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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화 계획을 좀 바꿔야겠다 (4) (210/250)


210화 계획을 좀 바꿔야겠다 (4)
2022.08.29.


추밀원의 군사회의실에 쟁쟁한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좌측에는 군부의 핵심 인사 여덟 명이 앉았으며, 우측으로는 무림맹의 대표 여섯이 앉아서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석에 앉은 인물은 소무와 군사 진유소였다.

장양은 나라의 내정에 전념하고 있었기에, 국방과 관련된 일은 이 둘에게 위임한 상황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소무가 입을 열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들 많았소.”

무림맹의 원로들이 동시에 양손을 모아 포권했다. 그들 중 무림맹주인 정명 방장이 화답했다.

“군부에서 선뜻 도움을 주신다고 하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저희만으로는 너무 막막했습니다.”

“당연한 거니 고마워할 필요 없소. 무림맹 또한 우리를 돕기로 약조했으니, 우리도 원칙적으로 최대한 협조할 것이오.”

이번 일이 끝나면 다가올 전투에 잘 협조하라는 압박이었다.

상대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무림맹주였다.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군부의 실권자인 대장군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정명 또한 애초부터 그와 각을 세울 마음이 없었다.

“아미타불. 민공께서 만드시는 정의로운 세상은 우리 정파의 이념과도 일치하니, 언제든 힘을 보태 함께하겠습니다.”

소무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측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군사가 나설 차례였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인 진유소가 지휘봉을 움켜쥐며 탁상 위의 지도를 가리켰다.

“아시다시피 소림사가 위치한 숭산은 휘나라의 대군이 주둔 중인 낙양에서 멀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휼이 이끄는 군단의 행적까지 묘연해졌습니다. 함곡관에서의 전투가 끝난 후 낙양으로 회군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무림맹에서는 군사 제갈수영이 나섰다.

“쉽게 볼 상황이 아니로군요. 저희도 휘나라의 군부가 개입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무림맹은 아직 공식적으로 국가 간의 전쟁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나, 휘나라에서는 미리 불씨를 끄고 싶어 할 것이니까요.”

“그들의 관점에서 정파 무림은 눈엣가시겠지요. 후원을 받는 신마교와 대립하고 있으니.”

“맞습니다. 그럼 군사께서 보시기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좋겠습니까?”

제갈수영이 진유소의 생각을 물었다. 그녀의 패를 먼저 보고 싶었으나,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우선 무림맹의 목표부터 알아야 접근 방식을 세울 수 있겠지요. 소림사를 포위한 적들을 물리치더라도 같은 상황이 계속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지요?”

“소나라가 낙양을 되찾기 전까지 소림사를 비워둘 생각입니다. 승려들을 탈출시킬 계획입니다.”

“탈출 경로는요?”

“함곡관이나 무관을 통해 소나라로 진입해야겠지요.”

진유소가 방긋 웃으며 지도 위의 지휘봉을 움직였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면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인 낙양 근교를 지나야 합니다. 기병이 활동하기에 최적인 지역이지요.”

자칫하면 휘나라의 기마대에 모두 쓸려나갈 우려가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었다.

제갈수영은 그녀의 웃음에서 다른 방도를 준비했음을 직감했다.

“그럼 다른 경로가 있을지요?”

진유소는 침묵을 지키며 소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누군가를 지목했다.

“적운 제독.”

모두의 시선이 한 장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추혼이검(追魂利劍) 적운. 멸문한 패력문의 제일 고수로 한때는 용강수로채의 채주였으며, 양양전투를 기점으로 소무가 포섭한 인물이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무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예, 장군.”

소무가 우측에 앉은 무림맹의 원로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우리 소나라의 수군 제독입니다. 무림 출신이니 여러분들 중 몇 분은 안면이 있으실 겁니다.”

그를 알고 있는 몇몇 원로들이 포권하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참이었습니다.”

“대협께서 제독이 되셨다니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적운도 마주 포권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정파의 기둥들을 이렇게 뵙다니, 저 또한 영광입니다.”

양측이 인사치레를 마치자 소무가 본론을 이어갔다.

“제독의 생각이 어떤지 얘기해주시오.”

고개를 끄덕인 적운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전략지도에 검지를 올려두었다.

“육로로는 험난한 여정이겠지만, 수로를 이용한다면 손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함대가 황하를 타고 후진현까지 깊숙이 진입하여 수송하겠습니다.”

그럴듯한 계획이었지만, 제갈수영의 얼굴에는 아직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후진현이라면 숭산에서 낙양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포위망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퇴각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군이 휘나라의 수군을 압도해야만 가능한 작전입니다.”

적운 제독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탐망을 계속해 본 결과, 휘나라의 수군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결정적으로는 함선의 숫자가 비교되지 않았다. 지난해 소무가 맹진항에서 건조 중인 전함들을 모두 파괴하고, 장인들을 빼돌렸기 때문이었다.

소나라가 위수 나루터에서 백오십 척의 전함을 건조하는 동안 휘나라는 절반도 확보하지 못했다.

“참으로 든든합니다. 그렇다면 육로를 택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제 소림의 승려들을 어떻게 탈출시키느냐가 관건이군요.”

군사 진유소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보급을 받을 수가 없고, 은밀히 움직여야 하니 소수정예가 좋을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우리 무림맹은 각파에서 고수들을 차출하여 삼백 명을 모집하였습니다. 군부에서는 어느 정도를 지원해주실 건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장내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상석에 앉은 소무에게 고정되었다.

그는 깍지를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나와 스무 명의 랑아대원이 함께할 것이오.”

무림맹이 삼백 명을 보내는데, 관군이 고작 스무 명만 간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실망할 법도 했으나 무림맹의 원로들에게 그러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신으로 일개 군단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지닌 존재가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무림맹이 원했던 부분이 소무의 참전이었다.

정명 방장이 밝은 표정으로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대장군께서 직접 도와주신다니 걱정이 없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소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

“우리는 신마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수를 보유하고 있는지도 파악이 안 되었소.”

쟁쟁한 고수들이 간다고 하여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제갈수영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물론 방심하면 안 되겠지요. 혹여 좋은 방안이 있으신지요?”

무엇인가를 골똘히 고민하던 소무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우리를 도와줄 외부의 전문가를 한 명 초청하는 것이 어떨까 하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무림맹의 진영에서 누군가가 흠칫했다. 무당제일검으로 이름난 무진 장로였다.

“설마…….”

“맞소. 여러분들이 괜찮다면 내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겠소.”

그녀가 누구인지는 무림맹의 원로들도 파악하고 있었다.

마교의 전대교주이자 마의 극(極)을 이룬 옥화신녀 연설화. 한때 무림맹의 척살명부 첫 번째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했다.

원로들은 술렁이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비록 무림을 떠난 마두였지만, 그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때 상황판단이 빠른 제갈수영이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군요. 그분께서 함께해주신다면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오. 설득해봐야 하니.”

제갈수영의 눈빛이 일순간 번뜩였다.

눈앞의 대장군이 부인의 눈치를 본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의 환심을 살 수만 있다면, 앞으로 소무의 도움을
얻는 것이 용이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부디 얘기가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무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적인 작전의 윤곽이 잡혔으니 나머지는 세부적인 조율이었다.

소수가 움직이는 만큼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반 시진이 지난 후 특별한 사건 없이 회담이 마무리되었다.

* * *

추밀원에서 나온 소무는 궁성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거처로 가서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뒤에서 느껴지던 미세한 인기척이 점차 가까워졌다.

“서운하게 아는 체도 안 하는 거야?”

익숙하고 중후한 저음.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미파의 문주 금정사태였다.

개방의 허규와 함께 유일하게 스스럼없이 지내는 인물이기도 했다.

“알잖아, 공무가 바쁜 거. 근데 장로들을 안 보내고 왜 장문인이 직접 왔어?”

좌측을 보자 염주를 움켜쥔 금정사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모처럼 친구 얼굴을 보러 왔지. 그리고 따질 것도 있고.”

“따지다니? 뭘?”

“네 딸이 우리 아미파의 제자들을 박살 내고 도망친 거 말이야.”

소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코피 정도만 났다고 들었는데? 비구니들이 할퀴어서 내 딸도 팔에 상처가 났다고.”

“그래, 별거 아닌 사건이었어. 세 명은 팔이 부러지고, 한 아이는 발목이 부러졌지. 그리고 또 한 명은……. 됐다, 더 얘기해서 뭐하겠어.”

“…….”

소무는 대답 대신 하늘만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금정사태가 깔깔대고 웃었다.

“신경 쓸 것 없어. 다른 제자들을 괴롭히고 다니던 패거리였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제법 얌전해졌더라고. 오히려 잘된 일이지.”

“음.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아미파에 천살성을 타고난 아이가 한 명 있다고 하지 않았나?”

“있었지. 지금은 살심을 억누르기 위해 면벽 수련에 들어갔어.”

사실은 면벽 수련이 아니라 폐관 수련이었다. 독기가 바짝 오른 화령이 자진해서 청한 일이기도 했다. 내년에 벌어질 비무대회를 위한 비밀병기였으니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사가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불문 공무를 시킬 예정이었다.

“잘 지켜보는 게 좋을 거야. 오래전에 천살성을 한번 마주쳐본 적이 있었거든. 살인귀가 따로 없었어.”

“그렇지 않아도 그러고 있어. 근데 우리 막내는 어디로 갔을까?”

소무는 그녀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딸이 데려온 아미파의 삼대 제자로 누구보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던 아이였다.

“영영이?”

“잘 알고 있네. 우리 아미파의 아이니까 온 김에 데려가려고.”

사문의 일은 무림의 법칙에 따라 소무가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영영이는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까 데려갈 생각이라면 포기해. 허락하지 않을 테니.”

금정사태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그 아이는 아미파의 제자라고. 강호의 도리고 뭐고 그냥 무시하겠다는 거야?”

“나는 무림인이 아니니까 그곳의 법칙을 따를 필요는 없어.”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들이켰다. 소무가 버티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고?”

“오히려 그곳에 가면 불행해질 아이야.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의 가르침이 아니잖아.”

“그걸 어찌 판단할 수 있어?”

소무는 피식하고 웃었다.

“지금까지 그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본 적 있어?”

금정사태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영영은 아미파 내에서도 웃음이 없는 아이로 유명했으니까.

“지금은 웃는다고? 영영이가?”

“응, 그것도 매일. 가족이 생기고 친구도 생겼거든.”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란히 걷길 잠시 후. 금정사태의 얼굴에서 온화한 미소가 처음으로 피어올랐다.

“부처님의 뜻이로군. 그렇다면 내가 거스를 수는 없겠지.”

“후후. 잘 생각했어. 이곳까지 온 김에 우리 집에서 밥이나 먹고 가. 아내의 요리 솜씨가 꽤 괜찮거든.”

금정사태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부릅떴다.

“밥 먹다가 급체해서 죽고 싶지는 않아. 이만 가봐야겠어.”

소무는 겨우 웃음을 참으며 그녀와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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