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랑아대의 보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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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랑아대의 보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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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랑아대의 보모 (4)
2022.09.02.
우여곡절 끝에 이십 명의 랑아대원들이 모두 정상으로 올라섰다.
대원들의 얼굴에 서린 기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봉우리들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안개가 몰려다니는 중악 숭산의 절경은 곧 선경이었다. 마치 신선이 노니는 천상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원 중 누군가가 감격하여 중얼거렸다.
“아무리 사람이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다고 한들, 어찌 그것을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교할 수 있으리…….”
그 순간 등 뒤에서 낮게 깔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고 있네. 빨리 앞장이나 서.”
연설화였다. 그녀는 대원들에게 이동하라고 재촉했다. 여유를 부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청해가 선두로 나서며 소리쳤다.
“예, 누님.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삼백 명의 무림인들이 포위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이동해야 했다.
그녀를 포함한 스무 명의 랑아대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계속 달렸다.
첨봉에서 길을 따라 어느 정도 내려가자 정교하게 지어진 도교 사원이 하나 보였다. 삼황채(三皇寨)라는 현판이 각인되어 있었다.
앞장서서 그곳을 통과하던 청해가 옆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정 사형, 화산의 봉우리에서 이런 전각 본 적 있어요? 어떻게 지었는지 정말 굉장해요.”
“사부님께 들어본 적이 있어. 복희와 신농 등 삼황이 머물렀던 곳이래.”
현정의 해박함에 다른 대원들이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와…….”
“대단해요, 현정 형님.”
그들의 모습을 뒤쪽에서 설화가 귀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다 거짓말이야. 요령 피우지 말고 빨리들 내려가.”
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경공을 펼치면서도 연신 좌우를 둘러보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일각을 더 달렸을 때였다. 가장 후미에 있던 설화의 미간이 좁혀졌다.
잠시 후 앞서가던 대원들도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동시에 멈춰 섰다.
탑림(塔林). 소림사의 뒤편에 만들어진 이곳은 수행과 깨달음의 삶을 살다 떠난 고승들의 유골을 모시는 부도(浮圖)였다.
그런 신성한 무덤들이 지금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단순히 묘지만 망가트린 게 아니었다. 마치 산짐승이 단체로 내려와 전부 파헤쳐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주변으로는 처참하게 찢겨 죽은 승려들의 시신이 수십 구나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마교도들이 여기까지 왔다 갔다는 말이에요?”
“이미 스님들도 다 전멸한 거 아니야?”
랑아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온갖 추측을 쏟아냈다.
지켜보다 못한 설화가 그들의 틈새로 다가오며 말했다.
“마인(魔人)들이 한 짓이 아니야.”
그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곳곳에 남아 있는 무공의 흔적은 분명 마공이 아니었다.
랑아대의 철두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그럼 누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말입니까?”
“글쎄. 한 놈이 벌인 짓 같네. 무덤을 파헤친 건 사리를 빼가려고 한 것 같고.”
사리는 참된 수행을 하는 승려의 몸속에서 자라는 구슬이다. 그중에서 깨달음을 얻은 고승에게선 불사리(佛舍利)가 나오는데, 이것을 복용하게 되면 막대한 내공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다.
철두가 등 뒤의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누군지 몰라도 소림사의 가장 신성한 장소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뭐 가보면 알게 되겠지. 앞장이나 서.”
“예, 누님.”
철두를 필두로 대열이 다시 이동을 개시했다.
이곳 탑림은 소림사의 뒤뜰에 해당하는 곳으로 목적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못해 이들은 또다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멈추시오!”
맞은편에서 곤봉을 움켜쥔 네 명의 승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깊은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금강동인(金剛銅人)을 연상케 하는 묵직하고 강인한 기개. 그리고 머리에 찍혀 있는 붉은 점들이 인상적이었다. 하나부터 넷까지 숫자가 다양했다.
무림 출신인 현정과 청해는 그들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사대금강……?”
사대금강(四大金剛). 소림사의 수호신들로도 불리며 이들 넷이 진법을 펼치면 화경급의 위력을 낸다고 알려져 있었다.
“시주들의 정체를 밝혀주시지요.”
예전 같았으면 눈도 마주치지 못할 존재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현정이 앞으로 나서며 미리 준비해온 염주를 꺼내며 말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방장님께서 건네주신 염주입니다. 우리는 소림사를 돕기 위해 소나라에서 온 관군들입니다.”
사대금강 중 첫 번째인 일(一) 금강이 앞으로 나서서 염주를 받아들었다.
“방장님의 신물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곳에 무림맹이 와있다는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현정은 현재 상황을 간략히 요약해서 설명해주었다.
얘기를 듣던 사대금강 중 삼 금강이 안도하며 말했다.
“저희를 돕기 위해 이런 험난한 길을 오르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것보다 무슨 일입니까? 탑림이 지금 난장판이 되어 있던데요?”
일 금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참회동에 갇혀 있던 파계승의 짓입니다. 사찰이 혼란스러운 틈에 탈옥하여 추적하던 중이었습니다.”
“파계승이요?”
“예, 방주님의 사제였던 정광대사입니다. 한때는 저희의 사숙이었으나, 지금은 심마에 빠진 살인귀에 불과한 자입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거 참 안 되었군요.”
“우선 안으로 들어갑시다. 지금 승려들이 모두 소림사의 입구에 모여 진을 치고 있습니다.”
랑아대원들이 발걸음을 옮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돌연 사대금강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네 자루의 곤봉이 전면을 향해 내뻗어지며 누군가를 겨냥했다.
“정체를 밝히시오.”
금강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랑아대의 가장 후미. 한 여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치챘어? 제법이네.”
사대금강을 상대로 태연할 수 있는 마인(魔人)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은 상대의 인상착의에서 정체를 짐작해 내었다.
“옥, 옥화신녀?”
“마두가 어찌 이곳에…….”
분위기가 이상해지려 하자 현정이 나서서 말렸다.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여 외부에서 모셔온 분입니다.”
이마에 점이 네 개 박힌 사 금강이 물었다.
“방주님도 이 일을 알고 계신단 말입니까?”
“섬서에서부터 함께 이동했는데 모를 수가 없지요. 관군의 이름을 걸고 보증합니다.”
병사들이 이렇게까지 얘기하자 사대금강도 긴장감이 조금 풀어졌다. 하지만 그들도 한 가지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일 금강이 한 손으로 합장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마공을 익힌 자는 신성한 사찰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녀 또한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눈앞의 땡중들이 괘씸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신마교에 짓밟힐 소림사가 아니던가.
마음 같아선 교육을 시키고 싶었지만, 랑아대의 체면을 생각해서 조용히 있기로 했다.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녀들 와.”
대원들은 사대금강을 따라 사찰로 들어가며 잠시 작별을 고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누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설화는 대원들에게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손짓했다.
홀로 남겨지자 갑자기 따분함이 엄습해 들어왔다.
그녀가 지면을 박차자 학(鶴)이 날갯짓하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근처의 바위 위에 다소곳이 걸터앉아 절경을 둘러보니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이제 두 시진쯤 남았겠네.’
남편과 무림맹이 교란 공격을 시작하기로 한 시점이었다. 그전에 소림사에 있는 모든 승려를 철수시켜야 한다.
소림사에는 들어갈 수 없었기에 이곳에서 더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일다경쯤을 넋 놓고 있을 때였다. 돌연 그녀의 미간이 급격히 좁혀졌다. 자신을 향해 무엇인가가 날아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파앙-!
순간적으로 그녀의 상체가 비틀어지며 무엇인가를 낚아챘다.
섬섬옥수를 펴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색의 작은 구슬 같은 게 쥐어져 있었다.
설화는 코웃음을 치며 좌측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 미친 파계승인가 보구나.”
늙은 중 하나가 혈의로 변한 가사를 입은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광기에 휩싸인 두 눈을 보니 제정신이 아닌듯했다.
그는 기괴한 웃음을 내뿜으며 설화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이히히힛!”
파계승의 시선은 설화의 기분을 몹시 불쾌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미쳐버리겠네. 별 거지 같은 게.”
파계승은 상황 파악을 못한 듯 검지로 코를 후벼 파며 춤을 추었다.
“히히힛! 예쁘다! 나랑 입 맞추자! 음양합일! 음양합일!”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 올려진 검은 물체를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조금 전 낚아챈 것이 파계승이 날린 코딱지였다는 것을 말이다.
“너 설마…….”
그녀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살기(殺氣)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억눌러왔던 마기(魔氣)가 주변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 파계승은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히히힛! 이거 먹어!”
파계승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딱지가 곡선을 그리며 맹렬히 다가왔다. 적중당한다면 몸이 꿰뚫릴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코딱지로 탄지신통(彈指神通)을 펼치다니. 정말이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옥화신녀가 누구인가. 원거리 공격만큼은 마교의 그 누구도 그녀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설화가 검지와 중지를 내뻗자 소매에서 대침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화비전 사 초식 일점살화(一點殺花). 붉은 기류에 감싸진 대침이 회전하며 쏘아져 나갔다.
쿠웅-!
대침이 딱지의 정중앙에 적중하며 분쇄해 버렸다. 게다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파계승의 목젖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 순간 위기감을 느낀 파계승이 신법을 펼치며 우측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러나 그곳에선 어느새 다가온 설화가 묵빛 기류에 휩싸인 손바닥을 후려치고 있었다.
콰앙-!
둔탁한 굉음과 함께 파계승이 연신 뒷걸음질 쳤다. 용케도 막아냈지만, 팔목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프다! 아프다! 히힛!”
“넌 오늘 죽었어.”
강호를 은퇴한 이후 지금처럼 그녀를 화나게 한 인물이 없었다.
분노의 화신이 된 설화는 파계승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묵빛 기류에 휩싸인 그녀의 양손이 수백 개로 늘어나 보였다. 마치 천수관음(千手觀音)이 이곳에 현신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쩌적-! 쩌저저저적-!!!
무지막지한 공격이 계속되자 파계승이 비명을 질러댔다.
소림의 대력삼십팔장(大力三十八掌)을 펼치며 막아내고 있었으나 어림도 없었다.
잠시 후 설화의 왼쪽 손바닥이 그의 앞가슴을 후려쳤다.
쩌엉-!
허공으로 붕 떠오른 파계승은 오 장을 날아가 등 뒤의 나무에 쩍 하고 부딪쳤다.
쿠웅-!
“히히힝. 아프다! 나쁜 엄마! 나 때리지 마!”
심마에 빠진 파계승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설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그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파계승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바닥에서 무엇인가 영롱하게 빛나는 작은 구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불사리?’
조금 전의 충격으로 파계승이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불사리는 마치 태양이 떠오르듯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그녀의 손아귀에 붙잡혀졌다.
“내, 내 보물이다! 돌려줘, 내 보물!”
파계승이 손을 내뻗으며 오열했지만, 영약보다 귀하다는 이것을 돌려줄 이유는 없었다.
설화는 불사리를 품속에 갈무리하며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더 있지? 입 닥치고, 모두 가져와. 하나도 빠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