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1)
(243/250)
243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1)
(243/250)
243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1)
2022.10.01.
무당파의 무진 장로가 미간을 좁히며 소리쳤다.
“놈들이 도망치고 있소!”
휘나라의 황제는 이곳에서 싸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최측근들과 함께 어딘가를 향해 도주하고 있었다.
연합군의 고수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대열을 유지하며 따라붙었다.
“도망이 아니라 유인이겠지.”
선두에서 소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연설화였다. 마교 출신인 그녀는 정파의 원로들과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상대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딘가로 유인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쫓아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유인이라니, 그게 무슨…….”
“저게 아직도 도망으로 보여? 무당제일검이라는 칭호는 어떻게 얻었나 몰라.”
대열까지 갖추어 일률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도주라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연설화의 도발에도 정파의 원로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구름 위를 노니는 듯 신선 같은 경공술. 그녀가 탈마의 경지에 진입한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강호를 은퇴한 인물이라지만,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후미로는 일광과 포나라의 진광 장군. 그리고 의용군의 악비와 사마철이 뒤따르고 있었다.
하나같이 세상에 이름을 떨쳤던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선두에서 달리던 소무가 뒤쪽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길어질 것 같소. 저들은 우리 관군에게 맡기고, 대협들은 장안으로 가주시는 게 좋겠소.”
행적이 묘연해진 적호병단(赤虎兵團) 때문이었다.
휘나라 제일의 정예 부대가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노릴 만한 첫 번째 목표. 그곳은 바로 연합군을 결성한 소나라의 궁성이었다.
무림맹주인 정명 방장이 우려 섞인 눈빛으로 물었다.
“정녕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소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문제없소. 짐작대로라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니 서둘러 주시오.”
무림맹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던가.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정명 방장을 포함한 네 명의 절대고수가 대열을 이탈하며 등을 돌렸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관계없소.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반드시 황제를 잡아야 하오.”
소무를 뒤따르는 장수들도 무기를 움켜쥐며 각오를 다졌다.
“물론입니다.”
“어서 힘을 내봅시다.”
적들과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선두의 소무가 검을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
“준비하시오.”
기다렸다는 듯이 황제를 보필하던 측근 중 일부가 경공을 멈추었다.
오십여 명에 이르는 마인들은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듯 추격자들의 앞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
하나같이 일류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진법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듯했다. 방어진을 펼친 것을 보니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이리라.
정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훌륭한 진법이었지만, 지켜보는 자들의 눈에는 가소롭기만 했다.
여섯 명의 고수는 각자의 무기를 움켜쥔 채 그대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흥!”
설화의 양손에서 집채만 한 암화(暗花)가 화르르 불타올랐다. 극마의 수준에서 펼쳤던 암화의 크기는 한 줌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그 위력이 열 배 이상으로 강력해져 있었다.
첫 번째 타격은 선두에 있는 소무와 설화의 몫이었다.
소무의 검에서도 짙푸른 검강이 솟구쳐 올랐다.
잠시 후 두 줄기 섬광이 어둠 속을 파헤치듯 진세를 관통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큭!”
“커억!”
찰나의 순간 진세에 거대한 구멍이 두 개나 생겨났다. 방어진이 단번에 붕괴된 것이다.
그 어떤 진법을 펼치더라도 현경과 탈마의 협공을 동시에 막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뒤따르는 맹장들의 칼부림이었다.
써컹-! 카캉-! 촤아아악-!
툭-! 투투툭-!!
무엇인가가 조각나며 흩뿌려지는 소리였다.
여섯 명의 초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살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호기롭게 나선 마인들이 조금의 시간도 벌지 못한 것이다.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몇 번의 결사대가 더 막아섰지만 어림도 없었다. 어느새 황제의 곁에는 대호법과 여섯 명의 장로가 전부였다.
양측의 인원은 휘나라가 두 명이 더 많았지만, 질적인 측면을 따지면 아군이 불리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든 역전될 수도 있는 법. 대열의 중간쯤에 있던 사마철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려는 것일까요?”
그와 나란히 달리던 진광 장군이 당연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황실이 있는 개봉으로 유인하는 것이겠지요. 그곳에 또 다른 주둔군이 있을 테니.”
“하지만 거기 있는 놈들이라고 해봐야…….”
별 볼 일 없는 병사들이야 아무리 많아도 자신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무가 먼 산을 응시하며 말했다.
“짐작대로라면 우리는 신마교의 본거지로 가고 있을 것이오.”
소무의 말대로라면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곳의 정확한 위치는 지금까지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개봉으로 가는 길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연합군의 초인들은 일각에 무려 백 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호흡조차 흐트러진 인물이 없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드디어 추격자들의 경공이 동시에 멈추었다.
그때 사마철이 구름을 뚫고 나온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악룡산(惡龍山)입니다.”
황제와 측근들이 자취를 감춘 곳이었다.
악룡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이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세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평소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 닫지 않는 곳이었다.
“그동안 이곳에 숨어있었던 것이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흔적을 따라 악룡산의 정상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촤아아악-!
날카로운 창기(槍氣)가 곡선을 그리며 적호병의 갑주를 두 동강 내는 소리였다.
궁성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순라군의 대장 양소. 그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붉은 갑주를 두른 오백여 명의 병사들. 개개인이 무림의 일류고수에 비견될 만한 적호병들의 앞에서 소나라의 병사들은 속속들이 무너져갔다.
그는 정신없이 창을 휘두르며 악을 써댔다.
“막아야 한다! 이곳마저 뚫리면…….”
푸욱-!
기어코 그의 복부를 한 자루의 검날이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크윽!”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숨 막히는 고통이 엄습해왔지만,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양소는 비틀거리면서도 자신을 공격한 적호병의 멱을 왼손으로 틀어쥐었다.
뒤이어 창 손잡이가 솟구쳐 오르며 상대의 턱 밑을 가격했다.
콰앙-!
또 한 명의 적호병을 쓰러트렸지만, 그 또한 무사할 수가 없었다. 이미 갑주는 너덜너덜해졌고, 크고 작은 자상이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기어코 그의 왼쪽 무릎이 바닥에 닿고야 말았다.
쿠웅-!
적호병은 죽어가는 그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은 양소를 지나쳐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곳은 안 된다.”
적호병들이 향하는 곳에는 자신의 안위보다 더욱 중요한 인물이 있었다.
양소는 창 자루에 몸을 기대어 일어서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날렵하게 움직이던 적호병들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잠시 후 몇몇 순관이 뒤이어 당도하여 그를 부축했다.
“부상이 심하십니다. 어서 업히십시오!”
양소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듯 왼손을 들어 올렸다.
“끄윽……. 무림맹에서 수비를 돕기 위해 온 자들은 어찌 되었느냐?”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모두 퇴각하였습니다.”
“……빌어먹을.”
“최후의 저지선이 돌파당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 기회는 있으니 치료부터 하십시오.”
창 한 자루에 몸을 기댄 그는 힘겹게 전면을 바라보았다. 부하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소문만 무성한 장양의 호위무사뿐이었다.
그가 직접 싸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지만, 결코 혼자서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부축해다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면서까지 창을 붙잡고 일어서려 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순라군의 장교가 양소의 목 뒤를 손날로 가격했다.
쩌억-!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는 다른 순관의 등에 재빨리 업혀졌다.
“아직 의선당은 안전하니 그곳으로 모셔라.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순라군의 장교는 순관 수십을 이끌고 적호병이 사라졌던 방향으로 뛰었다.
머지않아 그들은 걸음을 멈추며 입을 떡하니 벌리고야 말았다. 장양의 집무실을 틀어막고 있는 한 명의 무사 때문이었다.
살수처럼 짙은 흑의를 입은 사내가 태도를 움켜쥔 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 둘둘 말려있는 채찍이 인상적이었다.
주위로는 이미 삼십 구가 넘는 적호병들의 시신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보다 십수 배나 많은 적이 남아있었지만, 그는 눈 한 번 끔뻑이지 않았다.
살왕(殺王) 백리현. 그의 입이 처음으로 열리며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기에는 좋은 날이로군.”
장양의 집무실은 소박하고 볼품없었지만, 외벽과 천장은 검기에도 잘리지 않는 특수 재질로 덧대어져 있었다. 군사 진유소의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출입구는 오직 입구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리현을 포위한 적호병들은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공략할 틈을 노리는 것이다.
대치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살피던 순관들은 자신들이 끼어들 상황이 아님을 알고는 지원군을 요청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 살왕이 묵묵히 들고 있던 태도로 자신의 손바닥을 가볍게 그었다.
꾸욱-!
왼손에 핏물을 묻힌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에 문질렀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살문의 살수가 최후의 살행을 펼칠 때 행하는 의식이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살문의 문양이 완성되는 순간, 기세가 돌변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오너라.”
촤르르륵-!
허리춤에 말려있던 채찍이 뽑혀 나오며 곧게 펼쳐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호병단의 대장이 신호를 보냈다.
“쳐라!”
벽을 등지고 있었기에 한 번에 모두 달려들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적호병들은 다섯이 한 조를 이루어 차례대로 돌진을 시작했다.
살문의 의식을 행한 그 순간부터 죽음은 백리현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가 출수할 준비를 마치자 온몸에서 숨 막히는 살기가 뻗쳐 나왔다.
쏴아아아악-!
감정이 제거되어 두려움을 모르는 적호병들이 아니었던가. 살왕의 살기는 그들조차 움찔하게 할 만큼 날카로웠다.
그 틈을 노려 그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선공을 개시하려는 것이다.
오백여 명에 이르는 적진을 향해 단신으로 돌진하는 살왕의 기세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을지는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이미 죽음과 함께하고 있었고,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