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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4) (219/250)


219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4)
2022.09.07.


소림사에서 탈출한 승려들은 수군의 함선 위에 나뉘어 올라탔다. 남은 것은 우회해서 오는 무림맹의 무사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정찰을 맡은 랑아대원들이 뭍으로 내려와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현정 사형, 정말 괜찮을까요?”

현정을 바라보는 청해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사제의 등을 한 번 토닥이고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괜찮을 거야. 대장님하고 누님이 함께 있는데 누가 뭘 어쩌겠어? 곧 있으면 무림맹을 이끌고 도착하실 거야.”

둘은 한 조를 이루어 함대의 위치에서 십 리가 떨어진 곳까지 이동했다.

적당한 곳에 이른 뒤, 나무 위에 걸터앉아 묵묵히 주변을 감시했다.

그러길 반 시진. 먼 곳에서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사형, 저기 오는 것 같아요!”

“정말이네. 내 말이 맞지?”

무림맹의 별동대였다. 출발은 삼백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그 수가 다소 줄어들어 있었다.

개개인의 몰골을 보니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었을지 단번에 짐작되었다.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던 청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장님하고 누님은 안 보이는데요?”

“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생존율이 가장 높아야 할 두 명이 보이지 않다니.

무림맹과는 불편했기에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상황을 알아봐야 했다.

현정과 청해는 동시에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타앗-!

그들을 발견한 무림맹의 인파가 걸음을 멈추었다.

선두에는 맹주를 포함한 원로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화산파의 제자였던 시절이었으면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엄연히 군단의 백부장들이었다.

현정이 포권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성격이 급한 아미파의 금정사태가 물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소림사의 승려님들은 무사히 도착했는지요?”

“예, 덕분에 잘 도착하여 배 위에 승선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대장님은 왜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금정사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장군은 저희가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시겠다고 그곳에 남으셨습니다.”

“……괜찮으시겠죠?”

마지막으로 본 그는 여섯 명의 극마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도 합격진을 익힌 노련한 고수들에게 말이다. 아무리 현경이라고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실 겁니다.”

용건을 마친 무림맹의 대열은 현정과 청해를 지나치며 나루터로 나아갔다. 오랜 시간 먹지도 쉬지도 못했기에, 다들 함선 위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청해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정에게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우리 대장님은 무적이잖아요.”

“하긴……. 곧 돌아오시겠지.”

그들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옆을 지나치던 무당파의 제자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산파에서 온 매화검수들은 다 어디 갔어?”

“조금 전에 용화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대. 맨 뒤에서 따라오다가 차단당했다더라.”

“뭐라고? 그럼 어찌 되는 거야?”

“지금쯤 포위당해서 죽어가고 있겠지. 뭐 이미 전멸했을지도.”

“안타깝네. 기껏 멸문을 피해 살아남은 제자들까지 이렇게 죽어가다니. 천하의 화산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건지.”

그들의 말을 듣게 된 현정은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청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그래요? 차라리 잘된 거 아니에요?”

“미워도…… 우리의 사형들이잖아.”

“참 속도 좋네요. 화산에서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꾸욱-!

현정이 검집을 강하게 움켜쥐는 모습이었다. 분명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너도…… 너도…… 날 구하러 왔었잖아.”

잊을 수가 없었다. 문파가 멸문당하던 그날, 극적으로 탈출해 도망치던 자신을 청해가 구하러 왔었다. 자신이 멸시했던 눈앞의 사제가 말이다.

“어휴, 그냥 잊어요. 그건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해서 도와준 거니까.”

“후후. 어쨌거나 그 순간은 절대 잊히지 않아. 그래서 나도 예전의 청해 사제처럼 한번 해보려고.”

청해도 한숨을 내쉬며 검집을 움켜쥐었다.

“가서 후회하지나 말아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고.”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용화사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찰이었다. 문제는 고작 둘이서 매화검수를 구출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근데 둘이서 되겠어요? 죽을 수도 있어요.”

너무 위험한 일이었기에 다른 대원들에게는 차마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현정은 망설임이 없었다.

“가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돌아올 거야. 위험할지도 모르니 사제는 이곳에 남아있어.”

“거참 무슨 섭섭한 소리를 해요? 우리 둘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 한번 보여주자고요.”

그들이 출발을 개시하려 할 때였다. 돌연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이 같이해요. 소소가 도와줄게요.”

뒤를 돌아보자 소검을 움켜쥔 소소가 강아지처럼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근처에 은신하고 숨어있었던 모양이었다.
위험한 곳에 조카를 끌어들일 수는 없는 일. 현정이 물러가라고 연신 손짓했다.

“위험하니까 너는 돌아가.”

“삼촌들은요? 삼촌들, 죽으면 안 돼요.”

자신들의 대화 내용을 들은 것이다. 청해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삼촌들끼리 한 농담이었어. 별일 없을 거야. 금방 다녀올게.”

소소는 대답 대신 보법을 밟았다. 살문의 기술인 암보(暗步)가 펼쳐지자 작은 신형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듯 쓱 사라져 버렸다.

살기를 드러낸다면 모를까. 어디에 숨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휴, 어쩌죠?”

다른 건 몰라도 도주하는 기술만큼은 소소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화경인 일광도 뒤를 쫓다가 두 손을 든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혼자라면 피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터.

“우리 조카를 누가 말려. 소소야, 대신 삼촌들 말 명심해야 한다. 절대 은신을 풀지 말고, 멀리 떨어져 있다가 위험하면 바로 도망쳐야 해.”

“알았어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현정과 청해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소소를 따돌릴 각오로 전력으로 달렸다.

목적지까지는 경공으로 일식경이 걸린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이미 모두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한참 경공을 펼치던 현정이 뒤를 슬쩍 돌아보고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라도 되는 것처럼, 작은 음영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옆을 향해 말했다.

“이미 소소의 무공이 우리를 뛰어넘었어.”

“당연하죠. 살왕에게도 무공을 배웠다던데요.”

“소문이 사실이었어?”

“더한 소문도 있어요. 자기가 살문의 부문주래요.”

현정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뿜어냈다.

“하하하. 못 말려 정말.”

분위기가 밝아지는 듯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시 후 둘의 신형이 동시에 정지했다.

조심스럽게 풀숲을 헤집고 들어가자 안쪽으로 드넓은 공터가 나왔다. 상대적으로 고지대였기에 그곳에 펼쳐진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일곱 명의 도사가 까마득한 병사들의 인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휘나라의 관군들이었다.

“놈들을 죽이는 자는 장교로 진급시켜줄 것이다! 몰아붙여!”

장수로 보이는 인물이 멀찌감치 떨어져 병사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위망에 갇힌 일곱 명의 검수들. 누구 하나 멀쩡한 이가 없었다.

찢어진 도복 사이로 핏물이 고여 있었으며, 크고 작은 상처들은 셀 수조차 없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 그것은 화산파에서 자랑하는 매화검진 때문이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매화꽃이 병사들을 매혹시키고, 다가오는 족족 갈라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할 듯 보였다. 검수들의 검 날에 서린 검기는 꺼질 듯 말 듯 희미해졌으며, 그들이 내뿜는 거친 호흡이 이곳까지 들리는 듯했다.

“현정 사형.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에요,”

관군들의 수는 천여 명이 넘었으며, 매화검수들은 수십 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저들을 이곳에서 빼내어 탈출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정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청해야. 너는 소소 데리고 돌아가.”

“혼자서 뭘 어쩌려고요?”

“뒤에서 기습하면 작은 틈이 생길지도 몰라. 그 틈에 사형들이 빠져나오면 다행이고, 안 되면 도망쳐야겠지.”

“그래도 너무 위험해요.”

병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에 한번 포위되면 답이 없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둘이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삼촌들, 내가 도와줄게요.”

잠시 모습을 드러낸 소소가 방긋 웃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해맑은 웃음이라니. 현정과 청해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뭘 도와?”

“어서 돌아가. 빨리.”

소소는 검을 허리춤에 꽂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사자후를 날릴게요.”

“뭘, 뭘 날려?”

“사자후라니?”

특별한 악보를 연주하기 위해 사자후를 연마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위력은 본 적이 없었기에 의구심만 가득했다.
현정과 청해가 말릴 틈도 없이 소소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떡해요, 사형?”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현정은 조카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닫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자후고 뭐고 간에 저 병력을 어찌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다 붙잡히면 큰일이겠어요.”

“휴. 아무래도 조카가 도망칠 수 있도록 우리가 시선을 좀 끌어줘야겠어.”

둘은 비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격전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더는 몸을 숨기지도 않았다.

“어이 형씨들! 거 일곱 명을 상대로 너무들 하는 거 아니오?”

내공을 담아 발산한 소리였기에 대다수의 병사들이 똑똑히 들었다.

매화검수들을 포위하던 병사들의 공세가 잠시 주춤해졌다. 어리둥절한 그들은 잠시 고개를 돌려 영문을 살폈다.

그곳에는 랑아대의 흑갑을 걸친 현정과 청해가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구석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장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또 뭐 하는 새끼들이야?”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현정과 청해가 동시에 씨익 웃었다.

“랑아(狼牙).”

그 말을 끝으로 둘은 휘나라의 병사들을 향해 돌진을 개시했다.

검 끝을 감싼 선명한 검기(劍氣). 그리고 늑대같이 날랜 몸놀림은 병사들을 일순간 긴장시켰다.

명색이 소나라의 최정예부대인 랑아대의 장교들이었다. 휘나라의 일반 병사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써컥-! 촤아악-!

그들의 검기가 지나는 자리마다 잘려나간 병사들의 신체 부위가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크윽!”

“컥!”

“뭐, 뭐야, 이 새끼들?”

호기로운 기세도 잠시. 둘이 한 조가 되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문제는 적들의 수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둘이서는 진법을 펼칠 수가 없으니, 포위에 너무나도 취약했다.

곧이어 수세에 몰린 현정과 청해는 등을 맞대고 버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들을 포함한 병사들의 숫자가 수백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호흡을 헐떡이는 매화검수들이 보였다. 죽다 살아난 그들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이 이곳엔 왜…….”

무슨 말이 필요할까. 공세가 주춤해진 사이, 눈을 마주친 그들은 고개를 살며시 한 번 끄덕인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들의 모습이 같잖았던 것일까? 병사들이 포위당한 현정과 청해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이거 완전 미친놈들이네.”

“너넨 오늘 뒈졌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조금 전부터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혼란을 틈타 어디선가 거센 돌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쿠르르르릉-!

마치 천둥의 울음소리 같은 기괴한 굉음이 분지를 뒤흔들었다.

모두가 무심코 그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휘나라의 관군들과 랑아대의 장교들, 그리고 겨우 버티고 있던 화산의 매화검수들까지. 일순간 모두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어갔다.

“저, 저게 뭐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폭풍의 중심에는 양손을 허리춤에 붙이고 기마자세를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지켜보던 현정과 청해가 매화검수들을 향해 다급히 몸짓을 보냈다. 고막이 터지기 전에 귀를 틀어막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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