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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2) (244/250)


244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2)
2022.10.02.


살왕 백리현. 그의 왼손에 붙들린 채찍이 뱀처럼 똬리를 틀며 가장 앞에서 다가오던 적호병의 목을 휘감았다.

촤르르륵-!

원거리에서 병사 한 명을 부여잡은 그는 있는 힘껏 왼손을 회전했다.

그 순간 허공으로 떠오른 병사가 원(圓)을 그리며 다른 자들을 튕겨내기 시작했다.

네 명이 동료의 몸에 부딪혀 쓰러지는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또 다른 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서 검기를 발출시키는 다섯 명의 적호병들. 그러나 백리현은 그들이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방어 동작조차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적호병들과의 거리가 일장 이내로 좁혀진 순간 돌연 그의 신형이 폭풍처럼 선회했다.

휘리리릭-!

원을 크게 그리며 회전하는 채찍은 적호병들이 피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서 있었다.

만병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가 채찍이다. 거기에 막대한 내력을 머금으니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채찍이 적중하는 곳마다 적호병의 허리는 갑주와 함께 동강이 나버렸다.

퍼버버벅-!

순식간에 다섯 명을 더 쓰러트렸지만, 밀려드는 적들은 끝이 없었다.

어느새 전면으로 또 한 명의 적이 달려들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 붉은 갑주 위에 피풍의까지 걸친 것으로 보아 장교급인 듯했다.

왼손의 채찍을 회수한 백리현은 태도를 움켜쥔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잡아당겼다.

그 순간 어느새 당도한 적호병단의 장교가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쾌검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듯 벼락처럼 빠른 속도였으나, 백리현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날카로운 검기가 그의 목에 다다르는 순간, 움켜쥔 주먹이 섬전처럼 움직이며 상대의 아래턱을 강타했다.

투콱-!

상대의 턱뼈가 단 한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놈은 의식을 잃은 듯 힘없이 무너져갔다.

그의 몸이 축 늘어지는 순간, 적호병들의 포위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약속이나 한 듯 붉은 물결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동시에 밀려왔다.

백리현은 몸을 의식의 흐름에 맡긴 채 정신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허공을 난자하는 채찍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일 장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촤아악-! 촤아아악-!

채찍과 함께 선회하며, 적호병들과 뒤엉키는 백리현의 모습은 마치 신들린 무속인 같았다.

그 어떠한 병사도 채찍의 사정거리를 뚫고 그의 지척까지 다다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방으로 적호병들의 시체가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채찍에 당한 시신은 처참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며, 그 수는 일각 동안 무려 오십 구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백리현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적들의 수가 조금도 줄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움은 자연스레 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움직임 또한 점차 느려져 갔다.

살문의 내공심법은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폭발적인 위력을 뿜어내지만, 내력의 소모가 급격히 빨라 장기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적호병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때가 무르익자 적호병단에서도 가장 강한 병사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파앗-!

기어코 그의 채찍을 피해 근거리까지 파고든 병사가 나타났다.

지금껏 상대하던 적호병과는 움직임이 달랐다. 허공에서 각도를 틀며 돌진해오는 검 끝은 그의 목젖을 노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도 일격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를 악다문 백리현이 보법을 밟자 그의 신형이 유령처럼 미끄러지며 우측으로 빠져 나왔다. 가까스로 피해냈지만, 회피 동작을 멈출 수는 없었다. 또 한 가닥의 검기가 자신의 앞가슴까지 당도했기 때문이다.

휘리릭-!

지면을 박찬 그의 신형이 회오리치며 떠올랐다.

그는 들고 있던 채찍을 놓으며, 태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의 전신이 안개처럼 흩어져 버렸다.

“……?”

상대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자 적호병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했다.

“도망친 것이 아니니, 당황하지 말고 진법을 펼쳐!”

적호병단의 대장이었다.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그는 깃이 장식된 투구까지 눌러쓴 모습이었다.

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있었던 주변으로 짙은 연무(煙霧)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맑은 하늘 아래 난데없이 연무라니. 게다가 특정한 곳에만 발현되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얼떨결에 그 속에 갇힌 이십여 명의 적호병들은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그때 연무 안에서 한 가닥의 둔탁한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서걱-!

“크악!”

그것이 시작이었다. 곧이어 희뿌연 안개 속에서 우레와 같은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서거걱-!!

적호병들의 잘려나간 신체 부위가 하나둘씩 연무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살문의 비전절학인 만화살무(萬花殺霧)가 펼쳐진 것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 밝은 섬광이 쉼 없이 번뜩이고 있었다. 동시에 살무 안에 갇힌 적호병들의 비명이 궁성을 메아리쳤다.

잠시 후 연무가 서서히 걷히며 백리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주변으로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후우.”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모습이 몹시 지친 듯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휴식을 취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 적호병단이 아니었다.

주위를 돌며 빈틈을 노리던 병사 둘이 좌우에서 기습을 시도했다.

날카로운 검날이 교차하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휘리릭-!

도기를 잔뜩 머금은 태도가 정반대 방향으로 선회하자, 다가오던 병사들의 수급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서걱-!

그 순간 잘려나간 병사들의 목과 몸통 사이로 두 자루의 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적호병단의 장교들이었다.

위기를 직감한 백리현은 다급히 신형을 회전시키며 다가오는 검기를 회피해갔다. 그러나 온전히 피하기에는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기어코 한 자루의 검기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촤아아악-!

왼쪽 어깨의 옷자락이 잘려나가며 핏물이 허공을 수놓았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근육이 잘려나갔기에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 들어왔다.

“크윽!”

그는 지혈할 틈도 없이 또다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더욱 강한 공세가 연달아 이어졌기 때문이다.

베고 또 베어도 적호병들의 머릿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보였다. 정신없이 태도를 휘두르며 뒷걸음질 치던 그는 점차 자세가 무너져갔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켜만 보던 적호병단의 대장이 움직임을 개시했다.

타앗-!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벼락처럼 다가서는 움직임. 놀랍게도 극마(極魔)였다.

일격에 끝장을 내려는 듯 그의 검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날카로운 검 끝이 기이한 각도를 그리며 살초를 뿜어냈다.

백리현도 다급히 내력을 모아 태도를 그었지만, 어정쩡한 자세에서 펼친 초식이 완전할 리가 없었다.

쩌엉-!

“큭!”

막아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태도의 날이 부러지고 말았다. 충분한 내력을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상까지 입었는지 안색이 몹시 창백했다.

일격을 내지른 적호병단의 대장은 다시 후방으로 물러났다. 동시에 벌떼처럼 달려드는 적호병들. 그 모습이 마치 상처 입은 맹수를 끝장내기 위해 달려드는 늑대 무리 같았다.

“오너라.”

부러진 태도를 손에서 놓은 백리현은 양손을 움켜쥐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 가닥의 검기가 그의 목젖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적중되기 직전 상체가 급격히 기울어지며 좌측으로 미끄러졌다.

동시에 내질러진 주먹이 상대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쩌억-!

쓰러지는 적에게 신경 쓰고 있을 틈이 없었다.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또 다른 공격이 연달아 다가오고 있었다.

맨몸으로 미친 듯이 공세를 주고받는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의 자세가 무너진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옆구리로 다가오는 검 한 자루가 있었다.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 게다가 벼락처럼 빠르고 교묘한 일격이었다. 틀림없이 적호병단의 대장이리라.

푸욱-!

“크윽!”

기어코 백리현의 좌측 복부를 비집고 검 끝이 삐죽 튀어나왔다.

무지막지한 고통이 엄습해 왔지만, 숨을 고를 틈이 없었다. 그는 검을 꽂은 그대로 어깨를 회전하며 놈의 얼굴을 손등으로 강타했다.

콰앙-!

공격이 먹혀들지는 않았지만, 상대를 떨쳐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뽑혀나간 검날이 있던 자리로 핏물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러나 자세를 잡기도 전에 또 한 가닥의 검기가 그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팟-!

비틀거리는 그의 등 뒤로도 어김없이 검날이 비집고 들어갔다.

촤아악-!

“큭.”

새것처럼 단정했던 흑의가 걸레 조각이 되어가고 있었다. 등 뒤에 수놓아진 토끼 그림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버렸다.

쓰러지지 않겠다고 비틀거리며 버텼던 그였지만, 기어코 그의 등이 전각의 벽면에 맞닿았다. 민공의 집무실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엔 장양이 제 발로 걸어 나와 있었다.

따듯한 손이 벽에 기대어 있는 그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였다.

“이제 그만하시게. 자네는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했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물러서십시오. 저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든 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그래도 좋은 친구와 함께라니,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겠구만.”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장양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떠한 희망이 있겠는가. 그는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붉은 병사들을 지그시 응시했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가. 어서들 끝내시게.”

두 명의 적호병이 질주를 개시했다. 일격에 양단할 심산인 듯했다.

그 순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전각의 지붕 위. 그곳에서 두 개의 작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타앗-!

다람쥐처럼 날랜 움직임. 그리고 일률적인 동작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듯 예사롭지 않았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흑묘파의 호법, 영영과 백상이였다.

둘은 다가오던 적호병들을 향해 매처럼 다가가 가슴에 옆차기를 날렸다. 백리현에게 직접 전수 받은 살영각(殺影脚)이었다.

콰앙-! 쩌억-!

“큭!”

다가서던 병사들은 보기 좋게 삼 장을 떨어져 나가며 뒹굴었다.

적호병단은 새롭게 나타난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려 보인다고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단번에 눈치챘기 때문이다.

살문의 보물인 생유환을 복용하고 환골탈태까지 이룬 영영. 그리고 소무가 뛰어난 자질과 근성을 인정했던 백상이었다.

“문주님…….”

“괜찮으세요?”

울먹이는 목소리. 그리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백리현도 마음이 흔들렸다. 서로가 그간 정이 많이 들었던 탓이었다.

둘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는 백리현과 장양의 앞으로 가로막았다.

“……이 녀석들, 나서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어떤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말라고 했건만, 기어코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문주님이…….”

“할아버지를 꼭 지키기로 소소랑 약속했단 말이에요.”

장양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뒤로 물리려 했지만, 백리현이 힘겹게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그를 만류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잠시만…… 버텨줄 수 있겠느냐……. 이곳으로 뭔가가…… 뭔가 엄청난 것이 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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