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1화 같은 하늘 아래서는 (2) (241/250)


241화 같은 하늘 아래서는 (2)
2022.09.29.


진양평원 위에 펼쳐진 숨 막히는 긴장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갔다.

양측 진영의 대치는 계속되고 있었으며, 언제 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날이 어두워져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모두가 한숨을 돌리며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평야의 좌우로 길에 이어진 높은 산들이 문제였다. 이곳에선 양측 진영의 수색과 정찰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지(高地)를 차지한다는 것은 상대 진영을 손쉽게 염탐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선점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제 다 잡은 것 같아요, 형님.”

일광은 쪼그려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랑아대의 막내인 송화가 검을 움켜쥔 채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음. 확실해?”

“온종일 수색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개미 한 마리도 없어요.”

일광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몸이 찌뿌듯하다는 듯 뼈마디를 풀어댔다.

우두둑-! 우드드득-!

전신의 뼛조각이 뒤틀리는 소리가 위협적이었는지 송화는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섰다. 그것은 단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내 말이 맞지? 이곳에는 시시한 놈들밖에 없다니까. 이런 곳에 랑아대를 투입하는 건 쥐새끼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는 거야.”

“그래도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실을 대장님이 알면…….”

일광은 들은 체도 안 하며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미리 잡아놓은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시끄럽고, 빨리 가서 애들 모아와. 자고로 병사들은 잘 먹어야 더 잘 싸우는 법이야.”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은 일광은 다시 쪼그려 앉아 멧돼지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긴장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송화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호각을 불었다.

산속에서 메아리치는 작은 신호에 곳곳에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시진이 지난 후 이십여 명이 모닥불의 주위로 빙 둘러앉았다. 오늘 밤 수색 임무를 맡은 대원들이었다.

“냄새가 기가 막혀요, 형님.”

“맛있겠다…….”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는 대원들의 모습이 흡사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들 같았다.

전설적인 전투부대로 소문난 랑아대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고기가 익었나 살펴보던 일광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랑아대로서 품위가 있어야지. 개방의 거지들처럼 침이나 질질 흘리고 말이야.”

“에이, 우리가 거지들이면 형님은 뭐 산적왕입니까?”

“큭큭.”

“하하하!”

몇몇 대원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일광이 무시무시한 눈알을 부라렸다.

“아니, 이 녀석들이!”

“…….”

단번에 사그라지는 웃음들. 그리고 일광은 고요 속에서 고기를 잘라내고 있었다.

“굽기가 적당하니 지금 바로 먹어야 맛있어. 우리 막내부터 한 입 들어봐.”

얼떨결에 고기 한 덩어리를 받아든 송화는 조심스럽게 입에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송화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와…….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니 너무 맛있어요! 게다가 이런 육즙이라니.”

“당연하지, 누가 구운 고기인데. 자 이제 먹어보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형 멧돼지였다. 대원들이 먹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다.

고기를 양손 가득 한 덩어리씩 받아든 그들은 하나같이 맛있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야산에서 고기를 굽는 냄새는 십 리까지도 뻗어 나간다. 그렇기에 수색 임무 중에 취사는 금기였다. 하지만 산에 있는 적군을 모두 해치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모두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다들 가만히 있어 봐.”

갑작스런 일광의 한마디에 모두의 행동이 정지했다.

고기를 움켜쥔 채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대원들. 잠시 후 그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수풀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분명 휘나라의 수색대원들이었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한 조가 용케도 살아있었던 모양이었다.

흑빛이 된 얼굴과 축 늘어진 어깨까지. 랑아대를 피해 며칠을 쉬지 않고 도망쳐다닌 듯 모두 초췌한 모습이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이곳에 온 것이리라.

“빌어먹을…….”

랑아대를 발견한 그들은 검을 움켜쥐며 갈팡질팡했다.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은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망치려 해도 이제는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었다.

그들을 처치하기 위해 랑아대원들이 일어서려 하자 일광이 제지했다.

“다들 앉아있어. 먹을 거 앞에서는 사람 때리는 거 아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광은 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는 집채만 한 오른손을 까닥거렸다. 다가오라는 뜻이었다.

“이리들 와봐.”

휘나라의 수색조는 움찔거릴 뿐 한 걸음도 떼지 않았다.

그들이 다가오지 않자 손짓하던 일광의 손이 바위처럼 움켜쥐어졌다. 다가오지 않으면 때리겠다는 의미였다.

잠시 후에는 붉은 기류가 주먹을 둘러싸듯 휘몰아치기까지 했다. 명실상부 자신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고수였다.

“두 번은 안 묻는다.”

“…….”

눈을 가늘게 뜨며 부라리는 모습이 더는 흉악스러울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휘나라의 수색조원 중 한 명이 움찔하며 조금씩 다가갔다.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조원들도 뭔가에 홀린 듯 천천히 다가갔다.

“당장은 안 때릴 테니까, 일단 와서들 앉아 봐.”

잘 봐주어야 무림의 이류급 정도 되는 수준들이었다.

그들은 화경이 내뿜는 기세에 억눌려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얼떨결에 주춤주춤 다가오는 휘나라의 병사들. 그리고 그들을 랑아대원들이 멍한 얼굴로 바라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잠시 후 틈새에 다섯 명의 병사들이 다리를 오므리고 앉았다.

일광은 그들을 향해 고기를 한 덩이씩 잘라 나눠주었다.

“기왕 저승길 가는 거 배는 채우고 가는 게 좋잖아? 마지막 음식이라 생각하고 어서 먹어 봐. 맛이 꽤 괜찮아.”

그렇지 않아도 며칠간 랑아대의 추적을 피해 다니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 명이 입안 가득 고기를 베어 물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겁지겁 고기를 입으로 쑤셔 넣었다. 조금 전 랑아대원들이 먹던 것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게걸스러운 모습이었다.

대원들은 먹는 것도 잊은 채 넋을 놓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끄흐흑.”

병사 중 한 명이 고기를 씹다 말고 울음을 터트렸다. 다른 병사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서러운 것인지. 무엇 때문에 우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일광이 그들 중 한 명을 지목해서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누구야?”

“……저는 개봉에서 작은 무술 도장을 운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위압적인 일광의 자태에 자동으로 나온 존댓말이었다.

일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물었다.

“개봉이면 원래 송나라 사람 아니야? 왜 휘나라에 붙어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어?”

“우리 중에 원해서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제 가족이 죽습니다.”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휘나라의 병사들은 징집되는 순간부터 가족이 인질로 잡힌다는 것을.

당시에는 무심코 넘겼으나 이렇게 옆에 앉아서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일광은 그의 옆에 있는 자에게 고기 한 덩이를 더 주며 물었다.

“너는 뭐 때문에 질질 짜고 있어?”

“제가 죽고 나서 혼자 남겨질 아내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지금도 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끄흐흑…….”

눈물을 닦으며 고기를 씹어먹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였다.

일광은 턱을 괴고는 무엇인가를 회상했다.

“음. 공감이 좀 되는군. 나도 기다려주는 사람이 두 명쯤 있거든. 아무튼, 그래서 억울하다는 거야?”

“……예.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분합니다. 그저 제 아내와 작은 집을 짓고 오순도순 살고 싶은 게 다였거늘. 제 꿈이 얼마나 큰 욕심이라고 그 정도도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까…….”

일광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하늘에 있을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자책이었다.

그때 먼 곳으로 야생들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나무 아래 드러눕는 모습이 보였다.

철퍼덕 누워 잠을 취하는 모습에서는 어떠한 근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란 속에 허우적대는 사람보다는 한 마리의 개로 태어나 살다 가는 게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만.”

그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병사 한 명이 울먹이며 물었다.

“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집에 홀로 계십니다. 제가 없으면 우리 어머니는…… 흐흑.”

고기를 쥐고 눈물을 흘리는 병사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일광은 단호했다.

“시끄럽고, 먹던 거나 마저 먹어. 일어나면 죽는다.”

지켜보던 랑아대의 대원들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적이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돌아가면 서로가 다시 칼을 겨누어야 하는 관계였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말문을 닫자 정적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일광이 씩 웃으며 나무에 꿰어진 멧돼지를 단도로 툭툭 건드렸다.

“그냥 가면 죽는다고. 이 맛있는 걸 남기고 돌아가는 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예……?”

“밥상 앞에서는 아군도 적군도 없어. 단지 배고픈 놈들만 있을 뿐이지. 이거 다 먹으면 보내주마. 자, 어서들 먹자!”

분위기가 갑자기 밝아졌다. 대원들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많이들 드세요.”

“알고 보면 다 똑같은 사람들인 것을. 우리가 적군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긴장이 풀린 휘나라의 병사들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밝아진 분위기 속에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고기의 양은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이들은 서로의 사정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함께했다.

이제 서로의 진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그사이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서로를 보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남아있었다.

“우리 위치는 중앙군의 선봉이니까 그쪽으로는 오지 마세요.”

“예……. 꼭 살아남으십시오.”

병사의 얼굴에서는 진심이 묻어나왔지만, 웃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어차피 전쟁의 승패에 따라 둘 중 한쪽은 죽게 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일광은 정을 떼기 위해 분위기를 잡으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마음 바뀌기 전에 어서들 돌아가. 그리고 전장에서 마주치면 바로 목을 꺾어버릴 테니 그렇게들 알아.”

“이해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일광과 대원들은 봉우리에 우뚝 서서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일광이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양칠이! 전쟁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 잘 모셔라, 임마!”

“예 형님…….”

들릴 듯 말 듯한 대답이었지만, 일광의 귀에는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똑똑히 들렸다.

산을 하산하여 진지로 돌아가는 그들은 무척 신이 난 듯했다.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 그리고 서로가 흥분해서 쉬지 않고 속닥거리는 모습은 어린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일광과 랑아대원은 그들이 진지에 합류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들이 휘나라의 진영 선두 부근에 도착하자 안쪽에서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다.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는 모습으로 보아 지위가 높은 인물이 틀림없었다.

눌러쓴 죽립과 갑주 대신 흑의를 착용한 모습은 결코 군부의 복장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적국에서 정보를 수집해온 랑아대는 그의 정체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신마교의 장로입니다.”

“알아. 나도 보고 있어.”

황제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일곱 명의 장로 중 일인이었다.

산에서 내려간 수색조의 다섯 명은 그를 향해 연신 재잘거리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산을 수색하던 병사들이 모두 전멸했고, 연합군에 고지를 빼앗겼다고 보고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순간 무심히 지켜보던 일광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눈 깜짝할 사이 허리춤에서 장로의 검이 뽑혀 나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은 오직 그만이 눈치챌 수 있었다.

랑아대의 대원들이 목격한 것은 허공으로 튕겨 오르는 다섯 개의 수급뿐이었다.

“뭐, 뭐야!”

“이, 이런…….”

당황도 잠시 대원들은 거센 분노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 같이 먹고 떠들던 자들이 눈앞에서 죽었다. 개미의 목숨보다도 하찮게 죽어간 것이다.

일광도 짜증이 났는지 이마에 핏대가 곤두섰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체형과 특징을 최대한 눈에 담아두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휘나라의 진지에서 거센 북소리가 들려왔다. 진군을 알리는 신호였다.

쿵-! 쿵-! 쿵-! 쿵-!

“전투가 시작되려나 봐요.”

“우리도 어서 합류하죠, 형님.”

연합군의 최정예 부대인 랑아대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진영으로 합류하면 첨병들이 이곳으로 파견되어 임무를 교환할 것이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일광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눈. 그것은 그가 몹시 화가 났을 때만 짓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랑아대가 있었던 곳에서 백여 장이 떨어진 언덕.

그곳에서 칠현금을 움켜쥔 한 여인이 그들이 내려가는 모습을 지그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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