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랑아대의 보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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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랑아대의 보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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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랑아대의 보모 (3)
2022.09.01.
목적지까지 걸린 이동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관현산 정상의 작은 사찰.
소무는 무림맹의 원로들을 만나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휘나라의 국경수비대가 우리의 움직임을 포착했을 테니, 이틀 뒤에는 낙양에 주둔 중인 완안후이의 군단에도 소식이 들어갈 것이오.”
소무의 말은 이틀 안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철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삼백 명이 넘는 인원이 적군의 시선을 따돌리며 국경을 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두가 화경급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애초부터 감안했던 부분이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는 이곳에 천라지망(天羅蜘網)이 펼쳐지겠군요.”
정파의 제일 여고수이자 아미파의 장문인 금정사태였다.
그때 정명 방장이 합장하며 답했다.
“아티마불. 곧 있으면 정찰을 갔던 아이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시지요.”
주변 지리에 밝은 소림의 제자들로 탐색을 보낸 상황이었다.
고요 속에 일식경이 지난 뒤.
소림의 일대제자 광혜가 보고를 올리기 위해 사찰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몹시 어두워 보였다.
정명 방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나?”
광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인근 마을부터 영태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이 초토화가 되어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살아있는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소림사의 인근 마을에는 백여 개가 넘는 무술도장이 존재한다. 대부분이 삼류에도 끼지 못하는 어설픈 수준이었지만, 매년 자질이 뛰어난 어린아이들을 선출하여 소림사에 정식으로 입단시키고는 했다.
정명 방장은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가 물었다.
“어디까지 정찰하였는가.”
“영태사가 한계였습니다. 숭산의 입구로 마인(魔人)들이 포진하고 있었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숫자만 해도 어림잡아 삼천 명은 넘어 보였습니다.”
영태사는 소림사의 입구에서 경공으로 반각 정도면 갈 수 있는 사찰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입구를 포위하고 있다는 것은 지원군이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였다.
소무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작정한 모양이군요.”
무당제일검 무진 장로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적들의 수가 많지만, 우리는 정예입니다. 사찰 안에 있는 무승들과 안팎에서 마교도들을 동시에 공격한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무는 즉각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소림사의 내부와 호흡을 맞추기도 어려울뿐더러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었다.
관군과는 다르게 무림인들은 대규모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집단전술에 대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소림의 승려들을 인질로 삼아 우리를 유인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겠지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떤 방도가 있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소무가 정명 방장에게 물었다.
“소림사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다. 소림사로 올라가는 입구는 오직 하나인 것으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었다.
정명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갈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일순간 소무의 눈빛이 빛났다.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는 것으로 보아 쉽지 않은 진입로인 듯했다. 그러나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숭산의 남천문으로 진입하여 삼황채를 통해 들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자면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올라야 합니다.”
“높이가 얼마나 됩니까?”
“정확히는 가늠이 안 되지만, 봉우리가 구름에 닿을 정도 입니다.”
모두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류고수조차 쉬운 일이 아닐 터였지만, 소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방법을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싸워서 이길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하여 우리 관군이 그곳으로 올라가 승려들과 접선하고, 절벽 아래로 밧줄을 연결하여 모두 내려보내겠습니다.”
“모두를 탈출시키자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사이 신마교에서 눈치라도 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무라고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무림맹에서 신마교를 공격하여 시간을 벌어야겠지요.”
“우리만으로…… 말입니까?”
무림맹의 원로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약하자면 관군이 승려들의 탈출을 돕는 사이, 삼백 명의 무림인들이 결사대가 되어 시간을 벌라는 얘기였다.
자칫하면 각파에서 차출된 후기지수들을 모조리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안은 소무의 다음 말에서 바로 누그러졌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움직일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나라의 대장군이지만, 무림의 원로들은 그의 과거가 전설적인 무림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함께한다면 불만이 없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가호와 자비가 있기를.”
무진과 금정사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비록 마교도들의 수가 많지만, 최대한 버텨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럴싸한 계획처럼 보였지만 그리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때맞춰 누군가가 사찰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요염한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다가오는 여인.
연설화가 등장하자 장내의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그녀는 무림맹의 인사들에게는 볼일이 없다는 듯 소무를 향해 말했다.
“예상대로였어.”
오직 소무만이 그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요청으로 먼 곳까지 정찰을 다녀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휘나라의 관군이 포진해 있었다는 말인가?”
설화는 대답 대신 오른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붙들려 있던 종이가 스스로 탁상 위로 날아가 안착했다.
“점 하나당 대충 오천 명.”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지도를 확인한 소무와 무림맹의 원로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도에 표시된 수십 개의 검은 점들. 그것은 관군이 주둔 중인 위치였다. 반경 오십 리에 걸쳐 숭산을 완벽히 에워싼 모습이었다.
무진 장로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쉬운 상황이 아니로군요.”
신마교에 맞서서 버티는 것도 모자라, 수만 명의 관군을 따돌리면서 항구까지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 정명 방장이 일단락을 지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이제 더는 머뭇거릴 필요가 없겠습니다.”
소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니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소.”
몇 가지 논의를 더 마친 후 회의는 종료되었다.
사찰 밖으로 나온 소무는 설화와 함께 랑아대가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그는 작전 내용을 설명해준 이후에 조용히 물었다.
“괜찮겠어?”
“흥. 아내한테 절벽을 기어오르라면서, 괜찮냐고?”
“그래도 입구에서 마교도들하고 칼부림하는 것보단 낫잖아.”
“차라리 그게 나아.”
소무는 피식 웃으며 다정스럽게 말했다.
“사찰 안에서 무슨 변수가 일어날지 몰라서 그래. 대원들만 보내기에는 불안하고 말이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연매밖에 없잖아.”
“말은 아주 청산유수처럼 잘하시네.”
“후후. 말이라도 잘해야겠지.”
모처럼 오붓한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십 명의 랑아대원들이 나무에 기대거나 바위 위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자, 모두 모여봐.”
소무의 말 한마디에 대원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기립했다.
그는 반각에 걸쳐 부하들에게 작전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설화의 지휘를 따라 소림사로 진입하는 것을 말이다.
설명을 모두 끝낸 그는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는 날이 어두워질 때쯤 무림맹과 함께 교란 공격을 시작할 거야. 길어도 두 시진 이상은 버틸 수 없을 테니 그 전에 모두 빠져나와야 해.”
고개를 끄덕인 설화는 소무의 귓가에 대고 한마디를 속삭였다.
“다쳐서 오면 알아서 해.”
“응. 연매도 조심하고…….”
그 말을 끝으로 소무는 등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준비해야 할 게 많았으니 여유가 없었다.
설화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대원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우리도 출발할까?”
그녀의 한마디에 대원들이 동시에 기립하며 소리쳤다.
“예, 부인!”
“알겠습니다, 형수님!”
“갑시다, 누님!”
호칭이 제각각이었다. 어떻게 부를지 약속된 게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자기들도 당황했는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뭐라고 부르든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원 중 한 명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 뭐, 뭐라고 불러야 할지.”
호칭이야 아무래도 관계없었다. 그녀는 앞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마음대로 불러. 대신 나랑 맞먹으려는 녀석은 목을 꺾어버릴 거야.”
대원들은 입을 꾹 닫았다. 무표정하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화와 랑아대는 길을 우회하여 숭산의 남천문을 향해 내달렸다.
적들의 감시망을 피하려고 험한 길을 택했지만, 이들에게 빼곡한 나무와 가파른 산길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경공을 펼친 뒤로 일식경이 지난 뒤.
드디어 목적지에 당도한 랑아대원들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깎아지른 절벽이 수직으로 끝없이 치솟아 있었다. 그 높이가 마치 천계까지 이어져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랑아대의 철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저길 기어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죠?”
설화는 당연하다는 듯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응, 맞아. 그러니까 빨리 올라가. 시간 없으니까.”
기가 질린 대원들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자신들이라도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높이였다.
그때 두 명의 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화산파 출신의 현정과 청해였다. 둘은 백부장 계급으로, 랑아대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대원이었다.
“우리 먼저 올라갑니다.”
“다들 잘 따라와.”
잠시 호흡을 고른 둘은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공을 사용하기에 조금이라도 손가락을 디딜 틈이 있다면 버티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둘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 다른 대원들도 하나둘씩 절벽으로 달라붙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화는 가장 마지막으로 기어올랐다.
‘후.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다니.’
한숨이 나왔지만, 남편을 위해서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를 포함하여 절벽을 기어오르는 이들은 스물한 명이었다.
아래에서 볼 때는 까마득했지만, 막상 기어오르기 시작하니 어려워하는 대원이 없었다.
문제는 힘이 빠진 이후부터였다.
중간을 넘어서자 슬슬 체력이 떨어지는 대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형님들, 저 어떡해요? 도저히 못 버티겠어요…….”
대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송화였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얼마 안 남았으니, 이 악물고 버텨!”
송화가 무어라 대답할 찰나. 그가 움켜쥐고 있던 절벽의 틈새가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악!!”
절벽 위에 붙어 있던 대원들이 놀라며 밑으로 추락하는 송화를 보았다.
얼굴이 창백해진 그는 허공에서 양팔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상상하며 절망에 빠질 무렵. 어디선가 가냘픈 손아귀가 섬전처럼 뻗쳐나오며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터업-!
“촐랑거리지 말고 빨리 올라가. 시끄러우니까.”
송화의 팔목을 붙잡아준 인물은 연설화였다.
그녀에게 목숨을 구출 받은 송화는 고마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 감사합니다, 누님…….”
고마움도 잠시. 송화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설화의 움직임이 한발 빨랐다.
그녀는 움켜쥔 손목을 두세 번 흔들더니 하늘 높이 던져 버렸다.
무지막지한 내공에 의해 용수철처럼 솟구쳐 오르는 송화는 까마득한 지상을 보았다. 아찔한 광경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끄아아악!”
한참을 허우적대던 송화는 추진력이 다하자 허공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등 뒤의 검을 뽑아 절벽에 찔러넣었다.
푸욱-!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위치였다. 어쩌다 보니 랑아대에서 가장 선두의 위치까지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가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또 한 명의 대원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크아아악!!!”
누군가가 또 추락한 것이다. 대열에서 가장 왼쪽에 있던 대원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한 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가장 아래에서 기어오르던 설화는 한숨과 함께 왼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소매에서 두 가닥의 천잠사가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휘리리릭-!
그녀의 내공을 담은 천잠사는 떨어져 내리던 대원을 고치처럼 휘감았다. 그러더니 그네처럼 좌우로 몇 번을 흔들고는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으아아악!!”
화산이 폭발하듯 치솟는 대원의 뒷모습을 보며 설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무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속내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결국 나는 보모 역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