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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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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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1)
2022.09.04.
쿠웅-!
견마대의 대주가 쓰러지는 소리였다.
일각(一刻). 백여 명으로 이루어진 견마대가 전멸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마교에서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소모품에 불과했으니.
“듣던 대로 제법이구나. 하지만 혼자서 우리 전부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적진의 중심부에 서 있던 대호법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이곳의 지휘관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달려가서 먼저 죽이고 싶었지만, 놈의 주변으로 기립하고 있는 여섯 명의 마인들이 문제였다. 척 보기에도 장로급의 극마들로 짐작되었다.
“물론이지. 궁금하면 어디 한번 시험해 봐.”
“참으로 광오한 놈이로구나.”
대호법은 광적으로 오만하다는 표현을 썼다.
물론 소무가 보이는 반응에는 허풍이 반쯤 섞여 있었다.
마인들의 숫자는 소림사를 가득 메울 수 있을 만큼 많았다. 승부를 내기 전에 자신의 체력이 먼저 바닥날 터였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오합지졸들을 상대로는 나 혼자면 충분하다.”
“어디, 그런 소리를 해도 될 자격이 있는지 보겠다.”
대호법의 시선이 우측의 누군가를 향했다.
몸에 척 달라붙은 흑의 위에 죽립을 눌러쓰고 있는 검객이었다.
“수라대주 천진환.”
지목당한 마인이 그의 앞으로 냉큼 달려와 기립했다.
“명하십시오.”
“수라대를 이끌고 저자를 쓰러트리거라.”
“존명.”
천진환의 주변으로 백여 명의 흑의인들이 모여들었다.
일률적인 움직임으로 보아 진법을 수련한 무력단체인 듯했다. 전신으로 풀풀 풍겨내는 지독한 마기(魔氣)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견마대와는 수준이 달랐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아라.”
소무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들이 자신의 주위를 포위하는 것을 말이다.
선공을 가한다면 손쉽게 궤멸시킬 수도 있을 테지만, 적들은 끊임없이 몰려들 터.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잠시 후 사방에서 백여 자루의 검날이 자신을 향해 겨누어졌다.
“쳐라!”
수라대주의 명령과 함께 마인들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포위를 좁혀왔다.
그들의 중심에 자리한 소무는 마치 칼날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그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부질없는 짓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가닥의 검기가 목젖을 노리며 쏘아져 나왔다.
소무는 미동조차 없었다. 단지 고개만 살짝 흔들 뿐이었다.
파앙-!
검기가 그의 목젖을 가르고 지나간 것 같았지만,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만이 들려왔다.
그 순간 다시 네 개의 검기가 다가왔다.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우측으로 슬며시 이동한 소무는 상체를 비틀며 최소한의 동작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이때 수라대는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다시 그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자루의 검날. 그러나 소무의 반격이 더욱 빨랐다.
그가 공격을 개시하는 순간 진법이 통째로 흔들리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꽈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다섯 명의 마인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토막난 채로 말이다.
마인들의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낸 소무는 허공에서 폭풍처럼 회전했다.
탈혼검법 삼 초식, 비진난격(飛進亂擊).
그의 검날이 움직임을 발하자 칼날 모양의 기(氣)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크윽!”
“컥!”
열 명이 넘는 마인이 처참한 몰골이 되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간적으로 진법에 생겨난 구멍. 그것을 놓칠 소무가 아니었다.
지면에 내려선 그는 수라대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파고들기 시작했다.
연달아 초식을 펼친다면 진법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내력을 아껴야 했다.
수라대의 중심을 헤집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양 떼를 헤집는 성난 사자와도 같았다.
진법이 기능을 상실한 이상 그 누구도 소무의 움직임과 검술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더는 전투라 부를 수도 없었다. 일방적인 학살. 그리고 처절한 비명이 숭산을 뒤흔들었다.
써컥-! 촤아악-! 푸욱-!
“크아악!”
“컥!”
“끄흑!”
소무가 지나는 자리로 적들의 시신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대로라면 반각도 버티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대호법과 마교도들은 표정이 점차 굳어져 갔다.
“대호법님, 아무리 현경이라지만 무공이 저희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걱정할 것 없다. 우리 중 절반을 잃더라도, 저놈만 잡을 수만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니까.”
그들은 묵묵히 소무의 학살 장면을 지켜보았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그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대호법님.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반 각이면 끝날 것 같았던 전투가 일식경이나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수라대가 버티고 있다고 좋아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것 같군. 아무래도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구나.”
“지원군이라도 기다리는 걸까요?”
대호법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마지막 남은 수라대의 대주가 단발마를 토해냈다.
“크헉!”
복부에 꽂힌 검을 뽑아낸 소무는 검날에 맺힌 핏물을 털어냈다.
“고작 이 정도인가?”
피로 물든 소무의 갑주는 조금의 흠집도 없었다.
기가 질릴 만도 했건만, 적룡포의 노인은 지금의 상황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토해냈다.
“허허허. 그럴 리가 있겠는가.”
“네놈의 부하들이 이백 명이 넘게 죽었다. 근데 뭐가 그리 웃기지?”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도 필요한 법이지. 그것보다, 너는 지금 시간을 끌고 있군. 그걸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리라 생각했는가?”
어차피 목표로 한 시간은 거의 채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아무래도 관계가 없었다.
“맞아.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대호법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한참을 웃었다.
“허허허. 내가 이렇게 웃어보긴 오랜만이로구나. 시간을 끈 게 너뿐만이라 생각하는가?”
마교에서도 시간을 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내색만 하지 않았을 뿐 소무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당도하는 순간 은밀히 진영을 빠져나가는 마인들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근방에 매복해 있는 관군들에게 알리러 갔을 터. 머지않아 이곳으로 천라지망(天羅地網)이 펼쳐질 게 분명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어쨌거나 적들의 시선을 돌리는 것은 성공한 셈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였어. 이거 연기에는 소질이 없는데, 큰일이로군.’
지금쯤이면 소림사에서 은밀한 탈출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었다. 적들의 시선을 계속 잡아두기 위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해야 했다.
소무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움찔거렸다.
“뭐라고? 왜 시간을 끈 거지?”
“놀랍겠지. 곧 있으면 알게 될 거다. 네놈은 오늘 이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야.”
“너희들 말고 지원군이 또 있다는 얘기인가?”
그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다소 어설픈 연기였지만, 대호법은 의심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입가가 미소를 그리는 것으로 보아 확실했다.
“허허허. 그렇게까지 멍청한 놈은 아니로구나. 네게 무슨 속셈이 있든지 오늘 이곳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들한테 그럴 능력이 있을까?”
“어디 잠시 뒤에도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한번 지켜보겠다.”
소무는 검 끝에 맺힌 핏방울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기대되는군.”
그 순간 대호법이 마인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저놈은 지금 지쳐있다! 귀멸대와 혈마대는 어서 가서 마무리를 지어라!”
잠시 후 마교도의 진영이 파도처럼 꿈틀거렸다.
드디어 주전력이 움직이는 듯했다. 천 명이 넘는 마인들이 소무를 향해 밀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죽어!!”
무림에서 고작 한 명을 상대로 이 정도의 전력이 움직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광경이었지만, 단신으로 맞서는 소무는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오너라.”
곧이어 마인들로 이루어진 파도가 그의 전신을 집어삼켜 버렸다.
멀리서는 소무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파도 안에서 폭우 소리가 연달아 뿜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대호법은 뒷짐을 지고 흡족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한 호흡이 더 지난 후.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갑자기 파도가 두 쪽으로 쩍하고 갈라졌기 때문이다.
써커컥-!!!
반월 모양의 거대한 강기였다.
대호법은 찰나의 순간 야차 같은 소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인들의 피를 뒤집어쓴 그는 베고 또 베고 있었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말이다. 마인들이 밀집한 경우에만 한 번씩 초식을 펼치며 대량 학살을 벌였다.
“대호법님. 이대로면 귀멸대와 혈마대도 전멸입니다. 장로들이 나서서 정리하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대호법은 낮게 깔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자네들뿐 아니라 모든 전력을 투입시켜야겠군.”
대기 중인 마인들의 시선이 우측 측면으로 향했다. 절묘한 순간에 일단의 무리가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자신들에 비교해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움직임이 대단했다. 게다가 선두에 서 있는 세 명은 한눈에 보아도 화경의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전력임은 분명했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다.
“정파의 개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마교의 본진에 남아있던 마인들이 모조리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무 위에 있던 마교도들도 계속해서 날아올랐으며, 숲에서도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여섯 명의 장로 또한 소무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며 기회를 노렸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지금의 상황이 그러했다. 시간이 갈수록 소림사의 입구는 처절한 지옥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직 평온한 것은 대호법과 그의 직속 부하들인 백 명의 마인들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구나.”
대호법을 보필하는 마인 중 우두머리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왜 지원군이 저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저 정도라면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어.”
“관군의 도움도 필요 없겠군요.”
“그러한 부분의 문제가 아니야.”
“예…….”
이 싸움에서 저들이 얻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석연치가 않았다.
아무리 소림사가 맹주의 사문일지라도,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할 만큼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었다.
고민하던 대호법은 부하 중 한 명을 지목해 말했다.
“뭔가 우리가 놓친 게 있는 것 같구나. 혹시 모르니 너는 소림사로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오너라.”
“존명!”
대호법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전장을 지켜보았다.
정파의 무인들은 적은 인원수 때문인지, 조를 이루어 등을 맞대어 싸우고 있었다. 제법 버티고는 있었지만,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열 배가 넘는 인원수를 어찌 버텨내겠는가.
소나라의 대장군은 여섯 명의 장로에게 둘러싸여 팽팽한 접전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주변으로는 사나운 기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기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저들의 노림수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일각이 지나자 올려보냈던 부하가 미친 듯이 달려왔다.
“대, 대호법님. 소림사를 감시하던 정찰조가 전멸해있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깊숙이 들어가 보았으나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습니다.”
“뭐라고? 그럼 놈들이 어디로 증발했다는 말이야?”
“아무래도 사찰을 벗어나 숭산의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호법은 골이 아프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나를 따라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