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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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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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3)
2022.09.06.
파계승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으흐흑. 할배가 내 보물 가지고 도망쳤어.”
주변으로는 처참하게 죽은 마인들의 시신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바닥을 뒹구는 한 마교도의 옷에다가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어차피 너도 훔친 거잖아.”
“아니야, 내 거야!”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등을 돌렸다.
“그래, 전부 네 거 해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미쳐버린 땡중하고 노닥거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누나, 어디 가?”
설화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도 눈앞의 파계승보다는 나이가 적을 터였다.
“언제 봤다고 내가 네 누나야?”
“나도 같이 갈래.”
“가까이 오지 마. 처맞기 전에.”
그녀는 파계승을 따돌리듯 보법을 밟으며 언덕 너머로 내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중 뒤를 힐끔 돌아보니 역시나 그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어휴. 저걸 그냥.’
마음 같아선 해치우고 싶었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게 분명하지 않은가. 게다가 생각처럼 쉬운 상대도 아니었다.
예상대로 삼황채에 도착하자 아무도 없었다. 모두 다 내려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파계승의 시선을 피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 * *
소림사의 입구. 이곳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무진 장로가 적들을 가로질러 아미파의 금정사태에게 다가갔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할 것 같습니까?”
그는 말을 하는 순간에도 세 명의 마인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금정사태 또한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지금 바쁘니까 저 인간에게 물어봐요!”
그녀는 아미파의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림맹의 무사들은 몹시 지쳐있었다. 아무리 베어 넘겨도 밀려드는 적들은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향했다.
금정사태가 지목한 인물. 대장군 소무는 단신으로 여섯 명의 극마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로는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기에 근처로는 아무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가공스러운 장면이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철수해야 합니다!”
또 한 명의 마인을 베어 넘기던 금정사태는 등 뒤로 소리쳤다.
“장군은 어찌하고요?”
“그가 상황이 좋지 않으면 먼저 퇴각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맹원들이 퇴각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극마들의 발목을 붙잡아줘야 했다.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금정사태의 신형이 늘어지며 수십 개의 분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미파의 절학인 분광수미검(分光收迷劍)이었다.
파파파파팟-!
“크윽!”
“끄아악!”
그녀가 지나는 자리로 십수 명의 마인들이 저항조차 못 하고 고꾸라졌다.
퇴로가 생겨나자 무진 장로가 맹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퇴각한다! 모두 금정 장문인을 따라 이동하라!”
그렇지 않아도 이 순간만 기다리고 있던 맹원들이었다. 그들은 초췌한 몰골로 일사불란하게 물러서기 시작했다.
퇴각은 예상보다 수월했다. 마교의 극마들이 모조리 소무에게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정명 방장이 안타깝다는 말투로 불호를 외쳤다. 이곳에 자국의 대장군을 홀로 남겨두고 가야 하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어서 퇴각합시다, 맹주님. 쉽게 쓰러질 자가 아닙니다.”
어쨌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맹원들이 퇴각할 수 있도록 함께 대열의 뒤를 받쳐줘야 했다.
썰물 빠지듯 숭산의 반대편으로 내달리는 무림맹의 맹원들. 그들의 얼굴에 잠시 안도가 떠올랐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풀숲을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무림맹의 쥐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휘나라의 병사들이었다.
관군이 방해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병력이 너무나도 많았다. 길목을 까마득히 둘러싼 병사들의 포위는 마치 수백 겹이나 되는 것 같았다.
선두에서 길을 뚫던 금정사태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등 뒤로는 허탈한 맹원들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뭐 이런 미친.”
“이럴 수가…….”
그 순간 무엇인가가 금정사태의 뇌리를 벼락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온 것이 있지 않은가.
“연유막(煙流瞙) 준비!”
당문의 기술로 만든 비장의 무기였다. 살상력은 없었지만, 일정 시간 적들을 무력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맹원들은 다급히 천을 꺼내어 입과 코를 가리는 한편 품속에서 작은 호리병을 꺼냈다.
“선두 투척!”
대열의 선두에서 이십여 개의 호리병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뒤따르던 당문의 고수들이 기가 막힌 솜씨로 암기를 날려 호리병을 꿰뚫어 버렸다.
푹-! 푸푹-! 푸푸푹-!
호리병에서 뿜어진 연기가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것을 눈치챈 휘나라의 관군들은 당황했다.
“독이다!”
“이 비겁한 놈들이 독을 살포했다!”
독이란 말에 병사들은 돌진하다 말고 주춤거렸다. 그 누가 독을 마시고 개죽음을 당하고 싶겠는가. 그 기회를 틈타 금정사태가 돌파를 시도했다.
추형진(追形陣). 관군에서나 쓰는 쐐기 형태의 돌파진이다.
무림맹에서 따로 훈련한 적은 없었으나, 경공이 빠르고 강한 자가 앞쪽으로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진법이 형성되었다.
연기를 들이켠 병사들이 배를 잡고 뒹굴자 관군의 진영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아이고, 배야!”
“끄으윽!”
연유막의 보유 수량은 일 인당 한 개였다. 수량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아껴서 사용해야 했다.
“투척을 멈춰라!”
목적지는 후진현의 나루터. 소림사에서 탈출한 승려들이 먼저 도착할 때까지 무림맹에서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먼 거리를 돌아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많은 마인들과 병사들이 방해해올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 * *
소나라의 수군 제독 적운.
대장선의 뱃머리에 우뚝 선 그는 지휘봉을 움켜쥔 채 뒷짐을 지고 있었다.
추혼이검(追魂利劍)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그는 해적 출신임에도 수군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유(柔)한 성품 때문이었다.
“적함 격침 마흔다섯 척. 아군의 함선은 여섯 척이 침몰하였습니다.”
수군 장교가 적운에게 조금 전의 전투 결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전과만 놓고 보자면 대승리였지만, 적운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여섯 척이나 침몰한 것이 못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수고했네. 갈 길이 머니 일식경 안에 정리하고 출발한다.”
“예,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백여 척에 가까운 함선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시선이 한 함선을 향해 고정되었다.
“음.”
보급선의 갑판이 매우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병사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시야가 차단되어 잘 보이지 않았다.
대장선에서 신호를 보내자 장교 한 명이 탐망선을 타고 다가왔다.
“저 함선은 왜 저리 소란스러운가?”
“저 그게……. 선실에서 웬 여자아이 하나가 나왔습니다.”
적운의 두 눈이 황당하다는 듯 휘둥그레졌다.
“여아라니?”
“부모님들이 모두 여기에 있다고, 보고 싶어서 따라왔다고 합니다.”
그는 안광에 내력을 집중하여 해당 함선의 갑판을 다시 살펴보았다. 쪼그만 여아가 병사들에게 붙잡힌 채로 시무룩해 있는 광경이 보였다.
“선실에 외인이 있다는 걸 지금에서야 확인하다니, 이것 참 기강이 엉망이로군. 꼬마 하나를 놓치면서 적들을 어떻게 경계한다는 말인가?”
“송구스럽습니다. 은신 능력이 워낙 뛰어나 방도가 없었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스스로 나오지 않았으면 끝까지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무심코 듣고 있던 적운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들이켰다.
“허. 그걸 지금 말이라고…….”
수군 장교는 호흡을 크게 들이켜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독께서는 그동안 한수(漢水)에 계셔서 못 보셨군요. 장안에서는 유명한 꼬마입니다. 대장군의 딸이기도 하고요.”
적운의 얼굴에 처음으로 호기심이 떠올랐다.
무림 출신인 그는 소무의 과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검성의 딸이 이곳에 있다니.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졌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적운은 다가오라고 손짓을 해보았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소소의 신형이 날아올랐다.
타앗-! 타앗-!
물수제비를 치듯 물 위를 박차고 다가오는 꼬마의 모습이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수상비를 펼칠 수 있다니.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눈 깜짝할 사이 작은 체구가 갑판으로 날아올랐다.
한 호흡이 더 지난 뒤에는 코앞에 서서 양손을 모으고 인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적운은 아이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그래. 네 아비가 소무 장군이 맞느냐?”
“네. 우리 아버지는 어딨어요?”
“지금 태우러 가는 길이니 오늘 중에는 볼 수 있을 게다. 헌데 부모님들이 보고 싶다고 어찌 이곳까지 따라올 생각을 하였느냐?”
소소는 뭔가 서럽다는 듯 훌쩍거리며 말했다.
“나만 빼고 놀러 간 줄 알았어요. 힝…….”
스무 명의 랑아대만 대동하고 은밀히 이동했던 터였다. 연설화도 아이에게 며칠 자리를 비운다고만 했지, 임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장안 소속의 함선들이 그들을 태우러 간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허허. 거참 황당하구나. 어쨌거나 이 배는 이제 안전하니 여기서 얌전히 있거라.”
이미 휘나라의 함선들은 모두 격파해놓은 상태였다. 이제 남은 임무는 소림사에서 탈출한 자들을 태우고 돌아가면 그뿐이었다.
“네, 아저씨…….”
“근데 왜 그러느냐? 어디 아픈 데가 있으면 말하거라.”
소소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양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자신의 배에서 검성의 딸에게 변고라도 생긴다면 그야말로 독박이었다.
힘없는 모습에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가……, 배가 너무 고파요…….”
이틀 동안 은신하며 먹은 음식이라고는, 약간의 간식이 전부였다.
한참을 웃던 적운은 장교에게 말했다.
“허허. 이 아이에게 음식을 아낌없이 내주어라.”
대장선인 만큼 다른 함선보다 식량의 질이 좀 더 괜찮았다.
조리를 담당하는 병사가 장교의 지시를 받고 아이를 선실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거라, 실컷 먹게 해주마.”
얼굴이 활짝 펴진 소소는 병사의 뒤를 따라 춤을 추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적운은 갑판장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명령기가 솟아오르며, 갑판장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메아리쳤다.
“닻을 올려라! 목적지까지 전속력으로 나아간다!”
대열을 갖춘 소나라의 함대가 황하를 지배하고 있었다.
황하의 물결을 따라 적국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음에도 더는 방해하는 함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소무가 맹진항의 함선을 모두 파괴하고, 조선소의 기술자들을 빼돌린 덕분이었다.
반나절이 지난 뒤. 드디어 함대가 목적지인 나루터에 도착했다.
길게 늘어선 백여 척의 함선이 뭍을 향해 일자진을 펼쳤다. 수병들은 활과 강노 따위의 원거리 무기들을 움켜쥔 채 완벽한 경계망을 유지했다.
그리고 대장선의 갑판 위. 제독 적운이 옆에 서 있는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빨리 가족들을 만나고 싶은가 보구나.”
“네……. 너무 보고 싶어요.”
“허허. 그렇게라도 만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지. 네가 부럽구나.”
“아저씨는 가족이 어디에 있어요?”
적운은 사파의 거대 문파 중 하나인 패력문의 소문주이자 제일 고수였다. 신마교에게 습격을 당한 날, 자신을 제외한 문파의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내뻗으며 중얼거렸다.
“마침 저기 오는 것 같구나.”
“정말요?”
눈에 힘을 주고 전방을 주시하던 소소는 곧이어 팔짝 뛰며 좋아했다.
“삼촌들이 왔어요!”
선두에는 랑아대의 삼촌들이 보였고, 뒤로는 소림사의 승려들이 끝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소소는 갑판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랑아대원들은 어리둥절했다. 이곳에서 조카가 나타나서 반겨주리라 어찌 상상했겠는가.
선두에 있던 현정이 달려오던 소소의 옆구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우리 조카, 왜 여기 있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소소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몰래 따라왔어요.”
“하하! 여전하구나 요 개구쟁이. 다롱이는 어쩌고?”
“일광 삼촌이랑 초희 이모가 돌봐주고 있어요. 근데 우리 엄마는 못 봤어요?”
연설화는 중간 지점에서 소무를 돕겠다고 되돌아갔다.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강의 부부였기에 별로 걱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현정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대충 둘러댔다.
“응, 곧 올 거야. 같이 기다려 볼까?”
소소의 짧은 팔이 현정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좋아요,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