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계획을 좀 바꿔야겠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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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화 계획을 좀 바꿔야겠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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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화 계획을 좀 바꿔야겠다 (3)
2022.08.28.
소무는 한달음에 추밀원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선 군사 진유소가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계시지 그러셨습니까? 어서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작은 탁상을 끼고 진유소가 소무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설풍 부장에게 들었습니다. 성도에서의 일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고를 제외한다면 말이지요.”
“음. 사고라면 따님이 포나라의 황자를 불구로 만든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장군께서 연회장에 난입해서 뒤집어 놓은 부분인가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입에서는 작은 한숨이 토해져 내쉬었다.
“면목이 없군요.”
소무는 슬며시 그녀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더 잘 되었습니다. 작은 문제야 차차 풀어가면 그뿐이지요. 민공께는 제가 잘 보고드릴 테니 심려치 마십시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으로 보아 또 다른 부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같은 편이지만 여우 같은 구석이 있는 여인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본론을 요청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 아닌가요? 보급 물자도 확보가 끝났고, 지원을 약속한 악비 장군도 출진 준비를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계획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니, 또 다른 문제가 나오는군요.”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모습에 소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보시지요.”
“장군께서 성도로 떠난 사이, 무림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이제 막 돌아온 소무였기에 아는 정보가 없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무림에 변고라니요?”
“낙양 전투에 힘을 보태기로 했던 그들이 참전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목표는 완안후이가 지휘하는 낙양이었다.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곳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무림맹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력이었다.
“그들이 그냥 변심했을 리는 없을 텐데요?”
진유소는 호흡을 고르고는 어두운 목소리로 답했다.
“신마교가 소림사를 포위하고 있다더군요. 이미 한 차례의 격돌 후에 대치 중이라 합니다. 무림맹은 그곳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소림사는 낙양의 남쪽인 숭산에 있으며, 휘나라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다.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그곳을 노리다니.
머리가 지끈 아파 왔다.
“누구든 소림사를 치려면 적지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한동안 조용했던 신마교가 전면에 나서서 무리한 행동을 감행하다니, 어딘지 석연치가 않군요.”
무림의 태산북두로 일컬어지는 소림사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숭산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각종 기관과 진법까지 준비되어있다. 인근의 속가제자들까지 모두 소집하면 싸울 수 있는 전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많은 문파들이 휘나라의 영토에 도망치듯 이전하는 상황에서도 자부심으로 버텨왔던 곳이다.
수년 전 휘나라의 군부에서도 그곳을 노리다가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 판단하여 포기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진유소도 소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겁니다. 정보망에 의하면 함곡관에서 퇴각했던 마휼이 낙양으로 회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휘나라의 군단장 마휼. 함곡관의 방어전에서 상대했던 그자는 간계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가 이일에 연관되어 있다면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었다.
“소림이 포위당한 지 어느 정도나 되었습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보름 이상은 계속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군요.”
소무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잠시 정적이 흐른 이후 그의 시선이 벽면의 전략지도로 향했다.
“소림을 무너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신마교에서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한다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보름 이상이나 끝을 내지 않고 포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예. 장군께서 생각하고 계신 게 맞을 겁니다. 유인책일 확률이 높습니다.”
소무가 검지를 내뻗자 탁상 위에 표식용 깃발 두 개가 스스로 떠오르며 벽면의 지도에 ‘푹’ 틀어박혔다.
“첫 번째는 무림맹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이후 매복해 있던 휘나라의 군부가 신마교와 함께 그들을 공격한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겠지요. 무림맹주가 소림사의 방장이니 안 갈 수도 없을 것이고.”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무림맹은 꼭 필요한 전력이니, 우리도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적국에서 벌여야 하는 작전이라 쉽지 않을 텐데 걱정이군요.”
소무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저를 적국으로 보내실 계획이로군요.”
진유소는 방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방면으로는 장군과 랑아대가 제일인 게 맞지만, 제가 어찌 감히 군정장관께 이래라저래라 하겠습니까.”
“기분 나쁘지 않게 사람을 부려 먹는 재주가 있군요. 어쨌거나 제가 직접 상대해본 마휼은 만만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자 또한 우리의 대응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 만일을 대비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야겠지요. 하여 최소한의 정예가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소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무림맹과 직접 접선해 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 그러실 줄 알고 미리 조치해놓았습니다. 아마도 내일이면 무림맹의 간부들이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시간 맞춰 군사회의를 주관하지요.”
소무의 얼굴에 흡족함이 떠올랐다. 귀찮을 일을 알아서 척척 처리해주는 그녀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합시다. 자세한 건 내일 얘기를 나눠 보지요.”
* * *
이튿날 이른 아침.
소무는 모처럼 군영을 순시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밀린 공무를 처리하느라 바빴을 테지만, 어젯밤 군사가 일을 좀 도와주고 갔기에 여유가 있었다.
보병 훈련장에서 멈춘 그는 흡족한 얼굴로 병사들을 지켜보았다.
어느 병종 할 것 없이 실력이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이었다.
‘다들 제법이군.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자만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소나라의 총 병력은 한중과 관문의 수비병까지 모두 합쳐도 고작 오만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포나라의 병력에 비교하면 절반 정도였으며, 송나라에 비교하면 고작 삼 할가량이었다.
인구수에 대비해 매우 적은 병력이었다. 하지만 소나라는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경제인구를 바탕으로 전례 없는 성장과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비록 병력은 적을지언정 우리 소나라의 병사 한 명은 타국의 병사 다섯을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용맹했다. 그것이 적은 병력으로도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밑바탕이었다.
소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등을 돌렸다.
무림맹과의 군사회담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한 시진쯤 남은 상황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은 군영을 벗어나 궁성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활기가 넘쳤다. 궁성 입구에서 얼마 걷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고, 장군님!”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노점상의 주인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왼쪽 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무엇인가가 가르고 지나간 흉터 자국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는 소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장사가 잘되는가 보군, 십부장 조무. 그새 살이 찐 걸 보니.”
전투에서 다친 상처 때문에 군단을 떠나게 된 병사였다. 그는 군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노점을 차려 장사를 하는 상황이었다.
“영광입니다, 장군. 미천한 제 이름을 다 기억해주시고. 이것 좀 드셔보시지요. 아침에는 도화차가 최고이지요.”
복숭아꽃을 띄운 도화차(桃花茶)는 향이 좋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찻잔을 받아든 소무는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향이 괜찮군.”
“그렇죠? 가장 잘 피어오른 꽃잎을 가려 따내었습니다.”
“꽃잎이라……. 벌써 또 봄이 왔구나.”
“예. 이번 봄이 끝나기 전에 출진을 시작하실 거죠?”
소무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슬쩍 갸우뚱했다.
“음. 알고 있었나?”
“제가 짬밥을 하루 이틀 먹었습니까? 요즘 애들이 기합이 바짝 들어간 것만 봐도 다 압니다. 꼭 승리하고 오십시오, 장군.”
퇴직 병사까지 눈치채고 있을 정도면 이미 휘나라에서도 정보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
“그런 눈치로 왜 하필 보병대에 들어가서 그 고생을 하고 있나. 작전병이 되었어야지.”
대답하는 소무의 시선이 어딘가로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그의 이상한 행동에 조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근처에 뭐가 있습니까?”
소무는 들고 있던 도화차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찻잔을 돌려주었다.
“응……. 내 딸.”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보았다. 먼 곳의 모퉁이로 거대한 범 한 마리가 슬그머니 지나가는 장면을 말이다. 그 위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올라타 있었다.
“예? 소소가요?”
“응. 이만 가봐야겠어.”
이른 아침부터 궁성에서 뭘 하는지 궁금했기에 뒤따라가 보기로 했다.
소무는 기척을 숨긴 채 아이들을 미행했다.
산군이 가진 예민한 감각은 화경보다 뛰어나기에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자칫 자신을 발견하고 장난치겠다고 달려오면 낭패였으니.
‘아침부터 어딜 가는 거지?’
일각을 뒤따라가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궁성의 외곽이었다.
산군 위에 올라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으슥한 전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목줄을 움켜쥔 소소의 뒤로는 백상과 영영, 그리고 양소청이 보였다.
궁금해진 소무는 기척을 최대한으로 갈무리하며 전각의 천장에 올라탔다.
잠시 후 밑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청 언니. 정말 살문에 가입할 거야?”
“응. 나도 받아줘. 너희들과 함께하겠어.”
“음……. 그럼 일단 나한테 세 번을 절해야 해.”
잠시 조용한 것으로 미루어 살문의 입단 의식을 치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반각이 지난 뒤 딸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문파에는 머리가 뛰어난 총관이 있어야 한대. 이제 소청 언니가 우리 살문의 총관이야. 히히.”
“그래. 그리고 너희 둘은 우호법하고 좌호법이라고 했지?”
“응, 누나.”
“잘 부탁해, 언니…….”
숨어서 지켜보던 소무는 황당해하며 헛웃음을 들이켰다.
딸이 아무도 모르게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설마 그 무뚝뚝한 녀석이 이걸 다 허락했다는 것인가? 믿을 수가 없군.’
그 누가 이 아이들을 살수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름만 살문일 뿐, 과거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어졌다. 그저 무공과 이름만 이어받은 것에 불과한 모습이었다.
그때 전각의 입구가 스스로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관 언니, 우리 문주님 한 번도 못 봤지? 지금 오셨어.”
살왕 백리현이 도착한 것이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던 소무는 전각의 지붕에 은밀히 구멍을 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에 둘러싸인 그는 몹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총관……이라고?”
“네, 문주님~ 제가 초대했어요. 잘했죠?”
살왕은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임명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문의 전통상 부문주에게는 누군가를 가입시킬 권한이 있고, 직급은 무공 순으로 결정된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서열 사 위인 눈앞의 아이가 총관이 되는 것은 자동이었다.
잠시 후 그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거라. 이제 나도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구나.”
“히히. 고맙습니다~”
그때 소청이 살왕의 앞에서 포권지례를 하며 말했다.
“총관 양소청, 문주님을 뵙습니다. 혹시 왼쪽 가슴과 어깨가 불편하지 않으신지요?”
백리현은 짐짓 놀라는 눈빛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은화파파의 흉마살혼조에 스쳤던 상처가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미종혈에 붉은 반점, 그리고 아랫입술이 푸르스름한 것은 독소가 차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화경의 신체에 침투하지 못한 독소가 피부에 고여가는 상태였다. 의선당의 모청 대장에게 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미루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얼굴만 보고 파악해 내다니. 백리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양소청을 살펴보았다.
어린 나이에도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범상치 않은 기도가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부문주가 아무나 막 끌어들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제법이구나. 근데 그걸 어디서…….”
백리현은 말을 하다 말고 흠칫했다. 동시에 그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잠시 그곳을 응시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한편 숨어서 지켜보던 소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록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과연 살수들의 왕이라 할 만큼 대단한 감각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 겉으로만 단단하지 속은 완전히 두부였군. 이따가 연매한테 가서 얘기하면 배꼽을 잡고 웃겠어.’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무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살왕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에게 꼼짝 못 하는 살왕의 모습이 재밌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리현은 더는 볼 일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소무의 동공이 부릅떠졌다. 동시에 참을 수 없다는 듯 ‘큭’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왕의 흑의 뒷면에 자수된 토끼 한 마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재빨리 도약했다.
자신이 누구인가. 체면도 없이 남을 염탐하고 다닌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망신이었다.
한 호흡이 지난 뒤 그가 있던 바닥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터져나갔다.
콰앙-!
전각 지붕 위로 솟구쳐 오른 백리현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예상과는 달리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더니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