비(虎鼻)를 이루어 세상에 보기 드문 장부의 기질이로구나. 또한 칠흑보다 어둡고 깊은 봉황안(鳳凰眼)을 지녔으니 가히 제왕의 상이라 할 수 있도다.”

그의 말은 서러움을 토해내듯 끊임없이 이어졌다. 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관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붉고 맑으며, 쳐지지 않고 가지런한 사자구(獅子口)를 이루고 있으니 기예에 출중하며, 반드시 공명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귀가 붉고 구슬을 드리우듯 금(金)의 기운을 지녔으니,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될 운명이로다.”

소소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은 거예요?”

관상가는 근엄한 눈빛으로 고개를 힘겹게 한 번 끄덕였다.

“가히 존엄하고 고귀한 천하제일 상이다. 성난 호랑이가 산에 있으면 짐승들이 두려워 떠는 것처럼 만인이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될 것이다.”

“히히.”

관상이 뭔지도 모르는 소소였다. 어쨌거나 거듭 칭찬을 해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부탁이 뭐예요, 아저씨?”

“이 나라의 황자가 내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한 것도 모자라 딸을 잡으러 갔구나. 패륜지상을 지닌 그놈에게는 네가 천적이라 할 수 있다. 훗날 네가 제왕이 된다면 나의 억울함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알았어요, 아저씨……. 꼭 기억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관상가는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바닥을 구르는 날카로운 고문 도구를 움켜쥐기 위해서였다.

날카로운 송곳이 그의 목젖으로 향하자, 소소가 화들짝 놀라며 날을 움켜쥐었다.

“놓거라……. 우리 딸이 더 괴롭지 않도록 내가 죽어야 해.”

조금 전까지 웃어 보였던 소소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으로 바뀌었다. 물기가 가득 맺힌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지 마세요, 아저씨……. 저랑 같이 장안으로 가요. 우리 아버지한테 도와달라고 할게요.”

“소용없다. 천자의 아들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어서 이곳에서 나가거라. 그리고…… 씩씩하게 잘 자라거라. 네가 훗날 제왕이 된다면 이 더러운 세상을 뒤집어버렸으면 좋겠구나.”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 뭐야? 이놈들 왜 여기서 자빠져 자고 있어? 미쳤어?”

황자와 그의 호위무사들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관상가가 다급히 말했다.

“어서 숨거라, 아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소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벌컥 열렸다.

콰앙-!

흑룡포를 입은 황자가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손아귀에는 어린 소녀가 붙잡혀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이 제일 두근거린단 말이지. 흥분되어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황자의 뒤쪽에는 일곱 명의 무사가 기립하고 있었다. 포나라의 정예부대인 금룡대의 병사들이었다.

관상가는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입이 틀어막힌 채 눈물범벅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비가…… 미안하구나…….”

황자는 오열하는 관상가를 보며 즐거워했다.

“자, 내가 다시 묻겠다. 내 관상이 어떠하냐.”

좋은 말을 해준다고 한들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눈앞의 살인마는 자신과 딸을 살해할 것임을.

결코 관상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핑계 삼아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었다.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눈은 아래로 사납고 코는 옆으로 큼직하며, 턱은 두 쪽으로 갈라졌으니 심성이 사납고 간사한 백정의 상입니다. 귀격이 없음에도 분에 넘치는 부귀를 누리고 있으니, 반드시 단명할 것입니다.”

황자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의 상황을 마치 즐기는 듯이 말이다.

“일단 저놈의 눈을 한번 뽑아보고 싶구나.”

“예, 저하.”

금룡대원 중에 한 명이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막 눈을 찌르려고 할 때 황자가 마음이 돌변한 듯 다급히 말렸다.

“멈춰라!”

“예……?”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지 않겠느냐. 자기 딸년이 당하는 모습을 말이야.”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움켜쥔 황자는 금룡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시작해볼까?”

그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하지만 금룡대원들은 대꾸조차 없었다. 그들은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전각 내부로 희뿌연 운무가 차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웬 안개가…….”

순식간에 차오르는 안개는 점차 짙어졌다.

잠시 후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부가 희뿌연 운무로 가득 차올랐다.

동시에 기분 좋은 꽃향기가 실내에 진동했다.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일인 전승으로만 이어지는 살문의 절학, 만화살무(萬花殺霧)가 펼쳐진 것임을.

어디선가 짜증 어린 황자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문부터 열어!”

당황하던 대원 중 하나가 출구가 있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러나 그는 몇 걸음을 떼지도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희뿌연 운무 속에서 돌연 한줄기 섬광이 번뜩였다.

쩌억-!

“크학!”

처절한 비명이 전각을 울렸다.

잠시 후 천둥을 머금은 구름이 금룡대원의 전신을 집어 삼켜버렸다.

뻐억-! 뻑-!! 뻐벅-!!!

“끄아아악!”

당황한 여섯 명의 병사들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누군가가 운무 속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앙-!

금룡대원 중 하나가 운 좋게 다가오는 기습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다시 한번 섬광이 번뜩였지만, 이번에는 단발에 그치지 않았다.

첫 번째 섬광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빛무리가 나타나며 사선을 그렸다.

곧이어 섬광은 점차 빨라지며 폭풍우가 몰아치듯 거세졌다.

카캉-! 카카캉-!

처음에는 검들이 부딪치는 금속음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머지않아 둔탁한 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뻐벅-! 뻑-! 뻐버벅-!

처절한 비명이 무엇인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뒤섞여 끊이질 않았다.

소소의 검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불구로 만들 뿐이었다.

“끄아악!”

“끄헉!”

구름을 머금은 천둥이 꽃잎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몇 번의 호흡이 더 지난 시점에서는 아무런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짙은 운무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황자 혼자서 두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누구냐?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팔다리가 꺾인 채로 정신을 잃은 금룡대원들의 사이에 소소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소검의 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분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

“당장 그 손 놔요!”

황자는 그제야 자신의 손에 관상가의 딸이 붙잡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지금의 상황이 화가 난다는 듯 흰자 위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황자는 대답 대신 오른손을 휘둘렀다. 붙잡고 있는 아이의 뺨을 후려치기 위해서였다.

꽈악!

“끄윽!”

외마디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황자의 손목은 허공에 멈추어져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소소가 중간에서 낚아챈 것이다.

황자 원진은 각종 영약으로 신체가 단련된 소년이었다.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단번에 뿌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 천한 것이 함부로 내 몸에 손을 대느냐! 내가 누군 줄 알아?”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황제의 외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소소가 알 바 아니었다.

“잘 알아요, 나쁜 사람인 거. 그러니까 지금부터 두들겨 맞을 준비나 해요.”

어느새 소검을 허리춤에 회수한 소소는 밤톨 같은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뭐? 이게 어디서 개수작을…….”

황자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내력이 가득 실린 소소의 주먹이 턱을 때렸기 때문이다.

콰앙-!

“컥!”

흥분한 나머지 힘 조절이 안 되었던 것일까? 아래턱이 부서지며 동시에 이빨 몇 개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아본 주먹이었다. 황자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바닥으로 쓰려지려는 황자의 손목을 소소가 붙잡았다. 동시에 팔목과 어깨뼈가 꺾이며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드득-!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도 잠시. 소소의 발등이 곡선을 그리며 황자의 정강이를 벼락처럼 가격했다.

콰앙-!

부러진 뼛조각이 무릎을 뚫고 튀어나왔다.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에 황자는 숨이 막혀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된 눈동자는 다가오는 주먹을 볼 수 있었다.

콰앙-! 콰앙-!

소소의 주먹이 계속해서 원진의 얼굴에 내려꽂히기 시작했다.

주먹이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이빨이 한두 개씩 튀어 올랐다.

“이빨 없으니까 기분이 어때요?”

“크헉. 그, 그만!”

황자는 미칠 지경이었다. 웬 이상한 여자아이한테 두들겨 맞는 지금의 상황이 믿어지질 않았다.

“아저씨 이빨을 왜 뽑았어요!”

분노의 응징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이빨이 모조리 부숴져 나갈 때쯤 되어서야 손이 멈추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소소가 자신이 저지른 짓을 깨닫고는 움찔했다.

“……어, 어떡하지.”

처참한 몰골로 두 눈이 풀린 황자는 소소의 등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관상가가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서글픔과 비통함. 그리고 후련함까지 온갖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황자는 힘겹게 그를 마주 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정신을 잃고 기절한 것이다.

한참을 울다 웃다 반복하던 관상가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그의 딸이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소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아저씨, 저 이제 어떡해요?”

“아이야. 너는 이런 곳에서 요절할 상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를 지켜주는 다섯 개의 별과 하나의 태양이 보이는구나.”

“힝…….”

“어서 떠나거라.”

“그럼 아저씨는요?”

관상가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딸을 밀쳐내고는 소소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죽어야만 하지만, 이 아이는 네 곁에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운명이다. 내 딸을 데려가 줄 수 없겠느냐? 천문학과 사서삼경을 터득한 아이이니 도움이 될 게다.”

지금 천문학이고 뭐고 관심사가 아니었다. 소소는 빨리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아버지가 걱정하고 있을 터이니. 어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소소라고 해……. 가자, 친구야.”

관상가는 딸을 향해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는 총명하니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네가 살려면 반드시 저 아이를 따라가야 한다. 어서 떠나거라!”

“아버지…….”

잠시 뒤 소소는 친구의 손을 잡고 전각 밖으로 향했다.

멀어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응시하던 관상가는 마지막 한마디를 중얼거린 뒤 몸이 축 늘어졌다.

“사랑한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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