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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절망을 보여주마 (3) (229/250)


229화 절망을 보여주마 (3)
2022.09.17.


운명을 가를 치열한 접전이 시작되었다.

오룡상장 중 한 명은 일광을 막기 위해 빠져나갔으며, 나머지 넷은 설화를 향해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양측 진영의 사령관이 서로 맞붙고 있었다.

쩌엉-!

둔탁한 굉음. 그리고 짧은 신음과 함께 소무와 완안후이가 동시에 뒷걸음질 쳤다.

“크윽.”

“끅.”

서로가 충격이 누적되고 있었지만, 어느 한쪽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자석처럼 맞붙으며 처절한 접전을 이어갔다.

생사를 건 현경(玄境)간의 싸움. 무림의 역사에서도 기록이 많지 않을 만큼 세기의 대결이었다.

서로가 한 치의 밀림도 없어 보였다. 한 호흡에 십수 번이나 검강을 내지르는 모습은 인간들의 전투라고 믿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쩡-! 쩌저저정-!

검강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며, 쉼 없이 메아리쳤다.

잠시 후 그 속도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큭.”

“으윽!”

외마디 신음과 함께 둘은 지면을 끌며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오 장의 간격을 두고 마주 선 그들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아직 어느 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소무의 표정은 오히려 밝아 보였다.

두근거리는 심장. 그리고 합을 겨룰 때마다 느껴지는 생명의 위협은 오히려 짜릿하게 느껴졌다.

“무인에게 있어서 맞수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지. 이대로 끝내야 한다는 게 아쉽군.”

말을 마친 소무는 검을 우측 어깨 위로 잡아당겼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수식이었다.

완안후이도 긴장한 모습으로 초식을 준비했다.

“볼수록 놀랍구나. 하지만 네 검법은 나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소무의 절기인 탈혼검법에 대해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그렇기에 초식 싸움에서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를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자신의 예상을 뒤집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의 의미심장한 반응까지.

“과연 그럴까?”

소무는 두 눈을 감은 채로 검 끝을 하늘 위로 천천히 치켜세웠다.

눈 부신 태양 빛이 검날에 반사되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검 끝으로 서서히 응집되고 있는 붉은 강기. 단전의 중후한 내기가 검날을 타고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완안후이도 표정을 굳히며 절초를 준비했다.

“이번 합에 내 모든 것을 걸겠다.”

오룡상장이 밀리고 있는 이상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었다.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그는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며 하체를 조금씩 낮췄다. 마치 맹수가 먹이를 향해 돌진하기 전의 모습과 같았다.

푸른빛을 띤 엄청난 양의 진기가 솟구쳐 나와 주변을 맴돌았다. 그것은 곧 그의 전신을 감싸며 밝은 광채를 발했다.

둘은 자세를 잡으며 마지막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한 호흡이 더 지난 뒤.

완안후이의 신형이 먼저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타앗-!

그의 속도는 가히 전광석화와 같았다.

그 순간 소무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동시에 내기를 한계까지 머금은 그의 검이 괴성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무극일섬(武極一殲). 총 삼 초식으로 이루어진 파천검법(破天劍法)의 첫 번째 기술이었다.

움직이는 검날을 따라 기괴한 현상이 일어났다. 허공이 일그러지며, 전방의 공간을 찢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대항하여 완안후이도 검강을 파도처럼 뿜어냈다.

찰나의 순간 칼날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둘의 신형이 엇갈렸다.

콰앙-!!!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격돌이었지만,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은 초토화로 변한 들판 위에 등을 마주한 채 미동조차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누군가가 휘청거렸다.

“쿨럭!”

완안후이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갈라진 갑주의 틈새로 냇물처럼 흘러내리는 핏물. 주먹 크기의 관통상이었다.

부러진 검을 쥐고 있는 것조차 힘에 겨운 듯 그는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즉사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처였지만, 초인적인 신체가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소무를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약간의 내상을 입은 것이 전부인 듯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무공이냐…….”

자신이 어떤 무공에 당한 것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경지에 이른 무인의 본능이었다.

“파천검법.”

완안후이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짙푸른 창공에 맑게 떠다니는 구름을 마지막으로 담기 위함이었다.

“하늘을 무너트리는 검법이라……. 꽤 훌륭한 검법이었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빨리 끝내거라. 이 지긋지긋한 세상…… 더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그렇지 않아도 더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그가 점령지에서 벌인 대규모 학살과 노략질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

소무가 움켜쥔 검 끝이 태양을 찌르듯 사선으로 치켜세워졌다.

“휘나라의 대장군 완안후이. 지금부터 세상을 피로 물들인 죄를 묻겠다.”

완안후이는 씁쓸히 웃으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자만하지는 말거라. 머지않아 교주님을 보게 될 테니.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휘나라의 황제와 신마교의 교주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셈이었다.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기에 놀랄 것도 없었다.

더 이상 무슨 대화가 필요할까. 왼발을 한 발자국을 내디딘 소무는 검을 옆구리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어진 한 번의 호흡.

“후웁.”

동시에 그의 검이 마구 휘둘려지며 허공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방의 공간으로 수십 가닥의 빛무리가 발현되며 번져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꽃이 피는 듯했다. 하지만 보여지는 아름다움과는 달리 꽃잎 하나하나는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머금고 있었다.

개화멸겁(開花滅劫). 삼 초식으로 이루어진 파천검법의 두 번째 기술이었다.

꽃잎 다발에 집어 삼켜진 완안후이의 전신은 서서히 분해되어갔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마치 죽음을 즐기고 있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은 붉은 꽃가루가 되어 평야를 붉게 덮어버렸다. 시체는 물론 갑주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이거, 내공 소모가 너무 커서 자주는 못 써먹겠군.’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해본 초식이었다. 위력은 만족스러웠지만, 펼치고 나면 탈진이 찾아오는 것이 문제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적장들도 대충 정리가 끝나있었다.

설화를 포위 공격하던 오룡상장 중 넷은 처참한 시신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결코, 완안후이보다 곱게 죽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일광의 상대가 가장 참혹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면에 쓰러진 채 계속 두들겨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박 같은 주먹은 상대의 얼굴이 땅속으로 파묻히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쾅-! 쾅-! 쾅-! 쾅-!

마치 망치질을 하듯 같은 곳을 향해 수십 번이나 가격했다. 마휼에게 쌓인 분노를 엄한 장수에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리라.

상대는 한눈에 보아도 이미 죽어있었다.

그때 설화가 손수건을 꺼내 피 묻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적당히 좀 해. 그러다 우리 소소가 보고 배우면 책임질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일광의 손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제, 제가 잠시 흥분했습니다, 처형.”

한순간에 순한 양처럼 돌변한 그의 모습이 웃겼던 것일까? 설화는 잠시 깔깔거리더니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로만 처형이라 부르지 말고 빨리 혼례 날짜나 잡아. 내 동생도 얘기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정, 정말입니까……?”

어느새 다가온 소무가 일광의 어깨를 토닥였다.

“연매 말이 맞아. 우리 처제가 보고 싶겠지만, 그 전에 이 전쟁부터 빨리 끝내야지.”

일광은 힘이 넘쳐난다는 듯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 먼저 전장으로 돌아갈게!”

“곧 합류하지.”

등을 돌린 그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화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휴. 저렇게 단순하고 눈치가 없는데 뭘 믿고 동생을 맡겨.”

소무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게 매력인 친구잖아.”

“그나저나 괜찮은 거야? 얼굴이 창백한데?”

“별거 아니야. 버틸 만해.”

마지막의 격돌에서 입은 내상 때문이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운기조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빨리 앉아봐. 도와줄 테니까.”

예전에는 소무의 운기조식을 돕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탈마의 경지에 다다른 지금에서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소무는 이윽고 아내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지금쯤이면 아군이 완전한 승기를 잡았을 시점이었다. 더는 볼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급할 것은 없었다. 멀리서 느껴지는 승리의 함성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일각이 지난 후. 일을 마친 설화가 그의 등에서 손바닥을 떼며 말했다.

“진일심소곡에 담긴 비밀을 알아냈어.”

그것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세상을 지배할 힘이 담긴 합주곡이라고만 들어왔던 터였다. 오죽하면 신선이 남기고 간 악보라는 소문까지 돌았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실체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했었다. 선음지체를 타고난 자들이 왜 그토록 이 합주곡에 목을 맸는지를 말이다.

“악보에 무슨 비밀이 있었어?”

“이 합주곡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어. 동물들도 가능하더라.”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너무나도 엄청난 힘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응. 산짐승들이 몰려와서 소소 앞에서 춤을 췄어. 믿겨져?”

동물들이 춤을 추다니. 당연히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지 않은가.

“다롱이도 가능해?”

“아니. 다롱이처럼 수행이 깊은 영물이나, 내공이 일 갑자가 넘는 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은 일 갑자 이하는 전부 통제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세상에 엄청난 파급을 불러일으킬 만한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 확신할 수가 없는 일었다.

그래도 연구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정말 놀랍군. 판단이 설 때까지는 조심하는 게 좋겠어.”

고개를 끄덕인 설화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당분간은 연주할 생각이 없어.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지거든. 어쨌거나 이제 나도 돌아갈게. 우리 딸 아직 밥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설화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그녀가 탈마라는 것을 아는 적들은 모두 죽었으니, 구태여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무위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응. 낙양성이 함락되면 장안에서 구호대가 출발할 거야. 그때 소소랑 같이 한 번 올라와.”

“이미 함락시킨 거나 마찬가지 아냐?”

완안후이와 오룡상장이 몰살당한 이상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무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작별을 고했다.

“뭐……. 그런 셈이지. 금방 정리될 테니, 곧 다시 보자고.”

“몸조심하고.”

눈빛을 교환한 부부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잠시 후 소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증발했다. 지휘관으로서는 가장 기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괴로운 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적들을 학살하는 일. 그러나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전장에 도착하자 예상대로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낙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도주하는 휘나라의 병사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바짝 쫓는 연합군의 손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에 어찌 자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진일심소곡이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합주곡이라 했나? 그것이 사람들의 욕심을 없앨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리될 수만 있다면 이런 전쟁도 벌어질 리가 없겠지.’

소무도 잘 알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기대감이라는 것을.

한숨을 내쉰 소무는 전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내키지 않는다고 사령관인 자신이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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