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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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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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소나라 제일 호위무사 (3)
2022.10.03.
예민한 동물들은 지진이나 해일 등 거대한 자연재해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는 오직 살왕만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인가 엄청난 기운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것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온몸이 말이 아니었지만 어린 호법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없는 일. 그는 벽에 기대어 몸을 겨우 일으켰다.
“후……. 무극삼재진을 펼칠 수 있겠느냐.”
무극삼재진(無極三才陣). 살문에서 가장 뛰어난 살수 셋이 익히는 상승 진법이었다.
그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영영과 백상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소소와 함께 셋이 수련한 진법이었으나, 문주인 백리현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양손을 펴자 바닥을 뒹구는 창과 검 한 자루가 날아와 움켜쥐어졌다.
푸욱-!
땅에 깊숙이 꽂힌 창 자루에 몸을 지탱한 그는 오른손에 움켜쥔 검을 사선으로 치켜세웠다.
그의 좌우로 영영과 백상이 위치를 잡으며 품(品)자를 만들었다.
살왕 백리현. 서늘함만 간직했던 그의 두 눈이 처음으로 맑은 빛을 띠었다.
“……문주로서 명한다. 이 순간부터 살문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만든 흑묘파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세상에 보여주어라.”
죽어가는 자신이 제자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살문의 부활을 꿈꿔오던 그의 마음이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아이들에게 살문의 이름을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살수가 되지 말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문주님…….”
“흐흑.”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진법을 운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꽤 훌륭해 보이는 삼재진이었지만, 적호병단의 눈에는 우습게만 보였다. 멀쩡하지 못한 대장과 두 명의 아이라니.
그들의 대장이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군. 어서 끝장내거라.”
또다시 붉은 물결이 출렁이며 무차별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장양도 합류하여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끼어봐야 오히려 방해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까앙-! 까강-! 카카카캉-!!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가장 앞에 있던 백리현이 한 손으로 절반 이상의 공세를 받아내고 있었다. 한 걸음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몸 상태였지만, 좌우를 백상과 영영이 막아주고 있었기에 겨우 버티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그가 좌우를 향해 물었다.
“버틸 수 있겠느냐? 상황이 어려우면 도망치거라!”
“네! 문주님은요?”
백리현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일평생 살수의 길을 걸어오며 웃는 법조차 몰랐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촤아악-!!
막 다가오던 적호병을 두 동강 내어버린 그가 힘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금만 더 버티거라!”
“네!”
영영과 백상이 동시에 소리쳤지만,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어두워져 있었다.
비록 기연까지 얻은 뛰어난 기재들이었지만, 백호병들 또한 개개인이 일류고수에 비견되는 자들이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기어코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푸욱-!
“크억!”
백리현의 등 뒤로 검 날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적호병단의 대장이 나선 것이다.
곧이어 그의 앞발이 백리현의 가슴을 걷어찼다.
진법은 단숨에 깨져 버렸고, 그는 이 장을 날아 전각의 벽면에 등을 부딪혔다.
콰앙-!
지켜보다 못한 장양이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고 백리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듯했다.
장양이 이해한다는 듯 등 뒤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간 날 지켜주느라 고생 많았네. 내가 자네에게 보답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는 없구만.”
“……”
적호병단의 대장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영영과 백상도 움츠러들며 뒷걸음질 쳤다.
“쥐새끼들은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영영과 백상 따위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번 공격의 목표인 장양을 제거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장양은 검을 어깨 위로 잡아당기며 기수식을 취했지만, 잠시도 버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거리가 일 장까지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벽에 기대어 쓰러져 있던 백리현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살수인 그가 소리 내어 웃는 일은 처음이었다.
참을 수 없다는 듯 고통에 겨워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적호병단의 대장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엇이 웃기지?”
백리현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며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섬뜩함. 그 순간 어디선가 화가 잔뜩 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우리 문주님 때렸어요?”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이십여 장이 떨어진 곳. 그곳에서부터 한 여자아이가 거대한 호랑이 위에 올라타서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크르르릉-!!
산군의 입이 쩍 벌어지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모습이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등 위에 올라탄 꼬마였다. 은은한 금빛 후광이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체구에서 만인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적호병단의 대장이 몹시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누구냐?”
소소는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우측에서 누군가의 성난 고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미륵께서 오셨으니, 지옥불에 떨어지고 싶지 않다면 어서 죄를 고하거라!”
소림사의 고승인 정운선사였다. 퇴각한 줄 알았던 무림맹의 후기지수 수백 명과 함께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좌측에서도 순관들이 지원군을 잔뜩 몰고 와 돌격태세를 갖추었다.
상황은 역전되어가고 있었지만, 적호병들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합지졸들 따위 아무리 많아 봐야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소소는 미간으로 내 천(川)을 그리며 소리를 빽 질렀다.
“오합지졸 아니에요!!”
“건방진 꼬맹이로구나.”
“아저씨죠? 우리 문주님 때린 사람.”
적호병단의 대장은 비웃음과 함께 고개를 한 번 끄떡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상체를 돌려 장양을 향해 기습 공격을 시도했다.
푸우욱-!
가슴을 파고드는 검 끝. 동시에 외마디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끄윽.”
공격을 대신 받아낸 백리현이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장양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의 지독함은 적호병단의 대장조차 기가 질릴 정도였다.
“이놈이 끝까지…….”
그는 검을 뽑으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리현이 양손으로 검날을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꽈악-!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빛에는 강력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지금이다, 소소야……. 어서…… 어서 민공을 구하거라.’
백리현의 눈빛을 받은 소소는 산군의 등을 박차고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이어서 적호병들의 어깨 위를 밟고 벼락처럼 내달렸다.
타타타탓-!
“용서 못 해!”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세에 적호병단의 대장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온 힘을 다하자 백리현도 검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검을 뽑아 회수한 그는 기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소소를 향해 마주 나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 둘의 간격은 급격히 좁혀졌다.
그리고 오 장 이내로 가까워진 순간 소소가 근처에 있던 적호병의 머리를 짓밟고 도약했다.
구름을 뚫을 듯 끊임없이 치솟던 작은 체구는 허공에서 한 바퀴를 회전하고 몸을 뒤집었다.
호흡을 고른 적호병단의 대장도 따라서 하늘로 도약했지만,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실수였다. 외마디 기성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얍!”
우르르릉-!!!
여래신장의 절초인 만불조종(萬佛朝宗). 부처의 손바닥이 곧이어 천벌처럼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벼락과도 같은 속도는 가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다급해진 그는 하늘 위를 향해 다급히 강기를 뿜었지만, 단번에 소멸하고 말았다.
‘뭐 이런…….’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의 눈빛엔 황당함이 가득했다.
곧이어 거대한 황금빛 손바닥이 그의 전신을 삼키며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꽈아아아앙-!!!
천지가 요동치며 근처에 있던 적호병들이 허공으로 튕겨 날아갔다.
“큭!”
“크헉!”
상대적으로 멀리 있던 자들도 넘어지며 자세를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적호병단의 대장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손바닥 모양의 땅속으로 일 장 이상을 파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구덩이에 갇힌 그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괴력. 극마의 고수가 단 일격에 무력화가 된 것이다.
두 눈으로 그것을 지켜본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아직도 수백 명의 적호병들이 남아있었다. 그들과 마주 선 소소는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공포를 모른다던 적호병들이 동시에 움찔했다.
그들을 공격하려던 소소는 등 뒤의 신음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끄으.”
살문의 문주. 아니 흑묘파의 문주가 된 살왕의 신형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한 소소는 온몸이 정지했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초췌한 몰골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숨이 빠른 속도로 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소소는 그의 미소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말이다.
‘내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너희들과 함께했었던 모든 날들이…….’
서서히 감기는 두 눈. 동시에 그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안 돼!”
소소가 쓰러지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갈가리 찢겨나간 흑의는 성한 곳이 없었다. 등 뒤로 붉게 물든 토끼의 자수를 보니 슬픔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영영과 백상도 달려들어 백리현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리고 슬퍼하는 것은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뒤쪽에서 목이 잠긴 듯 쥐어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한테도 잠시 시간을 주지 않겠느냐.”
장양이 이토록 슬픈 얼굴을 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이 둘이야말로 그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관계라는 것을.
아이들이 물러나자 눈시울이 붉어진 장양이 양손으로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어딘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더는 적호병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새로운 지원군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네 명의 무림인이 이곳으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소무의 요청으로 이곳을 지원하기 위해 온 무림맹의 절대고수들이었다.
소무의 그늘에 가려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을 뿐, 하나하나가 무림의 십대고수에 들 정도로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동시에 공격하자 적호병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단번에 무너지는 진형을 보며 순라군과 무림맹의 후기지수들이 포위하듯 가세했다.
“모조리 주살하라!!”
상황은 뒤바뀌어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한 채 장양은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등 뒤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뒤돌아볼 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자네의 죽음을 허락한 적이 없네. 어서 눈을 뜨시게, 이 사람아. 이렇게 가면 내가 뭐가 되겠는가.”
그가 향하는 곳에는 의선당이 있었다.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희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흑묘파의 아이들은 장양의 뒤를 따라 계속 걸었다.
“할아버지, 어떡해요? 우리 문주님 살 수 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힝…….”
“으흐흑.”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장양의 마음을 더욱 괴롭게 했다.
그리고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위로밖에 없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아저씨는…… 아저씨는 영원히 너희들의 마음속에 함께 있을 것이니…….”