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꼭 그래야만 했니 (1) (224/250)


224화 꼭 그래야만 했니 (1)
2022.09.12.


장안성 대 군사회의실.

기다란 탁상을 끼고 연합군의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좌측에는 소나라의 무장들과 무림맹의 원로들이 자리했으며, 우측으로는 포나라와 의용군의 장수들이 마주 앉아 있었다.

악비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의 부관인 장헌이 자리를 지켰다.

한 명 한 명이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내뿜는 숨 막히는 기도에 장내의 공기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회의는 상석에 앉은 소무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었다. 그가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맡았기 때문이다.

“병력 상황을 설명해주시오.”

“예, 장군.”

소무의 좌측에 기립하고 있던 설풍 부장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우리 연합군의 병력 구성은 소나라가 삼만 오천, 포나라가 삼만, 의용군이 이만 오천. 그리고 무림맹에서 삼천이 합류하여 총 구만 삼천 병력입니다.”

공격의 주축이 되는 소나라의 병력 동원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불만을 품는 이가 없었다. 비록 숫자는 적어도 병사들의 수준이 포나라나 의용군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개인의 전투력만을 고려하면 무림맹의 무사들이 제일이었다.

“적군의 상황은?”

“우리의 목표인 낙양에는 약 팔만 병력이 주둔 중인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그중 칠 할 가량이 기병입니다.”

낙양을 둘러싼 평야 지대에서 기병 한 기는 보병 열 명의 가치를 지닌다.

병력은 아군이 좀 더 우세했지만, 대부분이 보병 편제였기에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장내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소무 또한 탁상 위에 깍지를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길 잠시 후. 우측의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사령관께서도 아시겠지만,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악비를 대신하여 참석한 부관 장헌이었다.

소무도 그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옛 송의 수도인 임안의 뇌옥에서 악비와 함께 모진 고문을 견딘 인물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강직한 기개를 타고난 장수였다.

“물론 정공법으로는 힘들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양동작전을 펼칠 것입니다.”

장내의 모두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를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소무는 지휘봉을 움직여 전략지도를 가리켰다.

“무림맹을 제외한 연합군의 전력은 이곳 남소평야에 진을 칠 것이오.”

과거 유광세가 이끌던 군단이 휘나라의 기마대에 대패를 당한 곳이 바로 남소평야였다.

소무도 백부장이었던 시절 랑아대를 이끌고 그곳에 함께 있었다.

“무슨 대안이 있는지요? 진군하는 즉시 기마대에 쓸려나갈 수 있습니다.”

포나라의 장군 진광이었다.

그의 말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소무가 포나라의 연회장소에 쳐들어가 힘으로 뒤집었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진군을 안 하면 되지 않소.”

“진군하지 않고 어찌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단 말이신지……?”

소무는 설풍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가 미리 준비해 놓은 두루마리를 활짝 펼쳐 잘 보이는 벽면에 걸어놓았다.

세부적으로 그려진 병력의 배치도였다.

“지금 이 자리에는 안 계시지만, 그동안 민공께서는 휘나라의 기마대를 상대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해왔소. 그것의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오.”

병종별 배치와 각종 함정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장헌이 감탄하며 말했다.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최적의 배치도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내젓고는 적운 제독을 바라보았다.

“남소평야에서 대치가 시작되면 낙양성의 방비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소. 그사이 적운 제독이 무림맹의 대협들과 함께 황하를 타고 내려가 성을 먼저 함락시켜주시오.”

정파 무림의 핵심 전력이 화산에 모여서 대기 중이었다.

비록 삼천 명에 불과했지만, 개개인이 오랜 기간 무공을 수련한 정예들이었기에 그 전력은 일 개 군단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적운 제독의 휘하에 편성된 오천 명의 수병들. 그들 중 상당수가 노련한 해적 출신으로 호전적이고 용감한 병사들이었다.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분명 해볼 만한 전력이었다.

“양동작전이로군요. 성을 먼저 함락시킬 수만 있다면, 갈 곳을 잃은 적들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소무가 느낀 적운은 전술적으로 뛰어나며 빈틈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경의 고수이자 휘나라의 대장군 완안후이. 만약 그가 수비군에 합류한다면 어찌할 방도가 없을 터.

“완안후이는 걱정하지 마시오. 놈이 어디에 있던 내가 발을 묶어 놓을 것이니.”

“사령관께서 상대해주신다니 그자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낙양을 함락시킬 테니 맡겨만 주십시오.”

믿음직한 그의 모습에 소무는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무림맹의 맹주인 정명을 바라보았다.

“무리한 부탁을 드리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명은 인자한 미소로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남소평야에서 싸워야 하는 관군이 더욱 힘든 상황이 아니겠는지요. 부처님의 가호와 자비가 함께하길.”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모두가 우려하는 한 가지 변수가 남아있었다.

“낙양과 휘나라의 수도인 개봉은 근접한 거리에 있습니다. 전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개봉에서 지원군이 오지 않겠는지요?”

질문한 인물은 의용군의 사마철이었다. 그는 과거 유광세의 휘하에서 정예부대인 용무군을 이끌던 화경의 고수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개봉의 지원군은 결코 당도하지 못할 것이니.”

“무슨 방법이 있는지요?”

소무의 지휘봉이 양양성을 가리켰다.

지휘봉의 끝은 그곳에서 길목을 따라 낙양과 개봉의 사이로 천천히 그어졌다.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개봉의 지원군은 송나라의 한세충 장군이 막을 겁니다.”

일순간 좌중이 술렁였다.

송나라의 군벌 중에서도 실세인 한세충. 그의 휘하에는 오만 명에 이르는 병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군부의 역대 제일 고수라 칭송받을 정도로 강한 인물이었다. 그가 움직인다면 개봉의 지원군을 차단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듯했다.

“참으로 든든합니다. 그분까지 움직이신다면 걱정할 것이 없겠군요.”

소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곧 있으면 휘나라에서도 우리의 움직임을 포착할 것입니다. 출진을 서두르는 게 좋겠지요.”

더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지휘관들은 몇 가지 논의와 조율을 거친 후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했다.

* * *

이튿날 아침. 장안성에서 출발한 소나라의 군단은 집결 장소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미리 함곡관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포나라의 병력과 합류했다. 그리하여 도합 육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 국경을 넘어 목적지로 향했다.

소무는 행렬의 가장 선두에서 포나라의 진광 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앞전의 일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일전에 포나라의 황궁에 난입해서 벌였던 사건을 얘기한 것이었다.

전투에 앞서 불편한 관계를 먼저 청산해야 했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법이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출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요.”

그때 진광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것보다 따님께서 황자를 불구로 만들어 버린 일은 꽤나 통쾌했답니다. 폐하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개망나니였는데 말입니다.”

소무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타인을 괴롭히고 죽이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미친놈이었다.

“어딜 가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놈은 하나씩 있는 법이지요. 지금은 버릇이 좀 고쳐졌습니까?”

“그날의 충격 때문인지 이후로는 방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는다고 합니다. 고놈 면상을 안 보니 속이 후련하군요.”

“후후. 어쨌거나 하나뿐인 아들을 망쳐버렸으니, 폐하께서 상심이 크시겠군요.”

은근슬쩍 돌려서 떠본 것이다.

말이 좋아 상심이지, 극심한 원한을 품고 있을 터였다. 언제든 기회가 생기면 소나라의 등에 칼을 꽂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진광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니.”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다. 관료들이 황권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 진광이라는 장군은 신흥세력의 주역 중 한 명이 분명했다.

“이런 민감한 내부 문제를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태양이 바뀐다고 한들 소나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장군께서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번처럼 말이지요.”

신흥세력이 곧 황제를 시해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그 일을 명분 삼아 소나라에서 공격해오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리라.

‘포나라의 황제는 인덕이 없고, 욕심이 많은 인물이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겠지……. 누가 되었든 그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지금은 전투에만 집중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소무는 먼 산을 바라보며 돌려 말했다.

“우린 타국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 순간 긴장이 서렸던 진광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혹시 사령관께서 원하시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귀국의 백성들이 지금보다 웃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만약 새롭게 떠오른 태양이 어둠에 지배당해 세상을 혼탁하게 한다면, 그때는 두고만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려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소나라를 표방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르침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들의 나라이니, 그들 스스로가 결정하고 행동할 일이었다.

서로가 품고 있던 얘기를 주고받으니 분위기는 더욱 밝아졌다. 의도했던 대로 전투에 임하기 전에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성공한 셈이었다.

행군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닷새가 지난 시점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나무 숲을 빠져나오자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보였다.

소무가 왼손을 들어 올리자 행군이 멈추었다.

“현정!”

랑아대의 백부장 현정이 재빨리 다가와 기립했다.

“예, 대장님!”

“준비해.”

현정이 뒤돌아서 신호를 보내자, 칠흑처럼 검은 갑주를 두른 백여 명의 병사들이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소무의 직속 휘하부대인 랑아대였다.

대원들은 손에 깃발을 하나씩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순식간에 흩어지는 그들의 몸놀림에 지켜보던 병사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훈련을 함께하지 못한 연합군단인 만큼 손발이 잘 맞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랑아대가 진형배치를 돕는 것이다.

곳곳에 포진한 랑아대원들이 준비를 마쳤다는 듯 깃발을 흔들어댔다.

“저들이 바로 전설적인 부대라고 소문난 랑아대로군요.”

소무가 진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튼, 이곳에서부터는 진형을 유지하며 진군해야 합니다. 자칫 기마대의 기습을 받게 되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니.”

“옳으신 말씀입니다. 미리 약속된 대로 저희 포나라의 군단이 좌군을 맡겠습니다.”

진광이 신호를 보내자 포나라의 장수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좌측으로 나아갔다.

중앙군은 단연 소나라의 차지였다. 일광을 필두로 각기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소집하여 진을 갖추기 시작했다.

일사불란한 모습에 소무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연합군의 진법 훈련은 행군하면서 진행될 것입니다. 랑아대가 그것을 도울 것이니 어렵지 않을 겁니다.”

“철저히도 준비하셨군요. 하온데 우군은 언제 합류하는 것인지요?”

우군을 맡기로 한 군단은 악비 장군이 이끄는 의용군이었다.

소무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막 도착한 것 같군요.”

지평선 너머로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1663039675730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