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만물의 근본이 같다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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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만물의 근본이 같다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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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만물의 근본이 같다면 (3)
2022.09.24.
아미산 난화봉.
아미파의 수련 장소 중 하나인 이곳으로 삼대제자들이 모두 소집되었다.
백여 명에 이르는 비구니 앞에는 장로인 금혜사태가 있었다.
“방금 호명된 제자들은 나와 함께 장안으로 간다. 그곳에서 다른 문파의 제자들과 합류한 이후 다시 낙양으로 이동한다. 너희들은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보조 임무를 수행하며 경험을 쌓게 될 것이다.”
차출된 비구니들은 기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처럼 하는 세상 구경에 가슴이 설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이십을 넘지 못했다. 호명되지 않은 비구니들은 아쉬움의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 이마에 핏대가 곤두선 비구니가 있었다. 점점 일그러지는 인상과 은은히 풍겨 나오는 살기(殺氣).
근처의 비구니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 모습을 발견한 금혜사태가 소리쳤다.
“화령, 이 요망한 년! 어디서 함부로 살기를 드러내느냐!”
“저는 왜 제외되었는지요? 대답하십시오.”
삼대제자 주제에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말대꾸까지. 금혜사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갔다.
뺨을 한 대 후려칠 요량이었으나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빛이 마치 자신을 죽이겠다는 의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네, 네가 감히…….”
“어디 때려보세요. 맞아드릴 테니.”
화령은 한술 더 떠서 앞으로 한 발자국을 다가가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금혜사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자신 또한 아미파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지만, 화경에 이른 눈앞의 제자가 마음먹고 달려든다면 개망신을 당할 터. 눈빛을 보니 그러고도 남을 기세였다.
그 순간 금혜사태를 위기에서 빼내어 줄 구원자가 나타났다.
“살기가 너무 짙구나.”
작은 목소리였지만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웅장한 음성이 메아리쳤다.
늘어서 있는 비구니들이 동시에 합장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아미파의 장문인 금정사태.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좌중을 향해 말했다.
“화령이만 남고 모두 물러들 가거라. 그리고 금혜 사매는 아이들 데리고 바로 출발해.”
“알겠습니다, 장문인.”
모여들었던 제자들이 물결이 출렁이듯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어느새 주변은 조용해지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거라. 내가 그리 지시하였으니.”
“제가 무엇이 더 부족한 겁니까? 사저들도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금정은 한숨을 내쉬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너는 만인을 호령할 힘을 얻게 되었으나, 정작 자신은 다스리지 못하는구나.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불도를 공부하며 수양을 쌓거라.”
“공동파의 태허진인께서는 제게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금정사태는 화령의 말에서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태허진인이 반년이 넘도록 문파로 복귀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해 보니 너와 함께 있었다고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냐? 숨기는 것이 있다면 어서 고하거라.”
“어디 들를 데가 있다고 하던데, 정확히는 못 들었습니다.”
금정사태는 의심의 눈초리로 화령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눈앞의 아이가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들켰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웃음. 동시에 금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년이로구나.”
금정의 손이 섬전처럼 움직이며 검집의 검을 뽑아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지만, 화령은 어느새 그녀의 가슴팍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동시에 황룡이 승천하듯 황금빛으로 물든 주먹이 솟구쳐 올랐다.
개방의 항룡십팔장 중 비룡재천(飛龍在天)의 초식이었다.
그러나 호락호락하게 당할 아미파의 장문인이 아니었다.
마치 물살이 흐르듯 그녀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가며 공격을 회피했다.
거리가 멀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령이 검지를 내밀었다. 손끝에서 번뜩이는 섬광. 아미파의 절학인 불광일선지였다.
금정의 왼손 검지에서도 한 줄기 빛살이 마주 뿜어져 나오며 중간 지점에서 격돌했다.
콰앙-!!!
맹렬한 기(氣)의 폭풍이 화령과 금정을 동시에 덮쳤다.
“이 악귀같은 것이 기어코!”
금정은 뒷걸음질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길 잠시 후. 전면을 가린 황금빛 장막을 뚫고 작은 인영이 쏘아져 나왔다.
태극을 그리는 화령의 검 끝. 그것을 마주한 금정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사이 태극혜검까지 완성하다니. 역시나 천살성이란 말인가?’
천살성(天殺星). 강렬한 살기와 함께 천부적인 무의 자질을 타고난 아이였다.
무당파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태극혜검은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이를 악다문 금정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학으로 맞섰다.
불문사자검(佛門獅子劍). 아미파의 장문인에게 일인 전승으로만 내려오는 검법이었다.
검 끝에서 뿜어진 붉은 강기가 태극을 꿰뚫을 듯 맹렬히 돌진했다.
꽈앙-!
“크윽!”
금정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신음이었다.
격돌의 순간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초식은 막아냈으나 자신이 내공에서 밀린 것이다.
구파일방에서 맺은 조약에 따라 화령에게 각종 영약을 복용시킨 영향이었다.
그러나 넋을 놓고 있을 틈이 없었다. 자세를 다잡기도 전에 우측에서 엄청난 기(氣)가 쇄도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정은 다급히 왼손을 움직이며 일장을 내질렀다.
쩌엉-!
“끄헉!”
그녀의 입가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동파의 절기 무극미리장. 그것은 불안정한 자세에서 막아내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무공이었다.
한번 자세가 무너진 이상 걷잡을 수가 없어졌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무자비한 연격. 타고난 싸움꾼이 아니라면 가질 수가 없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궁지에 몰린 금정은 점차 다급해졌다. 연달아 초식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카캉-! 카카캉-!!
두 자루의 검이 맞물리며 거침없는 굉음을 뿜어냈다.
아미파의 수장인 자신이 고작 삼대제자에게 수세에 몰리게 될 줄 어찌 예상했겠는가. 노련한 경험이 없었다면 버티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리고 한 호흡이 더 지난 뒤. 손발이 꼬인 금정은 기어코 일격을 내주고야 말았다.
퍼엉-!
“……끄윽.”
복부를 파고드는 따듯한 촉각. 동시에 전신의 힘이 쭉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보자 주먹이 통과할 정도의 거대한 관통상이 보였다.
화령이 검 끝에 맺힌 한 방울의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장문인께서 실수하신 겁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잘 다스릴 수가 있거든요. 지금처럼 말이지요.”
“세상에 어찌 이런 악마 같은 것이 태어났다는 말인가…….”
금정은 쓰러지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음을 직감하고는 아미산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보냈던 터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아두기 위함이었다.
“할 말은 다 끝났어요?”
“……참으로 허망하구나. 모든 게 나의 욕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어찌 하늘을 탓할꼬. 하지만 너의 악행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화령은 천천히 검을 어깨 위로 잡아당겼다.
“나이가 많으면 말도 많아진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네. 공동파의 늙은이도 그렇고.”
“감히…….”
푸우욱-!
“나는 이 느낌이 좋단 말이야.”
화령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금정의 시신을 움켜쥐고는 절벽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청문객잔. 아미산 아래에 자리한 이곳이 오늘따라 무척 북적였다. 어린 비구니들이 단체로 몰려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너무 맛있어요!”
“그래서 속세의 음식이 무섭다잖아. 한번 맛을 들이면 멈출 수가 없거든.”
“헤헤. 장안을 가려면 한중을 들러야 하죠?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래요.”
“나도 들어봤어. 그리고 소나라에는 굶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맛있는 음식도 엄청 많대. 빨리 가서 보고 싶어.”
자리마다 비구니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 모습이 점점 번져가자 인솔자인 금혜사태가 호통을 쳤다.
“정숙을 유지하거라! 불도를 공부하는 자들이 어찌 그리도 경망스럽단 말이냐.”
“…….”
객잔 내부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입을 꾹 다문 비구니들이 조용히 식사를 재개할 때쯤이었다.
벌컥-!
객잔의 입구가 열리며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조금 전까지 아미산의 난화봉에서 소란을 피웠던 화령이였다.
금혜사태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평소 함께 어울리던 패거리 중 한 명이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화령아,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떻게 왔어?”
“응. 장문인께서 허락해주셨어. 나도 함께 가라고 하시더라고.”
화령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금혜사태가 벌떡 일어섰다.
의심의 눈초리를 숨길 수 없는 얼굴이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느냐?”
화령은 방긋 웃으며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거짓이라니요. 여기 장문인께서 이걸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투박한 형태의 옥패로 아미파의 장문인이 지니는 신물이었다.
“이걸 네게 맡겼다는 말이더냐?”
“그럼요.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있겠어요?”
이걸 고작 삼대제자에게 맡겼다는 것 자체가 더욱 의심스럽기만 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신물을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금혜사태는 화령의 얼굴을 마주보는 것조차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화령은 신경 안 쓴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패거리가 몰려있는 탁상으로 다가갔다.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힘썼더니 배고프네. 우리 음식 좀 더 주문해볼까?”
* * *
양주산 정상의 분지.
연설화는 풀밭 위에서 한손을 뒷짐 쥔 채 무공서적을 읊고 있었다.
“중생을 깨우치는 부처의 광명이 처음으로 드러나 악을 멸할 것이다. 여래신장 제일식 불광초현(佛光初現)!”
그녀의 앞에서 호흡을 고르던 소소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손바닥으로 응집하는 무지막지한 내공. 그것은 마치 파도와도 같이 중후했다.
작은 손바닥에서 뿜어진 황금빛 장력이 거대한 산처럼 전면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쿠쿠쿠쿠쿵-!!!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로는 마치 이무기가 파고든 것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이어져 있었다.
꿀꺽-!
한쪽에서 지켜보던 산군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였다. 녀석은 설화 옆에 다소곳이 앉아 얌전히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산군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그녀는 여래신장의 구결을 한 번씩 읊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소소의 몸이 반응하며 무지막지한 장력을 뿜어냈다.
매 초식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무공이었다.
반각이 지난 뒤에는 여래신장의 시범이 마지막 초식에 이르러 있었다. 절초는 체력의 소모가 워낙 극심하기에 동작만 익혔을 뿐,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초식이었다.
“모든 물줄기는 바다에 가서 하나가 되니, 세상의 근본이 어찌 다르랴. 그러니 나의 손바닥 또한 부처의 손과 다르지 않으리라. 여래신장 절초 만불조종(萬佛朝宗)!”
설화의 외침과 동시에 소소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구름을 뚫을 듯 끊임없이 치솟던 작은 체구는 허공에서 한 바퀴를 회전하고 몸을 뒤집었다.
외마디 기성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손바닥이 천벌처럼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얍!”
벼락과도 같은 속도는 가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멍하니 앉아서 지켜보던 산군이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려 했지만 한 발 늦고야 말았다.
꽈아아아앙-!!!
천지가 요동치며 산사태가 일어났다.
엄청난 반발력에 거대한 범 한 마리가 자세를 가누지 못하고 하늘로 튕겨 올라갔다.
크아아앙-!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산군의 비명이었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몸짓으로 보아 몹시 놀란 듯했다.
방심하고 있던 연설화마저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겨우 자세를 다잡고 있었다.
“뭐 이런 무식한 무공이…….”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거센 먼지가 휩쓸고 지나가자 소소가 하늘에서 폴짝 내려섰다.
그러고는 목을 쭉 빼고 거대한 손바닥 모양의 웅덩이를 살펴보았다.
“엄마, 여기 우물이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