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같은 하늘 아래서는 (3)
(242/250)
242화 같은 하늘 아래서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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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같은 하늘 아래서는 (3)
2022.09.30.
쿵-! 쿵-! 쿵-! 쿵-!
휘나라의 진영에서 진군을 알리는 거센 북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적군이 진격해올 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병사들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연합군도 다급히 대열을 갖추며 진격 태세를 갖추었다.
“진격하라! 오늘을 마지막으로 휘나라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지휘관들이 말을 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기를 북돋웠다.
연합군의 병력이 십 만에 이르렀지만, 상대의 규모에 비교하면 한 줌에 불과했다.
평원을 가득 메우고 끝없이 행진하는 휘나라의 진세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양측 진영은 백여 장의 거리를 두고 멈췄다. 일반인이 소리를 지르면 반대편에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비록 적들의 수가 많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일당백의 전사들이다! 한 명당 이십 명을 맡는다!”
곳곳에서 지휘관들의 독려가 계속되었지만, 함성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병사들은 단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상대의 모습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휘나라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해진 천 옷과 축 처진 어깨. 갑주는커녕 농사를 짓다 말고 나온 듯 농기구를 움켜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는 아낙네들도 보였으며, 심지어는 군데군데 어린아이들도 뒤섞여 있었다.
군량도 제때 보급이 되지 않았는지, 하나같이 초췌한 몰골들이었다.
“저, 저게 뭐야?”
“우리가 지금 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거야?”
정규군은 양민들의 뒤쪽에 바짝 붙어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무차별적인 학살이 벌어질 터. 타고난 살인마가 아닌 이상 그것을 반길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학살하는 병사들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게 분명했다.
흔들리는 병사들의 전의(戰意). 그것이야말로 바로 휘나라에서 원하던 일이었다.
“지독한 놈들이로군요. 이렇게 무식한 방식을 사용하다니.”
중앙군의 선두에 있던 소무가 옆을 바라보자 의용군의 맹장인 사마철이 이를 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합군에서 내로라하는 절대고수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다.
각국의 맹장들과 정파 무림의 고수들까지. 선두를 지켜야 할 자들이 중앙으로 모인 이상, 좌군과 우군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약해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상황은 정상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백성들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는 자는 황제가 아니오. 우리가 오늘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오.”
그때 악비가 어두운 표정으로 소무에게 전음을 보냈다
- 자네가 허언할 사람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네. 헌데 그 방법이 정녕 가능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상이 가질 않아서 말일세.
소무의 고개가 미세하게 한 번 끄덕여졌다.
- 제가 직접 확인을 했으니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 자네를 믿고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겠네.
소무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한자리에 모인 아홉 명의 고수들. 이들이야말로 연합군의 핵심 전력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일광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일광은 큼지막한 검지를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병사들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소무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양민들의 틈새에 껴 그들을 통제하는 신마교의 인물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을 말이다.
“저 새끼는 내게 양보해줘, 대장.”
“좋을 대로 해. 할 수 있다면.”
그 순간 북소리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숨을 고른 휘나라의 진세가 돌격을 개시하려는 순간이었다.
맞은편에서 지켜보던 연합군의 병사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태세를 갖추었다.
쿵-! 쿵-! 쿵-! 쿵-!
점점 빨라지는 북소리와 함께 양측의 거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거리가 오십여 장까지 가까워졌을 때였다.
“멈춰라!”
명령기가 솟구쳐 오르자 연합군의 행군이 동시에 정지했다. 미리 약속된 훈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적군의 선두가 사정거리 내에 진입했습니다. 정말 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중앙군의 궁수부대를 책임진 장수였다. 그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소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이 있기 전에는 단 한 발도 발사하지 마시게.”
“……알겠습니다.”
어느새 양측의 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만큼 가까워졌다.
선두에 자리한 연합군의 병사들이 검과 방패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양민들의 모습이 흡사 불나방과도 같아 보였다.
이제는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는 즉시 뒤에서 달려오는 인파에 깔려 죽게 될 테니.
“우아아아!”
“으아아아악!”
악에 받쳐 소리치는 양민들의 고함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맨정신으로는 현재 상황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미치기 위해 억지로라도 소리를 뿜어내야만 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병사들은 심경이 착잡해졌다. 함성조차도 지르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지휘부에서도 동요가 생겨났다.
“장군, 병사들의 사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적들의 정규군은 최악의 순간에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아.”
소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디선가 거센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앙-!!!
그것은 마치 천둥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었다.
그 순간 연합군을 향해 돌진하던 이백만 대군이 동시에 멈춰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연합군의 병사들이라고 영향이 없을 리가 없었다.
엄청난 인파가 휘청거리고 넘어지며 난장판이 벌어졌다.
“크헉!”
“끅.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거센 돌풍이 지진을 동반하며 전장으로 불어닥쳤다.
모두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무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이며 좌측의 험산을 향했다.
그곳에선 십 성 공력으로 용격사자후를 펼쳐낸 소소가 창백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 모습이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했어. 우리 딸.’
한편 격돌 직전에 멈추어선 양측 진영의 병사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갈팡질팡했다.
잠시 후 휘나라 진영의 뒤쪽에서 정신을 차린 지휘관들이 공격 명령을 개시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또 다른 기이한 현상이 전장의 문을 두들겼다.
띠링-!!!
어디선가 무지막지한 공력이 담긴 한 가닥의 음파가 평야의 지평선 끝까지 뻗어 나갔다. 발원지는 우측에 자리한 험산이었다.
물결처럼 진동하는 칠현금의 청량한 선율. 그것을 듣는 모두는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여유롭게 음악 따위를 감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서로가 상대를 마주하고 다시 무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움직임을 개시하려던 찰나. 이번에는 좌측의 산봉우리에서 퉁소의 음이 뿜어져 나왔다.
뿌우우우-!
십갑자의 내공으로 뿜어지는 퉁소의 음률은 전장의 곳곳까지 어김없이 퍼져나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측의 산봉우리에서도 칠현금이 본격적으로 음을 타기 시작했다.
퉁소와 칠현금의 합주가 시작되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적군과 아군 할 것 없이 병사들이 온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전율하는 것이었다.
반 각이 지난 후에는 감정이 격해져 오열하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완성된 진일심소곡(眞一心笑曲). 그것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보유한 자들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의 숫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모두가 아름다운 음률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소무가 지휘관들의 틈새에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신선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악보가 있었지요. 그것에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합주곡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옆에서 음악에 심취해있던 포나라의 진광 장군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마음이 하나가 되면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합주곡은 그것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뿐이지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허허허! 허허허허!”
중후한 내공이 담긴 웃음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개방의 방주인 운룡개였다.
양측 진영의 중심부에 타구봉을 움켜쥐고 나타난 그는 거침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즐길 시간도 부족하거늘 왜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이웃 형제이거늘 승자와 패자가 무엇이 중요한가!”
단순한 외침이 아닌 노랫가락이었다. 진일심소곡의 음률에 맞춰 박자를 타는 모습이 굉장한 수준이었다.
무의식중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지금 여기서 이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털어버리고, 함께 웃으며 즐기세!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세! 집으로 가 형제들과 냇물에 발을 담가보세!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세! 허허허! 허허허허!”
호탕하게 웃어 재끼던 그는 쥐고 있던 타구봉을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방주의 타구봉은 일반적인 무기가 아니다. 개방의 존엄을 상징하는 신물을 던져버린 것이다.
방주가 무기를 버렸는데 방도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무림맹의 진영에서 가장 많은 인원수를 차지하는 세력이 바로 개방도들이었다.
“전쟁이고 뭐고, 나는 밥이나 먹으러 가렵니다!”
“그럼 수고들 하시오!”
수백여 개의 죽봉이 동시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무기를 버린 개방도들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소무가 휘나라의 진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며 입을 열었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아라!!”
파도처럼 뻗쳐 나가는 그의 목소리는 전장의 모든 병사에게 전달되었다.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소나라의 병사들이 먼저 무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툭-! 투툭-! 투투투툭-!
수만 자루의 검과 방패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양민들과 휘나라의 병사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무기를 내던지는 것이 아닌가.
“내일 죽더라도 난 오늘 처자식을 보러 가야겠소!”
“어머니, 저 지금 갑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소무의 고함이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오늘 이후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나 소나라의 대장군 소무, 지금부터 이 악행의 고리를 끊어 버리겠소!!”
그는 휘나라의 황제가 있을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여덟 명이 대열을 맞추어 그를 뒤따랐다. 각국의 군부에서 차출된 제일 맹장들과 무림의 절대고수들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휘나라의 사령부는 몹시 당황한 듯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신마교의 인물들이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공격해!”
“대열을 이탈하는 자는 모두 베어버릴 것이다!”
윽박지르고 소리를 질러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금도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미 이백만에 이르는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렸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연합군과 휘나라의 병사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전쟁은 더는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연합군의 후방에서는 보급부대가 대거 등장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양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있었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양측 지휘관들의 싸움이었다. 이들의 승패가 모든 것을 결정할 터.
“황제는 내게 맡기시오.”
일직선으로 향해 나아가는 소무의 시선은 단 한 명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철통같은 호위 속에 쌍룡이 장식된 황금빛 갑주. 틀림없이 휘나라의 황제이자 신마교의 교주이리라.
그때 왼쪽에서 누군가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로 서 있는 놈은 아무도 건들지 마소”.
일광이 지목한 인물은 죽립을 깊게 눌러쓴 신마교의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때 우측의 험산에서 누군가가 신랄한 신법을 선보이며 다가왔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신선 같은 움직임. 조금 전까지 칠현금으로 진일심소곡을 연주했던 연설화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소무의 옆에 나란히 서서 보폭을 맞추었다.
모두가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시점에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물도 있었다.
“다롱아!”
소소의 부름에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산군이 쏜살같이 나타났다.
재빨리 등 위에 올라탄 소소는 장안을 향해 고삐를 당겼다.
“빨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