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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광명을 비추다 (3) (239/250)


239화 광명을 비추다 (3)
2022.09.27.


드넓은 장원에서 가장 높은 전각의 지붕 위.

그곳에서 한 여인이 묵묵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거 일이 커지겠는데.’

은밀히 딸을 미행했던 연설화였다.

처음부터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던 터라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폭주한 아미파의 비구니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소소와 붙는다면 적당히 끝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정파 놈들이 드디어 미쳤군. 겁도 없이 천살성에게 무림맹의 미래를 맡기려 했다니.’

천살성(天殺星)은 무공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지만, 살기를 눌러주지 못한다면 희대의 살인마가 될 수도 있다.

마교에서는 이런 천살성의 자질을 귀하게 여기고 다루는 방법을 많이 연구해왔지만, 정파는 상황이 달랐다. 불도를 수련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리라.

말려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심을 굳힌 듯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미 둘의 싸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뭐 죽지는 않겠지.”

설화의 걱정은 소소가 아니었다.

아미파의 비구니가 여래신장을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녀의 중얼거림이 끝나는 순간 관중들의 탄성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화령의 전신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저, 저것은!?”

“이럴 수가…….”

특히나 불가 계열의 승려들은 몹시 충격을 받은 듯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여래의 광명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무적의 신위를 선보였던 비구니가 지금은 볼품없이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죽인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화령은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실핏줄이 터져 붉게 이글거리는 눈동자.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볼살은 무척 화가 난 모습이었다.

반면 소소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영영이 때렸던 거 기억나요? 나쁜 짓을 했으니 이제 벌을 받아야죠.”

소소는 왼쪽 손바닥을 안으로 접으며, 오른쪽 손목을 살며시 밑으로 내렸다.

소림사의 승려 중 한 명이 그 모습을 눈치채고 소리쳤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의 수인 중 하나로, 석가모니가 온갖 번뇌를 물리치고 도를 깨닫는 순간에 하고 있던 손 모양이었다.

동시에 여래신장의 제일식인 불광초현(佛光初現)의 기수식이기도 했다.

화령도 지지 않고 검 끝으로 태극을 그렸다. 정파의 검술 중 최고로 꼽히는 태극혜검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켜보는 이들은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숨을 멈추며 손에 땀을 쥐었다.

잠시 후 이빨을 뿌드득 갈아대던 화령이 먼저 선공을 개시했다.

직진으로 쏘아져 나간 신형은 한줄기 빛살과도 같았다.

소소는 단지 오른손을 살며시 내뻗었을 뿐이다. 그러나 작은 손바닥은 눈 깜짝할 사이 수천 배로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화령은 황금빛 장력을 단번에 뚫어버리겠다는 듯 정면으로 맞섰다.

쩌어엉-!!!

격돌의 순간을 제대로 지켜본 인물은 오직 전각의 지붕에 있던 연설화뿐이었다.

물결처럼 뻗어나간 기의 폭풍이 구경꾼들을 동시에 덮쳐버렸기 때문이다.

“큭!”

“으윽!”

그들은 뒷걸음질을 하면서도 기를 쓰며 결과를 살피려 노력했다. 희대의 격돌을 두 눈에 담아두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게 된 것은 후방을 향해 끝없이 날아가는 비구니의 작은 그림자뿐이었다.

콰앙-!

어느 전각의 벽면에 등을 부딪친 화령은 벽을 뚫고 계속해서 날아갔다.

단 한 방에 이십여 장 이상을 튕겨 나간 이후에야 멈춰설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 그 앞에 모두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소소는 오른손을 꺾어 어깨높이로 올렸으며, 왼손은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밖으로 천천히 내밀었다.

시무외인(施無畏印).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주기 위하여 나타내는 형상이었다.

수인이 준비되자 먼 곳에서 눈이 뒤집힌 화령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양손을 휘감고 있는 거센 기(氣)의 회오리.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의 초식 중 항룡유회(亢龍有悔)의 기수식이었다. 내공의 소모가 큰 만큼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지닌 가공스러운 장법이었다.

장력 대(對) 장력의 싸움. 그것을 지켜보던 자들은 전율했다.

“끄아아악!”

분노의 고함과 함께 황룡이 포효하며 아가리를 벌렸다.

마치 소소의 전신을 집어삼킬 듯 무지막지한 강기가 휘몰아쳤다.

그리고 거대한 손바닥이 다가오는 황룡의 얼굴을 후려친 것은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쩌어어억-!!

“쿠헉!”

볼품없이 바닥에 처박힌 화령은 땅속을 반장 깊이나 파고 들어가 있었다.

청성파의 적문신공이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맞으니까 기분이 어때요? 이제 알겠죠?”

땅속에 처박힌 화령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기를 쓰고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이었다.

“죽여버리겠다…….”

“에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일까? 소소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또다시 수인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 구덩이에서 솟구쳐 오른 화령은 양쪽 검지를 마구 내질렀다.

아미파의 필살 무공인 불광일선지였다. 번쩍이는 섬광이 연달아 소소를 향해 뿜어졌으나, 몸에 적중하기도 전에 모두 소멸해 버렸다.

여래의 손바닥이 벽처럼 막아서며 모든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쿵-! 쿠쿠쿵-!

지법과 장법까지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으나 마치 태산을 때리듯 요지부동이었다. 그 어떠한 무공을 써도 통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소소의 반격이었다.

거대한 손바닥이 따귀를 때리듯 화령의 전신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쾅-! 콰쾅-! 콰앙-!!

“크악!”

곤죽이 되어가는 비구니의 모습은 처참하기가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손오공을 때려잡는 석가여래의 모습 같아 보였다.

계속되던 응징은 화령의 몸이 축 늘어지고 난 뒤에서야 멈추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과 부러진 뼈마디들. 적문신공을 극성으로 펼쳤음에도 충격이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소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마지막 수인을 그렸다.

선정인(禪定印). 부처가 참선할 때 짓는 손 모양으로 여래신장을 펼친 후 들끓는 자신의 진기를 안정시키는 동작이었다.

주변은 어느새 경악에 휩싸여 있었다. 드넓은 장원에 오백여 명의 무림인이 몰려들었지만, 숨 막히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잠시 후 소림사의 노승이 소소에게 다가가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소승은 소림사의 정운이라 합니다. 시주께서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는 소소라고 해요.”

정자 배는 방장과 같은 배분으로 소림사 내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위치였다. 현재 파계를 당해 도주 중인 정혜를 포함하여, 한때는 소림의 삼대 고승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가슴팍 밖에 안 되는 작은 꼬마에게 자신을 소승이라 낮추고 있었다.

“조금 전 저는 광명을 보았습니다. 방금 펼쳐 보이신 불가의 무공은 무엇인지요?”

불가에서의 광명(光明)이란 부처의 몸에서 비치는 빛을 뜻한다. 보살(菩薩)이 아니라면 나타날 수가 없는 현상이었다.

그때 소소는 부모님이 여래신장에 대해서는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림사에서 훔쳐왔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수백 년 전 달마의 제자를 끝으로 실전된 무공이었기 때문에 알아보는 자도 없었다.

대답을 찾지 못한 소소는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힝…….”

“소승의 질문이 무례했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단지 시주의 모습이 석가여래와 겹쳐 보였기에 유래가 궁금하여…….”

그 순간 소소는 친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머릿속을 진동시키며 들려오는 옥구슬 같은 음성. 엄마가 전음으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반가운 목소리에 소소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꿈에서 부처님이 나타나서 알려줬어요.”

단지 설화가 시킨 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정운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미동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지켜보던 모두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미륵보살께서 현신하셨습니다. 이제 어둠이 물러가고, 세상에 광명이 비출 것입니다.”

소림사나 아미파와 같은 불가 계통의 문파는 충격에 휩싸였다.

여래의 신위를 눈앞에서 목격했던 그들이었다. 게다가 명망 높은 선승인 정운이 헛소리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몹시 놀란 승려들은 반사적으로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소소도 얼떨결에 승려들과 합장을 마주했다.

“아미타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백팔십도 달라진 주변의 시선들. 그리고 경외심이 섞인 표정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쑥스러워진 소소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떴다.

“저, 저는 숙소로 돌아갈게요…….”

소소가 지나가는 자리로 승려들이 앞장서서 길을 터주었다.

“보살께서 지나가시니 모두 길을 비켜주십시오.”

좌우에서는 영영과 백상이 호위하듯 나란히 걸었다.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들의 뒤만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소림사의 승려 한 명이 정운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천살성의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려서 보내면 큰 재앙이 닥칠지 모릅니다.”

정운은 의식을 잃은 화령을 살펴보았다. 곳곳이 성한 곳이 없었지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치명상은 없는 듯했다.

“심성이 잔악하지만, 보살께서 살려놓은 데는 이유가 있음이리라.”

“우리 승려들이 많이 다쳤습니다. 그냥 보내준다는 말입니까?”

정운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넋을 놓고 있는 아미파의 금혜사태를 바라보았다.

“미륵의 첫 번째 가르침은 자비로움이로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금혜사태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저희 아미파 때문에…….”

평소와 같았으면 강력한 항의에 직면할 상황이었지만, 오늘은 정운의 기분이 매우 좋은 날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마치 보살이라도 된 것마냥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덕분에 미륵께서 이곳에 현신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 생각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그럼 저 아이는 저희가 포박해서 데려가도 되겠는지요?

아미파의 비구니였지만, 정운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현 무림맹의 맹주이자 소림사의 방장인 정명의 사제이기도 하였으며, 이곳에서의 배분도 가장 높았다.

사문이 무림맹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만큼, 그의 의사를 무시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정운은 대답 대신 처분을 먼저 물었다.

“데려가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금혜사태도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동안 화령에게 당한 굴욕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그녀가 아니었던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빛에는 독기까지 서려 있을 정도였다.

“참회동에 가둘 것입니다. 살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소림사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어둠 속에 죄인을 가둬두는 곳으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것 또한 미륵의 뜻이겠지요. 그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둘은 서로 합장을 하며 작별을 고했다.

금혜사태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발길을 돌린 그녀는 한쪽에 모인 비구니들을 향해 명령부터 내렸다.

“우리 아미파는 먼저 본산으로 돌아간다. 어서 채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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