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랑아대의 보모 (2)
(212/250)
212화 랑아대의 보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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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랑아대의 보모 (2)
2022.08.31.
이번 작전에 함께할 스무 명의 직속 부하들을 모두 차출했다.
뒷짐을 쥔 소무는 한 명씩 살펴보았다. 랑아대에서도 가장 강한 대원들이었기에 기세가 대단했다.
“목표는 소림사에서 포위당한 승려들을 구출하는 것이다. 무림인들과 함께 갈 거야.”
소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원들이 술렁였다.
모두가 차출된 자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부럽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소림사에 가보겠어…….”
“무림고수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랑아대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개개인이 무림맹의 최정예 부대인 백룡대와 붙어도 밀리지 않는 실력이었다.
소무가 입이 툭 튀어나온 대원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위험한 곳이니 차출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저처럼 진정한 병사는 전쟁터로 나가야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법입니다. 내일 죽더라도 따라가고 싶어요.”
“그럼 수련을 열심히 했어야지. 뻔히 죽을 것 같은 녀석들을 데려갈 수는 없어. 아무튼, 이틀 후 출발할 테니, 지목된 녀석들은 채비들 해.”
차출된 대원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예,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에 흡족해진 소무가 등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랑아대의 훈련장 입구. 그곳에서 장삼을 입은 누군가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군영에 민간 복장으로 출입한 걸 보면 군부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방문객이리라.
그의 모습을 발견한 대원들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이, 아저씨! 이곳은 훈련장이니 돌아가쇼!”
“수련하는 걸 그렇게 몰래 훔쳐보면 안 되죠!”
대원들이 그를 쫓아내려 하는 순간 소무가 오른손을 올려 제지했다.
“잠깐.”
소무가 손짓하자 입구에 있던 장한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겉으로는 별거 없어 보였지만, 단전에서 느껴지는 내력만큼은 대원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소무 앞으로 다가와서는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상한 그의 행동에 대원들이 어리둥절할 찰나. 소무의 입가가 뿌듯한 미소를 그렸다.
“검보병 양철.”
장한은 고개를 올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제,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던 겁니까……?”
한중성의 수성전이 전개될 당시, 소소가 다리를 잃은 한 병사 앞에서 쪼그려 앉아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는 유난히 딸에게 간식을 잘 챙겨주며, 인정이 많았던 병사였다.
소무는 자신이 그에게 진기를 불어 넣어주며, 치료를 도와주었던 상황을 잊지 않았다.
“물론이지. 내가 했던 말도 기억해. 자질이 충분하니 수련을 멈추지 말고, 환골탈태를 이룬 후 나를 찾아오라고 했지.”
“끄흑…….”
양철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가 지금까지 어떠한 고통을 겪어 왔을지 눈에 훤히 보였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임독양맥을 뚫고 환골탈태를 이룬 것이다. 다리를 재생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자, 소무가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흠. 내 기억 속의 양철은 이렇게 나약한 병사가 아니었는데.”
양철은 랑아대원들과 비교하면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했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훌쩍이는 모습에 지켜보던 대원들이 숙연해졌다.
“못난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반드시 장군께 고맙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가 물러가려고 하자 소무가 불러세웠다.
“그게 다인가? 다시 찾아오면 내가 랑아대에 받아준다고도 말했을 텐데.”
양철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주춤거렸다. 머뭇거리는 것을 보니 본인도 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모를 랑아대원들이 아니었다.
“어서 와요, 양철이 형!”
“하하. 앞으로 잘 부탁해요.”
예상치 못했던 환대가 당황스러운 것일까? 얼굴이 붉어진 양철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여러분들은 제 우상입니다. 어떻게 감히 저 따위가 랑아대를…….”
나라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정예부대였다.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로부터도 인기가 대단했다.
막내인 송화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말 편하게 하세요, 형님.”
“그, 그게…….”
그 순간 소무가 대원들을 둘러보며 못을 박았다.
“병사 양철은 스스로의 힘으로 환골탈태를 이룰 정도로 훌륭한 자질과 끈기를 갖추었으니, 랑아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현정 백부장이 수속 처리 좀 해줘.”
“예, 대장님. 제가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등을 돌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등 뒤로 세차게 뛰는 양철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절망 속에서 얻은 두 번째 인생이니 기쁠 수밖에. 후후. 소소가 알면 기뻐하겠군.’
훈련장을 벗어나기 위해 입구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곳을 향해 일광이 헐레벌떡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대장? 설마 나만 쏙 빼놓고 가려는 거야?”
일광의 얼굴에는 함께 가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너는 장안에 남아서 조카랑 좀 놀아줘. 이번에는 연매도 같이 가야 해서 말이야.”
“후. 우리 소소는 친구가 많아서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데려가!”
황소 같은 덩치로 떼를 쓰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일광은 이곳에 남겨두어야 했다.
“내 처제를 지켜줄 사람도 없잖아. 초희 처제한테 네가 보호해 줄 거라고 얘기해 놓을게.”
처제라는 말이 나오자 일광이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흠……. 그렇다는 말이지?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사람의 태도가 어찌 이렇게 돌변할 수 있을까. 소무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일광, 너만 믿는다. 우리 처제랑 조카 좀 잘 돌봐줘.”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대장. 내가 목숨 걸고 돌봐줄게. 초희 씨한테 꼭 얘기해 놓고.”
“그럼, 물론이지.”
소무는 한 손을 올려 보이고는 훈련장을 벗어났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기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 *
이틀 후 이른 새벽, 종남산 입구.
숭산으로 떠나기 위한 무림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각파에서 차출된 삼백 명의 일류고수들이 주축이었다.
무림맹주이자 소림의 방장인 정명과 아미파의 금정사태, 그리고 무당제일검 무진 장로가 각기 백 명씩으로 이루어진 조를 하나씩 맡았다.
세 명 모두 무림의 원로고수들로, 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십수 년 전 정마대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조심해서들 다뤄주십시오. 깨지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당가의 여고수인 당은진이 일단의 무림인들에게 작은 호리병을 하나씩 건네주고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무림맹의 원로들은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당파의 무진 장로가 탄식과 함께 중얼거렸다.
“꼭 이런 방법까지 써야만 하는 것인지요.”
정명 방장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소림사의 존폐가 달린 일이었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무공을 연마해왔단 말입니까. 정파의 무인으로서 독을 사용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는 않는군요.”
“아미타불. 살상력은 없으니, 꼭 독을 사용한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의 말뜻이 궁금했던 무진은 당은진을 불러 물었다.
“고생이 많군. 독 호리병이 깨지면 연기가 살포된다고 들었네. 그것을 들이마시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당은진에게 있어서 무진 장로는 감히 얼굴조차 마주할 수 없는 대선배였다. 무당파의 장로 중에서도 가장 배분이 높았으며, 태극혜검의 전승자였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포권하며 답했다.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준비해야 했기에 강한 독은 조제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살상력은 전혀 없습니다만…….”
“다만?”
잠시 머뭇거리던 당은진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연기를 들이마시는 즉시 극심한 복통과 함께 설사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옆에서 듣던 아미파의 금정사태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렇다면 독이 아니로구나. 위급할 때 써먹으면 볼 만하겠어. 근데 누가 고안해낸 생각이야?”
대답은 금정사태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내 생각이야. 마음에 들어?”
낮게 가라앉은 여인의 목소리. 웃고 있던 금정사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옥화신녀…….”
관군이 당도한 것이다. 연설화와 소무가 나란히 다가오고 있었으며, 뒤로 스무 명의 랑아대원이 있었다.
“오랜만이네, 늙은 비구니.”
금정사태의 반짝이는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녀와 설화는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마교년답게 여전히 건방지구나.”
금정의 정수리 부근에 있는 검게 그을린 자국은 소싯적 설화의 흑룡신장이 남긴 흔적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전에 소무가 둘의 사이를 중재하고 나섰다.
“서로를 살펴줘도 부족한 상황인데 열들 낼 필요들 없잖아. 작전이 끝날 때까지는 둘 다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흥.”
등을 돌린 설화에게 무림맹 무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이들의 얼굴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누구길래 아미파의 문주가 쩔쩔맨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나이도 한참이나 젊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불편했던 것일까? 설화의 두 눈이 가늘게 떠지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눈을 전부 뽑아버릴까.”
과거에는 서로가 목숨을 노렸던 관계였다. 그러니 예민할 수밖에.
미소를 머금은 소무가 왼팔로 그녀의 등 뒤를 감쌌다.
“긴장 풀고 편하게 마음먹어. 지난 과거를 모두 잊을 수는 없겠지만, 일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다들 동료라 생각해줘.”
“동료는 개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기분은 어느새 많이 풀어져 있었다. 자신이 다독여주었기 때문이리라.
설화가 랑아대의 대열로 합류하자, 소무는 무림맹의 원로들을 향해 다가가 말했다.
“준비는 모두 끝났는지요?”
마음이 가장 급한 것은 역시나 소림의 정명 방장이었다.
그를 포함하여 무림맹에 파견을 나와 있던 무승들은 애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미타불.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습니다.”
“갈 길이 머니 바로 출발하지요.”
정명이 어딘가를 향해 손짓을 보내자 무승 한 명이 다가와 합장을 했다. 소림의 일대제자였다.
“광혜야, 네가 앞장서서 방향을 잡거라.”
“예, 방장님. 바로 소실봉으로 가는 겁니까?”
소실봉은 숭산의 서쪽 봉우리로 소림사가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부터 신마교에 포위를 당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곳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다. 상황이 어떤지 확인도 안 해보고, 어찌 바로 적에게 맞설 수 있겠느냐. 우선 관현산까지 이동하여 작전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관현산은 숭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산이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정찰을 한 이후에 행동할 예정이었다.
“이해했습니다, 방장님.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소림사를 구원하기 위한 지원군이 첫발을 내디뎠다.
이동 속도는 시작부터 굉장히 빨랐다. 하나 같이 검기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구대문파 출신의 무림인들이 가장 선두에 있었으며, 뒤로는 오대세가와 중소문파들에서 차출된 고수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스무 명의 관군이 자리를 지켰다. 랑아대에서 차출된 정예 병사들이었다.
소무와 설화는 행렬의 가장 후미에서 나란히 달렸다.
“가끔 이렇게 바람을 쐬는 것도 좋잖아?”
설화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무결점의 얼굴이 드러났다.
“바람 쐬는 곳이 전쟁터라는 것만 빼면.”
소무는 씩 웃으며 나란히 달리는 설화의 손을 잡아 보았다. 자신이 선물해준 가락지가 잘 어울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꼭 지켜줄게, 부인. 그럴 상황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엄연히 극마의 끝에 다다른 마인이 아니던가. 누군가가 지켜준다는 말은 그녀가 평생 처음으로 들어본 소리였다.
얼굴이 붉어진 설화는 랑아대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애들이나 신경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