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5)
(220/250)
220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5)
(220/250)
220화 누가 보물을 가져갔는가 (5)
2022.09.08.
용격사자후(龍擊獅子吼). 하늘을 나는 용을 사자의 포효로 떨어트린다는 최강의 광역 무공이다.
과거 소소가 휘나라의 기마대에게 펼쳤을 때는 칠(七)성이었으나, 지금은 두 단계나 상승해 구(九)성에 도달한 상태였다.
쿠쿠쿠쿠쿵-!
요란하게 휘몰아치던 기(氣)의 돌풍이 아이의 몸속으로 흡수되듯 증발해 버렸다.
한 호흡이 더 지나자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 정적만이 가득했다.
호수의 고요함 같은 잔잔함 속에 모두가 두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용격사자후는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방비 상태에서 펼치는 무공이기에 방어에 매우 취약하다.
이상함을 느낀 병사들이 눈치를 보며 다가갔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발출만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 귀를 틀어막은 청해가 현정에게 전음을 보냈다.
- 사형, 기의 흐름이 심상치 않아요. 혹시 모르니 천근추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어요.
천근추(千斤錘). 내공을 사용해 자신의 체중을 수십 배나 증가시키는 무공으로, 최소한 일류의 수준을 넘은 자들만이 가능한 기술이다.
현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푸욱-! 푹-!
땅을 밟은 지면이 움푹 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때. 굳게 다물어졌던 소소의 입이 활짝 벌어졌다.
동시에 작은 입에서 끔찍한 사자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앙-!!!
순간적으로 쏘아진 음파가 빛의 속도로 뿜어지며 휘나라의 병사들을 휩쓸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전면으로 오십 장 이내에 존재하는 병사들은 동시에 귓구멍으로 핏물을 뿜어냈다.
뒤쪽에 있던 병사들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충격에 사지가 마비된 듯 모든 움직임이 정지해있었다.
그러나 용격사자후의 진정한 위력은 음파만이 아니었다.
쿠우우우웅-!
뒤이어진 바람의 후폭풍이 병사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가 덮쳐버렸다.
천 명이 넘는 병사 중 절반 이상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날아갔다.
“끄아아악!”
“크하악!”
상대적으로 내공이 강한 병사들은 날아가는 것을 면했으나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다.
내상을 입은 듯 전신의 모공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동공은 반쯤 풀려있었다.
“큭, X발, 뭐야?”
“끄윽.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휘나라의 관군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단 한 방에 부대 자체가 무력화가 된 것이다.
오직 멀쩡한 것은 철저히 대비하고 있던 현정과 청해뿐이었다.
“청해, 너는 소소를 챙겨!”
“알겠어요.”
우측으로 삼십여 장. 그곳에선 안색이 창백해진 소소가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자후는 내력과 체력의 소모가 극심한 양날의 무공이었다. 발출 후에는 피로가 몰려드는 것이 당연했다.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간 청해는 소소를 왼쪽 어깨로 안아 들었다.
“삼촌, 나 졸려요…….”
“잘했어, 우리 조카. 푹 쉬고 있어.”
말을 마치기 전에 이미 소소는 곯아떨어졌다.
한 호흡이 더 지나자 귓가로 새근새근 내쉬는 숨소리까지 들려왔다.
청해는 조카의 등을 감싸며 주변을 살폈다.
매화검수들을 향해 미친 듯이 돌파하는 현정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매화검수들은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단전이 거의 비어있는 상태에서 맞은 음공이 그들의 속을 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매화검수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현정을 응시했다.
화산파가 멸문을 당할 당시 홀로 도망친 것으로 간주하여, 폭행까지 하지 않았던가. 앙심을 품어도 모자랄 그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매화검수 중 대사형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우리가 그동안 사제를 오해했구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른 검수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 따위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며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포위망이 다시 구축되면 빠져나갈 수 없을 터.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어서 따라오세요!”
검을 움켜쥔 현정이 선두에서 길을 뚫어나가자, 지친 몰골의 검수들이 죽을힘을 다해 따라붙었다.
왼쪽에선 청해가 소소를 등에 업은 채 한 손으로 검을 들고 그를 보조했다.
푸욱-! 촤아악-!
그 어떠한 병사들도 현정과 청해의 일합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포위를 구축하지 못한 이상 개별로 덤벼서는 어림도 없었다.
반각이 지난 후에는 전장을 벗어나 안정권에 이를 수 있었다.
그때 경공 속도를 높인 대사형이 옆으로 다가와 중얼거렸다.
“너희들의 실력이 우리를 넘어섰구나. 자랑스럽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매화검수에게 들은 말이었다. 화산파 출신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였다.
알 수 없는 감정에 현정은 가슴이 벅차오르며 울컥했다.
“그런 소리 마십시오. 사형들은 언제나 저희의 우상이었습니다.”
“고맙구나. 화산을 잊지 않아줘서…….”
“비록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제 마음속의 고향은 언제나 화산입니다.”
상처 가득한 매화검수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제든 마음이 원한다면 고향으로 오거라. 환영하마.”
* * *
나루터에서부터 백여 리가 떨어진 곳.
그곳에는 적들이 펼쳐놓은 천라지망을 뚫고 나온 소무가 달리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 무척이나 애를 먹어야만 했다.
마교의 장로들이 펼치는 합격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설상가상 대호법이 합류한 순간에는 위험한 순간까지 갔었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그의 양손에는 한 여인이 안겨 있었다.
위기의 순간 진법의 후미를 기습하여 퇴로를 열어준 인물. 마교의 전대교주이자 아내인 연설화였다.
덕분에 진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가 내상을 입었다.
설화는 두 눈을 감은 채 소무의 목을 안으며 중얼거렸다.
“도착하면 깨워.”
소무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미 그녀의 상세가 많이 나아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혈도를 통과하는 기(氣)의 흐름은 한참 전부터 안정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요령 피우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그에게는 가정의 평화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알았어.”
소무는 내색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더는 쫓아오는 적이 없었기에 이동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갑자기 뒤에서 무엇인가가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지?’
화경에 필적하는 움직임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피로 얼룩진 가사를 걸친 승려가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나도 데려가, 누나! 나랑 보물 찾으러 가자!”
언뜻 보아도 나이가 설화의 두 배는 넘어 보이는 노승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언제 저런 동생을 두었어?”
설화가 피곤하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미친 파계승이야. 엮일 필요 없으니 따돌려 버려.”
그녀의 말대로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수련 중에 심마에 빠져 광인이 된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경공을 전력으로 펼쳤다.
파앙-!
한줄기 섬전이 바람을 가르며 광속으로 쏘아져 나갔다.
소무와 파계승의 거리가 급격히 벌어지자 뒤에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안 돼!!”
반각이 더 지나서는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소무가 경공 속도를 줄이자, 두 팔에 안겨 있는 설화가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이것 때문이야. 내가 빼돌렸거든.”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과 작은 목함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진귀한 보물들이 틀림없었다.
잠시 후 정체를 알아본 소무가 놀라 중얼거렸다.
“대환단과 불사리라니……. 이 귀한 걸 어디서 얻었어?”
“아까 그 파계승한테 뺏었어.”
두말할 것 없이 최상급으로 쳐주는 영약들이었다.
만약 이것을 정파 출신인 소무가 얻었다면 소림에 돌려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화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쩌려고?”
“하나 먹어볼래?”
이미 소무의 경지는 영약을 복용한다고 강해지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그렇기에 기대효과도 크지 않았으며, 요행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됐어. 연매가 알아서 해.”
“그럼 우리 딸이나 보신시켜줘야겠네.”
“소소에게 먹인다고?”
설화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먹여도 용격사자후가 십성의 경지에 도달할 거야.”
그 말은 신선의 악보라 불리는 진일심소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됨을 뜻한다. 그녀가 원하던 평생의 염원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녀가 기뻐하니 소무도 만류할 이유가 없었다.
“나머지 하나는?”
“비상용으로 남겨두지 뭐.”
“소림사에서 눈치채지 못하겠지?”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아직 설화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불가의 절세무공 여래신장(如來神掌).
그러나 그것을 말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잠깐만.”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기(氣)의 흐름이 느껴지고 있었다.
인원수는 열 명. 정순한 느낌으로 보아 무림맹인 듯했다.
소무는 설화를 안은 채로 재빨리 다가갔다.
처참한 몰골을 한 화산파의 도사들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선두에는 현정과 청해가 있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청해의 등 뒤에 업힌 아이였다.
“소소가 왜 여기에……?”
딸아이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일까? 내상으로 걷지 못한다던 아내의 두 눈이 번뜩 떠졌다.
“내려줘 봐.”
바닥에 내려선 그녀는 벼락처럼 달렸다.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던 그녀는 단번에 청해와 현정의 앞을 가로막았다.
화들짝 놀란 일행은 다급히 경공을 멈추며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설화 누님?”
“다행입니다. 무사하셨군요…….”
설화는 팔짱을 끼고는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랑아대의 장교들은 멀쩡해 보였다. 등 뒤에 업힌 딸도 잠이 들었을 뿐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는 화산파의 매화검수들. 거지꼴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어디선가 죽다 살아난 모양이었다.
강호에서 닳고 닳은 그녀는 단번에 상황을 유추했다.
“너희가 저 애들을 구해온 거란 말이지?”
화산파의 일대제자들을 향해 애들이라고 칭하고 있음에도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도사들도 상대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얼굴에는 안도가 떠올랐다. 지금은 든든한 우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청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대로 설명했다.
“정확하십니다. 소소가 도와줘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설화가 잠이 든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근데 집에 있어야 할 내 딸이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부모님들이 보고 싶다고 함대에 승선하여 몰래 따라왔다고 합니다.”
익숙한 목소리와 따듯한 손길 때문일까? 소소가 잠에서 깨며 실눈을 떴다.
반쯤 풀린 눈동자가 설화를 응시했다.
“……엄마.”
아직도 기운을 차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몹시 피곤한 듯 다시 눈을 감은 채로 양손을 내뻗고 있었다.
“무리해서 사자후를 발출한 모양이로구나. 이리 오거라 우리 딸.”
그녀는 청해에게서 딸을 넘겨받아 가슴으로 안았다.
뒤에는 어느새 다가온 소무가 뒷짐을 지고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님…….”
현정이 상황을 보고하려고 하자, 그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모두 무사하니 되었다. 자세한 건 천천히 들어도 괜찮아.”
“알겠습니다. 함대가 근처에 있으니 어서 돌아가시지요.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때 설화가 소무의 옷깃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먼저 돌아가서 기다려. 우린 조금만 쉬다 갈 테니까.”
이유를 짐작한 소무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영문을 모르던 그들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포권을 건넸다.
“그럼 이따가 나루터에서 뵙겠습니다.”
랑아대의 장교들과 매화검수들은 함대가 있는 방향으로 금세 멀어져갔다.
일가족만 남게 되자 소무가 아내에게 물었다.
“여기서 하려고?”
고개를 끄덕인 설화는 살며시 아이의 혈도를 눌러 잠을 재웠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다소곳이 앉혀놓았다.
“단전이 텅 비어있는 상태에서 복용시켜야 효과가 더 좋아.”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대환단과 불사리가 들려져 있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먹이면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을 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대환단을 먹이는 게 좋을 거야. 부작용이 없는 최고의 영단이니까.”
“응. 이거만 복용해도…….”
“아마 내공이 오 갑자쯤은 되겠지. 내가 할까?”
영단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절대고수가 운기를 도와주어야 한다. 심력의 소모가 큰 작업이었다.
“같은 체질인 내가 하는 게 나을걸?”
그녀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신선의 오감을 타고났다는 선음지체(仙音之體)들이었으니.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뒷짐을 지고 몇 걸음을 물러섰다. 거사가 끝날 때까지 주변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