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선음지체와 진일심소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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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화 선음지체와 진일심소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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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화 선음지체와 진일심소곡 (1)
2022.09.09.
한껏 소란스러웠던 소림사 구출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황하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상대적으로 편안했다. 오는 길에 아군 함대가 휘나라의 전함들을 미리 파괴해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섬서에 도착한 무림맹은 모두 화산으로 이동했다. 텅 비다시피 한 그곳은 현재 무림맹의 임시 본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소무 일가족은 지금 막 집 앞에 도착했다.
끼이익-!
대문이 열리자 소소가 먼저 뛰어 들어갔다.
“다롱아! 잘 있었어?”
웅크려 있던 산군이 벌떡 일어섰다. 냉큼 달려와 소소의 전신을 핥아대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히히. 간지러워~”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던 산군이 배를 까뒤집고 누웠다. 그 틈에 소소가 재빨리 올라타 옆구리를 긁어댔다.
크릉-!
뒤에서는 소무와 연설화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주변으로 돼지 뼈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니 그간 일광이 잘 먹인 모양이었다.
“궁성에 가봐야 하니 먼저 좀 씻을게.”
그 순간 미소 짓고 있던 설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혼자만 바쁘시네.”
아내의 마음을 모를 소무가 아니었다. 집에 오자마자 다시 나갈 준비를 하니 서운할 수밖에.
“저녁에 우리 가족끼리 양주산에서 닭이나 고아 먹을까?”
“그러시든지.”
표정에는 아직 서운함이 남아있었지만, 말투를 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풀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무는 피식 웃으며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그때. 설화는 은밀하고도 자연스럽게 소소의 방으로 들어갔다.
두 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침구류 등 최소한의 물품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나.’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시선이 장롱에 고정되었다. 곧이어 품속에서 꺼낸 불사리와 여래신장의 비급을 그 위에 올려두었다.
절세의 보물들이었지만 당장은 필요가 없었기에 고이 모셔둔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산군의 배 위에 올라탄 소소가 해맑게 웃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 배고파요!”
그러고 보니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밥 먹는 시간은 절대 까먹지 않는 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무정한 아비 빼고 우리끼리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꾸나.”
외식을 한다는 말에 소소는 폴짝 뛰며 좋아했다.
“영영이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담장 너머의 옆집을 살펴보던 설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 거처의 방문 앞을 일광이 호위무사처럼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마치 황제라도 지키듯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미동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어휴, 저 미련한 곰 같은 녀석. 꼴을 보니 밤새도록 밖에서 지키고 서 있었나 보네. 그냥 들어가서 옆에 누웠어야지.’
자리까지 깔아줬기에 이번에는 기대를 많이 했던 터였다. 마음은 통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발전을 못 하고 있으니 답답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자꾸나. 그간 저 옆집 가족들이 다롱이를 잘 돌봐줬으니 아침 정도는 사줘야겠지.”
승낙이 떨어진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소가 질주를 개시했다.
“일광 삼촌!”
타앗-!
담장을 짓밟고 하늘 높이 도약한 소소는 허공에서 한 바퀴를 회전한 뒤 매처럼 수직으로 낙하했다.
기습공격이었다. 이러한 장난을 자주 쳐왔기에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지금까지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전부 막아내던 삼촌이었다.
그러나 소소가 지금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내공이 오 갑자를 넘어섰다는 것을 말이다.
하늘 높이 치켜세워진 아이의 주먹이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
“얍!”
이미 눈치채고 있던 일광은 평소처럼 손바닥을 내뻗었다.
벼락처럼 다가오는 밤톨 같은 주먹. 겉으로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지만, 무엇인가 느낌이 이상했다.
일광은 어딘지 모를 불길한 마음에 재빨리 호신강기를 손바닥에 집중했다.
쩌엉-!!!
“크윽!”
마치 손바닥이 꿰뚫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외마디 신음과 함께 황소처럼 거대한 체구가 뒤로 한 걸음을 밀려났다.
어찌 작은 체구에서 이런 힘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어이쿠, 이 녀석 뭘 먹었기에 이렇게 힘이 장사가 됐어? 조금 더 있으면 삼촌을 두들겨 패겠구나.”
“히히히. 삼촌,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일광은 얼얼한 손목을 돌려대며 물었다.
“다 같이?”
“네, 초희 이모랑 영영이도 같이요!”
초희란 말이 나오자 일광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작은 방의 문이 열리며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여자아이가 걸어 나왔다.
어느새 머리카락이 제법 자란 영영이였다.
“소소야, 정말이야?”
“응, 우리 엄마가 사준대.”
영영은 해맑은 미소로 일광에게 다가가 옷깃을 잡았다.
“같이 가요, 아저씨.”
집채만 한 일광의 손바닥이 영영의 머리를 감싸듯 쓰다듬었다.
“그럼, 우리 영영이가 가자면 같이 가야지!”
“헤헤.”
아미파를 벗어나기 전까진 아픈 기억만 가득했던 어두운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초희와 일광의 보살핌 아래에서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일광도 그런 영영을 좋아했다.
잠시 후 초희와 설화가 합류하자 일광이 자세를 숙이며 양팔을 벌렸다.
“자, 가자!”
그는 소소와 영영을 번쩍 들어 산등성이 같은 자신의 어깨에 올려버렸다.
아이들을 양쪽 어깨에 매달고 앞장서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뒤따르던 설화와 초희가 깔깔대고 웃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십여 장이 떨어진 오솔길. 소무가 흐뭇한 미소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은 함께할 수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처제도 마음이 있는 것 같고, 영영이도 잘 따르니 이제 살림 차리는 일만 남았구나. 힘내라 일광.’
조금의 용기만 있으면 충분한 상황으로 보였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소무도 발걸음을 돌려 궁성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장양의 집무실이었다.
복귀한 부하들을 통해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고 있을 터였다.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백성들이 놀랄 수 있기에 성내에서는 경공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장하고 있었지만, 소무만큼은 예외였다.
아무도 그가 지붕 위를 달리는 움직임을 본 사람이 없었다. 목적지의 코앞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파앗-!
강기를 머금은 암기가 소무의 미간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난데없는 기습이었지만, 이미 예상했었기에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울어지는 그의 고개를 따라 비도(飛刀) 한 자루가 스쳐 지나갔다.
움직임을 멈추자 누군가의 전음이 들려왔다.
- 나를 탓하지 마시오. 누구라도 그렇게 다가오면 공격할 수밖에 없으니.
기습을 가한 자는 살왕(殺王) 백리현이었다.
소무의 시선이 집무실의 지붕 위를 향해 고정되었다.
- 과연 명실상부 중원 최고의 호위무사로군.
- 내 본업은 살수(殺手)요.
- 뭐 마음먹기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겠는가. 이참에 본업을 전향해보는 것은 어떤가? 자네한테 지금 하는 일이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야.
더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긍정도 거절도 아니리라.
맞은편의 전각에서 뛰어내린 소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그럼 들어가겠네.”
곧이어 입구를 지키던 근위병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두 다리를 붙여 기립했다.
“충(忠)!”
“수고들 많군. 민공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계급이 가장 높은 근위병이 앞으로 나서서 보고했다.
“예. 대장군께서 도착하시면 바로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안내해주시게.”
끼익-!
열린 문틈 사이로 내비쳐진 광경은 예상대로였다.
안에는 장양과 또 한 명의 손님이 함께 있었다. 군사 진유소였다.
둘은 환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귀환을 반겨주었다.
“얘기는 들었네. 정말 고생 많았어.”
“수고하셨습니다, 대장군. 어서 앉으시지요.”
소무도 장양과 진유소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그들과 마주 앉았다.
“그간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는지요? 민공께서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허허허. 뭐 다른 게 있겠는가.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요.”
“허허. 모두 자네가 국방을 책임져 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세. 그러니 내가 마음 놓고 내정을 펼칠 수 있지 않은가.”
“한없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의 목표가 멀지 않았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지켜보던 진유소가 소무의 찻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말씀처럼 민공께서는 전쟁을 빨리 끝내시길 원하십니다.”
소무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전란이 길어질수록 민초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불필요한 희생만 계속 발생할 뿐이었다.
탁상 위에 펼쳐진 전략지도. 소무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자, 장양이 표식용 깃발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깃발은 낙양과 개봉이 자리한 위치에 차례차례 꽂혔다.
“낙양을 함락시키고, 개봉으로 들어가 황제를 잡는다.”
“그럼 이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겁니까?”
장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휘나라는 황제의 공포 정치를 통해서만 지탱되고 있네. 기반이 다져지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황실이 제거된다면, 그들에게 점령당했던 국가와 소수민족들이 동시에 들고 일어날 걸세.”
“그리된다면 나라가 수십 개로 분열되지 않겠습니까?”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아가는 것뿐일세. 이후 우리 소나라는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평화수호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네.”
“계획대로만 된다면…… 드디어 태평성대가 오겠군요.”
“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다시는 폭군이 나올 수 없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야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때 진유소가 미리 준비해놓은 병참 보고서를 건네며 말했다.
“언제 출진하실 건지요? 일전에 요청해놓은 회룡포의 재료들이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으니, 서두를 생각입니다. 그런데 회룡포는 사용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신무기였다.
힘들게 재료를 만들어놓고도 사용하지 않겠다니. 놀랄 만도 했지만, 진유소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적들도 우리가 회룡포를 준비한 것을 알고 있으니 굳이 수성전을 벌이려고 하지 않겠지요.”
아무리 높고 두꺼운 성벽이라도 회룡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수성전을 택한다면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깃발 몇 개를 움켜쥔 소무는 지도에서 낙양 근처에 차례차례 전부 꽂아 넣었다.
“완안후이는 주력부대인 기마대를 최대한 활용하여 야전에서 승부를 보려고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 부근들이 되겠지요.”
낙양은 주변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기에 기병에게 매우 유리한 지형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곳에서 싸우려 할 것이 분명했다.
진유소의 얼굴에는 근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최근 낙양 인근에서 철갑기병들까지 목격했다는 정보가 입수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전투일 텐데 걱정이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리 또한 일당백의 정예병들을 보유 중입니다. 그리고 든든한 우군들이 함께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력에서 압도적인 열세였기에 단 한 번의 패전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쟁을 돕기 위해 무림맹의 무사들이 소집되고 있었으며, 포나라에서 온 지원군도 머지않아 당도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잠시 호흡을 고른 장양이 대화에 끼어들며 나직이 말했다.
“사활을 걸어야겠지. 악비 장군이 이끄는 번성의 의용군과 양양성에 주둔 중인 한세충 장군도 출진 준비를 마쳤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